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20
퓨쳐나이트 20화
둘이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 걱정에 찬 제이나가 계속 강찬의 팔을 붙들고는 강찬을 만류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굳게 정한 강찬은 그런 제이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윽고 인적이 드문 넓은 공터에 이른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섰다.
“제이나, 멀찍이 떨어져 안전한 곳으로 가 있어.”
“부탁이야, 제발 하지 마. 제발.”
“걱정하지 마. 남자란 어려워도 부딪쳐야 할 때가 있는 거야. 뭐, 지금이 어려운 상황이란 건 결코 아니지만 말이야.”
제이나를 달래 주던 강찬이 어렵지 않다는 대목에서 케레미온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짓자 강찬을 노려보던 케레미온의 눈가에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개 같은 자식, 절대로 죽여 버리겠어.’
끝내 강찬을 말리지 못한 제이나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멀찍이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자 둘 사이로 더욱 긴장된 공기가 팽팽히 흐르기 시작했다.
둘은 그런 긴장감 속에 서로 노려보며 말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치 필생의 원수를 보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를 때쯤 강찬이 적막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서로 조건을 걸기로 할까?”
“인간하고 할 내기 따위는 없다.”
“자꾸 쪼잔하게 굴지 말고 들어나 보지 그래? 너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닐 테니. 다른 엘프들도 다 너처럼 속이 쥐뿔만 한 건 아니겠지?”
“놈! 엘프를 모독하지 마라!”
케레미온이 언성을 높이자 그보다 더 큰 목소리로 강찬이 외쳤다.
“아니라면 잘 들어! 만약 내가 이긴다면 넌 앞으로 내 앞에서 너희 누나 일로 나한테 일절 화풀이하지 마! 꼴도 보기 싫으니깐! 그리고 내가 엘라디온 님과 함께 전쟁에 나가는 것에도 토 달지 마! 알아들었어?”
약간 움찔한 케레미온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이기면?”
“네가 이긴다면 네가 시키는 대로 하지. 전장에 나가지 말라면 나가지 않겠어. 아예 이 마을 떠나라면 떠나 주겠어. 어때?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지?”
강찬의 얘기를 들은 케레미온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듣고 보니 정말 나쁜 조건은 아니로군. 후회하게 될 텐데?”
“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지. 단, 지금부터 내가 어떠한 무기를 사용한다 해도 놀라거나 딴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대로 해. 네가 어떠한 무기를 사용한다 해도 내가 놀랄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깐. 너야말로 바지에 오줌 싸지나 마라.”
순간 케레미온의 샤벨에서 응축된 마나가 뿜어져 나와 그의 샤벨의 검신을 뒤덮으며 뻗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완성된 오러 소드의 모습을 갖춰 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제이나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 버렸다.
오러 소드, 강철도 무 베듯 한다는 모든 검사의 꿈에 권능이었다.
“죽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내 샤벨은 자비를 모르니깐.”
“과연 그럴까?”
강찬의 말과 동시에 그의 검은 조끼에서 검은 물결이 퍼져 나와 그의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 괴이함에 지켜보는 케레미온과 제이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단 몇 초 만에 마이크로 머신이 강찬의 육체를 감싸고 점점 형체를 갖추자 서서히 드러나는 강찬의 전투 슈트는 온통 검정이었고, 오른쪽 어깨에 그려진 피처럼 붉은 달만이 유난히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뭐, 뭐지 저건?’
마치 마법처럼 온몸을 감싸는 전투 슈트에 모습에 케레미온의 눈에는 의구심이 어렸다.
눈앞에 갑옷은 분명 마법 갑옷이 아니었다.
마법이라면 마나의 흐름에 민감한 엘프인 자신이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놀라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그런 해괴한 갑옷을 걸친다고 해서 네놈이 날 이길 성싶으냐?”
“그건 해보지 않고는 모르지?”
전투 슈트는 근력을 최대 10배까지 증폭시켜 주는 기능과 함께 아드레날린 촉진 기능까지 가지고 있어서 민첩함까지 몇 배로 끌어올려 줬다.
물론 근력 증가 폭을 최대로 끌어올린다면 배터리가 오래가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걸 적절히 분배할 줄 아는 강찬은 이전과 다르게 자신감이 상승했다.
그만큼 슈트의 성능은 발군이기 때문이다.
“좋다. 실력으로 네놈을 꺾고 그 해괴한 물건과 함께 이 마을에서 영원히 내쫓아 주마.”
“실력이 된다면.”
둘 사이에 시간이 멈춘 듯 적막이 흘렀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에 고요처럼 말이다. 이제 둘의 싸움은 그 누구도 말리 수 없었다.
케레미온에게서 폭발할 듯 뿜어져 나온 짙은 살기에 놀란 풀벌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자 케레미온이 순식간에 강찬을 향해 질주했다.
주위에 풀들은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불어닥친 바람에 젖혀질 정도로 그의 동작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강찬이 본능적으로 급히 몸을 옆으로 날렸고, 강찬이 서 있던 자리에 풀들이 반으로 쪼개지며 대지를 가른 케레미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기습을 가했는데 피하다니, 제법이군.”
먼지 속에서 서서히 일어선 케레미온이 자신의 기습을 간단히 피해 버린 강찬을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때 고양이처럼 잔뜩 움츠린 강찬의 양손에서 두 개의 고주파 블레이드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점차 붉게 달아오른 고주파 블레이드에선 듣기 거북한 저음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그런 어설픈 기습도 다 있군.”
“놈!”
고함을 지른 케레미온이 다시 오러 소드를 앞세우고 강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대지를 가를 기세로 내려쳐 진 케레미온의 오러 소드를 강찬은 고주파 블레이드를 교차해 막아 냈다.
맞붙은 두 사람의 검에서 불똥이 튀며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을 토해 냈다.
강찬은 교차한 자신의 블레이드로 케레미온의 얇은 샤벨을 부러뜨릴 생각이었지만 강력한 마나에 둘러싸인 그의 샤벨은 부러지긴커녕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크으으윽!”
“크아아압!”
한동안 힘의 대결이 이어지자 케레미온의 오러 소드와 강찬의 고주파 블레이드가 맞닿은 부분이 시뻘겋게 달궈지면서 강찬의 고주파 블레이드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크윽! 강철도 자르는 고주파 블레이드가 녹다니, 오러 소드의 위력이 이 정도란 말인가? 이대로 정면으로만 상대하면 위험하겠어.’
고주파 블레이드로 오러 소드와 직접 맞대결을 해 본 적이 없는 강찬은 내심 오러 소드의 위력에 놀랐다.
물론 자신도 오러 소드를 뿜어낼 수 있었지만 자신이 엘프의 마나 연공법을 배운 사실은 어디까지나 다른 엘프들에게는 철저히 비밀이어야만 했기에 그는 오러 소드를 쓸 수 없었다.
그런 페널티를 가지고 대결에 임해야 하는 강찬은 생각보다 이번 대결이 쉽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타앗!”
위기를 느낀 강찬이 뒤로 도약하자 케레미온이 미는 힘까지 더해져서 5미터 가까이 날아갔다.
“이놈! 어딜 도망치느냐!”
하늘 높이 날아오른 케레미온이 강찬을 향해 마나 소드를 뿜어냈다.
그러자 날카로운 예기를 머금은 마나의 칼날이 강찬을 덮쳤다.
“치잇! 마나 소드!”
지금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마나 소드는 오러 소드를 멀리 있는 적에게 날리는 기술로 자신이 배우는 단계보다 한 수 위의 경지였다.
그런 마나 소드의 위력은 마스터의 위력 시범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아는 강찬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강찬이 서둘러 자신의 고주파 블레이드에 미약하게 마나를 불어넣었다.
비록 케레미온이 날린 마나 소드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마나를 조금 불어넣는다면 고주파 블레이드로도 능히 마나 소드를 막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타핫!”
케레미온의 마나 소드와 강찬의 고주파 블레이드가 충돌하자 강찬의 예감대로 강찬은 가까스로 마나 블레이드로부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만일 고주파 블레이드가 아니고 일반 검이었다면 마나를 불어넣었다 할지라도 두 동강 날 정도로 그의 마나 블레이드의 위력은 강력하고 날카로웠다.
강찬이 힘겹게 자신의 마나 소드를 막아 내는 모습을 바라보는 케레미온은 안중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나의 민감한 엘프족인 그가 강찬의 몸에서 마나를 읽은 것이다.
‘저, 자식 방금 마나를 썼어! 분명히 미약하지만 분명히 마나를 사용했어! 설마 원래 마나를 다루던 녀석이었나? 아니야, 분명히 1년 전에는 마나를 전혀 사용하지 않던 놈이었어. 그렇다면 누가, 누가 저놈한테 마나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 준 거지? 그것도 이렇게 단시간 안에…… 설마 엘라디온 님이? 엘라디온 님은 아니겠지?’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온갖 생각이 케레미온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짙은 불안감이 케레미온을 엄습했지만 그는 대결 중이었기에 잡념을 떨쳐 내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자신을 다잡았다.
“겨우 그딴 실력으로 나에게 덤비다니! 그래, 어디 이것도 한번 막아 봐라! 블레이드 스피어!”
블레이드 스피어는 엘프의 검에 가장 위력적인 공격이었고, 세검의 날카로움을 극대화한 기술이었다.
있는 힘껏 마나를 끌어올린 케레미온의 송곳같이 날카로운 블레이드 스피어가 강찬을 향해 쇄도했다.
그 날카로움은 무엇이든 뚫을 수 있을 정도였고, 속도는 마치 빛과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에 코앞까지 날아든 블레이드 스피어를 강찬은 거의 짐승과 같은 본능으로 머리를 틀어 겨우 치명상을 피해 냈다.
하지만 강찬의 투구를 꿰뚫어 버린 블레이드 스피어가 그의 귀를 반으로 찢어 버리고야 말았다.
“크윽! 빌어먹을! 이건 빌어먹을 너무 빠르잖아!”
강화된 동체 시력으로도 따라가기 힘든 그의 공격 앞에 강찬은 식은땀이 흘렀다.
케레미온의 블레이드 스피어가 쉴 새 없이 날아들자 강찬의 몸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거 위험한데? 벌집 되기 전에 빨리 전투 레벨을 올려야겠어!’
-전투 모드 5단계 적용.
예상보다도 훨씬 강해져 버린 케레미온이었기에 강찬은 하는 수없이 전투 모드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증가한 힘과 민첩성은 보통 인간에 수십 배에 달했다.
강찬은 그렇게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빨라진 스피드로 블레이드 스피어를 어렵사리 피해 가면서 케레미온에게 접근해 고주파 블레이드를 날렸다.
“쥐새끼 같은 놈, 죽고 싶어 다가왔구나! 파핫!”
처음에는 강찬의 괴이 신랄한 갑옷에 당황하긴 했지만 몇 초식을 나눠 본 뒤 자신의 실력이 훨씬 우위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 케레미온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강찬에게 맞서 힘차게 오러 소드를 휘둘렀다.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연이어 공방이 오갔다.
어둠이 내린 깜깜한 숲속에 붉은 불빛과 푸른 불빛이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하게 교차하면서 주변의 숲을 초토화했다.
그런 그들의 움직임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따라가기 힘들 만큼 빨랐다.
케레미온에게 맞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강찬의 진짜 실력을 바라보는 제이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전에 케레미온을 꺾었단 게 사실이었어…….’
얘기로만 들어서 강찬이 케레미온을 꺾었다는 말을 제이나는 별로 실감하지 못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강찬의 진정한 모습은 평소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의 싸움에 휘말린 수십 그루의 나무가 차례대로 대지에 몸을 뉘었지만 엘프인 케레미온은 그 나무들을 위로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만큼 강찬의 저항은 거셌다.
게다가 강찬과 검을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오히려 자신이 손이 얼얼해져 오자 케레미온은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뭐지? 이 녀석, 아까보다 훨씬 더 강해졌잖아!’
그를 당혹하게 만든 건 순식간에 몇 배 이상으로 강해진 인간의 힘도 힘이었지만 예전의 단순했던 공격 패턴이 아닌, 뭔가 굉장히 정교해지고 난해해진 그의 단검술 때문이었다.
인간은 불과 1년 만에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차원적인 검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너 때문에 숲이 망가져 가는데, 가슴 아프지 않아?”
조롱기 있는 강찬의 말에 눈시울이 붉게 물든 케레미온이 독기 어린 일갈을 퍼부었다.
“네놈을 죽여 나무들의 넋을 위로하겠다!”
“야! 말은 똑바로 해! 내가 자른 게 아니라 네가 자른 거잖아!”
“닥쳐라!”
케레미온의 검으로부터 마나가 가득 실린 오러 소드가 강찬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제비같이 날랜 몸짓으로 그 오러 소드를 쉽게 피해 낸 강찬이 다시금 케레미온의 지척으로 달려들어 고주파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쿠웅! 지이이이잉!
또다시 허공에서 맞부딪친 두 자루의 검이 불똥을 튀기며 굉음을 토해 냈다.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힘을 겨뤘고, 둘은 속으로는 상대에게 감탄했다.
‘이 녀석, 정말 강하다! 내가 이런 괴물을 어떻게 이겼지? 전투 모드 5단계 상태인데도 전혀 밀리지 않다니, 슈트라도 입고 있지 않았다면 난 오러 소드를 사용해야만 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