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5
퓨쳐나이트 5화
“만유인력의 법칙?”
아르테온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습니다.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 작용합니다. 특히 별이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을 아까 말씀드린 중력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만유인력과 지구의 자전에 따르는 원심력을 더한 힘입니다. 이것을 발견한 사람이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이기도 한 아이작 뉴턴이라는 과학자였습니다.”
그의 알 수 없는 소리에 아르테온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 참 대단하신 분이셨네요. 직업을 세 개나 가지고 계시다니.”
전혀 다른 내용에 귀 기울이는 그녀의 모습에 강찬의 얼굴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 후로도 그녀를 이해시키려고 강찬은 무진장 노력을 했지만 그녀가 수백 년간을 진실이라 믿고 살아온 이곳의 세계관은 너무나도 두텁고 견고했기에 그녀에게 진실을 전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 세상은 돕니다!”
“어떻게 세상이 돌아요? 세상은 지금 이렇게 가만히 있잖아요.”
‘아, 빌어먹을……. 지친다.’
그는 벌써 2시간째 그녀와 초등학생도 다 아는 내용을 가지고 치열하게 갑론을박 중이었다.
가뜩이나 기운도 없어 죽겠는데 말이다.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 가는 가운데 강찬은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전혀 소질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럼 제가 말보다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증거를 보여 준다는 그의 말에 아르테온의 귀가 솔깃해졌다.
“뭔데요? 그게.”
“이걸 한번 보시겠습니까?”
강찬은 자신의 팔뚝을 아르테온에게 내밀자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팔뚝으로 향했고, 그의 팔뚝에선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어머나! 세, 세상에!”
그의 팔뚝 위로 홀로그램이 떠오르며, 이곳 네오 어스는 아니지만, 과거 인류의 고향이었던 지구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졌다.
“이것이 바로 별이라는 겁니다. 아르테온 님.”
아르테온의 입이 쩍 벌어졌다.
별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놀라는 것도 있었지만, 마법사인 그녀는 지금 자신 앞에 펼쳐진 홀로그램이 마법이 아니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하신 거죠? 마법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과학이라는 겁니다, 아르테온 님. 제가 살던 곳은 이처럼 마법이 아닌 과학이라는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곳입니다. 제가 이곳에 타고 온 우주선도 바로 그 과학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과학이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묻는 그녀에게 강찬은 다시 한번 대답해 줬다.
“네.”
“그럴 리가요. 과학은, 과학은 분명히…….”
그녀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도리질을 쳤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홀로그램이 과학으로 만든 것이란 말이 도통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녀가 사는 현 에르칸도르 대륙에도 과학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과학은 마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급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저 농부들이나 평민들 같은 하층민들이 주로 애용하는, 수준 낮은 기술 정도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었다.
왕족들이나 귀족들 같은 권력자들은 매우 고급 인력인 마법사들을 이용해 여러 가지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했다.
온수를 쓸 때도 화염 마법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물을 데웠으며, 한여름에 더울 때는 빙계 마법을 이용한 냉방을 즐겼고, 연인들은 애인과 밤늦게까지 수정구를 이용한 마법 통신으로 사랑을 속삭였다.
그리고 외출이나 여행 시에는 마법진을 이용한 공간 이동을 애용했다.
마법은 이런 사소한 개인적인 일상들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전반적으로도 활용되었다.
성을 지을 때도 무거운 건축 자재에 경량화 마법을 걸어 손쉽게 공기를 단축했으며, 전 대륙 곳곳에는 영구적인 공간 이동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 이를 통한 유통망으로 타지에 유명한 농수산 특산품들이 최고의 신선도를 유지한 채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물론 그곳은 왕가나 부유한 귀족의 식탁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처럼 마법이 부유층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을 때, 농민이나 평민들은 미약한 과학에 의존해 조금이라도 힘든 노역을 덜기 위해 안간힘 썼다.
농민은 물레방아를 만들어 곡식을 다듬었으며, 소에 쟁기를 달아 밭을 갈았다.
나무꾼은 기중기를 만들어 벌목한 나무를 들어 올렸으며, 마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공사장 노역 꾼들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물건을 움직여야만 했다.
이런 일상생활 외에도 마법과 과학은 전쟁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었는데, 전쟁에서 활을 다루는 다수의 궁수보다 소수의 마법사가 원거리공격에 있어서 훨씬 더 위력적이라는 것은 이 세계의 당연한 이치였다.
중갑 기병대에 랜스 차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마도 병기인 기간테스 앞에선 달걀로 바위 치기에 불과했다.
그런 세상에 사는 그녀로서는 그가 보여 준 홀로그램은 과학이 아니라 마법에 가까워 보였다.
이제 그녀는 그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진짜로 외계에서 온 외계인인가요?”
‘뭐, 뭐, 외계인?’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렸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도 이들 관점에선 외계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강찬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예에…… 뭐, 전 외계인입니다…….”
‘하하, 젠장. 외계인한테 외계인 소릴 듣다니…….’
졸지에 외계인이 되어 버린 강찬이 뭐 씹은 표정을 지었고, 아르테온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침착함을 잃지 않고자 애썼다.
“그럼 이곳에는 왜 오게 되셨나요?”
“그건 저도 잘은 모르겠으나 아마도 불시착한 듯합니다.”
“불시착이요?”
그녀의 질문에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드넓은 우주를 탐험하는 탐험대인데 제가 오랜 우주 항해를 위해 깊은 수면에 빠져 있는 동안 저희 우주선에 어떠한 변고가 생겨 이곳에 불시착한 것 같습니다. 그 후로는 아시다시피 제가 여기 이렇게…….”
실상은 레드 마스호는 전함이었지만, 전함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투를 위한 배.
그는 자신의 목적을 감추기 위해서 레드 마스호를 그저 평범한 우주선이라고 소개했다.
“그렇군요. 당신은 외계에서 온 탐험대셨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은 당신의 몸이 완쾌하실 때까지 저희 마을에 푹 쉬시도록 하세요. 때가 되면 저희가 추락한 그 우주선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강찬의 얼굴에 모처럼 화색이 돌았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전에 당신의 발목을 옭아맨 넝쿨 말입니다. 부디 오해하지 마시길 바래요. 그건 당신을 가둬 두기 위한 게 아니라 침입자를 방지하는 트랩 마법이었으니까요. 그 후에 저희가 당신을 붙잡았던 건 당신이 너무 흥분하신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니 그 점은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닙니다. 저도 그때 광분해서 날뛴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고개 숙여 사과하는 인간을 바라보는 아르테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럼 이곳에 머물며 요양하도록 하세요.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고요.”
“깊이 신경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그녀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푹 쉬라는 말을 남기고는 돌아가 버렸다.
한 아이만을 쏙 남기고는 말이다.
“제이나, 너는 앞으로 광챤 님을 잘 보살펴 주어라. 그분은 앞으로 우리 마을의 중요한 손님이시다.”
“네에?”
제이나의 표정이 뭐 씹은 듯 일그러졌다.
* * *
얼떨결에 이곳에서 머물게 된 강찬은 아르테온이 돌아간 후 식탁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들은 과연 자신을 어떠한 존재로 생각하는지를 말이다.
그녀의 생각지 못한 호의가 못내 마음이 걸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유 없는 호의는 믿지 않는 것이 그의 신조였고, 그런 그의 신조는 지금껏 빗나가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의 관점에서 인간을 봤을 때, 인간은 딱 두 종류였다.
그것은 바로 적과 아군이었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선지 그들은 결코 자신을 적으로 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그들이 자신이 이 별에 무슨 짓을 하려고 왔는지를 알고 있었다면 결코 자신을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평화로운 가정에 칼을 들고 난입한 강도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왜 이곳에 온 건지만을 궁금해할 뿐 자신이 이곳에 온 진정한 목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강찬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강찬이 살포시 미소 짓고 있을 때, 조용히 문이 열리며 제이나가 살금살금 기어들어 왔다.
그런 제이나를 어이없이 바라보던 강찬이 그녀를 불렀다.
“어이, 이봐.”
흠칫하던 제이나가 고개를 돌려 강찬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이리 와서 앉아 봐라.”
“앉으라고요?”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제이나가 슬그머니 테이블로 다가와 앉았다.
하지만 딴청을 부리며 강찬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딴청 부리지 말고. 앞으로 자주 볼 사이가 된 것 같은데 우리 이만 화해하는 게 어때?”
“네? 저, 정말로요?”
“그래, 그리고 네 나이가 진짜로 95살이라면 내가 반말한 것 사과하마.”
상대방이 호의적으로 나오자 그제야 맘이 놓이는 듯 제이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전 정말로 숲의 정령에 맹세코 95살이에요.”
“알았다. 외모만 보고 판단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내가 너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니깐 그냥 우리 편하게 친구 하는 건 어떨까?”
“친구요? 하지만 내가 그쪽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데…….”
“내가 키가 더 크잖아! 잔말 말고 친구 할 거야, 말 거야?”
갑자기 강찬이 언성을 높이자 이에 움찔한 제이나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조, 좋아요. 할게요.”
“그래, 그럼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친구다.”
“으응, 알았어…… 요.”
둘은 손을 내밀어 어색한 악수를 했지만 둘 다 속으로는 자신이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잘 구슬려 친구로 만든 엘프 소녀를 통해 자신이 이 마을에 오게 된 자세한 사정을 듣게 된 강찬의 안색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그만큼 그녀가 들려주는 말은 그로서는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엘프 소녀가 말하길 자신은 1년 전 화염에 휩싸여 하늘에서 떨어진, 쇠로 만들어진 거대한 방주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했다.
‘화염에 휩싸인 쇠로 만들어진 거대한 방주? 그것은 내가 타고 온 우주선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정말로 전함은 불시착한 것인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미개한 마을에 홀로 남겨진 자신을 볼 때, 그 말은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이 미개한 자들이 전함에 난입하여 자신을 이리로 납치했다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함이 없이는 계속 임무를 수행할 수도, 본성과 연락할 수도 없다. 이대로 후속대가 올 때까지 이 별에서 홀로 생존해야 한단 말인가?’
그저 눈앞이 막막했다.
셀 수 없는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그였지만, 이렇게까지 막연하게 막막함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후발대가 지금 바로 출발한다고 해도 이곳까지 도착하려면 최소한 적게 잡아도 2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자신이 타고 온 레드 마스호는 이 별로 오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한 전함이었다.
아직 실용화되지 않은 특급 기밀 사항인 초시공 항법 시스템이 탑재된 시험 작품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탐사선을 다시 만든다는 것도 그렇고, 그것을 타고 이곳에 도착하는 과정도 그렇고…….
그 모든 것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태양계에서 궁수자리 방향으로 5,000광년이나 떨어진 OGLE-2006-BLG-109L계까지는 초시공 항해를 한다고 해도 단 한 번에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우주에는 시공간조차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나 수많은 미확인 가스층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의 위협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미지의 위협을 대처하지 못하는 현 기술력으로서는 통상 항해와 초시공 항해를 수백 번이나 병행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레드 마스호가 이곳으로 오면서 일정한 거리마다 남겨 둔 좌표 측정용 위성의 도움으로 뒤따라올 그들은 약 20년 안에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레드 마스호가 이곳으로 오는데 무려 40년이나 걸린 것에 비해서 말이다.
강찬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구조되기만을 빌며 이 미개한 곳에서 무려 20년이란 허송세월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수면 캡슐이라도 있다면 20년 후로 맞춰 두고 속 편히 눈 감아 버렸으면 싶은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난 전투를 위해 태어난 몸. 전투는 내 인생의 모든 것. 내가 죽어야 할 곳은 전장이지 이런 미개한 별에서의 초라한 죽음이 아니다. 반드시 살아남아 임무를 완수하겠다.’
미개한 별에서 생을 마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그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이곳에 사는 엘프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것만이 아는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그의 남은 유일한 생존법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자신이 적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감춰야만 했다.
결코 자신의 본모습을 그들이 알아채서는 안 됐다.
절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