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40
퓨쳐나이트 40화
―네 이놈! 스스로 다크 엘프가 되더니 마음마저 검게 물든 것이냐!
엘라디온이 탄 기간테스의 검에서 눈부신 불꽃이 타올랐다.
―그런 고철 같은 기간테스로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다니, 그 위력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어디 한번 기대해 보지.
네미츠의 두 자루 단검에서도 불타오르는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왔다.
―단검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단검으로 뿜어진 오러 블레이드를 처음 목격한 엘븐 나이트들이 놀라움에 눈을 부릅떴다.
에르칸도르 대륙에서 단검으로 소드 마스터에 오른 인물은 그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엘라디온을 필두로 뒤에 서 있던 모든 엘븐 나이트들의 검에서도 푸른빛의 오러 소드가 뿜어져 나왔다.
―엘라디온 님, 저희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제자의 결연한 한마디에 남아 있던 모든 제자가 죽기를 각오했다.
―죽어도 싸우다 죽겠습니다!
―저희는 그리 쉽게 죽지는 않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들의 결연함을 느낀 엘라디온이 검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다들 죽지 마라.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
―예, 엘라디온 님!
모두의 힘찬 외침과 함께 두 집단 사이의 살기가 점점 짙어지자 주변에 있던, 수만에 이르는 적들과 엘프들이 앞다퉈 도망치기 시작했다.
신장이 8미터나 되는 거대한 그들의 싸움에 앉아서 깔려 죽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묻자, 네미츠.
―뭔가?
―왜 우리가 기간테스를 탑승할 때까지 기다려 준 거지? 자네라면 충분히 우리가 기간테스에 탑승하기도 전에 처치할 수 있었을 텐데?
―후후, 그야 어렵게 상대다운 상대를 만났는데 그렇게 쉽게 죽여 버리면 재미가 없잖나? 소드 마스터와 고성능 기간테스라는 건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니깐.
자신들을 마치 장난감 취급하는 네미츠의 말에 엘라디온과 엘프 나이트들은 또다시 불같은 분노를 느꼈다.
―너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을 저주한다, 네미츠.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고맙다…….
네미츠의 말에는 진심이 어려 있었고, 그 말을 시작으로 두 집단 간에 지축을 울리는, 치열한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라세온이 뿔피리를 불며 공격 신호를 알리자 천 마리는 되어 보이는 수많은 엔트가 적들과 교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숲속에 숨어 있는 엘프 레인저들로부터 2만 발의 화살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라 녹색 엘프에게로 퍼부어졌다.
그러자 그 쏟아지는 화살 비 속에 수많은 녹색 엘프가 피를 뿌리며 고꾸라졌지만 그들에겐 드워프만큼 손재주가 뛰어난 녹색 대장장이들이 만들어 준 튼튼한 방패가 있었다.
그것으로 몸을 가린 그들이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레인저들이 몸을 숨기고 있던 숲속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녹색 엘프들이 미소 지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쯤 숲속은 엘프들의 피로 물들어 가고 있을 것이었다.
녹색 엘프들의 생각대로 엘프 레인저들은 대혼란에 빠져 버렸다.
나무 위에서 블라인드 하이드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다크 엘프 암살자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기습을 가한 것이다.
너무도 신속한 그들의 기습에 은신의 베테랑인 레인저들조차 피하지 못했다.
대부분에 레인저들은 그 자리에서 목을 베인 채로 나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추락하는 엘프 레인저들은 자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부릅뜬 채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살아남은 레인저들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작은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어디서 저 많은 암살자가 튀어나왔지?’
순식간에 적군과 아군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숲속.
엘프 레인저들은 단검을 뽑아 들고 적에게 저항했다.
하지만 근거리 전투가 전문인 그들을 상대로 단검으로 대항해 이길 리 만무했다.
나무 위에서 희생당한 엘프 레인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그들의 시체가 나뭇잎처럼 떨어져 내렸다.
레이시언 역시 갑자기 튀어나온 다크 엘프 암습자들을 상대로 반격을 가하며 절규했다.
“빌어먹을! 놈들은 우리가 이곳을 공격 지점으로 삼을 걸 미리 알고 매복하고 있었어!”
레이시언이 다섯 발의 화살을 시위에 먹여 잡아당기자 화살에는 오러가 깃들어 눈부시게 빛났다.
그녀의 고운 손을 떠난 다섯 발의 화살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동료 레인저를 해하려 하던 다크 엘프 암살자들의 머리통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다시 한 움큼의 화살을 집어 든 레이시언이 적들을 향해 화살을 뿌리자 또 다른 다크 엘프 암살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다크 엘프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사태는 이미 절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한 놈이라도 더 많이 죽여야지만 죽어 가는 동족들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화살통은 텅텅 비어 있었다.
급한 마음에 화살을 여러 발씩 사용한 게 화근이었다.
‘아뿔싸!’
그녀의 장기인 활은 화살이 없으면 무용지물, 그녀는 화살을 구하고자 바닥에 추락한 동료의 시체를 향해 내려갔다.
그러자 그녀의 뒤로 세 명의 암살자가 희한한 무기를 앞세우고 달려들었다.
화살을 다 써 버린 그녀가 손쉬운 먹잇감이라 생각했는지 그들은 자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레이시언은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호락호락한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공중을 딛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도약해 화살도 없는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그녀의 활에서 무형의 화살이 생겨났고, 화살은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가 세 명의 다크 엘프를 단숨에 꿰뚫었다.
“헉! 헉! 헉!”
‘역시 화살 없이 오러 에로우를 날리는 건 마나가 너무 많이 들어가……. 빨리 화살을 챙겨야 해.’
암살자들을 처리한 레이시언이 급히 바닥에 내려와 죽은 동료 레인저들에 화살을 거둘 때였다.
짝! 짝! 짝!
숲속에 갑자기 때아닌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수 소리에 흠칫 놀란 레이시언이 정확히 소리 나는 방향으로 화살을 겨누었다.
“누구냐!”
“역시 듣던 대로 대단하군, 엘프의 활 레이시언.”
기울어 가는 달빛을 등지고 한 다크 엘프 여인이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정체를 밝혀라!”
“난 암살의 명가 블랙리온의 가주 야라라고 한다.”
“네 이년! 감히 저주받은 몸으로 엘프의 숲에 침범하다니, 간이 부었구나!”
“하하하! 저주받은 몸이라니? 그건 너희가 우리를 낮춰 부르는 말 아니냐? 우리가 봤을 땐 너희야말로 저주받은 종족인 것 같은데? 위선과 우월주의로 가득 찬 더러운 종족 말이야.”
“닥쳐라! 타락으로 물든 검은 피부를 가진 너희가 어찌 우리 엘프를 모욕하느냐!”
“타락으로 물들었다고? 나는 태어날 때부터 검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럼 난 태어날 때부터 타락하고 저주받은 존재란 것이냐?”
“그건 네 부모를 탓해라! 다크 엘프여.”
“흐음, 인간 중에도 태어날 때부터 검은 피부를 가진 존재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럼 그들도 타락해서 검은 피부를 가진 존재들이란 말인가? 또 다른 얘기를 들어 보니, 그런 그들도 너희와 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인간들이 검은 피부를 가진 인간들을 잡아다가 동족 취급도 안 하고 노예로 부린다고 하더군. 뭐, 너희처럼 보이는 대로 무조건 잡아 죽이는 것보단 약간은 인도적이라고 생각되지만 말이야.”
“그래서 네년이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내가 볼 때 그런 그들이나 너희나 다 똑같아 보인다는 거지. 피부색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존재들……. 그런 우매함이야말로 진정한 저주라고 생각되지 않나? 내 말이 틀렸나?”
“지금 네년은 너희도 우리와 같은 엘프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군. 우리가 같은 엘프란 것은 맞지만 나는 너희들과 한통속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너희들의 더러운 위선과 우월주의가 아주 역겹거든. 그래서 미안하지만 오늘부로 이 땅 위에서 사라져 줬으면 해. 너희 따위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싶지 않으니까.”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레이시언이 상대를 향해 겨눈 활시위를 놓자 마나를 잔뜩 머금은 그녀의 화살이 대기를 가르며 야라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야라는 피하지 않고 레이시언의 활에 맞서 비도를 날렸다.
그러자 레이시언의 활과 야라의 비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순간 대폭발이 일어났다.
대낮처럼 빛나는 폭발 속에서 레이시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방금 쏜 화살은 자신의 전력을 다한 것이었는데 겨우 손으로 던진 비도에 의해 저지당한 것이다.
강철도 손쉽게 꿰뚫는 자신의 활이었다.
같은 힘을 가지지 않고서야 자신의 화살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어찌 비도 따위가…….”
“태초부터 시작된 비도의 역사는 활의 역사보다 훨씬 길지. 그러니 제발 비도 따위라는 언행은 삼가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무 위에서 서서히 일어선 다크 엘프 여인의 망토가 바람에 휘날리자 그 안에는 달빛에 번쩍이는 수많은 비도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뱀의 비늘처럼 보였다.
“먼저 너의 그 활에 대한 맹목적인 우월주의부터 뜯어고쳐 주겠다.”
또다시 시위에 화살을 먹인 레이시언.
그런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다크 엘프는 절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 * *
숲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아르테온은 레이시언이 이끄는 레인저 부대의 지원 사격이 감감무소식이자 점점 초조해졌다.
천여 마리에 달하는 거대한 엔트와 대륙 최고의 궁수부대.
그리고 자신이 이끄는 마법사와 정령사가 힘을 합치면 눈앞의 적을 순식간에 물리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 대륙 최고의 궁수부대가 처음 사격 이후로 아무런 사격이 없으니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아르테온은 레이시언에게 당장에라도 달려가 보고 싶었지만 엔트들이 적과 교전에 들어간 이상 자신도 몸을 뺄 처지가 아니었다.
엔트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적에게는 십만에 달하는 대군과 거대한 지네들이 수백 마리나 있었다.
게다가 그 거대한 지네들은 정말 놀랍도록 강해 아르테온 이외에는 그 누구도 죽일 수 없었다.
강력한 껍질과 강력한 아래턱,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칼날 같은 다리는 엔트를 썩은 나무토막처럼 파괴했다.
거대한 지네들한테 가지치기를 당한 엔트들을 트롤 녹색 엘프들이 도끼로 마무리했다.
그들은 마치 장작을 패듯 엔트를 찍어 댔다.
그러자 수많은 엔트들이 순식간에 땔감으로 변해 버렸다.
엔트들이 숫자로 거대 지네를 붙잡으려고 몰려들면 거대 지네는 강력한 산성 부식액을 뿜어 댔다.
그러면 부식액을 뒤집어쓴 엔트들이 낮은 비명을 지르며 검은 연기와 함께 타들어 갔다.
그렇게 엔트와 거대 지네의 대결에서 벌써 수백의 엔트들이 파괴되었지만 거대 지네는 아직 단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