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3
퓨쳐나이트 3화
“허억! 허억! 허억!”
“이 정도의 나무 술법은? 아마리 님?”
이방인 앞에 모여 있던 엘프들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두 명의 여인이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손이 그에게로 뻗고 있는 것을 보아 갑자기 솟아오른 거대한 나무뿌리는 그녀의 작품인 듯했다.
그런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엘프를 향해 모든 엘프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르테온 님 뵙습니다.”
모두의 존경 어린 인사를 받는 여인이 이방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자 다른 엘프들이 아주 정중하게 길을 비켜 줬다.
그런 그들에게 가볍게 묵례로 답한 아르테온이라는 여인이 이방인 앞에 서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이방인이여,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강찬에게 말을 건 엘프의 모습은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는 엘프 중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래 봐야 약간의 주름과 흰머리가 다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이곳 마을의 최고령 엘프인 듯했다.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봄바람처럼 따사롭고 푸근한 그녀의 목소리였지만 그녀 앞에 서 있는 이방인의 얼굴은 북풍 한파가 따로 없을 정도로 냉랭했다.
“헉! 헉!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젠장.”
알아듣지도 못할 해괴한 언어로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여인을 향해 극도로 지친 이방인은 대답 대신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위기 상황을 벗어나고자 혹독한 고통을 수발하는 전투 모드까지 써 가며 탈출을 시도했는데 그것마저 실패로 끝나 버렸고, 무기도 없는 빈손에 몸은 나무 넝쿨에 묶인 상태다.
그의 얼굴에 서서히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다 그는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 알아먹지도 못할 해괴한 언어로 지껄이는 여인을 향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흐흐흐…… 이런 빌어먹을. 카악, 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가야 하다니, 억울하긴 하지만 우리 특수 부대 레드 마스에겐 포로란 없다!”
그가 외침 끝에 자살 모드를 작동시키자 그의 몸속에 저장되었던 자살용 독약이 그의 심장으로 주입되며 온몸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런 그의 표정은 심한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크읍!”
갑자기 이방인의 얼굴이 보랏빛으로 변하면서 코와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자 그를 지켜보고 있던 엘프들이 깜짝 놀랐고, 그의 상태를 확인한 아마리가 외쳤다.
“독약을 마신 것 같아요!”
“갑자기 독약을 먹다니…….”
주위 엘프가 독약이란 말에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런 동요 속에서도 아르테온이라는 엘프는 침착하게 그에게 손을 내밀며 외쳤다.
“큐어.”
녹색의 빛무리가 그의 몸으로 내려앉자 흙빛으로 변했던 그의 안색이 차츰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혈관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연 온몸이 상쾌해짐을 느꼈다.
‘원래 이 독약은 죽을 땐 이렇게 상쾌해지는 건가? 좋군. 근데 난 언제 죽는 거지? 벌써 죽은 건가? 아닌 거 같은데…….’
그는 의구심에 질끈 감았던 눈을 살짝 떠서 주변을 살펴봤다.
그러자 그의 앞에는 자살용 독약을 사용하기 전에 봤던 그들이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지? 컴퓨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체내에 사용된 자살용 독극물인 C-13은 현재 모두 제거된 상태입니다. 원인은 불명입니다.
“뭐라고? 독이 사라져? C-13은 일단 혈관 속에 퍼지면 그 어떤 약을 써도 살아남을 수 없어! 이건 말도 안 돼!”
컴퓨터와 대화를 나누며 혼자 흥분하고 있는 강찬을 바라보는 아르테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혼자서 말하고 혼자 흥분하는 그의 행동이 이상하게만 보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옆에 있던 아마리와 엘프들이 살며시 귓속말로 전했다.
“아르테온 님. 저 인간, 암만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역시, 미친놈이라서 힘도 센 것 같아요.”
“네, 제가 봐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아요. 바지도 안 입고 있고…….”
흉물스런 그의 물건을 살짝 내려다보는 아르테온과 아마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 별로 대단치도 않은 것 같은데.”
그녀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찬의 것은 어디 내놔도 전혀 손색이 없을 물건이었다.
“그건 그렇고,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봐선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잣말을 들어 보니 우리와는 다른 언어를 쓰던 것 같던데, 제가 통역 마법으로 다시 한번 대화를 시도해 볼게요.”
아르테온이 다시 용기를 내어 이방인에게로 다가섰다.
“하는 수 없지. 독약이 안 되면 혀라도 깨무는 수밖에 잔인한 고문을 받고 죽는 것보단 그편이 좋겠지…….”
붙잡힌 적군들이 잔혹한 고문으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고통받는 광경을 수도 없이 목격해 온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가장 편하게 죽는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에 잠긴 그에게로 아르테온이 다시금 말을 걸었다.
“제 말 알아들을 수 있나요?”
이방인이 고개를 들어 엘프를 바라봤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컴퓨터 대화를 싱크로 모드로 전환한다.”
-대화 모드 싱크로 모드로 전환했습니다.
‘침착하자.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그래 희망을 잃지 말자. 컴퓨터, 저년의 언어가 번역 가능한지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삐…… 삐…… 삐…… 죄송합니다. 저장되어 있는 태양계에 존재했던 1,469개국의 언어를 모두 검색했지만 유사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전 인류의 언어가 저장된 컴퓨터에도 없는 언어라니. 누구지, 이들은? 이 별에 먼저 도착했었던 인류가 아니란 말인가? 설마 진짜로 이 별에 사는 외계인인가?’
그는 출발하기 전날 브리핑에서 자신에 브레인 칩으로 주입된 자료를 더듬어 보았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대한민국 한국 천문 연구원에서 발견한 이 OGLE-2006-BLG-109L계는 태양계와 매우 흡사한 외계 항성계로 당시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로 그곳에 투입된 무인 탐사 위성에 의해 발견된 이별 ‘네오 어스’는 지구와 매우 흡사한 조건을 가진 행성으로서 과학자들은 지구와 같은 유기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었다.
인류가 라스트 임펙트로 모성인 지구를 잃고 우주에 정착한 지도 벌써 5백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우주에서는 지구 이외에 생명체가 발견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들 선발대에게 주어진 임무는 지구 외에 생명체가 네오 어스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일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이 지적 문명이라는 것 가졌는지 아닌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그 후 이차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가 바로 이 별을 우주 연방군 UNA(US, NATO, ASIA)의 제2 지구로 만들기 위한 파괴 공작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이들이 진짜로 지적 문명을 가진 외계 생명체라 하더라도 강찬은 더는 작전을 속행할 힘이 없었다.
그에게 남은 건 이제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함과 무기, 그리고 동료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고, 이렇게 자신만이 홀로 네오 어스의 외딴 숲속 마을에서 눈을 떴으니 말이다.
그로서도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가 이런저런 고뇌에 빠져 있을 때 아르테온이 백옥 같은 손을 뻗어 그에게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작은 빛무리가 그녀의 손에 모이더니 이내 아름다운 도형을 그리며 이방인에게로 날아갔고, 고뇌에 빠져 있던 이방인은 갑자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빛무리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크윽!”
그것을 레이저 병기라고 생각한 그는 ‘꼼짝없이 죽는구나!’라고 생각하고는 잔뜩 움츠렸다.
하나 몇 분이 지나도 자신의 몸에선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한 그가 다시 고개를 들고 앞에 서 있는 낯선 여인을 올려다봤다.
‘뭐지? 아무것도 아니잖아. 설마 이것들이 지금 나를 농락한 건가?’
왠지 상대방에게 농락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의 마음속에 분노가 들끓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낯선 여인이 다시 입을 여는 순간 그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제 말이 들리시나요?”
해괴한 언어로만 나불거리던 여인의 입에서 갑자기 자신과 똑같은 언어가 흘러나오자 그는 깜짝 놀란 것이다.
‘분명히 이상한 언어를 쓰던 여인이었는데, 한순간에 우리말을 저리도 유창하게 구사하다니. 설마?’
순간 그의 뇌리엔 이들이 외계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당신은 지구인인가?”
“지구인이 뭔가요? 전 이 숲에 사는 엘프라는 종족입니다.”
“엘프? 처음 듣는 민족이로군. 그렇다면 어떻게 당신은 우리말을 알지?”
“그것은 마법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지요.”
“마, 마법?”
“네, 당신은 마법을 모르시나요?”
그가 아는 마법이라고는 동료인 딕이 심심할 때마다 보여 주던 카드 마술이나 동전 트릭 같은 시시한 장난밖에는 없었다.
물론 마법과 마술은 애초에 전혀 다른 것이지만 말이다.
“스피크라고 하는 고위급 정신계 마법입니다. 언어와 인종을 떠나서 동물이나 식물에도 자신의 의사를 전하고 들을 수 있는 마법이지요. 마법을 모르다니, 신기한 일이군요?”
“마법이건 뭐건 그딴 건 나랑 상관없다! 어서 이거나 풀어라!”
“저, 저놈이!”
그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주위 엘프들의 눈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 미천한 인간 놈이 자신들의 로드인 아르테온 님에게 시종일관 반말지거리에 오만불손한 태도로 일관하니 말이다.
가뜩이나 인간을 싫어하는 엘프들의 분노가 따가울 정도로 이방인에게 쏘아졌다.
그런 그들의 적대감은 그가 늘 상 적들에게 받아오던 것이기에 익숙했다.
하지만 아르테온의 이어진 말은 그런 그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어 버리고야 말았다.
“저기, 말씀 중에 대단히 죄송한데 저와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먼저 바지를 입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저희 엘프들도 가릴 건 가린답니다.”
너무도 상큼하게 웃으며 말하는 엘프의 말에 이방인은 순간 ‘뭔 소리지?’ 하고 멍해졌다가 점차 자신이 아랫도리가 엄청나게 허전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필사적으로 그곳을 가리려고 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수라의 삶을 살아온 그라도 일말의 수치심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꽁꽁 묶어 버린 그의 양팔은 그런 그의 의지를 거부했고, 밀려드는 치욕감 때문인지 떨려 오는 어깨를 주체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녀에게 외쳤다.
“이, 이건 네놈들이 벗겼잖! 크읍!”
이방인이 끓어오르는 분노에 고함을 내지르다 말고 갑자기 혼절해 버렸다.
1년 동안 침대에 누워만 지내며 극히 쇠약해진 몸으로 무리하게 전투 모드를 한계까지 사용해 몸이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어 혼절해 버린 것이었다.
정신을 잃고만 이방인을 바라보던 아르테온이 뒤에 서 있는 엘프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짓을 받은 엘프 여인이 붉어진 얼굴로 주섬주섬 겉옷을 벗어 그의 아랫도리를 가려 줬다.
“이런, 또다시 정신을 잃었군요.”
“정말 어디서 온 인간일까요? 좀 전에 보여 준 괴력 정말 무시무시했습니다.”
“괴력도 무시무시했지만, 전 그보다 그의 정체가 더 궁금하네요.”
“몸 안에 자살용 독약을 지니고 다니다니 매우 수상한 자입니다. 격리해서 심문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불안해하는 모습이던데요. 심문보다는 일단 안심부터 시키고 나서 물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또다시 자살을 시도할지 모르니깐 옆에 항상 치유 마법사를 대기시켜 주세요.”
아마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후 뒤에 엘프들에게 손짓했다.
“이자를 다시 집으로 옮겨라.”
“네, 아마리 님.”
* * *
사방이 불타올랐고,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낯익은 풍경들. 여긴 10년 동안 지옥 같았던 육체 개조 수술과 전투 훈련을 마치고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던, 화성의 제국군 가족들이 거주하는 플랜트 에다이였다.
함께 기습 작전에 투입된 동료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모두가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그들은 죄책감 같은 감정은 결여된 듯 도망치는 민간인들을 향해 무덤덤하게 총구를 겨누고는 레일 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레일 자기장에 의해 가속된 작은 쇠구슬들이 엄청난 속도로 그들에게 뿜어지기 시작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핏덩이로 변하며 그들의 육신이 사방으로 난무했다.
아무리, 아무리 그들이 적국이라 해도 그들은 민간인인데 내 나이 12살, 처음 죽여야 하는 적이 여자와 어린애들이라니,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나는 그들에게 총을 쏘기가 겁이 났다.
함께 있던 대원 모두가 그런 나를 향해 경멸하는 시선을 보냈다.
이윽고 교관이 강한 어조로 재차 명령하자 겁먹은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겨눈 레일 건의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굉음과 함께 날아간 내가 쏜 총알은 다른 이들의 총알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무정하게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 후로 난 계속해서 미친 듯 방아쇠를 당겼고, 내가 쏜 레일 건에 맞아 터져 나가는 그들을 볼 때마다 감정이 점점 무뎌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날 이후로 사람들은 우리를 이렇게 불렀다.
화성을 피로 물들인 악귀들, 레드 마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