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4
퓨쳐나이트 4화
“허억! 헉! 헉!”
기나긴 악몽에서 벗어난 그가 눈 떠 보니 낯익은 천정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니 이곳은 그는 그가 처음 깨어났던 바로 그 방이었다.
“헉! 헉! 헉!”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음에 그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실감했다.
‘더러운 악몽이군, 젠장.’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그의 눈빛은 예전에 무정한 눈빛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날 죽이지는 않았군. 그래 봐야 나한테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는 항상 자신이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살아서 눈을 뜨게 되니 그의 마음은 의지와는 다르게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강찬이 몸을 움직여 보려 하자 극심한 고통만이 느껴질 뿐, 그의 육체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질 않았다.
‘내가 전투 모드를 그렇게까지 써 본 게 얼마 만이지?’
그가 다시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 때, 그의 옆에서 조용히 그를 지켜보던 엘프 소녀가 입을 열었다.
“또 자요?”
갑자기 들려온 여자 목소리에 강찬은 흠칫하며 고개를 반대로 돌려보니 왠지 낯익은 얼굴의 귀여운 여자아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넌 누구지?”
누구냐는 그의 말에 엘프 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누구우? 허, 참나!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선 기억도 안 나신다고요? 기가 막혀서…….”
엘프 소녀가 이방인에게 신경질적으로 과일 바구니를 내던졌다.
“이거나 쳐드세요!”
“이게 뭐지?”
“보면 몰라요? 과일이잖아요!”
신경질적으로 과일을 내던진 소녀의 눈두덩이 아주 살짝 멍들어 있었다.
그는 그제야 그 소녀가 누군지 기억이 났다.
자신에 뒤를 닦아 주다가 자신에 발길질에 얻어맞은 엘프 소녀였다.
자신을 챙겨 주던 어린 소녀를 거침없이 걷어찼다는 사실에 강찬은 소녀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겐 소녀를 걱정해 줄 여유 따윈 없었다.
지금 그는 자신에게 닥친 현 상황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일 거라면 옛날에 죽였을 테지. 이렇게 어린애 하나 달랑 붙여 다시 침대 위에 눕혀 둔 걸 보면 이들은 아직 나의 정체를 모르는 건가?’
그는 일단 자신이 침착하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지?”
“인간들은 원래 그렇게 잠이 많나요? 아니면 당신이 잠이 많은 건가요? 어떻게 사람이 1년이나 잔 것도 모자라 또 3일을 밤낮으로 자요?”
“내가 1년이나 잤다고?”
“네, 정확히 이곳으로 오게 된 지 1년 만에 깨어났죠.”
“…….”
강찬의 눈빛이 강한 불신감으로 흔들렸다.
그가 속한 특수 부대 레드 마스는 자신을 1년 동안이나 이런 외진 산골짜기 마을에서 누워 지내게 할 만큼 한가한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잠든 1년 동안 동료와 전함은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내가 어떻게 이곳으로 왔지?”
“그야 업혀 왔죠.”
소녀의 비꼬는 말투에 강찬의 눈에 순간 살기가 비쳤다.
‘참자, 참아야 한다. 이곳은 적진이다.’
마음을 가다듬은 그가 다시 낮은 어조로 물었다.
“방법 말고 어쩌다가 이곳으로 왔는지를 묻는 거다.”
“아! 그거요? 구사일생으로 왔죠.”
-혈압 수치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없이 삐뚤어진 소녀의 태도에 강찬의 머릿속에는 빨간 등이 번쩍였지만, 강찬은 필사적으로 그 모든 걸 이겨 내고 어렵게 평정심을 지켜 낼 수 있었다.
“네 이름이 뭐냐?”
강찬이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녀의 이름을 묻자 소녀는 발랄하게 대답했다.
“제이나요.”
“그래, 제이나구나.”
“근데 있잖아요. 왜 그쪽은 처음부터 저한테 반말하세요?”
“그건 당연히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몇 살이신데요?”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의 실제 태어난 날은 80년도 넘었기 때문이다.
장거리 우주 항해를 위해 수면 캡슐에서 보낸 시간이 그의 눈 뜨고 살아온 생보다 훨씬 더 길었다.
그중 이곳으로 오기 위해 보낸 세월만 40년이었다.
강찬은 이곳 행성이 지구와 같은 1년이란 시간 단위를 사용하는지조차 의문스러웠지만, 그냥 대충 나이를 가늠해 말했다.
“음……, 한 20살이란다.”
“에엑? 20살? 난 올해로 95살인데, 뭐야? 그럼 젖비린내 나는 꼬맹이가 지금까지 나한테 반말한 거야? 나 참,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 하는 소녀의 외모는 강찬이 일견하기로 중학생 이상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니다.”
“이게 어디서 뒤지려고, 확! 야! 애늙은이, 눈 안 깔아? 어디 똥오줌도 못 가리는 거 1년 동안이나 힘들게 뒤 닦아 줬더니 이게 어디서 건방지게 어른 행세야!”
순간 강찬의 머릿속에 그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혼난다고 분명히 말했지?”
강찬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선 비틀거리며 천천히 제이나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짙은 살기에 본능적으로 겁먹은 제이나도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어라? 왜 그러세요? 몸도 안 좋으신 분이 누워 계시지 않고.”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마…….”
“꺄악!”
분노 폭발한 강찬이 제이나를 향해 달려들려던 순간,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엘프족의 로드인 아르테온이었다.
그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 중이던 치유 마법사에게 그가 깨어났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텔레포트해 온 것이었다.
“어머? 둘이 재밌게 놀고 있었네요?”
“아르테온 님! 저 인간이 절 죽이려고 했어요!”
아르테온의 품속으로 달아난 제이나가 눈물을 글썽이며 두려움에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러자 구차하게 변명할 생각이 없는 강찬이 양손을 들며 ‘에라 모르겠다.’라는 표현을 하고는 다시 침대에 걸터앉아 버리자 그런 그를 바라보던 아르테온은 따스한 눈빛으로 제이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 줬다.
“괜찮단다. 제이나, 걱정할 거 없어. 그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제이나는 잠시 밖에 나가 있으렴. 나는 저분과 할 얘기가 있으니.”
“안 돼요! 저 짐승 같은 인간이 아르테온 님께 어떤 짓을 할지 몰라요!”
제이나의 말에 강찬의 눈빛이 또다시 이글이글 불타오르자 아르테온이 제이나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힘을 주며 자상하지만 강한 어조로 다시 한번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나가 있으렴.”
“하, 하지만.”
“나가 있어요.”
“네에…….”
풀이 죽은 제이나가 방을 나가자 아르테온이 강찬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자 바닥에서 나무줄기가 솟아올라 의자 형태를 만들었고, 그 위에 사뿐히 앉은 아르테온이 강찬을 향해 방끗 웃으며 말했다.
“자, 우리 이제 진지하게 대화해 볼까요?”
“무엇을 말입니까?”
“당신에 대한 거요. 아, 잠시만요. 스피크 마법의 효력이 떨어질 때가 됐군요. 다시 한번 시전해 드릴게요.”
다시 그녀의 손에 오색 빛의 빛무리가 모여 도형을 이루고는 그 도형이 강찬의 몸에 스며들었다.
처음 접할 때는 다급한 나머지 미처 몰랐는데, 이렇게 여유를 두고 천천히 지켜보니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저에 대한 무엇이 그렇게 궁금하십니까?”
“뭐든 다요.”
“뭐든?”
“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아르테온이 그 침묵을 깨고 말을 이었다.
“먼저 제 소개를 하지요. 제 이름은 쥬드리앙 오드 아르테온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강찬이라고 합니다.”
“광챤? 그게 풀 네임인가요? 성은 없으세요?”
“강이 성이고 찬이 이름입니다.”
“아, 죄송해요. 성과 이름이 굉장히 짧으셔서.”
“괜찮습니다.”
그녀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당신은 어디서 오셨나요?”
“그건.”
순간 그는 망설여졌다.
뻔히 그들이 자신에게 물어볼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막상 질문을 받게 되니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시 한번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었기에 강찬은 그들에게 정정당당히 정체를 밝히고 도움을 구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솔직히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그 목적만은 절대로 밝힐 수 없으니 그 부분만큼은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전 이 별 출신이 아닙니다.”
“네? 이 별이라뇨? 그건 무슨 뜻이죠? 별이란 건, 밤하늘의 별을 뜻할 때 쓰는 말이 아닌가요?”
너무도 생소한 표현을 쓰는 이방인의 말에 아르테온의 얼굴이 의문들로 가득 찼다.
강찬은 그런 그녀의 의아함을 대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자신이 서 있는 이 대지가 둥근 모양의 별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마치 과거 자신의 선조가 천동설을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니, 어쩌면 거대한 거북이 등 위로 네 마리의 코끼리들이 받친 대륙 위에 자신이 서 있다고 믿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물론 강찬만의 견해였지만 말이다.
강찬은 그녀에게 어려운 설명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간단히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는 저기 저 먼 우주에서 왔습니다.”
“네? 저 먼 우주라니요? 우주가 뭐죠? 하늘 위에는 천국이 있지 않나요?”
너무나 천진무구한 얼굴로 자신의 말을 이해 못하는 그녀를 보며 강찬의 무표정한 얼굴에 약간의 표정이 생겼다.
“…….”
그녀와의 대화는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강찬은 친절하게도 그녀에게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우주라는 존재와 자신들이 서 있는 이 별에 대한 개념을 설명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강찬은 힘든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 아르테온에게 밤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밝은 별들이 보이십니까?”
“네, 보여요. 근데 갑자기 별은 왜요?”
“저 별들은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이 대륙보다도 훨씬 더 거대할 수도 있는 별들입니다.”
“네에? 그건 말도 안 돼요. 어떻게 저 별이 이 드넓은 대륙보다 거대할 수가 있죠?”
“멀리 있는 사물이 작게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이 대륙이 저만큼이나 작게 보일 만큼이나 멀리서 왔습니다.”
아르테온 그녀는 그가 말하는 거리가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지 아직도 아리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광챤 씨가 말하는 저 별이라는 건 뭐죠?”
“별이라는 건, 당신이 사는 이곳을 별이라고 합니다. 아르테온 님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세상이 평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평평한 것 아닌가요?”
“틀리셨습니다. 이 세상은 둥급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전 그런 장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녀도 레비테이션으로 날아올라 지평선을 바라보면 대륙이 완벽하게 평평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찬의 말처럼 세상이 완벽히 둥글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아르테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눈앞에 강찬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절대로 장난이 아닙니다.”
아르테온은 옆에 강찬 먹으라고 제이나가 던진 사과 하나를 집어 들어 강찬을 향해 내밀며 말했다.
“이것 보세요, 광챤 씨! 이렇게 둥근 물체 위에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건가요? 사과의 위라면 몰라도 옆면이랑 아래에선 모두 바닥으로 떨어질 텐데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거죠?”
그녀는 별이 가지는 중력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듯했다.
대화는 점점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고, 강찬은 그녀에게 도통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마치 옛 지구에 중세 시대로 돌아간 기분이 딱 그의 기분일 것이다.
그는 컴퓨터에 저장된 백과사전의 내용을 참고삼아 그녀를 이해시키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천천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높은 곳에서 물건을 내려놓으면 이렇게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습니까? 이것은 이 별이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중력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저희 별의 표현으로 하자면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