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6
퓨쳐나이트 16화
“전함에 있던 탈것입니다, 마스터.”
1시간을 넘게 기다린 엘라디온이 언성을 높였다.
“그런 것이나 타고 놀면서 나와의 약속에 늦은 것이냐? 약속을 어기는 행위는 우리 엘프들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아주 안 좋은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냐, 모르는 것이냐?”
“사실은 어제 밤새도록 청소를 하느라.”
“듣기 싫다! 네가 원해서 그 먼 곳으로 간 것이니 그 말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을 그런 구차한 변명 따위나 늘어놓다니! 검술을 배우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구나.”
“죄송합니다! 마스터, 앞으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강찬이 엘라디온 앞에 무릎 꿇고 깊이 사죄를 했다.
“오늘은 첫날이고 처음이니 용서해 주겠다. 하지만 다시 이런 일이 있을 시에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
“감사합니다, 마스터.”
“좋다. 그럼 날 따라오너라.”
“네, 마스터!”
그렇게 강찬이 에어 바이크를 주차해 놓고 엘라디온을 따라 마을 밖으로 한참을 이동하자 규모는 그리 크진 않지만 까마득한 높이에 낙차가 있는 폭포가 나왔다.
“이곳은?”
“내가 우리 엘프의 숲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여기만큼이나 대자연의 마나가 응축되어 있는 곳도 드물지.”
예전에 제이나와 함께 몇 번 물고기를 잡으러 놀러 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엘라디온이 자신을 왜 여기로 데리고 왔는지를 그로선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오늘부터 네가 수련할 곳이 바로 저 폭포다.”
“네? 폭포에서 검술을 말입니까?”
“왜, 싫으냐? 혹시 물을 싫어하느냐?”
“그런 건 아니지만…… 검술을 익히는데 왜 굳이 폭포에서 해야 합니까?”
칼을 다루는데 폭포라니…… 강찬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겐 정말이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훈련이었다.
하나 그런 강찬의 의문은 엘라디온의 한마디에 불길함으로 바뀌었다.
“그건 말이다, 너에겐 불가사의한 치유력이 있기 때문이지.”
“그, 그거랑 이거랑 무슨 관계입니까?”
딱!
강찬의 눈앞에 불똥이 튀었다.
엘라디온의 주먹이 강찬의 머리통을 후려갈겼기 때문이다.
“아프냐?”
“아픕니다.”
“그렇다면 저기 저 쏟아지는 폭포수의 수압이 얼마나 강할지 생각해 봤느냐? 아마도 방금 내가 내려친 꿀밤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을 것이야.”
두근!
“그, 그럼 설마 저를 저기에?”
“왜 아니겠느냐? 저 폭포 아래에는 물이 떨어지는 낙차 때문에 대자연의 순수한 마나가 잔뜩 응축되어 있단다. 아마도 대기 중에 떠도는 마나의 족히 몇 배는 될 것이야. 바로 저기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맞으며 대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면 남들보다 몇 배나 더 빨리 마나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내 장담할 수 있다. 거기다 폭포수가 너의 전신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온몸의 감각과 마나 라인들이 더욱 예민해져서 더욱 효과 만점이지. 어떠냐? 멋지지 않으냐?”
“그럼 왜 다른 엘프들은 안 시키고 저만?”
“멀쩡한 엘프 잡을 일 있나?”
“아…….”
강찬,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으으으으읍!”
강찬은 온몸을 구타당하는 듯했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의 위력은 실로 머릿속을 아득하게 만들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런 와중에 강찬은 이를 악물고 폭포수를 이겨 내고 있었다.
“끄으으으으으으윽!”
“어허! 자세 똑바로 안 하나?”
“흐으으으으으으읍!”
“엘라디온 님, 저 아저씨 왜 저러고 있어요?”
“수련 중이란다.”
“예? 무슨 수련을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하나요?”
“음…… 온몸으로 대자연의 마나를 받아들이는 중이지.”
엘라디온이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요, 저 아저씨 코피 나는 것 같은데 괜찮아요?”
이를 악물고 굳건하게 폭포수에 맞서고 있는 강찬의 코에서 코피가 줄줄 흐르자 제이나가 걱정되는지 엘라디온에게 물었다.
하지만 엘라디온은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걱정할 것 없단다. 제이나 너도 알잖느냐, 저놈의 짐승 같은 치유력을.”
“아, 맞다! 아저씨, 힘내! 화이팅!”
정신이 아득해지는 찰나에도 멀리 나무 그늘 아래서 편하게 자신을 향해 파이팅을 외치는 제이나를 보며 강찬은 이를 갈았다.
“으으으으윽…….”
장장 2시간 동안 기마 자세로 폭포수를 얻어맞은 강찬이 거의 탈진 상태로 돌아왔다.
얼음같이 차가운 폭포수 탓에 그는 온몸에 감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 앉아라.”
“예.”
강찬이 힘없이 자리에 앉자 엘라디온이 강찬의 등에 손을 얹고 마나를 불어넣어 줬다.
그러자 탈진 상태였던 강찬의 몸 안으로 따스한 엘라디온의 마나가 구석구석 퍼지면서 시퍼렇던 강찬의 입술이 다시금 혈색을 되찾았다.
“장하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단 몇 분만 맞아도 기절할 정도로 강력한 폭포수를 장장 2시간 동안이나 참아 내다니, 역시 대단하다. 이건 오로지 너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강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엘라디온의 눈에는 대견함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의 눈빛에는 ‘설마 이걸 진짜로 해낼 줄이야…….’라는 강한 불신의 눈빛도 혼재되어 있었다.
숨을 돌린 강찬이 다시 활력을 되찾자 이번에는 이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너에게 검술은 안 가르쳐 주고 왜 폭포를 맞게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되나?”
아직 몸의 마비가 다 풀리지 않은 강찬이 어렵게 입을 떼고 말했다.
“네에, 조금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너는 검술을 배우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단순 동작만이 아닌 고차원적인 우리 엘프족의 검술을 배우려면 육체와 마나 라인이 막혀 있으면 아주 곤란하지. 그 때문에 네놈의 굳어 있는 육체와 마나 라인을 조금이라도 야들야들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지.”
‘야, 야들야들?’
야들야들이라는 표현에 실눈을 가볍게 뜨고 사악한 미소를 짓는 자신의 마스터를 보곤 강찬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가 가장 중요한 이유다. 우리 엘프의 검술은 인간들의 검술처럼 무조건 검을 휘두르며 익히는 검술이 아니다. 검술과 마나의 조화를 가장 중요시하는 검술이지. 뭐, 그 탓에 너무 오랫동안 연마해야 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일단 익히기만 한다면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소드 익스퍼트에 오르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단다. 다만 자질과 노력에 따라 10년이 될지 100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 말에 강찬은 마른침을 삼켰다.
“복잡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다시 간단히 말하자면 마나를 느끼고서 검술을 배우는 것과 모르는 상태로 검을 배우는 차이란다. 당장 전쟁에 나가 싸워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내가 생각하기에는 당연히 마나를 먼저 느끼고 고급 검술을 익히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본단다. 물론 기본기는 당연히 탄탄해야겠지?”
기본기라는 말에 강한 악센트가 들어가자 강찬의 낯빛이 침울해졌다.
“그리고 이걸 받아라.”
“이게 뭡니까? 마스터.”
“뭐긴 뭐냐? 네가 쓸 목검이지.”
“모, 목검이요?”
“그래.”
엘라디온이 내민 것은 50센티가 채 되지 않을, 짧은 빨랫방망이같이 생긴 투박한 나무 막대기였다.
하나 빨랫방망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칼날 부분에 묵직해 보이는 쇳덩이가 둘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형만 놓고 본다면 몬스터들이 휘두를 법한 무식한 클럽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앞으로 네가 훈련할 때 쓸 무기라서 내가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들어 왔느니라.”
양손에 받아 든 곤봉…… 아니, 나무 단검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를 가늠해 본 강찬이 쓴웃음이 지으며 말했다.
“신경 안 써 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아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천둥번개 이도류를 익힐 충분한 근력을 얻을 수 있단다.”
“근력은 이미 충분한 것 같은데…….”
“떽! 웃기는 소리! 검술이란 모름지기 기본기에서 출발해야 하거늘! 기본기가 탄탄할수록 검술이 깊어진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다! 하기 싫으냐? 그렇다면 관둬라.”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그래? 좋다. 그럼 너는 천둥번개 이도류의 기본 찌르기와 베기 동작을 하루에 1,000번씩 휘둘러라. 알겠느냐?”
‘히익! 하루 1,000번씩이나? 천둥번개 이도류의 기본 찌르기와 베기는 12가지나 되는데 그걸 하루에 1,000회씩이면 대체 몇 번을…….’
어렵게 얻은 기회이기에 강찬은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만 했다.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어허, 목소리 봐라? 하기 싫으냐?”
“아,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오랜 군 생활로 다져진 군기 충만한 강찬의 외침이 퍽 마음에 든 엘라디온은 강찬의 어깨를 살포시 두들겨 주면서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벌써 해가 중천이다. 오늘 할당량을 채우려면 부지런히 휘둘러야겠지? 그럼 시작해라.”
“…….”
꿀꺽
강찬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 * *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강찬은 기본기라는 명목으로 폭포에서 마나 느끼기 수련이 끝나면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지독하게 무거운 쇳덩이를 동여맨 나무 단검 두 자루를 양손에 부여잡고 천둥번개 이도류의 기본 찌르기 동작과 베기 동작 12가지를 각각 1,000번씩이나 휘둘러야 했다.
물론 강찬이 다른 인간에 비해 근력이 몇 배나 되긴 했지만 이렇게 주구장창 하루 온종일 휘둘러야만 하는, 욕 나올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질 못했다.
지금까지 사흘 동안 미친 듯이 휘둘러야 했던, 그 지랄 맞게 무거운 단검 두 자루를 오늘도 힘차게 휘두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는 강찬이었다.
그렇게 하루 할당량을 마친 강찬은 파김치가 되었지만 일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엘라디온은 파김치가 된 강찬을 앉혀 놓고 이론 교육을 시작했다.
“마스터, 그렇다면 제가 느껴야 하는 그 마나란 대체 무엇입니까?”
“마나란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며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명력을 유지해 준단다. 그래서 흔히들 제2의 공기라고 부르지. 왜냐하면 공기와 마찬가지로 마나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거든. 마나란 우리의 생명과는 뗄 수 없는, 아주 이로운 것이란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그런 이로운 마나가 호흡을 통해 몸으로 전해지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단다.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마스터가 말씀하시는 마나라는 게 예전 지구의 동양에서 부르던 기라는 건가? 비슷한 대목을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이로운 마나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여 검술에 접목시킬 줄 아는 단계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소드 익스퍼트이다.”
“예, 마스터.”
“지금 네가 하는 것은 너의 몸 안에 잠재되어 있는 마나를 느끼고 우리 엘프의 검술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고유의 호흡법으로 대자연의 마나를 네 몸 안에 있는 마나 홀이란 곳에 모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다.”
강찬은 드디어 자신이 배우고 싶어 했던 부분이 거론되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엘라디온을 바라봤다.
“이것은 우리 엘프 이외에 단 한 번도 다른 종족에게 전수된 적이 없기에 너는 이것을 배우기 이전에 나와 다시 한번 약속해야만 한다. 그것은 자신 이외의, 엘프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이 호흡법을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겠느냐?”
“예,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만일 이것이 외부 세계로 유출된다면 우리 엘프들은 최후의 하나까지도 유출한 범인을 죽이고 그것을 익힌 모든 자까지 죽여야만 하니 내 말 꼭 명심하거라.”
엘라디온의 진지한 표정에 강찬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절대로 명심하겠습니다, 마스터.”
“그럼 내 너를 믿고 호흡법을 전수해 주겠다.”
강찬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드디어 그 미지의 힘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되는구나.’
“자, 그럼 설명할 터이니 잘 들어라. 먼저 마나 호흡법은 크게 마나를 흡입하는 흡기 과정과 마지막으로 내뱉는 호기 과정으로 나눈단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견식 호흡과 흉식 호흡,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복식 호흡으로 나뉘지.”
“예, 마스터.”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모두 실험해 본 결과 마나 호흡법을 연성할 때 가장 이상적인 자세는 바로 이렇게 앉아 허리를 곧게 세우고 손으로 배를 감아쥐는 것이었단다. 너도 따라 해 보거라.”
그것은 강찬도 익히 아는 자세였다.
500년 전 지구와 함께 사라진 자신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양반다리라고 부르던 자세였다.
그 자세는 서양인 체구보다는 강찬과 같은 동양인 체형이 앉기가 더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