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19
퓨쳐나이트 19화
과거 신이 내려 주셨다는 가장 무서운 병기였던 고대의 거인을 모방해 인간들이 만들어 낸, 기간테스라 불리는 이 아이언 고램은 인간이 전 대륙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하게 만들 만큼이나 무서운 위력을 가진 전쟁 병기였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도열해 있는 기간테스들은 그런 인간들의 기간테스를 모방해 엘프와 드워프가 손잡고 만들어 낸 회심의 작품들이었다.
최고의 마법사와 최고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니 그 성능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 분명했다.
“다들 내려오세요. 먼 길 오셨는데 약소하지만 연회를 준비해 뒀답니다.”
“오호라! 오랜만에 엘프들의 과일주를 마시겠군. 크크큭!”
술 이야기가 나오자 드워프들의 입에선 하나같이 침이 질질 흐를 지경이었다.
“저희 마을에서 가장 독한 과일주로 준비했답니다. 원 없이 드시다 가세요. 자, 어서 이리로 오세요.”
“잠시만, 곧 내려가리다.”
크랙시온의 기간테스가 무릎을 꿇자 다른 기간테스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고, 50기의 거대한 기간테스들이 차례로 무릎을 꿇는 모습은 웅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기간테스에서 내린 드워프들이 엘프의 로드인 아르테온의 안내를 받으며 자신들의 로드를 따라 사라지자 홀로 남은 엘라디온이 드워프들의 로드인 가펠드 폰 크랙시온이 타고 온 기간테스의 다리를 매만지며 나직이 속삭였다.
“몸체를 만들 기술은 있으나 생명을 불어넣을 마법을 모르고, 마법은 알고 있으나 몸체를 만들 기술이 없는 자들의 연합이라니 시작부터 모순이로구나.”
한참 기간테스를 올려다보던 엘라디온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강찬을 불렀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것이냐?”
“…….”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강찬은 찔끔한 마음에 어기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왜 거기에 숨어 있었느냐?”
약간의 의구심이 담긴 마스터의 말에 강찬이 얼른 대답했다.
“이것들이 마을로 향하기에 조심히 뒤를 따라왔습니다, 마스터.”
자신들 엘프를 걱정하는 제자의 진심 어린 마음에 엘라디온의 표정이 밝아졌다.
“기특한 녀석. 그래, 어찌 보면 잘됐구나, 내 여태껏 너에게 못한 말이 있었는데.”
“그게 무슨?”
“이것들이 뭔 줄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그저 거대한 강철의 거인이라고밖에.”
“그래, 그렇지. 강철로 만든 거대한 살인 병기들이지.”
“살인 병기라면?”
천천히 고개를 돌린 엘라디온이 슬픈 눈으로 강찬을 바라봤다.
“이제 곧 우리도 이별이구나, 제자여.”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스승의 갑작스런 비보에 너무나도 놀란 강찬이 한걸음에 달려와 엘라디온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곧 종족의 사활을 건 거대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아직 너에게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이 산더미 같은데, 너에게 정말로 미안하게 됐구나.”
“지, 지금 전쟁이라고 하셨습니까?”
전쟁이란 말에 강찬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이토록 평화로운 곳에도 전쟁이 있단 말인가?’
강찬의 눈에 엘프들은 법 없이도 살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쟁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전쟁은 현실이었다.
그것을 눈앞의 거대한 강철 거인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그래, 이들 살인 병기가 우리 엘프의 숲으로 온 이유이지.”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마스터!”
“아니다, 엘프도 아닌 네가 엘프를 위해 죽음을 무릅쓸 것까지는 없단다. 너의 마음만 고맙게 받으마.”
“저를 살려 준 것도 엘프인 마스터이시고 저에게 검술을 가르쳐 준 것도 엘프인 마스터이신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우린 놀러 가는 게 아니다. 어쩌면 모두가 죽을지도 모를, 몹시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야. 그런데도 정녕 나를 따라오겠단 말이냐?”
결연한 눈빛의 강찬이 입을 열었다.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마스터! 설령 그 끝이 죽음이라도.”
진지한 강찬의 말에 엘라디온이 약간 감동했는지 강찬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자애로움이 가득했다.
“좋다! 그럼 오늘부터 맹훈련이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거친 훈련이 될 것이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네, 마스터!”
제자를 바라보는 엘라디온의 눈빛에는 대견함으로 가득했지만 제자인 강찬의 눈에는 전혀 다른 눈빛이 가득했다.
‘전쟁이라…….’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껏 뼛속까지 군인으로서 살아온 강찬의 가슴이 전쟁이라는 그 한마디에 다시금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 * *
숲의 엘프들과 드워프들이 힘을 모아서 전쟁 준비에 한창일 때.
에르칸도르 대륙을 지배하는 인간들의 왕들은 한자리에 모여 목청을 높여 가며 서로 비난하고 모함하기에 바빴다.
카르멜 공국이 위기에 처했을 당시 그들은 각자 자신들 국가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만 했다.
그래서 주변국 눈치나 보면서 소수의 병력과 군량을 지원했을 뿐, 그저 다른 나라의 일처럼 쉬쉬했다.
결국 카르멜 공국은 단 3일 만에 적의 손에 멸망해 버렸고, 그 후로 1년 동안 카르멜을 시작으로 인접국이었던 아르잔과 셈프론마저 그들의 손에 멸망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녹색 엘프들이 활개 치는 동안 그들이 한 것이라곤 오로지 자신들 국가와 영지를 지키기 위해 성벽을 더 높게 쌓고, 용병을 고용하거나 농부들을 훈련하는 등 자기 휘하의 병력만 늘리는 일뿐이었다.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들은 이렇게 뒤늦게 모여 서로가 남 탓이나 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회의장의 거대한 문을 밀치고 비스만 제국의 황제 헬라이너 딘 프롬펠 3세가 들어섰다.
그러자 회의장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침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고요함 속에서 제국 황제는 오만한 눈으로 회의장을 둘러보며 외쳤다.
“미천한 잡종 놈들이 숫자만 믿고 우리 에르칸도르 대륙을 넘보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탁상공론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그의 호통에 그 어느 국왕도 반론하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었다.
“지금부터 본 비스만 제국의 황제인 나 헬라이너 딘 프롬펠 3세의 이름으로 대륙 동맹군의 구도는 바뀔 것이오!”
그는 천천히 회의장을 가로질러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그것은 그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의자로 다른 국왕들의 의자보다 족히 두 배는 될 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했다.
“작센 경, 경이 준비해 온 것을 보여 주시오.”
작센 경이란 말에 장내가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류미엘 폰 작센 공작.
그는 인간 세계에 잘 알려진 10명의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이었고, 각 종족을 대표하는 5대 무신 중 인간 종족을 대표하는 명실공히 인간계 최고의 강자였다.
작센 공작이 거대한 양피지를 회의장의 거대한 원형 테이블에 펼쳐 놓자 자세히 그려진 에르칸도르 대륙이 모습을 드러냈다.
“류미엘 폰 작센 공작이 이제부터 대륙 동맹군 총사령관을 맡아 그들을 정벌할 것이오. 이에 불만 있다면 손드시오.”
아무도 헬라이너 황제의 말에 반론을 달지 않았다.
그만큼 비스만 제국의 힘은 대륙 제일이었고,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황제는 그런 눈빛을 즐기는 듯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모두 찬성한 것으로 알고 작전 회의를 시작하겠소. 자, 시작하게, 작센 공작.”
“안녕하십니까, 저는 비스만 제국의 황실 근위대를 맡고 있는 류미엘 폰 작센 공작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국가별 전투 편제 및 보급에 관하여 군사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지휘봉을 잡자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친 류미엘 작센 공작이 지휘봉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대륙의 국왕들을 상대로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그러자 각 국왕은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막대한 금전적 손해와 군사적 피해로 인한 불만에 입이 댓 발이나 나왔다.
하지만 감히 비스만 제국의 황제 앞에서 불만을 토로하지 못한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히 입 다물 수밖에 없었고, 작센 공작의 군사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 *
“야! 너 엘라디온 님 따라 전쟁에 나간다며?”
“그래.”
“미친 거 아니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
“어차피 엘프들이 구해 주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을 몸이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안 죽으니깐.”
강찬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제이나가 귀여운지 제이나의 머리를 쓰다듬자 얼굴이 붉어진 제이나가 강찬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흥! 누가 너 같은 똥싸개를 걱정하냐? 애꿎은 엘프들 발목이나 잡지 마.”
똥싸개란 말에 강찬의 얼굴이 대번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것은 강찬에겐 일생일대의 흑역사였다.
“내가 그때 그 일…… 절대로 꺼내지 말라고 말했지?”
‘아차!’
강찬의 말끝이 흐려짐에 제이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제이나, 잠깐 나 좀 볼까?”
“미, 미안.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 꺄악!”
“어딜 도망쳐!”
거칠게 달려드는 강찬을 보고 겁에 질린 제이나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야! 너 거기 안 서?”
“똥싸개 메롱!”
앙증맞게 메롱을 하면서 도망치는 제이나의 모습에 강찬은 속으로 하나도 화나지 않았지만 애써 화난 척 연기했다.
“너 잡히면 각오해!”
막 제이나를 잡으러 있는 힘껏 달려가려 하던 강찬의 앞을 누군가 불쑥 튀어나와 가로막았다.
“넌?”
“아직도 이런 유치한 짓거리냐?”
강찬의 앞을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케레미온이었다.
“뭐라고?”
비웃음이 역력한 케레미온의 말에 강찬은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마스터의 애제자이자 배분으로 치면 자신보다 선배였기에 애써 참아 냈다.
“내가 유치한 짓거리를 하든 말든 상관 말고 볼일이나 말하시지.”
삐딱하게 나오는 인간의 태도에 케레미온의 눈썹이 들썩였다.
“주제넘게 나서지 말고 마을에서 잠자코 저 아이랑 지금처럼 유치한 짓거리나 하란 말을 남기러 왔다.”
“뭐?”
강찬의 인상이 소태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
“인간인 주제에 엘프 하는 일에 껴들지 말란 말이다!”
케레미온이 고함지르자 강찬의 구겨졌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진 미소로 바뀌었다.
“왜 그렇게 남의 일에 참견이지? 그리고 말이야 바른말이지, 전쟁터에 나가서 엘프들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 주겠다는데 뭐가 그리 불만인 거지?”
“너 따위 실력으로 전쟁터에 나가면 우리 엘프들 발목만 잡을 테니 그렇지.”
“난 널 이겼는데, 내가 너보단 도움 되지 않을까?”
조롱하듯 하는 강찬의 말에 케레미온의 전신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비겁하게 날 방심하게 하여 이겨 놓고선 아직도 그 1년 전 이야기를 들먹이다니! 좋다! 네놈이 자신 있다면 다시 한번 내 검을 받아 봐라. 이번에는 내 모든 것을 보여 주마.”
“그날 그때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건가? 그럼 이번엔 나도 진지하게 해도 되겠군.”
“으드득! 뭐라고?”
케레미온이 죽일 듯 노려보았다.
하지만 강찬은 여유 있게 그의 눈빛을 흘려 넘겼다.
“결투를 받아들인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과연 그렇게 될까?”
분위기가 점점 험악하게 급변하자 되돌아온 제이나가 둘 사이에 껴들며 강찬을 만류했다.
“자, 잠깐만! 아저씨, 쟤랑 싸우면 안 돼!”
“왜 그래, 제이나?”
“아저씨, 케레미온이랑은 싸우면 안 돼! 지금 쟤는 완성된 오러 소드를 뿜어내는 소드 익스퍼트 중급 시험을 통과했단 말이야.”
케레미온의 눈치를 살피며 제이나가 겨우겨우 말하자 케레미온이 제이나를 노려봤다.
“넌 조용히 좀 하고 저리 꺼져 줄래?”
케레미온이 제이나를 향해 냉막한 말투와 살벌한 눈초리로 면박을 주자 겁먹은 제이나가 잔뜩 움츠러들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강찬의 시선이 더욱 매서워졌다.
“사내자식이 여자한테 면박이나 주고, 부끄럽지도 않으냐?”
“너야말로 여자 뒤에 숨어서 잘도 떠들어 대는군. 너희 인간이야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네가 나를, 아니 인간을 싫어하는 이유는 엘라디온 님께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내 핑계를 댈 상황이 아니라고 보는데?”
강찬이 자신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말하자 케레미온의 얼굴은 의외라는 듯 움찔하더니 이내 표정을 바꿔 강찬을 비웃었다.
“안다는 놈이 그런 말을 하다니, 자신 스스로가 말하고도 부끄럽지 않나?”
“물론 부끄럽지 않다. 그놈들과 나는 엄연히 다르니까. 물론 너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인간 모두를 미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웃기지 마! 네놈이나 그놈들이나 다 똑같아! 인간은 하나같이 다 비열하고 역겨운 종족들이야!”
“…….”
케레미온의 가슴속에 원한이 너무도 깊다는 것을 느낀 강찬은 더는 대화로는 얘기가 진행되지 못함을 직감했다.
“네놈이 이 정도로 속이 꽉 막힌 쪼잔한 놈인 줄은 몰랐는데, 너랑은 더는 말로선 얘기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따라와라! 어디 네 소원대로 검으로 대화해 보자.”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