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38
퓨쳐나이트 38화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설령 그녀가 제외된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드래곤이라도 상관없다니 무척 광오한 말이군요. 좋습니다. 그럼 믿고 그녀를 맡기지요. 대신 엘라디온은 제가 맡겠습니다.”
엘프족 네 명의 수호신 중의 하나인 엘프의 검 엘라디온, 그 또한 이번 침공 작전의 요주 인물 중 하나였다.
“엘프족을 대표하는 무신 엘라디온이라면 네미츠 님의 상대로 적격이겠군요, 오호호호.”
“나머지 4대 수호신인 소환술의 라세온은 여기 암흑 소환술의 마스터인 싸일런이, 그리고 엘프의 활인 레이시언은 저희 다크 엘프 부족 최고의 암살자 집단 블랙리온 가문의 주인인 야라가 맡을 겁니다.”
네미츠가 자신의 수하들을 소개하자 그들은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정령술의 아마리는 원래 그린 님께 부탁하려고 했는데 부득이 아르테온의 목을 원하시니 저희 다크 엘프 위자드인 프로매에게 맡기기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네미츠 님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자, 그럼 편재는 이렇게 마무리되었으니 녹색 엘프 부족 분들은 엘프들의 본진과 잔당 처리를 잘 맡아 주시길 바랍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아이들은 모두 전쟁으로 잔뼈가 굵은 아이들이랍니다.”
고개를 끄덕인 네미츠가 회의장 모두를 한 번씩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은 아르칸도르 대륙의 역사를 새로이 쓰는 날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빛을 잃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극한의 지역에서 얼어 죽는 일도 없을 것이고요.”
네미츠가 극한의 지역을 거론하자 그린이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와와와!”
우레와 같은 함성이 온 동굴 안을 메아리 쳤다.
“자, 오늘의 승리를 기원합시다.”
네미츠가 손을 뻗자 그의 손등 위로 모두가 손을 겹쳤고,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승리를 기원했다.
“자, 다들 각자의 위치로!”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각자 맡은 자리로 이동했다.
달이 정확히 밤하늘 정중앙에 오르면 그들 모두가 작전을 개시할 것이다.
그렇게 대다수의 엘프는 자신들에게 닥쳐올 재앙에 대해서는 새까맣게 모른 채 곤히 잠들어 있었고, 오늘따라 유난히도 붉은 달은 다가올 피의 축제를 암시하는 듯했다.
13. 악몽의 밤
붉은 달이 밤하늘의 정중앙에 오르자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군데만이 아니라 약속이라도 한 듯 사방팔방에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경계 태세 강화로 평소보다 부쩍 늘어난 경계병들이었지만 영문도 모를 대지의 진동에 그들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우왕좌왕했다.
“뭐, 뭐야? 적인가?”
“몰라!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일단 종을 울려!”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종을 울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부터 엘프 마을에 닥쳐올 재앙에 비하면 이미 한참 늦고도 늦은 조치일 뿐이었다.
들썩이던 대지가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거대한 그림자들이 대지를 뚫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셀 수 없이 수많은 다리가 꿈틀거리는, 소름 끼치는 거대한 실루엣.
그런 그것들이 서서히 땅 위로 솟아오르며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챠르르르르르르륵…….
그 끔찍한 모습을 바라보는 경비병들은 비명조차 지를 생각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뭔가를 하긴 해야 했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눈앞의 거대한 괴수가 자신을 발견할까 봐 두려워서 그만 제자리에서 얼어 버린 것이다.
달빛에 비친, 검은 광택이 나는 거대한 괴물의 껍질은 흡사 단단한 갑옷과 같아 보였고, 꿈틀대는 다리들은 날이 선 칼날과 같이 매우 날카로워 보였다.
그러한 수십 마리의 지네들이 사방으로 머리를 조아리면서 소름 끼치는 더듬이를 열심히 움직여 먹잇감을 찾았다.
그리고 이내 먹음직스러운 먹잇감들의 온기를 발견한 지네들이 포효하며 먹잇감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종소리에 놀라 병장기를 챙겨 들고 나무에서 뛰쳐나온 엘프들이 본 것은 수십 마리의 거대한 지네들에게 유린당하는 경비병들이었다.
땅속에서는 계속해서 거대한 지네들이 꿈틀대며 솟아올라 왔고, 그것들은 경비병은 물론이고 나무속에 잠들어 있는 엘프들에게까지 가차 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이어 지네들이 뚫고 올라온 구멍으로부터 우렁찬 함성과 함께 녹색 엘프들이 물결을 만들며 식물의 줄기처럼 땅속에서 뻗어 나왔다.
그런 녹색의 줄기가 뻗는 곳곳마다 붉은 피로 만든 꽃들이 만발했다.
“기습이다! 적의 기습이다!”
“기습입니다! 적들이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어디서 기습을 해 왔단 말인가?”
밤늦게까지 전쟁을 위한 작전 회의에 여념이 없던 엘프족 4대 수호신들은 갑자기 날아든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땅속입니다. 거대한 지네들이 땅속으로부터 뚫고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수많은 녹색 엘프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숫자가 셀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납니다.”
“따, 땅속이라니!”
예기치 못한 곳에서의 습격에 아르테온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러나 이미 적의 공격은 시작되었고, 잠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하나라도 더 많은 엘프를 살리려면 말이다.
“라세온 님, 서둘러 숲의 가디언들을 깨워 주세요.”
“알겠습니다.”
“레이시언 님.”
“네.”
“숲 외곽에 주둔 중인 레인저들을 모두 모아서 가디언의 배후를 지켜 주세요.”
“알겠습니다.”
“엘라디온 님.”
“예, 아르테온 님.”
“엘라디온 님은 곧바로 엘프 나이트들을 데리고 엘븐 나이트에 탑승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마리 님과 전 마법사들과 정령사들을 이끌고 땅속에서 튀어나온 적들을 막겠습니다. 최대한 신속히 움직여 주세요.”
아르테온과 아마리가 가장 위험한 곳에서 적을 지연시키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다른 이들의 지원이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그들은 몰살당할 것이 분명했다.
“다들 정령과 숲의 가호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르테온 님께도 정령과 숲의 가호가 있기를.”
* * *
“고, 공주님! 큰일입니다.”
“아함, 시끄러워.”
“공주님! 제발 일어나세요!”
사방에서 폭음과 비명이 울려 퍼지는 이 와중에도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퍼질러 자는 것을 보면 에델린의 신경은 보통 굵은 게 아닌 듯했다.
“공주님! 이렇게 주무시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전쟁이 났어요, 전쟁이!”
“아이씨! 여기서 전쟁이 왜 나? 너 나한테 거짓말 치다가 걸리면 뒈진다.”
잠이 덜 깨 짜증이 난 에델린은 평소에는 고상한 척이란 고상한 척은 혼자서 다 떨었지만 잠결에 열린 그녀의 입에선 그 어떠한 여과도 없이 그녀의 말투 그대로가 여지없이 튀어나왔다.
“밖에 소리 안 들리세요? 녹색 엘프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왔단 말입니다! 귀족들은 벌써 공주님 버리고 다들 도망갔어요!”
병장기 소리와 여인들의 비명에 정신이 번쩍 들은 에델린이 벌떡 일어났다.
“뭐시라? 귀족들이 모두 도망갔다고?”
“예에, 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쳤어요!”
“이런 멍청한 녀석! 그런데 왜 이제야 날 깨웠느냐!”
사실 자이젠이 그녀를 깨우기 시작한 지는 벌써 15분이 넘었다.
꼴에 또 옥체랍시고 손도 대지 못하는 마당에 깨울 수단이라고는 귀에다 대고 소리 지르는 수밖에 없으니, 어지간히 신경이 굵은 그녀를 깨우기란 참으로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귀족들은 저마다 말을 몰고 도망쳐 버렸고, 공주의 마차를 끌어야 할 팔두 마차의 말들도 모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옷을 갈아입고 필요한 것을 챙겨야 하니 너는 잠시 나가 있어라.”
“나 참! 그렇게 뜸 들일 시간 없단 말입니다. 일단 잠옷 차림으로 따라오세요. 서둘러요, 빨리!”
“자, 잠시만! 잠옷 차림으로 어딜 간단 말이냐? 이거 놔라! 놓지 못할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에델린을 짐짝처럼 질질 끌고 자이젠은 서둘러 숲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외교 사절단이 머물던 주거지는 적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둘은 그다지 별 어려움 없이 깊은 숲속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 * *
“태곳적부터 숲을 지켜 온 충직한 가디언들이여, 나 나무 엘프족 21대 나무 족장 라세온의 이름으로 부탁하오니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저 사악한 적들로부터 우리의 소중한 숲을 지켜 주소서.”
라세온이 엘프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신전 안에 보관 중인 은은하게 빛나는 뿔피리를 들고선 주문을 외우며 힘껏 뿔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낮은 저음의 신성한 울림이 온 숲에 울려 퍼졌고, 잠시 후 숲 여기저기에서 작은 미진들과 함께 나무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숲의 가디언인 엔트들이 그 오랜 수면에서 깨어난 것이다.
“되었다! 이제 마을을 지킬 수 있어.”
그렇게 깨어난 엔트의 숫자는 정말로 엄청났지만 움직임이 매우 느려서 위기가 닥친 엘프의 마을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릴 듯했다.
그래도 한시름 놓은 라세온은 지나가는 엔트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는 든든한 응원군들과 함께 아르테온을 지원하기 위해 마을로 출발했다.
비슷한 시각, 엄청난 속력으로 나무 위를 달려 숲 외곽을 지키고 있는 레인저들 숙영지에 도착한 레이시언은 그들에게 마을의 위험을 알렸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마을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연락을 받은 레인저들이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 이젠 거의 2만 명에 육박했다.
“우리의 임무는 라세온 님과 엔트들을 뒤에서 엄호하는 것이다. 침입자는 단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네! 레이시언 님!”
레이시언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 2만 명의, 고도로 훈련된 레인저들과 함께 나무 위를 최고 속도로 달려 마을로 향했다.
그들이 그렇게 마을을 향해 달려오고 있을 때 엘라디온과 엘프 나이트들은 엘븐 나이트에 탑승해 다른 부족 엘프들과 함께 녹색 엘프군에 맞서 피 튀기는 혈전을 버리고 있었다.
물경 수십만은 되어 보이는 녹색 엘프 대군을 맞선 불의 엘프들은 화염계 정령을 이용한 접근전을 펼쳤다.
엘리멘탈 파이어로 붉게 달아오른 레이피어에 찔린 녹색 엘프에게서 끔찍한 비명 소리와 함께 살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물의 엘프들은 치유 주문을 외치며 그런 그들의 치유를 담당했다.
다른 나무 엘프들은 나무뿌리를 소환해 녹색 엘프들의 다리를 묶었고, 바람의 엘프들이 멀리서 활을 쏴 그런 그들을 몰살시켰다.
그러나 그렇게 환상의 호흡을 맞추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녹색 엘프의 숫자는 그들을 압도할 정도로 많았다.
게다가 그들의 실력 또한 엘프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렇게 엘프들은 점점 포위되어 괴멸되어 갔다.
엘프들의 히든카드였던 엘븐 나이트도 이미 반수 이상이 파괴되어 고철이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빌어먹게 강한, 거대한 지네들에 의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