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54
퓨쳐나이트 54화
“고, 공주님. 지금 와서 이렇게 올라가셔도 저들에게 좋은 대접 받긴 이미 글렀습니다. 그러니 그냥 벨라렌으로 돌아가시죠.”
“싫어! 못 가! 아니, 안 가! 저놈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야 말겠다!”
평소보다 훨씬 독기 어린 그녀의 말에 자이젠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두고 봐라. 황족을 무시한 죗값을 받아 내고야 말겠다!”
“차라리 그러실 거면 황궁으로 돌아가셔서 황제 폐하께, 흑!”
자이젠은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에델린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버님께 의지하지 않겠다. 기필코 내 힘으로 해결하겠다. 저놈에게 여자를 울린 죗값을…….”
에델린이 뒷말을 일부러 작게 흘려 버렸지만, 자이젠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독특한 성품만큼이나 사랑법도 참 독특하십니다, 공주님. 그렇지만 지금 공주님에게 필요한 건 차가운 독기가 아니라 따스한 애정이란 걸 모르십니까? 슬픔에 잠긴 한 남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줄 수 있는 애정 말입니다.’
무가에서 태어나 연애 경험이 별로 없는 자이젠이 보아도 에델린의 행동은 마치 열 살짜리 꼬마 애들의 연애를 보는 듯했다.
좋아하는 애만 집요하게 못살게 굴고, 말 걸면 괜히 화내는 그런 애들 같은 행동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자이젠은 왠지 그녀가 더욱 귀엽고 순수해 보였다.
비탈길을 오르던 강찬이 무심결에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의 눈에 한참이나 뒤처져서 따라오는 에델린과 자이젠이 들어왔다.
에델린은 거의 초주검이 되어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공주님, 제가 업어 드리겠습니다!”
“이익! 놔라! 기필코, 허억! 허억! 내 발로 올라가겠다…… 봐라, 기필코 내 발로 올라가서, 허억! 허억…… 저놈에게 본때를…….”
“공주님, 이러다 사람 잡겠습니다. 제발 그냥 업히세요.”
강찬이 보기에 그녀는 정말로 지독한 운동 부족인 듯했다.
여기 모인 수만 명의 드워프와 엘프 중 아무도 숨이 흐트러진 사람이 없었는데, 오로지 그녀만이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신고 있는 샌들도 이런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실용성 없이 그저 단순히 예쁘게만 만들어진 샌들이었기 때문이다.
강찬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갔다.
에델린은 다시 자신에게로 다가온 강찬을 향해 눈에 불을 켜며 독기 어린 말을 내뱉었다.
“허억! 허억! 뭐냐? 또 본녀에게, 허억! 허억! 하고 싶은 악담이라도 남은 게냐?”
강찬은 그녀의 말은 듣지도 않고, 대뜸 그녀 앞에 앉아 그녀의 발을 살폈다.
역시나 그녀의 발은 얇은 샌들 끈 때문에 물집이 잔뜩 잡혀 있었다.
강찬은 그런 그녀의 샌들을 강제로 벗기기 시작했다.
“헛! 이게 무슨 짓이냐?”
이곳 에르칸도르 대륙에서는 남자가 숙녀의 발을 만지는 행위를 성적으로 굉장히 불미스러운 행동이라 간주했다.
졸지에 에델린의 얼굴이 폭발적으로 붉어졌다.
“강찬 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자이젠도 그런 행동에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그의 행동을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찬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런 샌들로는 더는 오를 수 없다.”
강찬이 입고 있던 전투 슈트의 일부가 손을 타고 뻗어 나와 천천히 그녀의 발을 감싸기 시작했다.
슈트에 내장된 마이크로 머신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여, 자신의 발을 감싸자 에델린이 다시 한번 깜짝 놀라 낮게 비명을 질렀다.
“꺄아…….”
그러나 점차 발의 통증이 가시고, 자신의 발에 훌륭한 검은색 신발이 만들어지자 놀란 눈으로 강찬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 발.”
강찬이 다른 발을 요구하자 에델린은 순순히 왼쪽 발을 내밀었다.
강찬은 오른발과 마찬가지로 샌들을 벗기고, 의료용 마이크로 머신으로 상처를 치료해 준 뒤에 오른발과 똑같은 신발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일어서서 에델린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럼 이만.”
강찬은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다시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강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에델린의 얼굴은 홍시를 방불케 했다.
새로운 신발로 갈아 신은 에델린이 또다시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이전과는 매우 달랐다.
강찬이 만들어 준 신발은 샌들처럼 불편하지 않았다. 무게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고, 탄력도 매우 좋아서 전처럼 쉽게 지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로 쉬지 않고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 그녀는 드디어 드워프의 왕국 마인킹덤의 입구를 밟을 수 있었다.
난생처음 자신의 힘으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녀는 기뻐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이룬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인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강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마음속은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로 가득했다.
* * *
그들의 도착에 맞춰서 마인킹덤의 거대한 강철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구구궁!
정말이지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두꺼운 강철 문이었다.
거대한 강철 문을 지나 한참 동안 어둡고 긴 동굴을 따라 들어가니, 그 안에 보이는 건 놀라울 만큼이나 거대한 지하 공동이었다.
그 넓이는 거의 웬만한 거대 도시 하나는 될 만큼 거대했다.
까마득히 높이의 천장 위에는 아름다운 종유석들로 가득했으며, 그 가운데에 하늘이 보이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바로 아래에는 은빛 물결이 출렁이는 아름다운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위에서 들어온 빛이 이 호수에 반사되어 사방을 밝게 비춰 주고 있었다.
거대한 공동의 벽은 호수의 너울거리는 은빛 물결이 반사되어 환상적인 모습을 자아냈고, 그 벽을 따라 드워프들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정말 저런 곳에 살아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수직에 가까운 구조물들이었다.
거대한 공동을 둘러보는 아르테온의 입에서 진심 어린 찬사가 터져 나왔다.
“정말 언제 보아도 참 아름다운 도시로군요.”
그런 그녀의 진심 어린 찬사에 크랙시온은 기분이 좋은 듯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자! 엘프들이 머물 곳은 부하 놈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성으로 가세나. 그리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의논해 보세.”
“알겠습니다.”
“아참! 그 이계에서 왔다던 친구도 함께 가는 게 좋겠군.”
크랙시온의 말에 아르테온이 반문했다.
“그는 왜?”
“오는 도중 그 친구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들었네. 그가 이번 침공을 막아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영웅이라면서? 그렇다면 앞으로의 작전 회의도 함께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가 엄청난 활약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네, 맞아요. 이번 위기에서 강찬 님에 도움이 없었다면 저와 엘라디온 님도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럼 그를 회의에 참석시키는 것으로 알고 조치하겠네.”
“네, 크랙시온 님.”
아르테온이 크랙시온의 말에 수긍하자 크랙시온은 수하에게 강찬을 찾아 회의장으로 데려오라 명령하고, 서둘러 두 사람과 함께 회의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들이 회의실로 향하고 있을 무렵, 마인킹덤을 둘러보는 강찬은 의아한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이곳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예전에 한번 와 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강창은 이 별에 온 이후로 지금껏 단 한번도 엘프의 숲을 벗어나 본 일이 없었다.
그러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 * *
은빛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크랙시온의 궁은 인간들의 궁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예술성에서는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아름다운 성이었다.
벽돌부터 하나하나 새겨진 무늬만 봐도 인간 세계로 가져가면 부르는 게 값일 정도의 예술 작품이었다.
그런 궁 안에 위치한 회의장 안에선 크랙시온과 다섯 명의 드워프 장로들, 그리고 아르테온과 엘라디온이 원탁에 둘러앉아 긴밀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이 논의하는 이야기는 이번 침공에서 적들이 보여 준 가공할 괴물들과 다크 엘프들의 치밀함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중. 20만이 넘는 대군이 지하를 통해 기습했다는 엘라디온의 말에 드워프 장로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어떻게 지하를 통해서 그 많은 대군을…….”
“엄청나게 오랫동안 준비하지 않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맞습니다. 땅을 파본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겁니다.”
그들의 말에 엘라디온도 깊게 수긍했다.
“아마도 그 침공로는 오랜 세월 동안 다크 엘프 놈들이 우리 엘프의 숲을 공격하고자 준비했을 겁니다. 그런 놈들을 녹색 엘프들이 돕겠다고 나선 것이겠지요. 이것도 좀 봐 주시겠습니까?”
엘라디온이 손바닥만 한 크기에 검정색의 딱딱한 껍질을 원탁 위로 꺼내들었다.
바로 블랙 샌티패드의 껍질이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드워프 장로의 물음에 엘라디온은 치가 떨린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이 이번 침공에 동원한 괴수의 껍질입니다.”
“이것이 껍질이라고요? 검정색 광택이 나는 괴수라니…… 설마?”
껍질을 받아 든 드워프 장로가 품에서 작은 망치를 꺼내 블랙 샌티패드의 껍질을 살짝 두들겨 보았다.
그러자 울려 퍼지는 맑은 소리에 드워프 장로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것은 엄청난 강도의 금속에서나 나는 맑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드워프 장로는 다시 품에서 황금빛이 나는 작은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꺼내 껍질에 대고 긁었다.
그러자 듣기 거북한 금속성 마찰음이 회의장에 울려 퍼졌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드워프 장로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이럴 수가!”
“이런! 세상에, 맙소사!”
잠자코 지켜보던 다른 드워프 장로들도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감탄사를 연발하자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테온이 엘라디온을 보며 말했다.
“정말 더럽게도 단단했죠?”
아르테온의 다소 과격한 표현에 엘라디온은 약간 당황하며 대답했다.
“네에? 아, 네, 정말로 단단했죠.”
평소 비속어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아르테온의 입에서 다소 과격한 표현이 나올 정도면, 그것은 정말로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세상에, 골드 드래곤의 비늘로 긁었는데도 흠집조차 안 나다니! 설마 전설로만 내려오던 블랙 샌티패드가 현존한단 말인가?”
지저 생태계의 최강자인 딥 드래곤 다음으로 강하다는 거대 지네 블랙 샌티패드의 존재가 지상에 처음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블랙 샌티패드요?”
“아주 어릴 적에 오래된 고서에서 이 생명체에 대해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땐 그냥 상상 속의 생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놀랍군요. 고서에 따르면 아주 깊고 어두운 심연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무시무시한 생명체들이 우글우글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최강의 괴수는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아는 딥 드래곤이고, 그 다음으로 강한 것이 바로 블랙 샌티패드입니다. 하지만 그 괴수는 아직까지 그 정체가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는 미지의 생물입니다. 그저 아주 오래전에 저희 선조께서 새로운 광물을 찾아 아주 깊이까지 내려가셨다가 놈에게 큰 봉변을 당하셨는데, 그때의 이야기가 책 속에 남아 대대로 전해질 뿐입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그 괴물은 거대한 몸집에 검은 금속성 껍질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 단단한 껍질 앞에선 그 어떤 무기도 소용없었고, 입에서 뿜어진 강력한 산성 용액은 금속조차 녹여 버렸다고 했습니다.”
나이 많은 드워프가 기억을 더듬으며, 중얼거리자 아르테온과 엘라디온은 또다시 마주 보고 말했다.
“바로 그 괴물이군요.”
“어쩜, 한 치에 오차도 없네요.”
아르테온과 엘라디온이 드워프 장로가 말한 괴수와 엘프의 숲을 침공한 괴수가 일치한다고 말하자 드워프들이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그토록 강력한 괴물을 광산 안에서 만날까 두려운 듯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강력한 괴수를 마음대로 부릴 수가…….”
“엘븐 나이트를 타고 제자들과 함께 그 괴물과 싸워 봤는데, 한 마리가 엘븐 나이트 2기를 가볍게 상대하더군요.”
엘라디온의 말에 엘븐 나이트를 설계한 그들의 입에서 또다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자신들이 만든 기간테스인 만큼 그 성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