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51
퓨쳐나이트 51화
16. 살아남은 이들의 선택
지옥 같았던 밤이 지나고, 태양은 오늘도 어김없이 대지를 비췄다.
그러자 지난밤의 끔찍한 참상들이 살아남은 이들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풍요롭던 엘프들의 숲은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황량한 대지로 변해 있었다.
풍요로웠던 숲의 나무들은 앙상한 기둥뿌리만 남았고, 헤아릴 수조차 없는 엄청난 숫자의 시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레드 마스호의 미사일 폭격에 휘말린 희생자들이었다.
미사일은 수많은 목숨만 앗아 간 게 아니라, 이곳의 지형마저 바꿔 놓았는데.
그토록 아름다웠던 엘프의 마을은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이곳에 모였던 5만 명에 달하던 엘프들 중, 목숨을 건진 엘프는 고작 3천 명도 채 되질 않았다.
살아남은 엘프들은 자신들의 마을이 사라지고 남은 황량한 공터에 모여 오열했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그들의 눈에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들에 중심에는 아르테온과 엘라디온이 있었다.
다섯 명의 장로 중 살아남은 건 그들 둘뿐이었다.
“무사하셨군요, 엘라디온 님.”
아르테온은 살아남은 엘라디온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반갑게 맞이했다.
“죄송합니다, 아르테온 님. 마을과 기간테스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을 참았던 엘라디온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니에요. 이렇게 살아서 돌아와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걸요.”
아르테온과 엘라디온이 눈물을 흘리자 광장에 모인 엘프들이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강찬도 제이나의 죽음 앞에 땅바닥에 주저앉아 세상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마치 하늘도 그들과 함께 우는 듯, 파괴된 숲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 *
부상자를 수습한 엘프들은 저녁에 또다시 들이닥칠 다크 엘프들 때문에 극도로 두려움에 떨었다.
남은 전력으로 그들을 막아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찬은 그런 엘프들에게 자신이 타고 온 우주선으로 가자고 제시했다.
그곳에는 지크욘이 만들어 준 결계가 있으니, 우주선에 몸을 숨기면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말에 아르테온과 엘라디온도 동의했고, 엘프들은 멀찍이 떨어진 레드 마스호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부상자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길이었기에 도착까지 거의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레드 마스호에 도착한 엘프들은 결계 안에서 피로에 지친 몸을 뉘었다.
한편 거대한 레드 마스호의 위용에 놀란 에델린과 자이젠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경계를 서던 엘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르테온 님! 동쪽에서 엄청난 대군이 나타났습니다!”
경계병의 말을 들은 아르테온과 엘라디온이 레드 마스호 위로 얼른 올라와 경계병이 말한 대군을 바라봤다.
엘프인 그들은 눈이 엄청나게 좋아 망원경이 없이도 아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멀리 폐허가 되어 버린 숲을 가로지르는 엄청난 수의 병사들이 들어왔다.
어림잡아도 수만은 될 법한 무리였다.
그런 그들의 등장에 엘프들이 잠시 동요했지만, 이내 그들이 누구인지 확인한 아르테온은 졸이던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들은 동맹 관계인 드워프들이었다.
드워프의 왕인 가펠드 폰 크랙시온이 친히 정예 병력을 이끌고 엘프들을 지원하고자 달려온 것이었다.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드워프 중갑보병들과 거대한 배틀엑스를 짊어진 바바리안들이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하며 엘프들의 옛 마을로 진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도착은 이미 한발 늦은 후였다.
크랙시온은 황량하게 변해 버린 주변을 바라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과거 그 어느 숲보다 풍요로웠던 엘프의 숲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지평선이 보일 만큼이나 황량해진 땅만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의 시체들까지 가득했다.
불에 탄 시체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하자 후각이 매우 민감한 드워프들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풍요로웠던 엘프의 숲과 마을이 이토록 처참하게 변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수많은 전쟁터를 누벼 온 그였지만, 이처럼 하룻밤 사이에 광범위한 범위가 초토화된 광경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눈앞의 광경은 마치 수십 년간 치열한 전쟁을 겪어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전장의 모습 같았다.
“녹색 엘프들의 힘이 이 정도일 줄이야…….”
간담이 서늘해진 드워프의 왕 앞에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곧 아르테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곧 아르테온을 발견한 드워프의 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반겼다.
“오! 아르테온! 살아있었군.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숲과 아이들이…….”
아르테온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서둘러 눈물을 감추는 아르테온의 모습에 지켜보는 크랙시온은 미안하기만 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왔더라면…….”
“아니에요, 크랙시온 님. 이렇게 와 주신 것만으로 정말로 감사드려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다들 많이들 지치셨을 텐데, 저희가 대접해 드릴 게 아무것도 없네요.”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하는 그녀를 일으키며, 크랙시온이 말했다.
“무슨 그런 말을! 우리는 한배를 탄 동지 아닌가? 당연히 달려와야지! 일단 서둘러 우리의 지하 왕국 마인킹덤으로 가세나. 이곳은 너무 위험하니.”
크랙시온의 말에 아르테온은 깊이 감사하며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했다.
“이 은혜, 엘프들은 영원토록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 엘프와 드워프는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드워프의 광산에 대한 광적인 욕심이 자원의 보고인 광대한 숲을 지닌 엘프들과 자주 마찰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서로 돕기 시작한 것이 이토록 가까워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모두들 서둘러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고, 드워프의 왕국인 마인킹덤으로 떠나기 위해 분주해졌다.
드워프들의 왕국은 엘프의 숲과 이어진 포탈을 쓰더라도 하루 정도를 더 걸어야만 하는 거리였기에, 엘프들은 식량과 물, 그리고 부상자를 이동시킬 만한 이동 수단을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강찬은 자이드에 기댄 채 그런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마치 나사가 풀려 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다른 이들을 지켜보는 강찬의 눈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그의 마음은 황량하게 불타 버린 엘프의 숲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처럼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런 그가 힘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지었다.
‘제이나……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너 없이는 혼자서 살아갈 자신이 없는데……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가 그렇게 슬픔에 차 눈물을 흘릴 때.
멀리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엘리카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제이나의 죽음 앞에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진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은 오늘 알게 된 일이었다.
괴로워하는 강찬의 모습을 지켜보는 엘리카는 자신이라도 곁에서 그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어머…… 내가 무슨 생각을…….’
단지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엘리카는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 말고도 넋을 잃고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비스만 제국의 공주인 에델린이었다.
‘어쩜 저리도 아름다울 수가…….’
“공주님, 떠날 채비를 끝냈습니다. 공주님?”
자이젠이 여정에 필요한 식료품을 넣은 커다란 봇짐을 메고 공주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강찬의 우는 모습을 매료된 공주는 그런 자이젠의 말에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공주님? 공주님!”
자이젠이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에델린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왜,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느냐!”
화를 내는 에델린을 바라보며 자이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주님, 뭘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봅니까? 혹시 저기 앉아 있는 강찬 님을 보고 계시는 겁니까?”
“무, 무엄하다! 본녀는 그저 아바마마께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노라!”
아직도 잠옷 차림새에 얼굴엔 시커먼 그을음을 잔뜩 묻히고 있는 에델린.
그런 그녀는 당황하다 못해 귓불까지 빨개졌지만, 그 와중에도 도도한 척은 포기 못 하겠는지, 부러진 부채를 펼치고선 열심히 얼굴을 식혔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자이젠은 난생처음으로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자이젠은 천천히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강찬을 바라봤다.
강찬의 뒤에는 시선을 압도할 만큼 거대한 기간테스가 당당히 서 있었다.
‘나를 압도하는 엄청난 검술 실력, 드래곤과 서슴없는 관계, 정령왕조차 일격에 강제 송환시키는 괴물 기간테스의 소유자. 게다가 녹색 마녀는 지금 이 지옥도를 만들어 낸 그 무시무시한 불화살들도 저자의 짓이라고 했어…… 도대체 네 진짜 정체가 뭐냐?’
자이젠은 궁금증을 뒤로한 채 서둘러 벨라렌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밤이 되면 다크 엘프들이 또다시 기습해 올 것이다.
그러니 해가 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렇게 자이젠이 여정을 떠나기 위해 등을 돌리고, 엘라디온과 아르테온, 그리고 드워프의 왕 크랙시온이 함께 강찬을 찾아왔다.
피난 준비로 가장 바쁠 세 사람이 이렇게 동시에 찾아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때문인 것이 분명했다.
강찬은 서둘러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그들을 맞이했다.
“다들 많이 바쁘실 텐데, 무슨 일로 저를?”
“아, 다름이 아니라 여기 크랙시온 님이 파괴된 기간테스를 수거해서 다시 재생산에 들어갈 거라 하셔서요. 마침 강찬 님의 부서진 기간테스도 함께 가져가서 수리하고 싶어 하시네요. 그래서 이렇게 함께 부탁하러 왔어요.”
자신의 기간테스라면 레드 레빗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이 레드 레빗을 가져간다고 한들 그것을 수리할 가능성은 제로였다.
“죄송하지만 당신들은 이것을 수리할 수 없습니다.”
강찬이 매몰차게 거절하자 아르테온의 뒤에 서 있던 크랙시온이 강찬 앞으로 튀어나와 강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간절한 투로 말했다.
“이, 이보게! 젊은 친구!”
갑자기 덩치 좋은 털북숭이 난쟁이가 굳은살 잔뜩 박인 손으로 자신의 손을 덥석 잡자 강찬은 흠칫 놀랐다.
자신의 손을 잡은 난쟁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강찬은 더욱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크랙시온의 볼이 복숭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두 눈은 잔잔한 호수처럼 빛나고 있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부, 부디 나에게 이 기간테스의 수리를 맡겨 보지 않겠나? 응? 응?”
극히 혐오스러운 얼굴을 자꾸만 들이대자 강찬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기간테스가 아닙니다! 섣불리 건드렸다간 큰일 납니다.”
현대 과학의 결정체인 자이드를 그들이 분해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지만, 만일 자이드의 몸체를 함부로 열었다간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자이드의 동력원인 소형 핵융합로를 잘못 건들면 새어 나온 방사능으로 그들의 왕국은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자칫 헬륨3이 연쇄 반응이라도 일으키는 날에는 그들의 왕국은 지도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내 평생 이처럼 아름다운 기계는 처음일세. 몸체는 절대로 건들지 않겠다고 드워프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네! 그러니 부디 잘린 팔이라도 수리할 수 있도록, 제발 허락해 주게나.”
거듭되는 크랙시온의 애절한 부탁에 강찬은 고민했다.
망가져 버린 자이드의 오른손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수리는 분명히 해야만 했다.
하지만 강찬 역시 수리할 자신이 없었다.
그는 군인이지, 엔지니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강찬의 뇌리에 무엇인가 번뜩 떠올랐다.
그 무식하게 강한 검은 기간테스를 상대하며 고전했던 이유가 말이다.
그 기간테스는 자신의 자이드와는 다르게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엘븐 나이트에 탑승했던 자신의 마스터도 마찬가지였다.
기간테스는 탑승자처럼 마나를 다룰 수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