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2
퓨쳐나이트 2화
금속 인형도 심각하게 파손되어 온전치 못한 걸 보니 밖에 죽어 있던 인간들과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여기서 생을 마친듯했다.
방 안에 유리관은 총 10개가 있었는데, 홀로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는 10번째 유리관의 생명력 또한 빠른 속도로 시들어 가고 있었다.
“어서 힐링을 해라! 이자의 생명력이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다.”
이 거대한 괴물체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이 더는 전무해 보이자 엘라디온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엘프 마법사들의 손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광채가 유리관 속 남자에게로 내뿜어졌다.
그러자 유리관 속 백지장 같던 남자의 얼굴에 붉은 화색이 돌아왔고, 엘라디온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엘라디온은 지체 없이 샤벨을 사용해 유리관을 잘랐다.
상당히 단단하게 느껴지는 유리관이었지만 그의 샤벨에 푸르스름한 빛이 어리자 마치 종이라도 자르는 듯 너무도 쉽게 유리관을 도려냈다.
도려내진 유리관에서 물이 빠지고 난 후 엘프들은 유리관에서 꺼낸 사내를 업고는 괴물체 밖으로 신속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이자가 깨어나면 알 수 있겠지.”
엘라디온은 홀로 조용히 중얼거리며 마을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 * *
며칠만 누워 있으면 눈을 뜰 것만 같았던 그 하늘에서 내려온 자는 도무지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치 죽은 사람처럼 그저 숨만 쉴 뿐이지 조용히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장장 1년이란 긴 시간을 침대에만 누워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모두가 ‘뇌사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도 했지만 천성이 낙천적이고 서두르는 것을 싫어하는 엘프들이었기에 그다지 조바심 내지 않았다.
천 년을 살 수 있는 그들에게 1년 정도의 기다림은 마치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그런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그를 보살피는 일은 언제나 나이 어린 엘프들의 몫이다.
아이들은 돌아가며 그에게 강제로 죽을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 내는 고된 일을 맡았다.
남의 대소변을 받아 내는 일은 누구에게라도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겠지만 그들은 전혀 군소리 없이 어른들의 명령에 따랐다.
엘프 사회에선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가장 중요시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이 대대로 지켜 온 유대였다.
“꺄악!”
예쁘게 갈래머리를 한 노랑머리 엘프가 경악성을 내질렀다.
“또 쌌네! 또 쌌어! 싼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싸?”
어린 엘프의 얼굴은 전혀 엘프답지 않게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야! 왜 넌 내가 당번인 날에만 똥을 싸? 어?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씩이나. 넌 내가 그렇게 편하니? 아나, 정말 완전히 돌겠네.”
씩씩거리던 어린 엘프는 이네 체념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다 나이 어린 내가 잘못이지.”
엘프 소녀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숙련된 솜씨로 사내의 바지를 벗기고 기저귀를 풀었다.
그러자 한가득 들어찬 그것에선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소녀의 얼굴이 더욱더 일그러졌다.
“크으! 하이고 정말 더럽게도 많이 싸셨네요. 세상에 도대체가 죽만 드시는데 이 엄청난 양은 도대체 뭡니까? 네?”
쉴 새 없이 구시렁거리는 엘프 소녀는 오랜 경험으로 숙달된 손놀림으로 그의 변을 걷어 내고는 대충 갈무리한 뒤 양다리를 한 손으로 힘겹게 잡아 올리고선 물걸레로 엉덩이 구석구석을 닦기 시작했다.
‘으음, 머리가…….’
이 지독한 두통은 장거리 우주 항해를 위해 맞아야 하는 정신 마취제에서 깨어날 때 늘 상 느끼던 ‘그것’이었다.
‘벌써 깨어날 때가 된 것인가?’
이제 깨어난 그는 늘 해 오던 것처럼 곧바로 전투에 투입될 것이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자신에 손에 죽게 될지 그는 생각만으로도 두통이 더욱 심해지는 듯했다.
‘긴 꿈을 꾸는 듯했어. 참 이상한 꿈이었지 어린애들이 내 주변에 몰려와서 죽도 먹여 주고 대소변도 받아 주는 아주 부끄러운 꿈 말이야. 그런데 그건 그렇고 이 이상야릇한 느낌은 뭐지? 누군가 나의 부끄러운 곳을 쓰다듬는 듯한 이 느낌은?’
이내 시력을 회복한 그는 어렵게 눈을 뜰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인지 눈이 부셔서 제대로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몸조차도 아직 감각이 돌아오질 않아서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눈을 깜빡이면서 천천히 밝기에 적응한 그에게 주변 사물의 모습이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양다리를 잡아 올리고 오만 가지 인상을 팍 쓰며 열심히 자신의 엉덩이를 닦고 있는 한 소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이건? 아직 꿈인가?’
그는 아직 자신이 깨어난 것이 아닌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린 엘프 소녀는 문득 누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자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소녀는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소녀는 눈앞에서 별이 번쩍였다.
그의 발이 소녀의 얼굴로 거침없이 내질러진 것이다.
너무나도 급작스런 일격에 아무런 대비조차 할 수 없었던 어린 엘프 소녀는 그렇게 그대로 정신의 끈을 놓아 버리고야 말았다.
“헉! 헉! 여긴 대체 어디지?”
자신이 바지를 벗은 줄도 까맣게 잊은 채 그는 사방을 둘러보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런 그의 행동들은 1년이란 시간을 누워서 보낸 자의 것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고도로 민첩한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고도로 민첩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의 흉물스런 물건까지도 같이 고도로 민첩하게 흔들린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곳은 전함이 아니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침착함을 잃어버리지 않고자 애썼다.
“코드 넘버 UNA-102A, 군번 5425582, 대위 강찬 접속 준비.”
그의 손목에서 미묘한 빛이 일렁이며 손목을 두르는 입체 영상이 떠올랐다.
-코드 넘버 UNA-102A, 군번 5425582 음성 식별 확인, 접속 완료, 안녕하세요. 강찬 대위님.
자신의 몸속에 내장되어 있는 바이오 컴퓨터가 정상 작동하자 강찬이라는 자는 조금은 한숨 돌리는 듯했다.
“인사는 뒤에 하고, 지금 이곳은 어디인가?”
-지금 이곳은 레드 마스호의 도착지인 네오 어스입니다.
“여기가 네오 어스라고? 지금 즉시 메인 컴퓨터로 접속해라.”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접속이 불가합니다. 메인 컴퓨터와 교신이 되지 않습니다.
“원인은?”
-메인 컴퓨터가 작동을 중단한 듯합니다.
“뭐라고? 그렇다면 본 함의 위치는?”
-네, 본 함은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15.513km에 있습니다. 정확한 좌표와 지도는 메인 컴퓨터에서 전송받아야지만 가능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일단 신속히 이곳을 이탈해 본 함으로 가야 한다.’
메인 컴퓨터가 꺼졌다는 말에 강한 불안감을 느낀 강찬의 얼굴은 조바심으로 가득 찼다.
그는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 전함으로 가기 위해 조심히 창문 밖을 훑어보았다.
까마득한 높이에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숲속은 매우 어두웠고, 스산한 안개로 가득 차 있어 사위는 더욱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는 태어나서 이런 울창한 숲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아니, 식물이라는 단어조차 그가 살아온 우주에선 최고의 사치였다.
그런데 그런 식물들에 가려 어두컴컴한 숲이라니, 그는 이곳이 네오 어스임을 더는 의심치 않았다.
‘안개가 짙으니 이곳을 벗어나기 더욱 유리하겠어. 서둘러 전함으로 이동한다!’
주변 모두를 정찰한 그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의 몸이 땅에 착지하는 순간, 나무 넝쿨들이 순식간에 자라나서 그의 다리를 옭아매 버린 것이다.
“헉! 뭐지 이건?”
그는 풀려나려고 애썼지만, 넝쿨은 그런 그의 다리를 더욱 강하게 조여들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풀려나려 발악하는 그의 주변으로 엘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방인은 자신의 주위로 수상한 자들이 모여들자 그들에게 위협을 느끼며 어떻게든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고자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그의 마음만 일뿐.
아직도 입지 않은 바지 덕분에 그의 흉물스런 물건까지도 같이 처절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드디어 이방인이 깨어났군요.”
“아르테온 님께 이 사실을 전하고 오겠습니다.”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난, 지구에서 온 바지 벗은 인간과 숲의 엘프와의 기념적인 첫 만남이었다.
2. 외계인이 된 지구인
여기저기서 작은 호롱불을 든 엘프들이 하나둘 자신을 향해 모여들자 이방인의 숨결이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넝쿨에서 벗어나려 더욱 안간힘 썼다.
그런 그는 자신의 근력이 예전보다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느끼고 당황했다.
수면 캡슐이 아닌 침대에서 무려 1년이나 누워만 지낸 그의 근육은 예전의 그 강인하던 근육이 아니었다.
무기력해진 그가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도 질기기도 질긴 넝쿨은 끊어질 기색도 보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도망치려 안간힘 쓰는 그의 몸부림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내 몸이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무기력해진 거지? 안 되겠어.’
거칠게 몸부림치던 이방인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거칠어진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런 그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순 없다!”
-전투 모드 2단계, 적용합니다.
이방인이 힘찬 외침과 함께 다시 한번 힘껏 다리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의 다리를 옭아매고 있던 넝쿨이 엄청난 괴력 덕분에 서서히 뿌리째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엘프들은 경악했다.
“맙소사! 어, 엄청난 괴력입니다!”
“세상에, 트롤도 걸리면 꼼짝 못하는 저 트랩을!”
뚜두두두둑!
거력으로 말미암아 그의 올가미에 걸린 발목에서 선혈이 터져 나왔지만 이방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거의 끊어지려 하는 넝쿨을 바라보는 엘프들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들 침착하세요. 이 이대로 가다간 저 이방인이 풀려날 듯하니 모두 힘을 모아 저자를 구속합시다!”
“그, 그럽시다.”
불안감에 동요하던 엘프들이 하나둘 바인딩 마법을 시전하자 여기저기서 또 다른 나무 넝쿨들이 솟아올라 이방인의 전신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크윽! 빌어먹을!”
그러자 당황한 이방인이 더욱 거칠게 몸부림쳤다.
하지만 수많은 나무 넝쿨은 그런 그의 거친 몸부림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온몸을 마치 미라처럼 휘감아 버렸다.
그는 그렇게 또다시 수십 명 엘프들의 바인딩 마법으로 인해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방인의 눈빛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전투 모드 4단계 적용. 경고! 경고! 위험합니다. 현재 신진대사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크아아악! 상관없다!”
잠시 멈칫했던 이방인이 터질 듯한 괴성과 함께 다시 힘을 쓰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압!”
그의 무지막지한 힘에 대지가 진동할 정도였고, 그를 옭아맨 수십 개의 넝쿨의 뿌리가 일제히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뜨드드득! 뚜둑! 뜨드득득!
“이, 이런! 말도 안 돼!”
그가 엄청난 괴력으로 요동치자 뿌리가 뻗어 나온 주변에 거대한 나무들까지 거칠게 흔들리며 나뭇잎들이 사방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엘프들의 눈이 불신으로 물들었다.
“저, 저건 사람이 아니야!”
그들은 자신들이 붙잡고 있는 게 사람이 아니라 오우거라는 착각을 들 정도였다.
-경고! 경고! 말초 신경계에 이상 발생!
“크압! 조금만! 조금만 더!”
뚜드득…… 뚜둑! 뜨드드득!
엄청난 괴력 앞에 대부분의 넝쿨들이 서서히 끊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가 자유의 몸을 되찾을 찰나였다.
하나 또다시 땅이 들썩이기 시작하더니 이전에 나무 넝쿨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어른 허리둘레만 한 두께의 나무뿌리들이 땅을 뚫고 솟아 올라와 그의 몸을 휘감았다.
“크흡! 케엑!”
천천히 몸을 쪼이는 나무뿌리에 압박에 그의 입에선 허파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에 그는 더욱 미친 듯 사납게 발악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제아무리 엄청난 괴력으로 발버둥 쳐 봐야 어른 허리둘레만 한 나무뿌리는 전혀 꿈쩍할 생각도 안 했다.
이방인은 그런 나무뿌리를 향해 몇 번 더 거친 발악을 해 보았지만 이네 그도 지쳤는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고개 숙인 이방인의 입에선 단내가 풀풀 풍겼고, 극도로 지친 그는 거친 숨을 토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