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50
퓨쳐나이트 150화
엘프의 숲은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잿더미가 되었던 지난날보다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숲을 되살리기 위해 엘프들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프의 숲에 도착한 강찬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어린아이들이었다.
녹색 엘프의 침공으로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그들에게 아이들이란 보배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아르테온과 엘라디온은 매우 바빴다.
파괴된 마을과 숲을 재건하기 위해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찬은 잠시 얼굴만 비추고, 곧장 라크샤 대륙으로 기수를 돌렸다.
엘프의 숲에는 라크샤 대륙으로 통하는 공간 이동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 언제든 원할 때 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라크샤 대륙에 도착한 강찬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플라티나가 사는 폭포였다.
거대한 레드 마스호가 폭포에 점점 다가가자 거대한 그림자가 폭포를 집어삼켰고, 갑자기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에 놀란 플라티나가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녀의 눈앞에는 놀랍도록 거대한 강철의 구조물이 하늘 위에 떠 있었고, 그 강철 구조물에선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던 남자가 내려섰다.
“플라티나.”
“강찬 님!”
강찬을 기다리며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플라티나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다녀왔어.”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플라티나가 강찬의 품에 안겨서 울음을 터트리자 그는 그런 그녀를 끌어안고 달래 줬다.
“이젠 다 끝났어. 이제 네 곁을 떠나지는 일은 없을 거야.”
모든 게 끝났다는 말에 플라티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
그것은 녹색 엘프족의 멸망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런 플라티나는 더욱 슬피 울었고, 강찬은 그런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아 줬다.
동족들을 버리고 자신을 선택해 준 그녀를 말이다.
뒤늦게 전함에서 내린 에델린과 자이젠은 그런 그 둘을 보며 머뭇거렸다.
강찬이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끌어안은 모습이 굉장히 낯설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머뭇거리던 에델린과 자이젠은 서로 말없이 눈빛을 교환했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손을 맞잡은 채 자신들을 반겨 주는 라크샤 대륙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고마워, 자이젠. 내 곁에 있어 줘서.”
“전 언제까지고 공주님 곁에 있을 겁니다.”
에델린은 자이젠의 볼에 기습적으로 뽀뽀를 해 줬다. 그러자 자이젠은 또다시 시뻘건 홍당무가 되어 버렸고, 그런 그를 두고 강찬에게 달려간 에델린이 강찬의 등짝을 후려치며 말했다.
“이런 모습도 있었군요? 냉혈한인 줄만 알았는데? 그렇게 달라붙어 있지만 말고 누군지 좀 소개해 주세요?”
뜨겁게 포옹하던 두 사람이 급히 떨어졌고, 강찬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흠! 흠!”
“강찬 님, 뒤에 저분들은 누구시죠?”
“아, 여기는 비스만 제국의 공주인 에델린 공주님이시고, 뒤에 저 덜떨어지게 생긴 놈은 자이젠이라고, 왕년에 내 부하였던 놈이야. 둘 다 앞으로 여기서 우리랑 함께 지낼 이웃사촌들이지, 서로들 인사해.”
“뭐라? 덜떨어진?”
“대장,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아니, 우리 자이젠이 어디가 덜떨어졌다고 그래요?”
에델린이 자이젠에게 한 말을 가지고 꼭 자신이 모욕당한 것처럼 길길이 날뛰자 강찬은 두 사람 사이가 주종 관계에서 벗어나 뭔가 일보 전진을 했음을 직감했다.
강찬의 무사 귀환과 이웃이 생긴 기념으로 플라티나는 모든 실력을 발휘해 성대한 저녁 잔치를 벌였다.
그래 봐야 엘프의 피를 타고난 그녀가 준비할 수 있는 거라곤 야채와 과일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들은 과일로 배를 채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던 중 강찬이 돌연 플라티나에게 말했다.
“이제는 내 앞에서 일부러 피부색을 바꾸지 않아도 돼.”
“예? 하, 하지만.”
이웃 때문에라도 자신이 녹색 엘프라는 것을 당연히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강찬의 말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강찬의 진지한 두 눈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요.”
플라티나가 지크욘이 걸어 준 마법을 풀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눈부신 빛에 휩싸였고, 피부가 백옥 같은 하얀 피부에서 녹색의 피부로 바뀌었다.
그러자 함께 식사를 하던 에델린과 자이젠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악!”
“헉! 노, 녹색 엘프?”
그들이 그녀의 모습에 놀라 자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녹색 엘프는 그들에게 양립할 수 없는 적이었기 때문이다.
“…….”
플라티나는 그들의 눈에서 예전 포로 생활을 할 때 봤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증오, 원한, 분노 같은 극단적인 감정이 담긴 눈빛 말이다.
“…….”
둘의 눈길에 겁을 먹은 플라티나가 강찬의 뒤로 슬그머니 숨자 강찬은 그런 플라티나의 손을 잡아 주며 에델린과 자이젠에게 말했다.
“내 아내가 될 사람은 보다시피 녹색 엘프다. 뭐, 문제 있나?”
“그, 그건.”
“대장, 하지만! 그들은 적이지 않습니까?”
“적이라고 해서 다 같은 건 아니다.”
“하지만 녹색 엘프가 있는 곳에서 공주님을 모실 수는 없습니다.”
“그래? 그럼 미안하지만 이 대륙에서 함께 지내는 건 무리겠군. 나한테는 이 여인이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거든.”
떠나라는 강찬의 말에 에델린이 정신을 번뜩 차렸다.
지금 그녀는 눈앞에 혐오스런 오크가 있다고 해도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녹색 엘프를 단 한번도 만나 본 적 없는데, 이렇게나 예쁘고 귀엽게 생겼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고, 공주님?”
“예전엔 서로 적이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잘 지내 봐요.”
에델린이 선뜻 손을 내밀자 플라티나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대답했다.
“예에…….”
강찬과 자이젠이 의외로 침착하고 현명하게 나오는 에델린의 태도에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한 아이의 엄마란 것은 참 무섭군.’
이른 새벽부터 드래곤족이 강찬을 찾아왔다.
이제 그들을 이끄는 이는 지크욘이 아닌 레크라시온.
그러나 그는 강찬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 역시도 외계에서 온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에 범주를 넘어선 그의 힘에 대해서도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그가 가진 힘은 이 세계의 절대자인 드래곤을 위협할 만한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가 새벽부터 강찬을 찾아온 것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 유일하게 드래곤족을 위협할 만한 힘을 지닌 전함의 처분을 논의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의외로 강찬은 전함의 처분 권한을 순순히 드래곤들에게 이양했다.
그의 태도에 놀란 것은 오히려 드래곤들이었다.
저 전함만 있으면 대륙을 통치하는 것은 일도 아니거늘, 그런 힘을 너무도 쉽게 포기해 버리는 그를 보면서 말이다.
그것은 인간 못지않은 욕심을 지닌 그들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전함이 인간이나 드워프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부디 이 세계의 절대자들인 당신들이 처리해 주었으면 합니다.”
소드 엠페러가 된 그라고 해서 천년만년 살 수는 없는 법.
전함은 언젠가 후대 인간들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고, 사용 여하에 따라서 이 세계를 위태롭게 할지도 몰랐다.
그럴 바엔 차라리 엔진을 정지시켜 고철로 만들어 버리는 게 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네는 정말 욕심이 없군. 역시 지크욘 님이 선택한 인간이야.”
“…….”
지크욘이란 이름이 나오자 강찬의 얼굴은 급격히 굳어졌다.
이름을 듣자 그녀를 잃은 슬픔이 다시금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를 보며 실피리스가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괜찮아?”
“아, 괜찮아.”
“안녕? 잘 지냈어?”
“그래, 잘 지냈지.”
“나,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지. 어떻게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한 전우를 잊겠어.”
강찬은 꼭 동생을 대하듯 실피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플라티나가 약간 토라진 듯했다.
그가 다른 여자와 친근한 모습을 보이는 게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는 드래곤.
그녀로선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어느새 다가온 실피리스가 플라티나를 보며 말했다.
“얘가 네가 선택한 반려자야?”
“응, 소개할게. 플라티나야.”
“안녕하십니까, 위대한 분이시여…….”
“그래, 오랜만에 보는 녹색 엘프로구나.”
“…….”
오랜만에 보는 녹색 엘프란 말에 플라티나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한때 전 대륙을 가득 메웠던 녹색 엘프를 보고 오랜만에 보는 녹색 엘프라고 인사를 건네다니, 그것은 곧 대륙에 있던 동족들이 모두 사라졌음을 뜻했다.
실피리스는 그런 그녀의 감정 따윈 무시하고 계속해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그래, 신혼살림은 깨가 쏟아지시나?”
“…….”
강찬은 뭐라 말을 못하고 얼굴만 벌게졌다.
그런 강찬을 보며 실피리스는 귀여워 죽겠다는 듯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 여기 자주 놀라 와도 돼?”
“언제든지 와.”
“그래? 플라티나도 괜찮지?”
은근히 뒤에 억양을 높이는 실피리스에게 플라티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예, 언제든지 오세요…….”
왠지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두 사람을 뒤로한 강찬이 전함을 봉인 중인 드래곤들에게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레드 마스호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다.
가까이 다가온 강찬에게 레크라시온이 물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강찬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 배를 타고 온 우주를 누볐지만, 저에게 행복했던 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습니다. 저것은 저에게는 단지 괴로운 추억만이 가득한 거대한 쇳덩이에 불과합니다.”
“흠, 그래? 그럼 뭐, 할 수 없지. 이제 저 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내 허락을 구하는 사람뿐이네. 혹시 배 안으로 들어갈 일이 생기면 나에게 연락하게나.”
“배려 감사합니다.”
봉인을 끝마친 드래곤이 떠나갔다.
전함이었던 레드 마스호는 이제 거대한 신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물론 그것은 환영이었지만, 매우 고차원적인 마법이었기에 만져 보면 돌의 느낌까지 생생하게 전해질 정도로 완벽한 환영이었다.
그렇게 변해 버린 레드 마스호를 바라보는 강찬은 감회에 잠겼다.
드디어 기나긴 여정이 끝난 듯했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전쟁 병기로 개조되어 단 하루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던 그가 드디어 자리 잡은 이곳, 라크샤 대륙.
게다가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평생 그가 보살펴 줄 여인이 있었다.
“플라티나.”
“네?”
“사랑해.”
뜬금없이 진지한 얼굴로 사랑한다 말하는 그에게 플라티나가 조용히 안겼다.
“저도요.”
플라티나를 안은 강찬은 마음속으로 제이나에게 약속했다.
‘제이나, 널 사랑했던 만큼 이 여인을 사랑할게. 약속해.’
한낱 전쟁 병기에 불과했던 자신에게 사람의 감정을 되찾아 준 그녀.
분명 제이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만, 그만큼 소중했던 제이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찬이었다.
* * *
먼 훗날, 강찬이란 존재가 아르칸도르 대륙을 구원했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인간들의 역사 속에는 오로지 작센 공작의 이야기만이 가득할 뿐이다.
강찬이란 이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강찬 본인의 의지였다.
자신은 이 별 출신도 아니었고, 그 역시도 원래는 적들과 마찬가지로 이 별을 침략하러 온 침략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찬은 이 별의 역사 속 영웅으로 남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인간들의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들은 기억하지 못해도 수천 년을 사는 드래곤과 엘프족에게는 강찬이란 이름이 길이길이 전해졌다.
외계에서 온 친구이자 최초의 소드 엠페러로 말이다.
그리고 수천 년 후.
여행자들에 의해 아르칸도르 대륙과는 다른 새로운 대륙이 발견되었다.
그곳은 인간과 엘프, 드래곤이 한데 어울려 사는 신비로운 대륙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에는 녹색의 피부를 지닌 자들도 있었다.
대륙에선 수천 년 전에 멸망해 자취를 감춘 녹색 엘프들의 후예가 말이다.
그곳은 바로 라크샤 대륙이었고, 그곳에서 살던 강찬과 플라티나, 그리고 에델린과 자이젠의 후예들이 번성해 드래곤들의 허락 아래 대륙과의 왕래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룩한 문명은 고도로 발전한 마법과 과학이 어우러진 진정한 마도 문명이었다.
지구의 문명이 강찬이란 마지막 인류를 통해 외계에서 다시 꽃을 피운 것이다.
그들의 문명 수준은 마법과 과학을 응용해 이미 우주까지 진출한 상황이었다.
그런 그들이 아르칸도르 대륙의 인간들과 어찌 지낼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앞으로 그들의 짊어져야 할 운명이었다.
(퓨쳐나이트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