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33
퓨쳐나이트 33화
며칠 전부터 제이나는 폭포를 찾아와 그곳에 몸을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여린 몸으론 애당초 그 까마득한 낙차의 수압을 버티기란 무리였다.
마치 몽둥이로 전신을 구타당하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그녀는 처음 폭포에 몸을 던졌을 때는 단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와야만 했다.
폭포수로부터 전해지는 고통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을 아저씨는 몇 년 동안이나 계속해 오다니.’
그녀는 하루에 대부분을 폭포수를 맞으며 보내던 강찬을 떠올리며 그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제이나는 다시금 이를 꽉 깨물고 폭포수에 몸을 던졌다. 그녀가 이토록 무리하면서까지 폭포에 몸을 던지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강해지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문득 자신과 강찬이 왠지 너무 비교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찬과 거의 같이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벌써 마나를 다루는 소드 익스퍼트가 된 것에 반해 자신은 아직도 마나는커녕 엘프의 검 기본 동작조차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강찬과 자신이 너무도 비교된다고 생각한 제이나는 조금이라도 강찬을 따라가고 싶은 나머지 강찬이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녀는 폭포에 몸을 던지고 있었다. 그 앞에서 모자란 자신을 보여 주기 싫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모진 마음을 먹고 하루하루 악착같이 폭포에 몸을 던진 제이나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몸은 온통 피멍투성이였고, 체력도 거의 탈진 직전이었다.
그녀에게 강찬과 똑같은 수련법은 절대로 무리였다.
아니, 그녀뿐만 아니라 그 어떤 엘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그것은 강찬만이 가능한 무식한 수련법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제이나는 폭포수에 계속해서 몸을 내던졌다.
만일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자괴감에 빠져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이나가 폭포수를 맞으며 정신이 아득해져만 가고 있을 때, 하늘에서 강찬이 에어 바이크를 타고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내려왔다.
“제이나!”
에어 바이크에서 뛰어내린 강찬이 제이나의 이름을 크게 외치자 우렁찬 강찬의 목소리에 제이나가 정신을 차렸다.
“아, 아저씨?”
강찬이 거칠게 물살을 헤치며 한걸음에 달려와 제이나의 양어깨를 잡았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
강찬이 제이나를 안아 들고 폭포 밖으로 데리고 나와 그녀의 몸 상태를 살폈다.
폭포수의 낙차가 얼마나 강한지 제일 잘 아는 자신이었기에 제이나의 몸 상태가 걱정된 것이다.
자신이야 남들보다 몇 배나 빠른 신진대사 능력을 갖췄지만 제이나는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역시나 제이나의 양어깨는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거기에 체온을 빼앗긴 그녀의 몸은 얼음장같이 차가웠으며 입술은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그 와중에 제이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 한동안 왜, 왜 안 왔어?”
이빨을 부딪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하는 제이나를 보는 강찬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조용히 수련할 게 있었어.”
“으, 응. 그랬구나.”
오들오들 떨면서도 미소 짓는 제이나를 보자 강찬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왜 이런 바보짓을 해?”
“아, 아저씨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어.”
“내가 너랑 같아? 난, 난…….”
강찬은 자신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제이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강찬은 대충 둘러댔다.
“난 남자잖아.”
남녀 차별을 하는 듯한 강찬의 말에 제이나가 발끈했다.
“여, 여자도 할 수 있어!”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시, 싫어! 나랑 아저씨랑 뭐가 달라! 나도 강해질 수 있어!”
제이나가 갑자기 강해지겠다고 생떼를 부리자 난감해진 강찬이 잠시 할 말을 잃었고, 다시 조심스럽게 제이나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이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야. 폭포수를 맞는 건 나니깐 가능했지 나 이외에는 너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깐 일단 몸부터 추스르자.”
“싫어! 싫단 말이야! 나 더는, 더는 아저씨한테 모자란 모습 보이기 싫단 말이야! 아아앙!”
제이나가 울부짖으며 하는 말에 강찬은 할 말을 잃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굳어 버렸다.
제이나가 왜 그토록 무서워했던 폭포에 몸을 던졌는지 그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항상 자신의 옆에 있어 주면서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챙겨 주고 걱정해 준 제이나였는데, 그런 제이나를 자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뒤돌아본 적 없이 달려왔다.
오로지 자신의 앞만을 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신이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항상 제자리걸음만 하는 제이나가 자신을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해 왔을지 자신은 여태껏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갑자기 강찬은 마음이 아파 왔다.
그리고 너무도 미안했다.
지금껏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며 그녀를 외면해 왔다는 사실이 말이다.
강찬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말없이 제이나를 꼭 끌어안아 버렸다.
갑자기 강찬이 자신을 끌어안자 놀란 제이나가 약간의 몸부림을 쳤지만 그럴수록 강찬이 제이나를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
이내 제이나의 몸부림이 점점 잦아지더니 어느덧 가만히 강찬의 품에 기대어 울었다.
그렇게 폭포 소리에 묻힌 제이나의 울음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잠시 후 강찬이 조심스럽게 눈물 젖은 제이나의 볼을 쓰다듬고는 자신의 입술을 제이나의 작은 입술에 포갰다.
그러자 제이나는 강찬의 입맞춤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둘은 그렇게 폭포 아래서 한참 동안 서로에 사랑을 확인했다.
꿈만 같은 달콤한 시간이 지나고서 강찬이 제이나를 다시 한번 꼭 끌어안고 말했다.
“영원히 내가 너를 지켜 줄게. 그러니깐 무리하지 마, 제이나.”
창백했던 제이나의 얼굴이 어느새 복숭아처럼 붉게 물들었다.
“으응.”
고백 아닌 고백이 되었지만 강찬은 제이나에게 자신의 솔직한 속마음을 전했고, 제이나는 그런 강찬의 마음을 받아 주었다.
그렇게 둘은 그날부로 더는 친구가 아닌 연인 사이가 되었다.
강찬이 제이나의 차가워진 몸에 온기를 불어넣으려고 서둘러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그 작은 모닥불 앞에 둘러앉은 둘은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직은 약간 어색했기에 선뜻 말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마냥 좋은 듯 둘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몸 좀 괜찮아?”
“응! 이젠 괜찮아.”
“어깨에 멍 많이 들었던데, 치유사한테 가 보자.”
“이 정도는 괜찮아. 집에 있던 포션 가져왔어. 그거 바르면 사라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제이나가 억새를 꼬아서 만든 가방에서 붉은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꺼내자 강찬이 자신이 발라 주겠다며 포션을 받아 들었다.
그러자 제이나가 강찬을 등지고 돌아앉아 상의 끈을 어깨 아래로 내렸다.
그 순간 강찬은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오늘따라 유난히 제이나가 굉장히 어른스러워 보였다.
조심스럽게 포션을 발라 주던 강찬이 제이나에게 물었다.
“너 며칠 못 본 사이에 좀 큰 것 같다?”
모닥불을 등지고 붉게 달아오른 제이나가 수줍게 미소 짓자 강찬은 잠시 넋을 잃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제이나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엘프란 종족은 인간과 달리 성인이 되는데 100년이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100년 동안을 천천히 조금씩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성장하는 특성이 있었다.
자신이 크고 싶을 때 간절히 원하면 그때마다 조금씩 성장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증오가 됐든 사랑이 됐든 말이다.
대신 증오와 원한을 너무 강하게 품은 엘프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다.
그런 그들이 바로 다크 엘프들이다.
다크 엘프로 변해 버린 엘프는 율법상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증오와 원한에 물들어 변해 버린 검은 피부는 어떻게 해도 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그리고 다크 엘프의 자식 또한 무조건 다크 엘프로 태어났다.
저주받은 핏줄이 영원히 대물림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엘프들은 자신들의 고귀한 엘프의 피가 더럽혀질까 두려운 나머지 종족 보존을 위해서 다크 엘프로 변해 버린 엘프를 처형시키는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땅속으로 숨어들어 살 수밖에 없었고, 엘프들은 그들을 가리켜 드로우 엘프라 부르며 굉장히 천시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다르게 증오나 원한이 아닌 사랑으로 성장하고 있는 제이나의 모습은 아이의 모습에서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 가며 정말로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포션을 바르고 시간이 지나자 제이나의 짙은 멍은 점차 사라져 이제는 약간의 멍울만 남았다.
옷을 추스른 제이나가 강찬을 향해 자세를 바꾸고 강찬에게 다가가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저씨, 나 있잖아. 부탁이 있는데.”
“뭔데?”
헤어지자는 말만 아니라면 뭐든 들어 줄 수 있는 강찬이었다.
“나 아저씨 사는 곳에 가 보고 싶어.”
“……?”
당황한 강찬이 순간 움찔했다.
“왜 갑자기 그곳에?”
“아니, 뭐 그냥 아저씨가 거기선 어떻게 하고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만날 말로만 듣던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방주도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제이나는 말은 못했지만 그곳에 굉장히 가고 싶어 했었다.
“그 정도야 뭐 어렵지 않지. 다행히 에어 바이크도 가져왔으니까 눈 깜빡할 사이에 데려가 줄게.”
“진짜? 고마워!”
제이나가 갑자기 달려들어 강찬의 목에 매달리자 강찬의 얼굴이 다시금 홍당무가 되었고, 그런 그는 안겨 있는 제이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꺄악!”
강찬이 안겨 있는 제이나를 조심히 에어 바이크 위에 앉히고는 안전띠를 해 주었다.
“그럼 출발한다.”
“응!”
에어 바이크에 앉은 강찬의 모습은 지크욘을 태웠을 때와 사뭇 달랐다.
뻣뻣하게 굳은 자세는 꼭 교본을 보는 듯했다.
행여나 제이나가 떨어지거나 놀라진 않을까?
아주 세심하고도 섬세하게 에어 바이크를 모는 모습은 마치 초보 운전자를 방불케 했다.
그렇게 둘은 천천히 레드 마스호를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