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31
퓨쳐나이트 31화
“공주님! 이렇게 함부로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닥쳐라! 내가 내 발로 가겠다는데 네놈이 웬 참견이냐!”
“공주님은 지금 저희 대비스만 제국의 황제이신 헬라이너 딘 프롬펠 3세 님을 대변하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회의장에 자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흥! 어차피 정치나 전쟁은 귀족들의 몫이거늘, 나보고 저 답답한 회의장 안에서 뭘 하란 말이냐? 자꾸 날 귀찮게 할 것이라면 네놈도 내 앞에서 썩 사라져라!”
공주라는 여자의 말에 찍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남자아이의 플레이트 메일에는 비스만 제국의 근위 기사단인 헬라이너 기사단을 상징하는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자! 선택해라. 내 옆에서 날 호위해 줄 것이냐, 아니면 저들과 함께 회의장에 남겠느냐?”
“소, 소인은 …겠습니다.”
“뭐라는 것이냐? 잘 안 들리지 않느냐!”
“소인이, 함께하겠습니다.”
“오호호호! 그래그래, 너의 충직함을 높이 사 본 녀가 함께하겠노라.”
“…….”
만일 일이 틀어지게 된다면 공주는 자신을 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아는 소년의 표정은 정말 변이라도 씹은 듯 일그러져 있었다.
그것은 악질 에델린을 처음 만난 이후로 2년 동안 한결같았던 소년의 비참한 운명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가슴속 깊이 고이 간직해 왔던 공주라는 이름의 환상을 처참하게 부숴 버린 그녀, 이젠 그런 그녀와의 질긴 악연을 끊고 싶은 소년이었다.
“와! 여기는 그냥 시골도 아니고 완전히 원주민 마을이로구나. 분명히 이곳에 화장실은 그 전설로만 듣던 푸세식 화장실일 것이야……. 목욕탕엔 욕조도 없을 것이고 수영장도, 무도회장도, 옷가게도, 보석상도 아무것도 없겠지? 이런 곳에 살게 된다면 난 미쳐 버릴지도 몰라.”
‘너보다 내가 먼저 돌겠다.’
소년은 입으로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그 말을 가슴속으로 삼켰다.
과일과 채소들을 채집하며 나무속에서 살아가는 엘프의 마을을 그녀가 봤을 땐, 책 속의 삽화로만 봐 오던 원주민들의 모습 딱 그대로였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간혹 보이는 여자 엘프들의 외모는 궁전 무도회장에서도 결코 쉽게 볼 수 없을 만큼 빼어났다.
그에 질투가 났는지 에델린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흥! 원주민 마을의 원주민이로군. 자이젠!”
“예에, 공주님.”
“누가 더 예쁘냐?”
“예에?”
황당한 표정의 자이젠이 에델린을 올려다봤다.
“저기, 저 원주민과 나랑 누가 더 예쁘냔 말이다.”
“그, 그건 물론 공주님이 훨씬 예쁘십니다.”
자이젠의 어투는 결코 진실되지 못했지만 에델린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하이톤으로 웃음 지으며 기뻐했다.
“오호호호! 당연하지. 난 비스만 제국의 공주니까. 가자, 자이젠.”
“예, 공주님.”
호기심에 가득 찬 공주 에델린이 변 씹은 표정의 자이젠을 대동하고 주변 일대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그러나 동서남북 어딜 보아도 온통 우거진 숲뿐이었고, 이내 흥미를 잃어버린 에델린이 급기야 죄 없는 자이젠에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뭐냐? 이곳은! 온통 지긋지긋한 숲뿐이지 않느냐?”
“엘프들이 사는 마을은 숲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공주님.”
“그런 소린 듣기 싫다! 난 이런 것을 보고자 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
오지 않아도 될 그녀가 버럭버럭 우겨서 사절단과 함께 온 것인데 도대체 그녀는 무엇을 기대하고 온 것인지. 덩달아 함께 고생길에 오른 자이젠이란 소년은 그저 말없이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올려다본 하늘에서 굉음과 함께 뭔가가 쏜살같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부아아앙!
“헉!”
바람처럼 빠르게 내려온 그것 덕분에 숲의 나무들이 심하게 요동치며 사방으로 나뭇잎들이 떨어져 내렸다.
“이야호! 죽인다!”
“너 좀 조용히 타면 안 될까?”
“우리 한 바퀴만 더 돌자 응?”
“싫어! 세 바퀴나 돌아 줬으면 됐지. 빨리 내려.”
“그러지 말고 한 바퀴만, 응? 딱 한 바퀴만?”
“안 된다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 빨리 안 내려?”
“싫어! 안 내릴 거야!”
지크욘이 한 바퀴만 더 태워 달라고 앙탈을 부리자 강찬은 불같이 화를 내며 지크욘을 에어 바이크에서 떼어 놓기 위해 애썼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에델린과 자이젠은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 자이젠.”
“예에?”
“저게 무엇이냐?”
“모르겠습니다. 소인도 처음 보는 것이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기한 탈것에 에델린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저들이 타고 있는 것을 본 녀도 타고 싶구나.”
“저, 저기 그러려면 주인의 허락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저들은 엘프가 아닌듯하구나.”
“예, 귀가 둥근 것을 보아하니 둘 다 인간인 듯합니다.”
“호오? 그래?”
사악하게 웃음 짓는 에델린이 강찬과 지크욘을 향해 당당히 걸어갔다.
“야! 존말로 할 때 내려라.”
“싫어! 한 바퀴만 더 태워 줘!”
“아우, 이걸 그냥 확!”
강찬이 지크욘을 쥐어박으려는 액션을 취할 때 그들의 뒤로 에델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봐라.”
등 뒤에서 갑자기 낯선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찬은 지크욘을 잡아끌던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자신의 뒤에는 처음 보는, 아주 화려한 복장의 드레스를 입은 귀여운 여자아이와 번질번질한 갑옷을 두른 뽀얀 피부의 남자아이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기에 강찬은 지크욘을 향해 물었다.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몰라.”
지크욘도 모른다고 하자 강찬은 낯선 여자아이를 향해 말했다.
“누구시죠?”
“본 녀는 대비스만 제국의 공주이니라. 어서 황족에게 예를 갖춰라.”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소녀를 보고 강찬은 혀를 찼다.
“공주라는 여자애가 나보고 예를 갖추라는데, 그게 뭐지?”
“아 놔…… 이런 무식한 놈을 친구라고. 인사하라잖아, 인사!”
“인사? 내가 왜 인사를 해야 하지? 그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공주라잖아, 공주.”
“공주? 공주한테는 무조건 인사해야 해?”
“난 안 해도 되는데 넌 해야 할걸? 아마도?”
“넌 왜 안 하는데?”
“난 인간이 아니니까.”
“싫어, 내가 하면 너도 해.”
“미쳤냐? 내가 왜 인간 따위한테 인사를 해?”
둘이 또다시 티격태격하자 강찬과 지크욘에게 무시당한 에델린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이, 이건 모욕이야.”
모욕감에 부들부들 떠는 에델린 앞으로 자이젠이 나섰다.
“무엄하다! 감히 제국의 황족 앞에서 어디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하느냐!”
갑자기 나이도 어려 보이는 꼬맹이가 자신에게 대뜸 반말로 훈계하자 어이가 없어진 강찬이 지크욘을 바라보며 물었다.
“쟨 또 뭐지?”
“너 왜 자꾸 나한테 물어보냐? 나도 모른다니깐!”
지크욘에게서 고개를 돌린 강찬이 그다지 썩 좋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에게 반말지거리를 하는 자이젠을 쏘아붙였다.
“꼬맹이, 너 형한테 반말하면 혼난다.”
천하에 비스만 제국의 헬라이너 기사단의 문장을 가슴에 단 자신을 보고 꼬맹이라고 하자 자이젠의 눈에 불이 붙었다.
“꼬, 꼬맹이라니! 이놈! 용서할 수 없다!”
자이젠이 자신의 가죽 장갑을 벗어 강찬을 향해 던졌다.
“검을 들어라!”
“……?”
강찬은 자신 앞에 던져진 가죽 장갑을 들더니 도로 자이젠에게로 던졌다.
“왜 갑자기 남한테 장갑을 던지고 그래?”
퍽!
자신이 던진 장갑을 도로 얻어맞은 자이젠의 얼굴이 대번에 흙빛으로 변해 버렸고, 강찬 옆에 있던 지크욘도 그의 돌발 행동에 순간 깜짝 놀랐다.
“저놈 표정이 왜 저래?”
“야, 너 방금 그거 실수한 거야.”
지크욘이 자신보고 실수했다고 하자 강찬이 되물었다.
“난 장갑을 돌려줬을 뿐인데?”
“내가 알기로 인간이 장갑을 벗어서 던지는 건 생사를 건 결투를 하자는 뜻인데, 그 장갑을 도로 집어 던지는 건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뜻으로 알고 있거든?”
“결투? 그것도 생사를 건?”
강찬이 자이젠의 말에 놀라고 있을 때 천천히 검을 뽑아 든 자이젠이 어수룩해 보이는 얼굴답지 않게 짙은 살기를 내뿜으며 강찬을 향해 걸어왔다.
“당장 검을 뽑아라. 안 뽑으면 단칼에 베어 버리겠다.”
생각지도 않은 상대에게서 놀라운 기류를 읽은 강찬의 장난스럽던 표정은 어느덧 진지하게 변했다.
“허 이거, 보통 놈이 아니군.”
강찬은 갑자기 이런 식으로 코흘리개 인간과 싸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상대방이 내뿜는 살기가 결코 장난이 아니었기에 엉덩이 위쪽 부분에 달아 둔 두 자루에 단검을 양쪽으로 뽑아 들었다.
그것은 예전에 그가 즐겨 사용하던 우주 보병 표준 장비인 고주파 블레이드 단검이었다.
그런 그 단검의 진가를 모르는 자이젠은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강찬의 단검을 비웃었다.
“겨우 단검 따위나 쓰는 주제에 감히 대비스만 제국 황실 근위대인 나를 농락하다니, 그 대가는 목숨으로 받겠다.”
전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비스만 제국에 황실 근위대 헬라이너 기사단.
그런 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기사란 것을 뜻했다.
또 그런 유명한 기사단에 소속된 기사들은 자부심 또한 굉장해서 자신이 소속된 기사단의 명예를 목숨과도 같이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 그런 기사에게 꼬맹이라 표현하다 못해 장갑까지 도로 던져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고 모욕했으니 이제 자이젠은 실추된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찬 또한 약간 열 받은 상태였다.
그는 온종일 제이나에게 가고 싶어 안달이나 있었다.
그런데 지크욘이 아침부터 줄곧 짜증 나게 달라붙는 것도 모자라 이젠 어디서 웬 싹수없는 꼬맹이들까지 튀어나와 시비를 거니 그의 인내심도 슬슬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게다가 겨우 단검이라 비웃는 자이젠의 말에 강찬은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지금이라도 용서해 줄 테니 그냥 가라.”
“기사인 내가 한 수 양보해 주지. 먼저 들어와라.”
나이도 어린 것이 감히 한 수 양보해 준다고 하자 가뜩이나 열 받은 강찬의 눈이 정말로 뒤집히고야 말았다.
“양보? 그래, 어디 한번 마음껏 양보해 봐라!”
강찬은 최대한 빨리 꼬맹이를 혼내 주고 제이나를 보러 갈 생각으로 초반부터 강공으로 나갔다.
엄청난 스피드로 소년한테 달려든 강찬이 순식간에 단검을 내질렀다.
전투 모드를 끌어 올리지 않았지만 강찬의 공격은 소드 익스퍼트급, 이상의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그러나 단 한 방에 무력화시킬 줄 알았던 그의 매서운 공격을 어이없게도 소년은 별 무리 없이 받아 내었다.
챙!
‘어라? 이놈 봐라?’
강찬이 당황하는 순간 소년의 롱소드에서 순간적으로 시퍼런 오러 소드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강찬은 생각지도 못한 소년의 오러 소드에 또 한 번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