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37
퓨쳐나이트 37화
* * *
“바람의 엘프족, 아르테온 님과 함께하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환영합니다, 형제여. 이쪽으로 오시게.”
“불의 엘프족 전사, 아르테온 님과 함께 싸우기 위해 왔습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쪽에 음식이 준비해 뒀습니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물의 엘프족, 아르테온 님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많은 형제가 도와주러 오셨군요. 자, 이쪽으로.”
한산했던 엘프 마을이 수많은 엘프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들은 드넓은 엘프의 숲에 흩어져 살던 엘프족들로, 이번 전쟁을 위해 아르테온의 깃발 아래로 하나둘 모여든 타 부족 전사들이었다.
끝도 없이 모여드는 엘프 부족들로 마을은 점점 포화 상태가 되어 갔다.
“엘라디온 님, 지금까지 모인 병력이 어떻게 되죠?”
“지금까지 물의 엘프족이 15,000명으로 가장 많고 바람의 엘프족이 5,000명, 불의 엘프족이 3,000명으로 대략 23,000명 정도의 전사들이 모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나무 엘프족 30,000명을 더하면 총 53,000의 병력이 모였군요.”
“예, 엘프 역사상에 유례가 없을 대군입니다.”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적은 현재 백만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엘프들은 하나같이 최고의 전사들입니다. 그런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 따위는 겁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합지졸이라면 저도 원이 없겠습니다.”
아르테온은 그들이 오합지졸일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합지졸의 군대를 상대로 인간, 오크 연합이 고전할 리 없을 테니 말이다.
* * *
강찬은 폭포수를 맞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어쩌다 자신에게 이렇게나 비밀이 많이 생긴 걸까? 하고 말이다.
이 별에 온 목적도 비밀이었고, 엘라디온의 제자인 것도 비밀이었고, 제이나와 연인이 된 것도 비밀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남에게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극비 사항들뿐이었다.
비밀스러운 남자, 강찬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때 멀리서 제이나가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허니!”
“어, 왔어?”
“나 뽀뽀.”
“아, 안 돼.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그래서 안 해 줄 거야?”
제이나가 양손으로 강찬의 허리를 잡고 강찬을 귀엽게 노려보자 강찬은 좌우를 빠르게 살피고 제이나의 입술에 뽀뽀했다.
그러자 제이나가 강찬의 엉덩이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아이고, 잘했어요. 우리 아기 예뻐요.”
“하지 마! 나 화낼 거야.”
“에헤헤헤!”
이제 강찬에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제이나. 하지만 그녀와의 사랑 또한 철저히 비밀이어야만 했다.
다른 종족과 사랑에 빠진 엘프는 마을에서 추방되기 때문이다.
그런 둘에게 있어 마음껏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는 오직 이 폭포와 추락한 레드 마스호뿐이었다.
그 이외의 장소에서는 예전과 같이 친구처럼 행동하며 다른 엘프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하나 그러면 그럴수록 둘의 사랑은 더욱 간절하고 애틋해져만 갔다.
“이히히, 이리와. 내가 도시락 싸 왔어.”
“허엇! 도시락? 설마 제이나가 직접 싼 건 아니겠지?”
“맞아. 내가 어제 엄마한테 배워서 혼자 만들어 봤어, 왜? 내가 만든 건 먹기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제레니스 님 음식이 그리워서 그랬지…….”
“우리 엄마가 음식 하난 진짜로 잘하긴 하시지. 하지만! 그건 다음에 먹고 오늘은 내 것을 먹어야 해. 자, 이리와.”
“…….”
제이나가 강찬의 손을 붙잡고 이끌자 강찬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발길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제이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제이나가 만든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계속 굶으면서 폭포를 맞는 게 더 낮다고 생각되는 강찬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먹어야지…….
“배불러, 더는 못 먹겠어.”
“맛있었어?”
“으응…….”
“다음엔 더 맛있는 거 해 줄게.”
“그래…….”
지옥에서 먹는 점심 맛이 이런 것일까?
결코 맛있다고 할 수 없는 도시락이었다.
온갖 맛있는 시늉을 다 하며 겨우겨우 목구멍에 때려 박은 강찬은 마치 전쟁터에 갔다 온 패잔병처럼 지친 몰골로 나무에 기대선 남은 바나나 튀김을 들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기본적으로 바나나만 튀겨도 이런 맛은 안 나올 텐데, 어떻게 이런 맛을 낼까?’
강찬은 바나나 튀김 샘플을 가져다 원심 분리기로 돌려서 성분 검사를 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겨났다.
도시락 그릇을 씻고 돌아온 제이나가 자신이 만든 바나나 튀김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강찬을 향해 한마디 했다.
“왜? 아쉬워? 더 만들어다 줄까?”
“아니! 난 이거면 돼!”
강찬이 허겁지겁 바나나 튀김을 입속에 때려 박았다.
튀김옷 속으로 느껴지는 바나나의 맛은 씹으면 씹을수록 아무 맛도 없는 것이 그저 흐물흐물하기만 했고, 그 맛은 꼭 타인의 가래를 먹는 듯한 수치심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강찬이 바나나 튀김을 억지로 삼키고 있을 때 제이나가 향긋한 아로마 향의 차를 끓여 왔다.
“맛있어도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하겠다. 이거 마셔.”
“…….”
찻잔을 받아 든 강찬과 그 옆에 앉은 제이나는 그렇게 시원한 나무 그늘에 나란히 앉아 아로마 차의 향을 즐기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제이나가 뭔가를 말하려다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자 강찬이 되물었다.
“무슨 걱정 있어?”
“어? 아니, 그게 아니고.”
“말해 봐, 우리 서로 하고 싶은 말 숨기지 않기로 했잖아.”
잠시 뜸을 들인 제이나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게, 자기 전쟁터 나가는 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이제 한 달 후면 엘프족도 전쟁터로 나가야 했고, 이번 전쟁에는 강찬도 함께 가기로 약조되어 있었다. 그러니 사랑하는 강찬을 군대로 떠나보내야 하는 제이나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 듯 아프겠는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말이다.
거기다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를 장담 못할 정도로 치열한 전쟁이 될 것이 분명했다. 왜냐면 이번 전쟁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로 인간과 엘프, 그리고 드워프와 오크 등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든 종족이 함께 연합해야 할 만큼 상대는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불구가 돼서 돌아온다 하더라도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할지도 몰랐다.
이처럼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어 버린 전쟁 때문에 엘프의 숲에 흩어져 지내던 형제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고, 마을은 전쟁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발동된 긴급 경계 태세로 인해 마을 분위기는 더욱더 어수선했다.
“미안해, 제이나. 그건 마스터와 나와의 약속이고 더 나아가 너와 나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야. 그들의 목적은 대륙의 모든 종족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라 들었어. 그렇다면 어차피 그들을 막아 내지 못하면 너와 나는 더는 이 숲에서 사랑하며 살 수 없을 거야.”
그를 잡으면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리하라 하지 않는 가슴 때문에 제이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제발 웃으며 보내 줘, 제이나.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약속할게.”
“꼭, 살아 돌아와야 해.”
“걱정하지 마! 하늘에서 떨어져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라고.”
강찬은 일부러 과장된 포즈를 취하며 제이나의 걱정을 덜어 주려고 노력했다.
“자기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그러니깐 나 죽이고 싶지 않으면 죽지 마! 알았지?”
“널 두고 죽는 일은 없을 거야. 제이나, 사랑해.”
“나도…….”
* * *
“블랙 샌티패드들은 준비되었나?”
“예, 네미츠 님. 지금 전투에 앞서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지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크 엘프들의 주된 주식인 황소만 한 덩치의 두더지들이 거대한 구덩이 앞으로 끌려가자 두려운 듯 발버둥 쳤다.
그러나 수십 명의 다크 엘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두더지들은 차례대로 구덩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상당한 낙차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진 두더지 중엔 즉사한 녀석도 있었고, 다리가 부러져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내는 녀석도 있었다.
심연의 어둠 속에서 노란 눈동자들이 번뜩이더니 듣기에도 섬뜩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부상당한 두더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촤라라라라라락…….
수천 개의 다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소리.
그러자 블랙 샌티패드의 냄새를 맡은, 살아남은 두더지들이 공포에 질린 채 다리가 부러진 고통도 잊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순식간에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노란 눈동자들이 도망치는 두더지들을 덮쳤다.
내리꽂힌 거대한 아래턱은 단 일격에 황소만 한 두더지의 척추를 부러뜨렸고, 내장을 터트렸다.
“꿰애애애애애액!”
사방에서 수십 마리의 두더지 비명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으드득, 으드득.
듣기에도 섬뜩한, 뼈째로 고기 씹는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머리만 해도 황소 두더지보다 큰 블랙 샌티패드가 두더지 한 마리를 머리까지 몽땅 먹어 치우고는 또 다른 두더지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블랙 샌티패드들이 식사를 마치는 대로 지상으로 올라간다. 다들 달빛에 눈이 멀지 않도록 작은 불빛으로 빛에 적응하라고 일러두게. 그리고 블랙 샌티패드에게 공격당하지 않으려면 새끼 샌티패드의 분비물로 만든 조끼 간수 잘하라고 다시 한번 전달해라.”
“네! 사령관님.”
“저기, 근데 사령관님.”
“무슨 일인가?”
“혹시 블랙 샌티패드들도 빛에 적응시켜야 합니까?”
“아니, 필요 없다. 그것들의 눈은 거의 퇴화해서 온도의 차이 정도밖에 구분하지 못하니까.”
“알겠습니다.”
각 보좌관이 자신들의 임무를 가지고 흩어지자 뒤에서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린이 네미츠에게 다가왔다.
“드디어 시작되는군요, 네미츠 님.”
“서둘러 준비해서 많이 걱정이었는데 적에 기간테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이번 공격은 매우 수월할 듯합니다.”
“부탁이 있어요.”
갑자기 자신에게 부탁이 있다고 말하는 그린에게 네미츠가 자신의 이도류를 차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부탁이십니까?”
“엘프족의 수장인 아르테온의 목은 제가 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녀의 말에 잠시 당혹스런 표정을 짓던 네미츠가 다시 이도류를 착용하며 말했다.
“왜 그녀의 목을 원하시죠?”
“전 그녀에게 꼭 받을 것이 있거든요.”
“받을 것이라, 알겠습니다. 비록 짜 놓은 작전이 있긴 하지만 그린 님께서 그토록 그녀를 원하신다면 넘겨 드려야지요. 그럼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다만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부디 방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여인은 누가 뭐래도 드래곤을 제외한 현 대륙 최고의 마법사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