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30
퓨쳐나이트 30화
* * *
강찬과 지크욘 단둘이서 한 도시를 통째로 살 수 있는 정도의 가치를 지닌 술들을 단 하룻밤 만에 탕진한 지도 5일이 지났다.
강찬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새벽부터 일어나 마나를 모으고 단검 두 자루를 휘두르며 단조로운 수련의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강찬은 제이나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더 간절해져 갔다.
하지만 그는 갈 수 없었다.
그게 다 자신한테서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는 짐짝 탓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그 짐짝은 아침부터 강찬을 찾아왔다.
“나 배고파.”
“처먹어.”
“야! 넌 친구가 배가 고프다는데 처먹어가 뭐냐?”
“아! 짜증 나! 그럼 이거나 처먹어!”
“안 돼! 으으읍!”
강찬이 그녀의 입안으로 밀어 넣은 것은 그가 이별에 오기 전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먹어 오던 바로 그 알약이었다.
먹으면 온종일 뱃속이 든든해진다는 우주인의 필수 식료품 말이다.
강찬은 그걸 순식간에 지크욘의 입안에 집어넣고선 그의 입과 코를 막고 마나를 이용해 식도로 밀어 넣었다.
지크욘이 거칠게 저항했지만 여인의 몸으론 도저히 강찬의 완력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러자 수세에 몰린 그녀가 용언의 힘으로 강찬을 날려 버렸다.
하지만 알약은 이미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린 후였고, 멋들어진 포즈로 착지한 강찬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알약을 삼킨 지크욘을 바라봤다.
“후후, 좋아하면서 앙탈은.”
“이 자식! 잘도 나한테 그 음식 같지도 않은 걸 또 먹였겠다!”
전에도 강찬은 지크욘이 배고프다고 징징거리자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해 이 알약을 먹인 적이 있었다.
그런 그녀는 그날 이후로 한사코 이 알약을 먹기를 거부했다.
하루 온종일 든든하게 만들어 주는 이 마법 같은 알약 덕에 그녀는 온종일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손도 못 댔기 때문이다.
“아, 젠장! 또 온종일 아무것도 못 먹게 됐잖아. 너 저주할 거야.”
“그러니까 배고프면 알아서 찾아 먹으라고. 내가 줄 수 있는 음식은 그것뿐이니까.”
“너같이 친구를 위할 줄 모르는 인간과 친구가 되다니, 내 삶의 최대 실수다.”
“내가 먼저 친구 하자고 했나? 아무튼 오늘은 미안하지만 혼자 보내라고.”
갑작스런 강찬의 말에 깜짝 놀란 지크욘이 강찬을 붙잡았다.
“왜? 어디가?”
“어, 엘프 마을에 볼일이 있어서.”
“같이 가자.”
제이나를 보기 위해 가는 건데 여자의 모습인 지크욘을 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 돼.”
단호하게 거절하는 강찬에게 지크욘이 따지고 들었다.
“왜 안 되는데?”
“그건 네가 지금 여자 모습이라서 안 돼.”
“내가 여자 모습이라서 안 된다고? 그럼 너 혹시? 여자 만나러 가는 거야?”
순간 강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자 지크욘은 또다시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강찬의 몸에 기댔다.
“오호라, 누군데? 나보다 예뻐?”
지크욘이 의도적으로 가슴을 강찬의 팔에 밀착시키자 강찬은 화들짝 놀라며 그녀에게서 벗어났다.
“야! 너 자꾸 이럴래?”
홍당무가 되어 버린 강찬을 보며 지크욘은 귀여워 죽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강찬과 처음 만나 친구가 된 그날로부터 그녀의 취미가 되어 버린 장난이었다.
그래서 강찬의 간절한 부탁에도 한사코 여자의 모습을 고수해 온 지크욘이었다.
또한 강찬도 말은 싫다고 해도 솔직히 지크욘이 남자인 것보단 여자인 모습이 좋았다.
그 정도로 지크욘의 미모와 몸매는 이 세상 텐션이 아니었다.
“아무튼! 오늘은 안 돼. 꼭 혼자 가야만 해. 부탁이야, 지크욘.”
강찬이 자신의 이름까지 부르며 부탁하자 그런 친구의 부탁을 못내 거절하지 못한 지크욘은 알았다는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방해하진 않을게. 하지만 나도 엘프 마을에 볼일이 있으니 우리 마을까지만 동행하자. 그 후엔 따로 행동하고 괜찮지?”
하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인 강찬이 체념 조로 말했다.
“알았어. 하지만 절대 마을까지다!”
“오케이! 그럼 바로 가자고.”
“그래. 잠깐만, 나 에어 바이크 가지고 올게.”
에어 바이크라고 하자 지크욘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에어 바이크? 진짜?”
사실 지크욘은 언제든지 공간 이동으로 눈 깜빡할 사이에 엘프 마을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찬이 에어 바이크를 타고 가자는 말에 지크욘은 신이 나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전에 강찬이 격납고에 있는 에어 바이크를 수리하고 그 뒤에 딱 한 번 타 본 적 있는 지크욘은 에어 바이크에 홀딱 반해 버리고야 말았다.
물론 지크욘은 혼자서도 레비테이션으로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었지만 이 놀랄 만한 과학의 산물인 에어 바이크를 탈 때 느껴지는 짜릿함은 레비테이션과 결코 비교할 수 없었다.
마법으로 하늘을 날면 그냥 땅 위에 서 있는 느낌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에어 바이크에 몸을 맡기면 왠지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아찔함이 있었다.
그래서 정말 하늘을 날고 있다는 짜릿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괜히 지크욘을 골려 주겠다고 연방군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파일럿인 강찬이 엄청 험하게 몰았기에 그때 느낀 그 짜릿한 쾌감을 지크욘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줄곧 태워 달라고 졸라도 단 한 번도 안 태워 준 강찬이었다.
버릇 들까 봐서 말이다.
그런 그가 선뜻 에어 바이크를 태워 주겠다고 말하자 지크욘이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전함 밖에 나가 에어 바이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레드 마스호의 조그만 보조 격납고의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에어 바이크의 힘찬 엔진 시동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부와와와와왕!
거친 운전 솜씨를 자랑하는 강찬의 에어 바이크가 순식간에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고, 공중에서 멋들어진 에어 드리프트를 선보이며 지크욘 옆에 멈춰 섰다.
“타!”
“와! 멋있어!”
지크욘은 정말 진심으로 그런 강찬의 모습에 찬사를 보냈다.
지크욘이 강찬 뒤에 올라타자 강찬이 요란한 엔진 소리 때문에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벨트 매고 꽉 잡아!”
“응, 벨트 했어! 오빠, 달려!”
“오빠는 얼어 죽을. 간다!”
강찬이 거칠게 액셀를 당기자 에어 바이크의 소형 이온 추진 시스템이 불을 내뿜으며 순식간에 둘은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꺄아아악! 좋아! 좋아!”
순식간에 까마득한 높이까지 솟아오른 지크욘은 짜릿함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떨었다.
수천 년 동안의 무미건조하게 살아온 그녀에게 이런 짜릿함은 삶에 활력을 되찾아 주는 듯했다.
너무나도 기쁜 마음에 지크욘이 강찬의 등에 기대어 강찬 몰래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 싸가지 없는 인간 녀석과 친구 하길 정말 잘했다고 말이다.
그녀에게 강찬과 지낸 요 5일간은 그녀의 8000년 인생 동안 보내온 그 어떤 유희보다도 즐겁고 행복했다.
* * *
강찬이 무사히 생존해 엘프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을 무렵, 광활한 우주 저 너머에선 레드 마스호의 보고를 애타게 기다리는 수많은 무리가 있었다.
“보좌관, 레드 마스호로부터 통신은 아직도 두절 상태인가?”
“네, 사령관님! 3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한 걸로 보아 레드 마스호의 뭔가 이상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흐음…….”
사령관이라는 사내는 거대한 메인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적 함대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제국과의 전쟁이 이렇게 눈앞으로 다가왔는데, 제길!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다. 네오 어스에 관한 모든 일은 전쟁 후로 미룬다.”
“옙!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경례하고는 서둘러 임무를 수행하러 달려 나가자 사령관은 의자에 편하게 기댄 채로 상념에 젖어 들었다.
‘인류가 라스트 임펙트로 모성인 지구를 잃고 이 우주를 떠돌아다닌 것도 벌써 500년…… 반드시 후세들을 위해서 제2의 지구 네오 어스는 우리 연방군이 차지해야 한다. 기필코 반드시 이 내 손으로!’
총사령관이라는 자는 피가 터질 듯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저 잔혹한 제국에 승리해야만 한다. 제국에 승리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지구의 푸른 하늘은 없다!’
그의 눈빛은 신념으로 불타올랐다.
“전 함대 전투 배치! 포문을 열어라!”
-전 함대 전투 배치! 전 함대 전투 배치! 우주력 2708년 09월 13일 01:30 분부로 UNA 우주 연방 함대 총사령관으로부터 전투 상황 발령.
모든 UNA 우주 함대 소속 예하 모든 전투함 브릿지에 전투 상황이 담긴 긴급 메시지가 전송되자 비상등이 켜지고 요란한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비상! 비상! 전투태세 발령! 전투태세 발령! 각 전투원 각자 위치로! 다시 한번 전달한다! 전투원 각자 위치로 비상! 비상! 본 상황은 실제 상황이다.
“아이, 시팔! 또 뭐야!”
“빌어먹을, 젠장! 제발 좀! 잠 좀 자자고!”
수면 캡슐에서 부스스하게 일어난 전투 대원들이 피곤함에 찌든 표정으로 신속히 전투 우주복으로 갈아입고서는 각자 위치를 향해 무중력 속을 날아갔다.
쿠우우우웅…….
광활한 은하계, 여러 항성이 내뿜는 은은한 빛무리 속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은백색의 거대한 우주선이 후미로부터 밝은 빛을 내뿜으며 빠르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수 킬로에 이르는 거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쾌속한 속력이었다.
우주 연합 방위군의 모함이자 최고의 전투함인 테메레르의 그 웅장한 크기와 아름다운 외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턱 막히게 할 정도였다.
그렇게 거대한 테메레르가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모함 주위로 수많은, 크고 작은 전투함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일사불란하게 진을 구축하며 테메레르를 호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사방에서 밝은 빛무리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그들만의 우주 전쟁 놀이가 시작되었다.
10. 철없는 공주와 풋내기 기사
강찬과 지크욘이 에어 바이크를 타고 엘프 마을을 향해 날아오는 동안 엘프 마을에는 비스만 제국의 외교 사절단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오크들의 참전으로 적과 팽팽한 대립을 유지하고 있는 전선에 한시라도 빨리 엘프들과 드워프들이 동참해 줄 것을 재촉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엘프의 여왕 아르테온은 그런 비스만 제국의 사신들을 맞이하여 열띤 협상을 벌였다.
약아 빠진 인간들은 드워프나 오크보다 다소 까다로운 존재들이었다.
그 무렵, 그들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목적으로 엘프의 마을을 찾아온 여인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엘프 마을 탐방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