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21
퓨쳐나이트 21화
강찬은 눈앞에 케레미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실력은 1년 전과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도 강하긴 했지만 지금은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로 실력이 늘어 버린 케레미온이었다.
그러나 놀라는 건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케레미온 또한 자신과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치는 강찬을 보며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1년 전, 마나도 다룰지도 모르면서 마나를 다루던 자신을 올려 차기로 기절시킨 장본인.
그래서 그는 그때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자신의 모든 실력을 전부 꺼내 들고 맹공을 펼쳤다.
하지만 그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승기를 잡지 못했다.
게다가 계속된 오러 소드 사용으로 심각한 마나 고갈을 느끼고 있는 그는 점점 더 초조해지고 있었다.
‘크윽! 그날 그 치욕적인 일을 당한 후 네놈을 묵사발로 만들기 위해 뼈를 깎고 피를 토하는 고통을 감내하며 1년 동안 그토록 검술에 매달렸는데, 어째서냐! 어째서란 말이냐! 또다시 네놈에게 질 수 없다. 절대로, 절대로 질 수 없다! 크아압!’
그가 강찬의 복부를 발로 차 버리고 분노를 가득 실은 샤벨에 강대한 마나를 주입해 강찬을 양단해 버릴 기세로 휘둘렀다.
그러자 강찬은 자신의 허리로 파고드는 케레미온의 검을 양손의 블레이드를 교차시켜 막아 내었다.
엄청난 불꽃이 튀는 가운데 강찬은 뒤돌려 차기로 케레미온의 안면을 노렸다.
하지만 케레미온은 그의 발차기를 예측하고선 몸을 틀어 간단히 피해 버렸다.
그러고는 빈틈이 생겨 버린 강찬의 남은 다리를 향해 번개같이 오러 소드를 휘둘렀다.
‘아차!’
케레미온의 기습 공격을 피하고자 강찬이 몸을 급히 공중으로 띄웠지만 역부족이었는지 간발에 차이로 스친 케레미온의 샤벨에 종아리 살을 한 움큼이나 배여야만 했다.
서걱!
“크악!”
강찬의 비명 소리에 케레미온의 얼굴이 미소가 번졌다.
“크하하하! 드디어 들어갔구나! 이대로 끝장을 내주마!”
종아리에 엄청난 상처를 입고 피를 뿌리며 나뒹굴어 지는 강찬을 향해 케레미온의 강공이 퍼부어졌다.
그런 그의 살벌한 공격을 강찬은 바닥을 뒹굴며 피해 다녔다.
누가 봐도 이미 승부는 가려진 듯 보였다.
그러던 찰나 검은 슈트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강찬의 검은 투구 안에선 기광이 번뜩였다.
-고통으로부터 신경 접속 해제.
-전투 슈트 파워 최대치.
-스텔스 모드 작동.
위기에 몰렸던 강찬은 다리에 난 상처의 고통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케레미온의 연이은 공격을 여유 있게 막아 낸 다음 뒤로 점프해서 케레미온과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는 강찬의 검은 슈트가 점차 투명해지더니 케레미온의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뭐, 뭐지? 갑자기 사라지다니, 설마 인비지빌리티?’
갑자기 사라져 버린 강찬을 바라보는 케레미온이 당황하며 외쳤다.
“비겁하다! 마법을 쓰다니! 정정당당하게 검으로 붙자!”
“마법이 아니다. 과학이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검이 자신에게 쇄도하자 케레미온은 거의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강찬의 검을 막아 냈다.
하지만 샤벨로부터 전해지는 믿지 못할 강찬의 괴력에 그는 볼품없이 날아가 버리고야 말았다.
6미터 가까이 새처럼 훨훨 날아가 나무와 충돌한 그의 입에선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케엑!”
앞으로 고꾸라진 케레미온의 등에서 선혈이 솟구쳐 올랐다.
부러진 나뭇가지에 등을 찔려 깊은 상처를 입고 만 것이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케레미온이 피 섞인 헛기침을 해 대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강찬이 스텔스 모드를 풀며 케레미온을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그런 강찬을 바라보는 케레미온의 눈에 서서히 공포라는 두 글자가 드리워졌다.
강찬의 모습은 마치 시커먼 지옥의 사자가 자신을 데리러 오는 듯이 보였다.
‘너, 너무 강하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강찬의 마지막 일격에 케레미온은 전의를 잃고야 말았다.
그 일격은 자신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거력이었다.
‘지금껏 인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검술에만 매진하며 살아왔는데 눈앞에 서 있는 인간 하나 이기지 못하고 공포심 따위나 느끼다니. 이렇게, 이렇게 나약한 주제에 어찌 인간들에게 욕보이고 죽어 간 누나의 복수를 한단 말인가. 크으으윽!’
밀려드는 처참함 속에 케레미온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도 모르게 샤벨을 놓아 버렸다.
대결에서 검을 스스로 놨다는 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그 모습을 바라본 강찬이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로 돌아 제이나를 향해 걸어갔다.
상대방이 싸울 의사를 포기했는데 굳이 더는 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틀거리는 몸을 힘겹게 바로 세우며 걸어가는 강찬은 속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방금 마지막 일격, 내가 가진 모든 힘이었는데.’
케레미온을 전의 상실하게 한 그 마지막 일격은 남은 슈트의 전원에 자신의 육체를 한계치까지 쥐어짠 힘을 합쳐 순간적으로 뿜어낸 것이었다.
다리를 베인 순간 그는 고통을 차단한 뒤 스텔스 기능으로 몸을 감추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서 케레미온에게 도박과 같은 최후에 일격을 날린 것이다.
그런데 케레미온이 먼저 싸움을 포기했다.
강찬에겐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찬의 슈트 배터리가 제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슈트뿐만이 아니라 강찬은 육체에 남은 모든 체력 또한 전부 불태워 버린 상태였다.
전원이 다한 그의 슈트가 서서히 해제되었고, 천천히 드러난 강찬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블레이드 스피어에 꿰뚫린 그의 귀는 너덜너덜 붙어 있었다.
강찬이 제이나의 손을 잡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가자, 제이나…….”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가서 전투 모드로 지친 몸을 마나 연공법으로 회복시켜야만 했다.
아니면 그는 그대로 며칠을 내리 자야만 했다.
모든 것을 전부 지켜본 제이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해져 있었고, 강찬은 그런 제이나의 손을 이끌고 도망치듯 숲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제이나가 반쯤 떨어져 나간 강찬의 귀와 뼈가 보일 정도로 벌어진 깊은 검상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강찬은 그런 자신의 귀와 다리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다만 케레미온과 대결에서 자신의 본 실력을 다할 수 없었다는 것이 너무 아쉬울 뿐이었다.
‘검술 대 검술로 붙어 보고 싶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몰래 실력을 숨기고 있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꼭 케레미온에게 자신의 본 실력을 보여 주겠다는 각오를 나직이 다졌다.
그도 이제 무인이 다 되었던 것이다.
그 후, 강찬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검술에만 매진했다.
잠도 안 자고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그는 검술에만 매달렸다.
스승인 엘라디온조차 혀를 내 두를 정도로 말이다.
8. 광풍도 우르칸타
비스만 제국을 중심으로 대륙 동맹군이 결성된 지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 속에 수많은 인명만 잃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미 대륙 깊숙이 자리 잡아버린 녹색 엘프의 수는 엄청난 번식력으로 점점 더 늘어만 가는 데 반해 대륙 동맹군의 숫자는 점점 줄어만 갔다.
그런 대륙 동맹군은 연일 연패하며 조금씩 영토를 잃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전황이 기운지도 1년.
차츰차츰 무너져 가던 인간들의 절박한 상황은 예상치 못한 지원군에 의해 다시 호전되기 시작했다.
오크족이 인간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적인 우세로 인간들을 연일 강하게 밀어붙이던 녹색 엘프들은 자신들 만큼이나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는 오크족 전사들이 들이닥치자 천천히 퇴각하고야 말았다.
그 정도로 오크들의 수는 천문학적이었다.
퇴각하는 녹색 엘프들을 바라보는 작센 공작은 한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도움을 준 오크들의 로드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고맙소, 우르칸타.”
“췌익! 고마울 필요 없다. 어차피 너희 다음 차례가 우리이기에 참전한 것뿐이니까. 크르르르.”
“그래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지. 오늘은 그대들 덕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지만 지금 보이는 저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오, 우르칸타여.”
“크르르, 그건 나도 와이번을 타고 확인했다. 다른 종족의 지원군은 언제쯤 합류하는가?”
“엘프족과 드워프족에게 계속해서 참전을 요구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만 계속하며 참전을 거부하고 있다네.”
“쿠에에웩! 겁쟁이들, 크르르륵! 내가 가서 그들을 끌어내겠다!”
거센 콧김을 내뿜으며 흥분하는 우르칸타를 작센 공작이 만류했다.
“흥분하지 말게나, 우르칸타. 얘기를 들어 보니 두 종족이 힘을 모아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하니 조만간 참전할걸세.”
엘프와 드워프가 힘을 합쳐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흥분을 가라앉힌 우르칸타가 낮은 어조로 말했다.
“크르르르, 어쩌다가 철천지원수였던 너희 인간들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게 됐는지, 조상님들을 볼 낯이 없군. 크르륵.”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모호한 표정을 짓는 우르칸타를 바라보는 인간군 총사령관 류미엘 작센 공작의 표정 또한 모호할 뿐이었다.
‘그 말은 내가 할 소리다. 너희같이 열등한 놈들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나야말로 조상님들을 어떻게 볼지. 칼리츠, 자네 대체 어느 하늘 아래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지금 조국은 자네가 필요하다네…….’
칼리츠 가르만, 그는 현재 세계 최고의 검객이자 초강대국인 비스만 제국의 또 다른 공작이었다.
그는 인간 중 유일하게 녹색 마녀를 상대할 힘을 가진 검객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히 행방불명이 된 지도 벌써 10년째, 만일 그가 지금 곁에 있어 줬다면 이렇게까지 간악한 녹색 엘프들에게 밀리지 않았으리라 생각한 작센 공작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작센 공작이 상념에 잠긴 사이에 자리에서 일어난 우르칸타가 작전실을 나서며 한마디 했다.
“쉬이익! 내가 그들을 만나고 오겠다!”
* * *
인간과 오크족이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는 사실이 빠르게 엘프들에게 전해졌고, 대장로들과 드워프들이 모여 그 안건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무너져 가는 인간들을 보며 위기를 느꼈는데, 그래도 그 미련한 오크들이 인간들을 돕기로 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네, 정말 다행이에요. 엘프 나이트들이 드워프족이 제공한 엘븐 나이트의 운용법도 제대로 숙지 못한 채 참전할 뻔했으니 말이죠. 크랙시온 님, 엘븐 나이트 추가분의 생산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흠! 그게, 생각보다 미스릴 사용량이 많아서 지금 재고분으로 추가분의 생산은 힘들 것 같네. 미스릴 말고도 크로넨도 부족하고 뼈대의 주축이 되는 아만다티움도 재고분이 없으니 엘븐 나이트를 추가 생산하려면 재료부터 구해야 하는 실정이네.”
“그렇군요. 재료가 모자라신다면 우리 엘프의 숲이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광부들을 모아 주세요.”
순간 아르테온의 말에 장내에 모든 엘프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적극 반대했다.
“아르테온 님! 그건 안 됩니다! 어, 어떻게 숲을!”
“재고해 주세요, 아르테온 님. 숲을 파괴하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됩니다!”
장로들이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특히 정령술의 아마리와 소환술의 라세온의 반발이 가장 거셌다.
하지만 아르테온의 의지는 이미 굳게 굳어진 상태였다.
“재고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숲과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헌신적으로 도와주시는 드워프족을 탐욕스러운 녹색 엘프들로부터 지켜 내고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론입니다. 물론 숲을 파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엘프들과 함께 작업한다면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크랙시온 님.”
“흠흐, 물론 화약을 쓰지 않고 마법과 정령술을 활용한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광물을 채취할 수 있겠지.”
“들으신 대로 우리는 숲을 파괴하지 않고 땅속의 광물만 채취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 일을 꼭 라세온 님이 맡아 줬으면 합니다만.”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그 일을 맡겠습니다.”
너무도 강경한 아르테온의 의지에 더는 반발을 할 수 없음을 느낀 라세온이 긴 여운을 남기며 어쩔 수 없이 아르테온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라세온, 그의 정령술이라면 주변 나무들을 움직여 숲을 파괴하지 않고 광산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라세온 님,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 논의가 될…….”
아르테온이 다음 안건으로 넘어갈 찰나 회의장 문을 박차고 들어선 엘프 위병에게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아르테온 님! 오크족의 와이번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우르칸타의 깃발을 단 것으로 보아 우르칸타가 직접 온 것 같습니다!”
“네? 우르칸타가요?”
순식간에 회의장이 또 한 번 소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