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39
퓨쳐나이트 39화
거대 지네에게 팔다리를 잃고 쓰러진 엘븐 나이트에게 어김없이 트롤만큼이나 거대한 녹색 엘프들이 달려들었다.
그런 그들의 거침없는 도끼질에 쓰러진 엘븐 나이트는 차츰차츰 형체를 잃어 갔다.
“안 돼!”
한 엘븐 나이트가 자신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 쓰러진 동료에게로 달려가 열심히 도끼질을 해 대던 트롤 엘프들을 베었다.
하지만 수십 마리나 되는 트롤 엘프들에게 포위되어 버린 엘븐 나이트는 되려 그들의 거대한 도끼질 앞에 또 다른 희생양이 되었다.
앞으로 벌어질 종족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줄 거라 믿었던, 자신들의 생명과도 같은 엘븐 나이트들이 저리도 처참히 부서져 가는 모습에 엘프들의 눈이 절망의 빛으로 물들었다.
어두운 밤중에 거대한 기간테스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오러 소드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중 엘라디온의 오러 블레이드는 다른 이들의 오러 소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압감을 자아냈다.
그런 그의 앞을 세 마리의 거대한 지네들이 가로막았다.
하지만 엘라디온의 오러 블레이드는 보이지도 않을 무서운 속도로 대기를 가르며 거대 지네들의 머리를 갈랐다.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 앞에선 그 강력한 거대 지네 역시 한낱 미물일 뿐이었다.
그렇게 엘라디온 앞을 가로막은 거대 지네들은 머리를 잃고 하나둘씩 무너져 내렸다.
수백 명의 엘프 마법사와 정령술사들이 적들을 향해 마법 공격을 가했다.
수많은 파이어 볼과 익스플로젼 마법이 밤하늘을 빛내며 대지 위로 작열했고, 간간이 전격계 마법들이 범위를 이루며 수십 명의 녹색 엘프들을 한 번에 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죽이는 숫자보다 땅 위에 뚫려 있는, 40개에 육박하는 침공로로 줄지어 올라오는 녹색 엘프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기에 그들의 숫자는 별로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지네를 상대하고 있는 마법사들도 성과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엘프 마을 마법사 중 가장 높은 실력의 마법사들이 거대한 지네들을 상대하고 있긴 했지만 지네의 껍질은 가공할 만큼 단단했기에 어지간한 마법으로는 작은 상처조차 낼 수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레비테이션으로 열심히 지네 주위를 선회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가장 강력한 공격 마법을 캐스팅해 계속해서 거대한 지네에게 퍼부었다.
그러자 몸길이가 거의 40미터에 육박하는 이 거대한 지네는 자꾸만 자신을 귀찮게 하는 날파리들을 향해 강력한 산성 체액을 뿜어냈고, 산성 체액을 뒤집어쓴 수십 명의 엘프 마법사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녹아내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르테온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장기인 7써클 최고의 화염계 대인 마법인 버스트 플레어를 한 번에 세 개를 만들어 지네의 머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물론 그녀는 버스트 플레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강력한 궁극의 대인 마법 헬파이어를 시전할 수 있었지만 워낙에 강력한 위력만큼이나 시전하는 데도 오래 걸렸고, 마나의 소모량도 한두 발이면 까무러칠 정도로 극심했기에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 세상에서 드래곤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헬파이어를 사용할 줄 아는 그녀였지만 역시 헬파이어는 엘프나 인간 따위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헬파이어 대신에 보다 낮은 써클의 버스트 플레어를 한 번에 여러 발씩 만들어 한곳에 집중하는 방법으로 파괴력을 높였다.
물론 버스트 플레어만 해도 어디 가서 일국의 궁중 마법사 정도는 무난히 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경지였다.
그런 것을 무려 한 번에 세 개씩 만들어 내는 아르테온의 신위를 보면 그녀가 괜히 9써클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번에 세 개의 버스트 플레어를 얼굴에 얻어맞은 블랙 샌티패드가 비명도 채 지르지도 못하고 거대한 육체를 대지에 뉘었다.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말미암아 머리통이 송두리째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쿠우우우우웅!
박살 난 블랙 샌티패드의 머리에서 산성 체액이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 버린 괴수를 바라보는 아르테온의 얼굴에는 막막함이 가득했다.
이제 겨우 두 마리를 막았을 뿐인데 엘프 마을 안에서 활개 치고 돌아다니는 거대 지네는 대충 봐도 물경 100마리는 되어 보였다.
게다가 그 뒤로 십만에 달하는 녹색 엘프들이 죄 없는 엘프들을 상대로 살육을 자행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엘프들은 수십 명씩 뭉쳐 녹색 엘프들에게 힘겹게 대항하고 있지만 그런 그들마저도 차례차례 전멸되어 갔다.
이제 그녀가 믿는 것은 숲속의 가디언들을 몰고 올 라세온과 레이시언의 레인저들뿐이었다.
만일 그들이 제때 도착하지 못한다면 엘프의 숲과 엘프의 마을은 아르칸도르 대륙의 지도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여러분…… 제발, 제발 빨리 와 주세요.’
속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린 아르테온이 또다시 마력을 끌어올려 여러 발의 버스트 플레어를 만들어 내었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기습으로 부상당한 수천 명의 엘프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엘프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힐링을 해 줄 마나는 없었다.
몰려드는 적들을 저지하기 위해 마법사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마나를 깡그리 공격에만 퍼부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러분! 우리는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저들을 막아야만 합니다!”
“와아아아아!”
아르테온의 비장한 외침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다시 한번 마력을 쥐어짜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천 명의 엘프 마법사들의 다양한 공격 마법들이 적들을 향해 날아갔고, 대지의 모양새를 바꿔 버릴 정도의 엄청난 화력 앞에 놀란 녹색 엘프들은 사정 범위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후퇴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엘프족의 마법사들 수준은 인간들 마법사들보다 훨씬 뛰어나군요. 저런 높은 수준의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들을 수천 명씩이나 데리고 있다니……. 이대로는 저희 아이들의 피해가 너무 커지는데, 다크 엘프분들은 언제부터 움직이실 참이십니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곧 엘프족의 진정한 힘이 들이닥칠 겁니다. 저희 다크 엘프의 정예 부대는 그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엘프들의 진정한 힘.
그 힘을 잘 아는 그린은 더는 뭐라 항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죽어 가는 자신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그때였다.
숲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면서 뭔가가 엘프의 마을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왔군요…….”
숲속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엘프들과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숲을 지켜 온 숲의 가디언, 엔트들이었다.
숲이 통째로 움직이는 듯 천천히 다가오는 엔트의 덩치는 블랙 샌티패드 못지않았지만 그 수에 있어선 비교가 되지 않았다.
거의 천 기에 달하는 엔트들이 떼를 지어 몰려온 것이었다.
정말 끝도 없이 몰려드는 엔트들의 모습은 장엄한 장관을 이뤘고, 그런 장관을 바라보는 아르테온의 눈에서 희망의 눈물이 흘렀다.
“아르테온 님! 약속대로 숲의 가디언들을 깨워서 데려왔습니다.”
“라세온 님, 정말 수고하셨어요.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겠군요. 레이시언 님은 어디 계신가요?”
“레이시언 님은 지금 숲속에서 적들을 노리고 계실 겁니다.”
“좋습니다. 이제부터 반격 시작입니다!”
“침략자들에게 엘프의 숲의 매운맛을 보여줍시다!”
“와아아아아아!”
절망으로 물들어 가던 엘프들의 눈이 다시 희망으로 번지며 힘찬 함성 소리와 함께 엔트들을 앞세운 엘프들이 서서히 녹색 엘프들과 거대 지네들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쿠웅!
두 마리의 거대 지네를 대지에 눕힌 엘라디온이 자신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검은 기간테스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
―아니! 저것은 헬레닉! 서, 설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낯익은 기간테스는 엘라디온도 잘 아는 자의 기간테스였다.
―오랜만이군, 엘라디온.
묵직하게 증폭되었지만 익숙한 말투, 이제는 잊은 줄만 알았던 그 목소리.
그것은 엘라디온의 오랜 친구의 목소리였다.
―네미츠, 자넨가?
네미츠란 말에 주변에서 전투 중이던 엘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검사로서 대륙을 평정한 유일한 엘프였고, 스스로 다크 엘프가 되어 종족을 배신한 이단아였다.
엘프들 사이에선 그의 이름은 꺼내는 것조차 금기였다.
그가 창안한 검술 역시 그대로 사장되어 버렸다.
그렇게 된 지도 벌써 500년.
그 오랜 세월을 뒤로한 채 지금 그들은 마주 보고 있었다.
숨 막히는 적막 속에 검은 기간테스의 네미츠와 엘븐 나이트를 탄 엘라디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적막을 깨고 검정 기간테스가 검은 망토 사이로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 헬레닉을 보며 엘라디온은 더는 그가 네미츠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과거 단검 두 자루로 드넓은 대륙을 평정한 그가 아니던가?
―녹색 엘프들과 함께 왔다는 것은 그들과 손을 잡았다는 건가?
―이유는 묻지 말게나.
―자네가 지금 검을 뽑아 들었다는 것은 나를 공격하겠다는 거겠지?
자신의 단검을 바라보며 네미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래전 친구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고통 없이 보내 주는 것밖엔 없다네.
네미츠의 헬레닉이 2미터의 이르는 거대한 단검을 현란하게 휘두르며 다잡았다.
―아무리 자네가 고대의 거인의 주인이라 해도 우리 10기의 엘븐 나이트를 당해 낼 순 없네.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그들의 놀이 상대는 여기 있으니까.
네미츠가 손을 치켜들자 숲속의 나무들을 헤치고 또 다른 검은 기간테스 다섯 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보아하니 인간들이 만든 기간테스인 듯싶었다.
―거기 있는 애송이들한테는 여기 아크쉐도우면 아마 좀 벅차지 않을까 싶네만?
―애송이!
발끈한 엘프 나이트들이 거대한 검을 치켜들었다.
―침착해라! 그 정도의 도발에 쉽게 넘어가면 어찌 엘프 나이트라 하겠느냐!
―죄, 죄송합니다. 마스터.
―네미츠, 나는 죄 없는 제자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 너와 나 단둘이서 일대일로 마무리 짓는 게 어떻겠나?
―아하하하하!
일대일이란 말에 네미츠가 미친 듯 광소했다.
―나의 오랜 친구여, 대체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 건가? 내가 지금 지나간 과거의 원한 때문에 자네 앞에 나섰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그딴 사소한 일 따윈 이미 잊은 지 오래네.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오직 하나, 우리 다크 엘프와 녹색 엘프의 미래에 위협이 되는 엘프들을 모두 죽이고 기간테스를 파괴하기 위함일세. 그런데 그런 나약한 소리 따위를 하다니, 역시 자네는 아직도 멀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