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52
퓨쳐나이트 52화
‘만일 그때 레드 레빗도 오러 소드를 뿜어낼 수 있었다면, 어젯밤처럼 속수무책으로 팔을 잃지는 않았을 텐데…….’
강찬은 제이나의 복수를 위해선 레드 레빗에게도 그들의 기간테스처럼 오러를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강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럼 혹시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말만 하게! 내 있는 힘껏 도와주겠네.”
“기간테스가 오러 소드나 오러 블레이드를 쓸 수 있는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마광로에 응축된 마나를 통한 것일세.”
“마광로? 그렇다면, 그 마광로라는 것을 제 레드 레빗에 장착하면 레드 레빗도 오러 소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강찬의 말을 들은 크랙시온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자네의 기간테스는 마광로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제 레드 레빗은 기간테스가 아닙니다. 이것은 자이드라는 과학으로 만든 메카닉입니다. 그래서 마광로가 아닌 핵융합 제네레이터를 사용해 구동합니다.”
“해, 핵융합 제네레이터? 그게 뭔가?”
“아주 위험한 물건입니다. 잘못 건드렸다간 도시가 아니라 나라 하나쯤은 간단히 날려 버릴 정도로…… 그래서 제 자이드에 손대지 말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나! 나라 하나를 통째로? 그게 가능한 일인가?”
“네.”
강찬의 말에 크랙시온이 믿을 수 없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에 있던 아르테온과 엘라디온 역시도 놀라움에 눈을 부릅떴다.
“도, 도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나라를 통째로 날려 버린단 말인가?”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그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제 자이드는 연료 보충 없이도 50년간 작동이 가능합니다.”
“5, 50년!”
연료 보충 없이도 50년을 작동한다는 강찬의 말에 크랙시온은 또다시 경악했다.
제아무리 스스로 마나를 충전할 수 있는 고대의 거인이라 할지라도 외부에서 마나를 보충하지 않으면, 반년 이상 가동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강찬이 말한 자이드라는 저 메카닉의 심장은 무려 50년 동안이나 작동한다는 것이다.
엘븐 나이트를 만든 크랙시온과 엘븐 나이트의 마광로를 제작한 아르테온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기에 50년씩이나?”
“그건 최신형 마광로도 불가능해요.”
“핵융합로의 원리는 아마 당신들은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저도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그 장치에 함부로 손댔다간 당신의 왕국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래도 제 자이드를 손봐 주시겠습니까?”
단 한 번의 실수로 왕국의 존속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강찬의 말에 크랙시온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엔 자이드라 불리는 메카닉은 작은 나사 하나까지도 엄청난 가치의 예술품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끄응, 그렇다면 그 자이드라는 메카닉의 도면을 나에게 줄 수 있겠나? 위험한 부분을 표시해서 말일세. 그러면 내가 그 부분을 피해서 마광로를 설치해 보겠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팔과 다리는 전부다 기간테스의 것을 사용해야 할 것이야. 그래야만 마나를 쓸 수 있을 테니깐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계약이 성립되었군요.”
강찬이 손을 내밀자 크랙시온이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그의 손을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그럼 그동안 탈 것은 있나? 이번에 엘프의 숲에서 채굴한 미스릴로 새로 만든 엘븐 나이트가 10대가 있는데 말이야. 축적된 경험을 발전시켜 1차로 생산했던 엘븐 나이트보다 더욱 성능이 뛰어나지. 만약 자네가 필요하다면 그동안 그 엘븐 나이트를 빌려주겠네. 어떤가?”
생각지도 않게 기간테스를 얻게 되자 강찬은 너무 놀라 순간 말을 잃었다.
“……진짜로 저에게 기간테스를 주시겠다는 겁니까?”
강찬의 말에 크랙시온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명심하게. 주는 게 아닐세, 빌려주는 걸세. 그러니 부디 깨끗이 쓰고 반납하길 바라네. 자네의 기간테스…… 아니, 자이드라는 것은 나 가펠드 폰 크랙시온의 이름을 걸고 기필코 고쳐 줄 테니 말이야.”
평소에 엘프 나이트들이 엘븐 나이트를 타고 기동 훈련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강찬은 한번쯤 엘븐 나이트를 타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기간테스를 얻게 되니 매우 기뻤다.
기간테스가 생겼으니 녹색 엘프들을 향한 복수가 한결 수월할 것이 분명했다.
늦은 저녁. 강찬은 레드 마스호를 떠나기 전에 자이드의 설계도를 출력하고, 몇 가지 휴대용 장비들과 장기적인 전투에 대비한 우주 비상식을 더플백 안에 챙겼다.
그러던 강찬은 잠시 손을 멈추고 침대를 바라봤다.
제이나와 격렬하게 첫 경험을 나눴던 침대를 말이다.
그러자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제이나…….”
강찬은 제이나의 체취가 남아 있는 이불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한참 울고 겨우 감정을 추스른 강찬의 두 눈이 퉁퉁 부었다.
평생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살았던 그였지만, 이제는 제이나 생각만 하면 절로 눈물이 나왔다.
이제 강찬에게 이 방은 제이나와 자신의 성지나 다름없었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방이었지만, 죽기 전에 꼭 돌아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강찬은 편지 두 통을 적고 잠이 들었다.
한 통은 하늘나라로 떠난 제이나에게 적은 편지였고, 다른 한 통은 열흘 후에 돌아온다던 친구 지크욘에게 쓴 편지였다.
* * *
다음날 아침.
모든 준비를 마친 엘프들과 드워프들이 마인킹덤을 향해 서둘러 피난길에 올랐다.
그런 피난민 중에는 에델린과 자이젠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주님, 왜 이러십니까? 저희는 벨라렌으로 돌아가야죠? 네?”
“시끄럽다! 내가 가자고 하면 가는 거다. 이대로 돌아가면 언제 또 드워프의 왕국을 구경할 수 있단 말이냐.”
“하, 하지만…….”
사실 자이젠도 드워프의 왕국엔 가 보고 싶었다.
이 에르칸도르 대륙에서 최고로 치는 병기들은 모두 드워프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명의 무인으로서 그런 그들의 병기 제조 현장에 가 보고 싶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었다.
그러나 자이젠에게는 서둘러 황제에게 보고해야 할 내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런데 저 고집불통 공주님은 역시나 국가의 안위나 자신의 의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피난길에 오른 달구지에 앉은 채 강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에델린을 바라보며, 자이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주님, 그냥 사실을 말씀하시죠? 드워프의 왕국보다 저자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고…… 어휴.’
사실 강찬의 외모는 남자인 자신이 봐도 한숨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심지어 처음 봤을 때보다 지금이 더 빛나는 듯했다.
그동안 엘프들과 어울려 온 강찬의 외모는 그다지 특별한 점이 없었지만, 그것이 더욱 무서운 것이었다.
그는 엘프들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멸망하기 이전의 지구에 살던 인류는 미에 대한 집착이 극에 달했다 할 정도였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그들의 집착은 거의 광적인 것이어서, 돈만 있다면 전신에 칼을 대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 광기는 지구가 멸망한 이후에도 식을 줄을 몰랐고, 우주 개척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는 유전 공학의 발달에 힘입어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 미의 기준에 맞춰 자식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의 외모는 모두 과거 미남미녀라 불리던 모습으로 평준화되었다.
그러자 그때부터 미의 기준은 바뀌기 시작했다.
외모보단 개성이나 인격이 사람의 매력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된 것이다.
그러니 집착적인 규격 안에서 만들어진 강찬의 외모는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을까?
인간인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 엘프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런 강찬의 모습에 에델린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비단 그의 외모만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
어젯밤 자신 앞에서 피닉스를 강제 송환시켜 버리는 엄청난 위용을 보여 준 강찬의 모습도 큰 충격이었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의 우는 모습이었다.
남자가 우는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아르칸도르 대륙의 남자들은 여자 앞에서 우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겼기에, 에델린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남자가 우는 모습은 애들 말고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강찬이 눈물이 많은 남자인 건 아니었다.
레드 마스에 복무하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울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는 눈물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제이나의 죽음은 그런 그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괴로운 시련이었고 참기 힘든 아픔이었다.
“어휴…….”
거대한 기간테스에 기댄 채, 눈물을 흘리던 그의 애처로운 모습이 뇌리에 너무도 선명하게 박혀, 에델린은 연신 한숨만을 내쉬었다.
그녀가 이처럼 깊은 한숨만 내쉬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왔었다.
그녀에게는 그만한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찬은 예외였다.
그에게는 자신이 가진 권력이나, 배경 따위는 전혀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엘프들과 함께 생활해서 그런지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는 듯했다.
게다가 그는 제국 내에서 천재란 소리를 듣는 자이젠조차 상대가 안 되는 엄청난 실력의 검사이며, 피닉스를 강제 송환시키는 강력한 기간테스의 오너였다. 거기에 그 무시무시한 드래곤과 허울 없는 친구 사이이기도 했다.
엄청난 실력에 출중한 외모, 종족을 뛰어넘는 인맥…….
제국의 공주인 자신을 이토록 초라하게 만드는 남자는 여태껏 없었다.
만일, 그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그걸 가능케 하는 건 오로지 순수한 자신의 노력뿐이었다.
그러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언제 그런 노력을 해 봤어야지 말이다.
에델린은 그렇게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열병과도 같은 두근거림에 연신 한숨만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녀 말고도 틈틈이 강찬을 훔쳐보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 여인은 바로 엘리카였다.
그녀의 품에는 강찬에게 선물받은 신의 무기가 소중히 안겨 있었다.
물론. 그것이 신의 무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녀만의 착각이었지만 말이다.
허나 그 위력만큼은 그 누가 봐도 신의 무기라 착각할 만했다.
피난길에 오르기 전, 레드 마스호에 갔다 온 강찬은 그녀에게 레일 건의 탄약을 나눠 줬다.
탄약을 받아든 그녀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녀가 알고 있던 이 세계의 화살은 모두가 한결같은 모습이었는데, 강찬이 건네 준 화살은 그녀가 알고 있던 기존 화살에 대한 관념을 부숴 버리기에 충분했다.
화살이 너무나도 작고 귀여웠던 것이다.
레일 건에 들어가는 탄약은 약 3밀리미터 정도의 작은 탄두를 작은 캡슐이 고이 감싼 형태였는데, 그런 탄알이 200발씩 길쭉한 탄창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강찬은 그런 것이 여섯 개나 들어가는 탄입대를 가져와 손수 엘리카에게 입혀 주며 입는 방법을 자세하게 가르쳐 줬다.
그때 엘리카의 얼굴이 폭발할 듯 붉게 달아올랐지만, 무딘 강찬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탄입대를 두르고, 레일 건을 든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레드 마스 대원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찬은 다소 흡족함을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 강찬은 그녀에게 레일 건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줬다.
“레일 건은 반동이 매우 심하니까 이렇게 어깨에 바짝 견착시키고, 소총을 끌어안듯 잡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반동 때문에 생기는 부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강찬이 엘리카의 자세를 교정해 주기 위해 뒤에서 살짝 끌어안자 엘리카의 얼굴이 또다시 홍시처럼 붉게 물들었다.
“자, 천천히 안전 모드를 풀고, 단발로 놓은 다음에 조준점을 표적으로 향하게 하고 방아쇠를 당겨 봐요.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멈추고, 천천히 손가락의 힘을 세 번으로 끊으면서 당기세요.”
강찬의 말을 들은 엘리카가 천천히 바위 위의 돌멩이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이후 숨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