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26
퓨쳐나이트 26화
9. 권태기에 빠진 드래곤
자리를 털고 일어난 강찬은 모두에게 감사하단 말만을 남긴 채 서둘러 자신이 머무는 전함으로 돌아왔다.
우르칸타와의 혈전으로 얻은 깨달음을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서둘러 온 이유 중엔 제이나와 친 사고도 분명히 한몫했다.
그날 이후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가 너무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만큼 둘은 그동안 너무도 막연한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이런 방면으로는 거의 숙맥이나 다름없던 강찬은 결국 자신의 감정을 어쩔 줄 모르고 그만 도망을 치고야 말았다.
도망치듯 전함으로 돌아온 강찬은 서둘러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조용한 자신의 방에서 사색에 잠겼다.
그러나 자꾸만 제이나에 관한 번뇌가 끊임없이 떠오르며 그를 괴롭혔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그녀의 과감한 행동, 온몸으로 전해지던 그녀의 생각 외로 컸던 가슴……. 그저 어리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사실 어렸던 건 자기 자신이었다.
“아! 빌어먹을! 젠장!”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강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함 밖으로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이대로 전함 안에 있으면 거대한 전함 안이 자신의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 차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밖으로 나서자 그를 맞이해 주는 건 해 질 무렵의 붉은 저녁노을.
쓸쓸함이 잔뜩 묻어나는 저녁노을은 복잡한 그의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
“…….”
강찬은 아직 자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제이나가 너무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제이나를 생각하고 있을 무렵.
제이나는 아무도 없는 강찬의 집 앞에 다리를 모으고 앉아 그와 똑같이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미쳤지, 미쳤어.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제이나는 강찬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닿았을 때가 생각났는지 얼굴이 붉은 노을보다 더욱 붉어졌다.
그때 제이나는 어떻게든 강찬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너무나도 절실하게 사랑하게 된 자신의 마음을, 너무나도 둔한 그에게 말이다.
이제 둘은 어제 일로 인해 예전과 같이 허울 없는 친구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영영 친구를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그보다도 간절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그 사람한테 어린애이고 싶지 않아.’
그녀는 그날 이후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나고 어느 정도 자신의 마음을 다잡은 강찬은 수련에 몰두했고, 우르칸타와의 혈전으로 얻은 깨달음을 어느 정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수도 없이 우르칸타와 가상의 공간에서 맞붙으며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강찬은 그토록 미루고 미뤄 왔던 레드 레빗의 상태를 점검하기로 마음먹고 전함의 격납고로 향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 아직은 그들에게 자이드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도 않았기에 모르는 척 잊고 지냈지만 레드 레빗은 파일럿인 그에게 있어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제발 무사해라, 레드 레빗.’
약간 걱정이 되는 강찬의 발걸음에서 초조함이 묻어났다.
이윽고 거대한 격납고 입구에 도착한 강찬이 격납고 인식기에 손을 올려놓자 거대한 격납고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러자 그동안 숨겨 왔던 우주 연방군 소속 최강의 특수 부대인 레드 마스의 최신 전투 병기들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강습용 소형 스텔스 전투정과 함께 아홉 대의 사피언스들이 벽면 사출기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맨 뒤쪽 끝에 거대한 자이드가 그 위용을 자랑하며 거대한 사출기 위에 고정된 채로 침묵하고 있었다.
자이드.
현 우주 연합 방위군 메카닉 기술의 정점으로 그 한 대가 소형 우주 전함 한 척과 맞먹는다는, 굉장한 전투력을 지닌 최고의 기갑 병기였다.
그리고 강찬, 그가 16살 때부터 자신의 수족같이 다뤄 온 그의 애병이기도 했다.
마치 형제라도 만난 듯 강찬은 반가운 얼굴로 금속으로 된 차가운 자이드의 앞발을 쓰다듬었다.
“반갑다, 레드 레빗.”
메카닉의 정점이라 불리는 거대한 자이드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이름이었지만 강찬 나름대로 자이드를 아끼는 마음으로 지어 준 애칭이었다.
강찬은 자이드의 수면 모드를 해제하고 해치를 열었다.
그러자 웅장한 자이드의 견갑부가 열리면서 심플한 조종석이 드러났다.
웅크리고 있어도 5미터는 됨직한 높이의 자이드의 조종석까지 단숨에 가볍게 뛰어오른 강찬이 조종석 자리에 앉아 자이드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우주 최강 맷집을 자랑하는 자이드였지만 추락한 전함에 실려 있던 만큼 꼼꼼히 점검해 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기우는 기우일 뿐 자이드의 맷집을 의심한 자신을 한탄하게 만들 만큼 녀석은 튼튼했다.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음.
“역시 너다.”
강찬은 씨익 웃음을 지으며 레드 레빗의 센서 마스터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러고 난 후 조종석에 기댄 강찬의 모습은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는 예전에 자신의 가졌던 힘의 거의 모든 것을 되찾았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독자적인 작전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자신의 임무 따윈 전부 잊고 그냥 이곳에서 제이나와 함께 오래도록 머물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시간이 조금 지체됐을 뿐 앞으로 이 행성에 닥치게 될 미래는 조금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아는 강찬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것은 그로서도 결코 막을 수 없는, 슬픈 현실이었다.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난 왜 이곳으로 온 걸까? 차라리 처음부터 오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그가 무너져 가는 신념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웬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격납고 안에 울려 퍼졌다.
“와우! 이게 다 뭐야?”
흠칫 놀란 강찬이 벌떡 일어나 침입자를 살폈다.
“누구냐!”
“어이, 안녕하신가? 이렇게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네.”
침입자는 에메랄드빛 머리에 굉장한 미모를 가진 남자였다.
귀가 자신처럼 둥근 걸로 봐선 엘프는 아닌 듯했다.
강찬은 레드 레빗 안에 비상용으로 비치되어 있는 소형 전자 권총을 급히 꺼내 들고는 그를 향해 겨눴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
강찬에게 이곳은 절대적으로 유출되면 안 되는 비밀의 장소였다.
그런 곳으로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들이닥쳤으니 그의 신경은 칼날보다 더 날카로워졌다.
침입자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장난스럽게 손사래 쳤다.
“허허허, 정체라니? 난 그저 이 땅의 주인일세.”
“웃기지 마라! 이 숲은 엘프들의 영역이다!
“으잉? 언제부터 이 숲이 엘프들의 영역이 되었나? 흐음, 가서 한번 물어봐야겠구먼. 그나저나 으그그, 다리야. 이봐, 젊은이. 나 좀 앉아도 되겠나?”
젊은 외모를 한 그가 마치 늙은이 같은 행동을 보이자 강찬은 그가 더욱 수상쩍게 느껴졌다.
“안 돼! 움직이지 마! 개수작 부리면 가만 안 두겠어.”
“자네도 내 나이쯤 돼 보게 뼈마디가 안 쑤시는 곳이 없다네.”
움직이지 말라는 강찬의 경고에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상자 위에 앉았다.
그런 그의 행동에 강찬은 경고의 의미로 그 주변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소형 전자 총신에서 발사된 총알이 격납고 바닥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이번 건 경고였다. 다음에 움직이면 그땐 머리를 날려 주지.”
강찬의 눈은 마치 특수 부대 시절의 그로 돌아간 듯 살기로 빛났다.
하지만 침입자는 그런 강찬의 살기 어린 눈빛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오로지 그가 쏜 총알 구멍에만 관심이 있었다.
“오우! 이런 세상에, 이렇게 굉장한 위력을 가진 작은 화포라니! 전격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절대로 마법으로 작동하는 무기가 아니야. 그건 어떻게 만든 것인가?”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총알 구멍으로 다가가 연신 손가락을 넣어 보는 침입자는 혼자서 들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강찬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일부러 빗나가게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침입자의 머리를 향해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그랬기에 분명히 머리가 작살 나 시체가 돼야 했을 침입자.
그러나 믿지 못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니! 어떻게!”
화약에 의해 발사되고, 전자 총신에 의해 다시 한번 더 가속되어 포구 초속이 마하 5에 이르는 탄두는 그의 지척 앞에 멈춰 서는 빙글빙글 돌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급해진 그가 재차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 또한 역시 침입자 주변에 다가서기도 전에 공중에 멈춰 서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 총알들은 정확히 침입자의 머리와 가슴 앞에 멈춰 서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침입자인 에메랄드빛 머리의 청년은 자신 머리와 가슴 부위를 향해 멈춰 선 탄두 중 하나를 집어 들며 매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호오? 이것이 자네가 들고 있는 작은 화포에서 발사된 쇳덩인가? 대단하군, 아주 멋져! 살상력이 대단하겠는걸?”
“거, 거짓말…… 어떻게 총알을…….”
강찬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 별에 온 이후로 여러 가지 믿지 못할 신비한 초능력들을 자주 봐 왔지만 이번 경우처럼 놀란 적도 드물었다.
재빨리 피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따로 마법을 시전한 것도 아니었다.
침입자는 그저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총알은 채 닿지도 못하고, 공중에서 멈춰 버린 것이다.
“이봐, 자네가 가진 무기도 좀 보여 줄 수 있겠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침입자에게 일말의 묘한 두려움이 느껴졌지만 그는 악으로 두려움을 이겨 냈다.
“웃기지 마라!”
순식간에 마이크로 머신으로 이뤄진 피복이 그의 몸을 덮었고, 그의 양손에선 고주파 블레이드가 솟아 나와 붉게 달아올랐다.
강찬이 슈트를 착용하고 전투 모드에 돌입한 것이다.
그런 슈트 착용하는 강찬의 모습에 침입자는 또 한 번 감탄사를 내질렀다.
“오! 그것도 참 획기적이구먼! 그 또한 마법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여 몸을 감싸는 건가?”
“그딴 건 지옥에나 가서 물어봐라!”
강찬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풀 파워 모드로 그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지켜보는 침입자는 한없이 여유로울 뿐이었다.
침입자를 향해 순식간에 다가간 강찬이 그의 목을 향해 있는 힘껏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그러나 역시 이 또한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불똥만 잔뜩 튀었다.
총과 마찬가지로 고주파 블레이드 역시도 보이지 않는 벽을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