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36
퓨쳐나이트 36화
“여자 하나 때문에 친구인 날 그렇게 원망스럽게 보다니, 쯧쯔. 걱정하지 마. 원래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법이니까. 이건 친구가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 하는 말이다.”
연장자로서 위로해 줘도 강찬의 원망의 눈초리는 여전했다.
그런 강찬에게 지크욘은 또다시 어깨를 으쓱하고는 뒤돌아서 떠날 채비를 했다.
어차피 제이나란 아이만 깨어나면 둘의 오해는 알아서 자연히 해결될 것이니 지크욘은 더는 이곳에 남아 강찬의 원망을 사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그 여자애가 깨어나면 너희 둘의 오해는 자연히 풀릴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는 인제 그만 가 본다. 아 참, 그리고 이 말 하려고 기다린 건데, 나 앞으로 한 열흘 정도는 여기에 없을 거야. 동족들 회의가 있거든. 그럼 열흘 후에 보자.”
강찬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크욘은 공간 이동으로 자신의 레어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게 지크욘이 떠나가자 진짜로 둘만 남은 강찬은 제이나의 손을 꼭 붙잡고 옆을 지키며 제이나가 무사히 깨어나기만을 빌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눈을 뜬 제이나가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잠들어 있는 강찬을 보고는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미안해, 나 아저씨를 믿어 주지 못했어.”
제이나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자 제이나의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강찬이 벌떡 일어났다.
“왜 울어, 제이나?”
그러나 제이나는 강찬을 피해 벽으로 몸을 돌리고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찬은 그런 제이나의 어깨를 흔들며 조심히 그녀를 달랬다.
“아직도 화 안 풀린 거야?”
‘지크욘 이 거짓말쟁이, 일어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면서.’
“아니야, 나 화 다 풀렸어.”
비음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에 강찬은 더욱 가슴이 타는 듯했다.
“근데 왜 울어? 날 좀 봐 봐.”
강찬이 제이나의 어깨를 잡아끌자 눈물로 범벅된 제이나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우리 오해는 다 풀린 거 맞지? 그지?”
제이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울지 마.”
“미, 미안해.”
제이나가 몸을 일으켜 강찬을 껴안고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괜찮아 난 아무렇지 않아.”
“그래도 내가 아저씨 때렸잖아.”
“괜찮아, 그런 건 앞으로 갚으면 되잖아.”
갚으란 말을 들은 제이나가 잠깐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어 강찬을 보고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마치 자신도 똑같이 때려 달라는 듯 뺨을 강찬에게 내밀었다.
“왜 그래 갑자기?”
“나도 똑같이 때려 줘.”
그녀의 말을 들은 강찬은 그녀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자신이 갚으라고 했던 건 그만큼 자신을 더욱 사랑해 달라는 뜻이었는데 잘못 받아들인 제이나가 선뜻 볼때기를 내밀며 똑같이 맞아서 갚겠다 하니 강찬은 절로 웃음이 났던 것이다.
그리고 슬슬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으래? 좋아, 아까 날 얼마나 세게 쳤는지는 제이나가 잘 알지?”
제이나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다. 이 꽉 다물어.”
다시금 고개를 끄덕인 제이나가 진짜로 이를 꽉 물었다.
“하나, 두우울…….”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강찬이 최대한 뜸을 들이며 손바닥을 제이나의 볼에 뗐다 붙이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제이나도 바짝 긴장되는지 눈두덩이 움찔움찔했다.
“세에엣!”
강찬이 마지막 구호를 크게 외치자 제이나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나 정작 날아온 것은 강찬의 손바닥이 아니라 파렴치한 그의 입술이었다.
쪽!
잔뜩 긴장했던 제이나는 그의 입술이 자신의 볼에 닿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뭐야, 장난치지 말고 진짜로 때리란 말이야.”
“싫어.”
“왜? 내가 아저씨한테 잘못한 거잖아.”
“그렇다고 어떻게 사랑스러운 애인의 볼을 때려?”
“하지만…….”
강찬이 제이나가 더는 말하지 못하게 끌어안아 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그냥 내 옆에 있으면서 평생 사랑으로 갚아.”
“아, 아저씨.”
얼굴이 벌게진 제이나가 행복으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강찬의 입술에 입을 맞췄고, 강찬은 제이나를 끌어안은 채 천천히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러자 북풍 한파가 몰아쳤던 강찬의 방은 두 사람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열락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12. 준동
만월의 달이 밝게 빛나던 밤.
칠흑같이 어두운 피부를 가진 다크 엘프들이 숲속의 나무 위를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야로 A조를 이끌고 이쪽 방향을, 야티 넌 B조를 이끌고 저쪽 방향을, 야리 넌 날 따라와라. 목표는 적 기간테스의 위치와 병력 집결지를 파악하는 것. 모두 절대로 흔적을 남겨선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우리 블랙리온 가문의 명예를 걸고.”
“예, 야라 님.”
모든 인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야라라고 불린 다크 엘프도 고개를 끄덕이고 작게 외쳤다.
“흩어져!”
야라의 외침에 20명 정도의 다크 엘프들이 믿을 수 없이 민첩한 몸놀림으로 각자 맡은 방향을 향해 사라졌다.
* * *
“아침부터 무슨 걱정 있으십니까?”
“아! 엘라디온 님.”
“전쟁을 앞두시고 요즘 너무 수척해지셨습니다.”
“아, 네. 이런저런 고민들이 생겨서요. 아 참! 그건 그렇고, 요즘 뭔가 이상한 점 느껴지지 않으세요?”
“이상한 점이라면?”
불안한 눈으로 아침 안개가 잔뜩 낀 숲을 바라보며 아르테온이 입을 열었다.
“이상해요. 숲이 뭔가를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어요. 하지만 정령들도, 가디언들도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른대요. 무엇이 숲을 이토록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일까요?”
“흠, 그러고 보니 간밤에 보초를 서던 엘프 세 명이 실종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뭔가 이 숲에 침입한 것일까요?”
아르테온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해요. 숲의 나무들과 정령들이 그런 사실을 우리에게 전하지 않을 리 없잖아요? 그래서 더 불안하답니다.”
“혹시 다크 엘프의 짓이 아닐까요?”
아르테온이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크 엘프가 종종 숲으로 들어와 저희 엘프들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그들 때문에 숲이 두려움에 떨 이유는 없어요. 그들도 엘프이긴 마찬가지이니까요.”
“그럼 혹시 녹색 엘프들의 짓일까요?”
“그들은 지금 인간과 오크를 상대하기도 벅찹니다. 그런 상태에서 병력을 반으로 나눠 우리 엘프의 숲을 공격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란 것을 녹색 마녀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아르테온의 말에 엘라디온도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일 그랬다면 엘프의 숲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수많은 레인저에게서 첩보가 들어왔을 테지요. 그럼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불길해요, 엘라디온 님.”
“일단 모두에게 경계 태세에 들어가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잠시라도 눈 좀 붙이세요, 아르테온 님.”
“고마워요, 엘라디온 님.”
* * *
‘짝!’
어두운 동굴 속에서 따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일렀거늘.”
“죄송합니다, 야라 님.”
“다크 엘프 최고의 암살 가문인 우리 블랙리온의 명예를 더럽히다니, 네놈의 죗값은 이번 거사의 성사 여부에 따라 묻겠다. 물러가라!”
“감사합니다, 야라 님.”
따귀를 맞은 다크 엘프가 주춤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야라가 첩보 내용을 종합한 양피지를 들고 사악하게 웃음 지었다.
“눈치 빠른 저 사악한 엘프들이 경계 태세에 들어갔겠군. 큭크크, 하지만 상관없다. 그래 봐야 너희의 멸망은 정해진 역사이니까. 야티!”
“네, 야라 님!”
“소혼술로 알아낸 기간테스의 숫자와 병력의 위치를 서둘러 네미츠 님께 전달해라.”
“예, 알겠습니다.”
야티라는 다크 엘프가 형광 물질로 적은 양피지를 받아 들고선 더욱 어두운 동굴 안쪽을 향해 사라졌다.
“이 양피지가 네미츠 님께 전해지면 거사는 내일 밤이 될 것이다. 가문의 아이들에게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 전해라.”
“넵! 야라 님!”
나머지 다크 엘프들도 신속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혼자 남은 야라가 동굴 위에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태양의 빛을 올려다보며 눈부심에 미간을 모으고 말했다.
“우리에게서 빛을 빼앗은 사악한 엘프들이여, 이번에는 너희가 빛을 잃을 차례다.”
심연같이 어두운 동굴 속 길고 긴 병사들에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이 침공로를 준비해 온 듯 곳곳마다 걸림돌이 될 만한 석순과 벽들을 제거해 동굴은 넓게 확장되어 있었다.
“비켜라! 전령이다!”
다른 다크 엘프들을 거칠게 밀치며 달려온 야티가 사령부 앞에 당도했다.
“멈춰라!”
무시무시한 안광을 뿜어내는 친위대가 언월도를 뽑아 들고 그를 멈춰 세우자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야티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정찰조 블랙리온 가문의 전령이다. 네미츠 님께 전할 특급 정보다.”
사령부에 도착한 야티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네미츠를 찾았다.
“가문의 패를 보여라.”
야티가 가슴속에서 바실리스크의 뿔을 깎아 만든 가문의 상징을 꺼내 보이자 친위대가 언월도를 검집에 넣으며 길을 비켜 줬다.
“중앙으로 따라가다 보면 가장 큰 천막이 보일 것이다. 그곳이 네미츠 님의 거처이다.”
“고맙다.”
대충 인사치레한 야티가 서둘러 네미츠의 막사를 향해 달렸고, 그는 또다시 몇 번의 제지를 받고서야 겨우 네미츠에게 양피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받아 든 양피지를 읽은 네미츠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와하하하하하!”
옆자리에 있던 그린은 그런 그가 왜 웃는지 궁금해졌다.
“네미츠 님, 왜 갑자기 그리 웃으십니까?”
네미츠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양피지를 그린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얼떨결에 양피지를 받아 든 그린은 형광 물질로 작성한 양피지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고, 천천히 글을 읽어 내려가던 그린의 숨이 점점 가빠지더니 이내 양피지를 집어 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이런 사기꾼들! 감히 기껏 50기 만들어 놓고 수백 대라고 거짓 정보를 흘려 나를 농락하다니!”
“진정하시죠, 그린 님. 차라리 잘된 것 아닙니까? 저희는 기간테스 수백 대와 싸울 전력을 가지고 왔는데 적은 기껏해야 50기뿐이라니, 이거 더욱 손쉬운 상대가 되겠군요.”
“거짓 정보로 나를 기만한 죄는 목숨으로 받겠다, 이 더러운 놈들!”
그린의 눈동자가 분노에 물들며 이를 갈자 네미츠가 슬그머니 일어나 옆에 서 있던 친위대에게 전했다.
“각 가문의 주인들과 참모들을 전원 회의실로 집합시켜라.”
“예! 사령관님!”
친위대가 가능한 한 빠르게 뛰쳐나가자 네미츠가 그린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엘프의 숲에 소수 단위로 흩어져 살던 엘프들이 아르테온의 밑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더 불어나기 전에 치는 것이 좋겠지요?”
“그래야겠지요.”
“그럼 더 기다릴 것 없이 내일 밤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저녁에 뵙지요.”
고개 숙여 인사를 나눈 두 지도자는 내일 저녁에 있을 기습 침공 작전을 위해 서로의 갈 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