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29
퓨쳐나이트 29화
“끄으으윽!”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한순간 흥분을 참지 못해 잃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이성이 그를 붙잡았고, 자신이 그런 의도로 친구를 하자고 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로 마음먹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단 한 가지만 보여 주면 될 것이었다.
“크윽! 겁 없는 인간아, 잘 봐라. 내가 너한테 그런 뜻으로 말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생각 같아서는 본체로 돌아가 자신이 인간이 아니란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간이 드래곤에 대한 두려움에 빠질지도 몰랐기에 그는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갑자기 눈부신 광채에 휩싸인 지크욘의 체구가 점차 작아지고 굴곡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짧던 머리카락이 점차 길어졌다.
그런 놀라운 광경을 강찬은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간에 시간이 지나자 빛이 점차 잦아들더니 그 빛 속에 전혀 다른 모습에 지크욘이 강찬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 그의 모습에 놀란 강찬은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감았던 눈을 뜬 지크욘은 눈을 감고 있는 강찬을 보고는 혀를 찼다.
“어이! 이봐, 자네! 내가 누구 때문에 형태를 바꿨는데, 자네가 그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조금 전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아닌 앙칼진 목소리에 지크욘이 강찬보고 눈을 뜨라고 윽박질렀지만 강찬은 눈을 뜨고 싶어도 차마 뜰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남자가 아닌 여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무것도 입지 않은 전라의 녹색 머리 미녀로 말이다.
여자에게 있어 숙맥이나 다름없는 강찬은 그런 그녀의 몸을 정면으로 바라볼 배짱이 없었다.
“그, 그전에 옷을 입어 주시죠.”
얼굴이 시뻘건 홍당무가 되어 있는 강찬을 본 지크욘은 언제 자신이 이성을 잃을 만큼 분노했는지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수십 번도 넘게 인간의 삶을 살아 봤던 그에게 그런 강찬의 반응이 굉장히 순진하고,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네, 의외로 순진한걸?”
약간 비웃음 조로 말한 지크욘이 아까 입었던 옷의 물질을 재구성해 새로운 옷으로 만들어 입었다.
“옷 다 입었네.”
옷을 입었다는 그, 아니 그녀의 말에 눈을 뜬 강찬은 또다시 깊은숨을 들여 마셔야 했다.
“흐읍!”
지크욘은 했던 말과 같이 옷을 입긴 했으나 그녀가 걸친 건 오히려 안 입은 거나 다름없는 옷이었다.
아니, 되레 입은 것보다 훨씬 자극적이었다.
그녀는 지금 속옷이나 다름없는 손바닥만 한 핫팬츠에 속이 훤히 내비치는 하늘하늘한 소재의 축 늘어진 티셔츠 하나만 달랑 입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몸매는 인형과 같은 엘프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엘프들은 약간 마르고 날씬한 슬랜더 체형이라면 지크욘의 모습은 날씬하면서도 글래머이면서 육감적이었다.
얼굴은 전에 미소년의 모습에서 약간 부드러운 인상으로 변했을 뿐이지만 아찔한 외모이긴 마찬가지였다.
전형적인 베이글형 미인이었다.
그런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긴 에메랄드빛 곱슬머리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별다른 장신구 없이도 그녀의 외모는 눈부시게 빛나는 듯했다.
수없이 인간으로 지내 왔기에 인간들의 취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지크욘이었다.
강찬은 그런 지크욘의 너무나도 자극적인 모습에 정신을 가누지 못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남자가 갑자기 여자로 변할 수 있지?’
강찬은 그런 자신의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주문을 외웠다.
‘눈앞에 있는 건 남자다, 눈앞에 있는 건 남자다, 눈앞에…… 흡!’
“자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건가?”
어느새 자신 앞에 다가온 지크욘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는 강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강찬은 그녀의 너무나도 아름다운 얼굴에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그보다 더 아찔한 계곡이 도사리고 있어서 강찬은 또다시 급히 시선을 천장으로 올려야만 했다.
“자네, 지금 어딜 보는 건가? 날 보게나. 지금도 내가 이상한 놈으로 보이나?”
물론 강찬은 그가 아까처럼 남자가 남자를 밝히는 이상한 놈으로는 보이지는 않았다.
이젠 단지 그냥 여자로 보일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섹시한 여자로 말이다.
“이젠 아닙니다, 하지만 어떻게 남자가 여자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세이프 체인지라는 10써클 최고위급 마법일세. 순간적으로 겉모습만 바꾸는 폴리모프나 핵스 같은 저급한 마법이 아니라 종족의 특성에서 성별까지도 완벽하게 바꿔 주는, 오직 드래곤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이지. 하지만 내가 자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마법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우리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일세. 아까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말이지. 보통은 다들 알고들 있는 내용인데 자네는 특이하게 우리 드래곤 자체를 모르니 내가 이렇게 부득이하게 설명을 해 주겠네. 잘 들어 주길 바라네. 원래 우리 드래곤에게는 성별이란 게 없다네. 우리는 양성체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우리의 본래 생김새는 인간이나 다른 종족들과는 달리 성별에 차이점이 없다네. 물론 성욕 같은 감정도 없지. 단지 상황에 따라 흉내만 낼 뿐이라네.”
그의 말이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강찬이었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드래곤은 성이 없는 양성체라는 것, 그래서 성욕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자네, 지금 내가 하는 말 이해가 되나? 내가 결코 자네에게 이상한 욕구를 충족하고자 친구를 하자고 말한 게 아니란 걸,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겠나?”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해해 줬다니 고맙군.”
잠시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오해가 풀리니 약간은 서먹서먹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지크욘이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옛날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지. 왜 그리 인간 수컷들은 이 암컷의 젖을 그리 좋아하는가? 나는 그게 참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자네도 이게 좋은가?”
지크욘이 양손으로 자신의 탐스러운 가슴을 부여잡고는 말했다.
그러자 은근히 비치는 그녀의 얇은 티셔츠 속으로 충격적인 비너스 계곡이 만들어졌고, 그것은 또다시 강찬의 순정을 분탕질 치기에 충분했다.
“아, 아니, 저는 별로…….”
“그런가? 역시 자네 좀 특이하군. 예전에 이 모습으로 대륙의 인간들과 지냈을 때는 나 때문에 전쟁도 일어났었는데 말이지. 서로 날 가지겠다고 미친 듯 싸우던 두 국왕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네. 허허허.”
그의 짓궂은 말에 강찬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럴지도…….’
그렇게 강찬이 지크욘의 실없는 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때 지크욘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부디 나랑 친구 해 줄 수 있겠나?”
진지하게 다시 물어보는 지크욘에게 강찬이 되물었다.
“단지 외로우셨다면 다른 사람이나 동족도 있을 텐데, 왜 저랑 그렇게 친구가 되고 싶다는 겁니까?”
“그건 자네가 드래곤이란 종족을 모르기 때문이라네.”
“단지 그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강찬의 표정에 지크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는 드래곤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드래곤이란 존재는 이 세상 그 어떤 종족보다 강하다네.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말이지. 하지만 세상은 강한 만큼 배척받게 되는 법이지. 그래서 자신을 숨기지 않고서는 드래곤들이 타 종족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네.”
지크욘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드래곤을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쏙 빼놓고 말했다.
그들은 살인, 약탈, 방화 및 기타 강력 범죄의 귀재들이란 사실을 말이다.
“물론 자네 말고 다른 인간에게 내가 친구를 하자고 하면 그는 분명히 눈에 불을 켜고 나와 친구 하려 할걸세. 하지만 그런 인간은 나 지크욘을 원하는 게 아니라 드래곤의 힘을 원하는 쓰레기일 뿐이지. 그렇다고 같은 동족끼리 친구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더욱더 어려운 일이라네. 드래곤들은 워낙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종족이기에 다른 드래곤과의 교류를 무척이나 꺼리지. 물론 예전엔 나도 그랬었지만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문득 진정한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군. 그러다 찾은 게 바로 자네일세.”
지크욘이 자신을 손으로 가리키자 강찬은 자기 자신을 손으로 가리키며 놀라서 말했다.
“저 말입니까?”
“그렇다네. 왠지 자네라면 나 그린 드래곤 G.지크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친구로서 받아 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거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드래곤이란 걸 알고도 자네처럼 내 앞에서 당당했던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난 그런 자네가 정말 마음에 든다네.”
지크욘의 말을 귀 기울여 듣던 강찬은 점점 눈앞에 드래곤이란 존재가 정말로 그토록 강한 생명체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상대가 저리도 우호적으로 나오니 더는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그녀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와 친구 한다고 해도 자신한테 별 해가 되진 않을 듯싶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홀로 살아가야 할 그에게 그녀와 같은 강력한 힘을 가진 조력자가 곁에 있어 준다면 더욱 든든할 것이었다.
그렇게 강찬이 우정을 현실적으로 저울질하고 있을 때 지크욘이 담담한 어조로 다시금 물었다.
“그러니 부디 나와 친구가 되어 줄 수 없겠나? 만약 그러기 싫다면 내 다신 자네를 찾아와 귀찮게 하지 않겠네.”
최후의 통첩이나 다름없는 그의 부탁을 심사숙고한 강찬은 그를 친구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뭐 그렇게 대단한 놈이라고 그렇게 비장하게 그러십니까. 당신 같은 친구를 얻는다는 것이 저한테 더 영광이겠지요.”
“그, 그렇다면 자네?”
“네, 오늘부터 우리는 친구입니다.”
“오오!”
여자의 몸인 지크욘이 한걸음에 달려와 강찬의 손을 붙잡았다.
“친구란 말이지? 우리가 친구란 말이지? 허허허!”
“근데.”
강찬이 약간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을 흐리니까 지크욘이 다시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왜 그러나?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 그게 아니고 말씀 들어 보니까. 왠지 나이가 굉장히 많으신 것 같으신데 친구보단 형, 아우가 좋지 않겠습니까?”
강찬의 말에 지크욘이 허리가 꺾일 듯 웃었고 강찬의 등을 세차게 두드리며 말했다.
“허허허! 괜찮네! 괜찮아! 그냥 편하게 지크욘이라고 부르게 그리고 지금부터 자네도 나한테 말 놓게나. 친구가 친구한테 존댓말이 어인 말인가! 허허허!”
상대가 반말하라는데 굳이 존댓말 할 필요가 없는 강찬이 좀 어색하긴 했지만 편하게 말을 놨다.
“그, 그럴까?”
“그럼, 그럼! 오늘은 우리가 친구 된 기념으로다가 내가 한잔 쏘겠어!”
“술을?”
“그래! 내 레어에 아주 굉장히 귀한 술이 잔뜩 있는데 이런 좋은 날 마시지 않으면 언제 그걸 마시겠어? 허허허!”
아주 굉장히 귀한 술이라고 하자 지금까지 저급한 알코올 주나 직접 담근 초라한 과일주만 먹어 오던 강찬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당장 가는 게 좋겠군.”
그렇게 둘은 그날 밤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셨고, 마음껏 취한 둘은 종족과 나이를 뛰어넘는 허울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앞으로 우주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들의 만남은 그렇게 술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