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35
퓨쳐나이트 35화
“자,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야.”
까마득히 높은 천장 위로 대낮처럼 밝은 조명들이 빛나는 모습에 어리둥절 올려다보던 제이나가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는지 조금 비틀거렸다.
“괜찮아?”
강찬이 그런 제이나의 어깨를 잡아 주자 이때다 싶은 제이나가 강찬의 품에 마음껏 안겼다.
“아저씨, 나 어지러워.”
“에이…… 그러니깐 내가 치료사한테 먼저 가자고 했잖아, 괜히 고집 부려서. 자, 업혀.”
“괜찮은데…….”
“아, 빨리 업혀.”
“응!”
어지럽다던 제이나는 어디로 갔는지 그녀는 강찬의 등에 냅다 올라탔다.
그렇게 제이나를 등에 업은 강찬은 전함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그녀에게 전함 안을 구경시켜 줬다.
거대한 전함 안은 거의 자동화가 되어 있어 수소의 인원만이 탑승했기에 거주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그래서 보여 줄 것은 그리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제이나는 마치 별세상에라도 온 듯 너무나도 놀라워하고 기뻐했다.
“아저씨! 저긴 뭐 하는 곳이야?”
“거긴, 샤워실이야.”
“샤워실?”
“응.”
“그게 뭔데?”
“씻는 곳.”
“씻는 곳?”
“그래.”
물이 귀한 우주 전함에서는 최소한의 물로 샤워를 해야 했기에 샤워룸은 원통형으로 이루어진 투명한 유리통 속에 수많은 분무기가 사방에 설치되어 있는 형태였다.
“와, 씻는 곳 참 괴상하다. 그럼 그 옆에 있는 건?”
제이나가 가리킨 곳은 화장실이었는데, 그곳은 괴상하게 생긴 커다란 깔때기가 호수에 연결되어 칸막이 속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것 또한 최소한의 물을 사용해 분비물을 우주로 날려 버리는 최첨단 화장실이었다.
“거긴 화장실이야.”
“화장실?”
“어.”
“화장실이 왜 저렇게 생겼어? 와, 진짜 웃긴다.”
푸세식 화장실을 애용하는 엘프가 봤을 때 전함에 설치된 화장실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웃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와하하하! 그럼 아저씨도 맨날 저기다가 볼일 봐?”
“야!”
“아하하하! 미안, 미안해.”
얼굴이 벌게진 강찬은 속으로 제이나에게 ‘너도 무중력 속에서 똥 한번 눠 봐라!’라고 외쳤다.
우주에서 전함 안은 인공 중력장에 의해 지구의 절반 정도의 중력이 존재했지만 비상시를 대비해 전함에 모든 사용 시설물들은 모두 무중력을 가정해서 개발되고 설치되어 있었다.
“저긴 뭐야?”
제이나가 가리킨 곳은 강찬이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었던 장거리 항해용 수면 캡슐이 설치되어 있는 인공 수면실이었다. 그곳은 동료가 모두 살해된 곳. 그는 제이나에게 그런 아픔이 있는 곳을 굳이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저기는 별로 볼 게 없어. 가자.”
“응? 왜? 가 보면 안 돼?”
“미안,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야.”
강찬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제이나는 더는 조르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그럼 나 이제 아저씨 먹고 자는 데 보고 싶어.”
“거기도 진짜 볼 거 없는데.”
“그래도 난 가장 보고 싶은 곳인걸. 우리 자기가 어떻게 하고 사는지 궁금하니까…….”
갑자기 강찬이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찔했다.
‘자, 자, 자기?’
제이나의 입에서 아저씨란 단어 말고 자기라는 호칭이 나오자 강찬은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정말 뛸 듯이 기뻐하며 외쳤다.
“하하하, 그래! 우리 자기가 보고 싶다는데 보여 줘야지!”
강찬도 자기라고 크게 외치며 들떠 하자 제이나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런 제이나를 강찬이 순식간에 안아 들고 이마에 입 맞춘 뒤 외쳤다.
“자, 꽉 잡아 최대 스피드로 날아갈 테니!”
“응!”
제이나가 강찬의 목을 양팔로 꽉 붙들자 강찬은 좁은 복도를 쏜살같이 달리며 레드 마스의 숙소로 향했다.
“꺄악! 달려라, 달려!”
강찬이 바람같이 내달리자 안겨 있는 제이나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강찬을 더욱 세게 껴안았다. 그렇게 한걸음에 자신의 방문 앞에 도착한 강찬은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서 늑대 한 마리가 요동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꼭 안겨 있는 제이나의 부드러운 살결과 작은 숨결이 그의 욕망을 더욱 거칠게 만들었고, 해서는 안 될 생각이 자꾸만 떠오르며 강찬은 자신 이성이 점차 흐려짐을 느꼈다.
-혈압 수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피가 한쪽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컴퓨터, 내가 부를 때까지 대답하지 마.’
-알겠습니다. 침묵 모드로 설정됐습니다.
방해꾼을 제거해 버린 강찬이 제이나를 불렀다.
“제, 제이나.”
“으응?”
붉게 달아오른 강찬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떨리는 입을 열었다.
“나, 이대로 가다간 너를…….”
강찬의 솔직한 말에 제이나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채고는 덩달아 숨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강찬에게까지 제이나의 심장의 고동 소리가 전해졌다.
제이나는 부끄럽다는 듯 강찬을 꼭 끌어안아 버렸고,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좋아.”
그녀의 대범한 말을 들은 강찬의 가슴에 화산이 폭발하듯 열화가 폭발했고, 더는 이성을 주체하지 못한 강찬이 자신의 방 입구를 급히 열고는 제이나를 자신의 침대 위로 던지려 했다.
하지만 불타오르는 그들 앞에 미처 예기치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 방은 빈방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 왔어?”
“허억!”
강찬은 순간적으로 굳어 버리고야 말았다.
“어? 그 애 누구야?”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먼저 온 지크욘이 강찬의 침대 위에서 속옷에 불과한 옷 쪼가리를 걸치고는 요염한 자세로 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얼어붙어 버린 강찬에게 안겨 있는 제이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크욘을 바라봤다.
그런 제이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 아저씨 설마?”
그녀의 눈은 불신으로 가득했고, 둘 사이에 타올랐던 열화는 순식간에 북풍 한파로 변해 버렸다.
“이거 놔.”
제이나가 강찬의 품을 도망치듯 벗어났다.
“아니야! 제이나, 내 말 좀 들어 봐.”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게, 그러니깐.”
“너무해, 난 정말 진심으로 아저씨를 좋아했는데.”
제이나의 볼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흘렸다.
“갈게.”
눈물을 흘리는 제이나가 강찬을 피해 도망치려고 하자 강찬이 그런 제이나를 붙잡았다.
“오해야! 제이나.”
짜악!
제이나가 손을 올려 강찬의 따귀를 때렸다. 그러자 경쾌한 따귀 소리가 강찬의 작은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나쁜 자식! 비켜! 나 집에 갈 거야!”
“안 돼! 못 가, 내 말 듣기 전까지 아무 데도 못 가!”
강찬이 제이나의 따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이나의 양어깨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자 제이나는 그런 강찬을 뿌리치려고 거칠게 몸부림쳤지만 제이나가 자신의 말을 들어 주기 전까지 강찬은 절대로 그녀를 놓아줄 수 없었다.
“놔!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들어 봐, 제이나. 이건 오해야. 눈앞에 있는 저 여자는 사람이 아니야! 드래곤이란 말이야!”
드래곤이란 말에 잠시 멈칫한 제이나가 강찬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수긍이나 이해의 눈빛이 아니라 더욱 짙어진 불신의 눈빛이었다.
“에라이!”
제이나가 강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악!”
“뭐, 드래곤? 어디 거짓말할 것이 없어서 그런 유치한 거짓말을 해? 그렇게 말하면 내가 그 말을 믿어 줄 것 같아? 참나,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데 저딴 천박한 모습으로 침대 위에 누워선 인간인 아저씨 따위를 기다리고 있겠어? 당장 비켜! 나 더는 아저씨랑 얘기하고 싶지 않아.”
졸지에 천박한 여자가 되어 버린 지크욘의 표정이 흙이라도 씹은 듯 일그러졌다.
“아니야, 진짜야! 물어보면 되잖아! 쟤는 진짜 드래곤이란 말이야!”
“쟤라고? 허, 드래곤이 참 아저씨한테 쟤라는 소리 듣고 가만히 있겠다. 어디 저 눈앞에 있는 여자가 엘프의 숲의 지배자 G.지크욘이라고 해 보시지?”
“어? 아는구나! 그래, 저 드래곤 이름이 G.지크욘이야 근래에 사귄 친구야.”
제이나가 지크욘의 이름을 알고 있자 기쁜 나머지 한숨 돌리던 강찬의 뺨으로 제이나의 두 번째 손이 올라갔고, 또다시 경쾌한 따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짜악!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너 원래 이런 놈이었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어? 드래곤이 뉘 집 집 개 이름이야? 어? 마음대로 친구하고 마음대로 침대 위에 올려놓게!”
이젠 개 취급까지 받는 지크욘은 기분이 매우 나빴지만 자신을 신랄하게 비하하는 제이나의 말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는지 조용히 둘에 싸움을 지켜보았다.
“제발 믿어 줘. 내가 너한테 단 한 번이라도 거짓말한 적 있어? 왜 날 못 믿는 거야. 야! 지크욘 너도 말 좀 해 봐, 네가 드래곤이라고.”
강찬이 원망 어린 눈으로 지크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지크욘은 어깨 한 번 으쓱하더니 시선을 돌리고는 딴청을 부렸다.
“제발 장난치지 말고, 아악!”
제이나가 이번엔 자신을 놔주지 않는 강찬의 손가락을 물어 버렸다.
“아아…… 제이나 이러지 마! 야! 지크욘!”
상황이 이렇게 되니 지크욘이 어쩔 수 없이 둘 사이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인제 그만해라, 어린 엘프여.”
지크욘이 자신의 감춰 뒀던 드래곤의 기운을 개방하자 강렬히 뿜어져 나오는 드래곤의 존재감이 민감한 정신 체계를 지닌 엘프 제이나를 덮쳤다.
마나에 예민한 감각을 지닌 엘프인 제이나는 그 기운이 누구의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헉! 서, 설마!”
공포에 질린 제이나가 물었던 강찬의 손가락 뱉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제이나! 괜찮아?”
갑자기 힘없이 주저앉아 버리는 제이나 때문에 깜짝 놀란 강찬이 제이나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
제이나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아직 성년도 되지 못한 제이나에게 에이션트급 드래곤인 지크욘의 존재감은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드, 드, 드…….”
“제이나 대체 왜 그래?”
“드, 드, 드래곤!”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제이나가 기절해 버렸다.
너무도 격분한 상태에서 거대한 정신적인 충격까지 받아 그만 혼절해 버리고 만 것이다.
“제이나! 제이나! 정신 차려, 제이나!”
“잠시 기절한 거야. 침대에 눕혀.”
별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지크욘에게 강찬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너 설마 제이나에게 무슨 짓 한 거 아니지?”
“내가 하긴 뭘 해? 지가 날 알아보고 그냥 기절한 거지. 종종 있는 일이니까 별 신경 쓰지 마. 그냥 잠시 후면 깨어날 거야.”
고르게 숨 쉬는 제이나를 보니 지크욘 말대로 별일은 없을 듯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밀려오는 강찬이었다.
“오늘만큼 네가 원망스러운 날은 아마도 없을 거야.”
지크욘을 향해 강찬이 피눈물을 흘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