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55
퓨쳐나이트 55화
“정말 무시무시한 괴수로군요.”
“네, 수천에 이르던 엔트의 공격도 그 단단한 껍질 앞에선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아르테온의 참담한 말에 드워프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고민에 잠겼다.
그렇게 그들이 침묵에 잠겼을 때, 회의장의 문을 열고 강찬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어서 오게. 이리 와서 앉게나.”
강찬이 드워프 왕이 권해 주는 자리에 앉자 엘라디온이 낯선 드워프들에게 강찬을 소개했다.
“제가 정식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제자인 강찬이라고 합니다.”
“네에?”
“제자?”
엘라디온의 폭탄 선언에 회의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드워프들이 놀라 믿지 못하겠다는 듯 쳐다보는 것은 물론이오, 특히 아르테온의 놀라움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도도하고 자존심 센 엘프가 한낱 인간 따위를 제자로 받아들인 경우는 여태 본 적이 없던 것이다.
물론. 제자인 강찬도 엘라디온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스터, 그것은 절대 비밀이라고…….”
“이제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하, 하지만…….”
손을 들어 강찬의 말을 끊은 엘라디온이 아르테온에게 고개 숙여 정중히 사과했다.
“제가 예전에 아르테온 님께 이 일로 상의를 드린 적이 있었지요?”
“예에, 물론 기억이 나지요. 허나 그때 전 분명히…….”
“네, 분명히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 제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율법을 어기고 제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점, 이 자리를 빌어 깊이 사과드립니다, 아르테온 님.”
“아니에요, 엘라디온 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엘라디온 님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당황스럽네요.”
자신을 향해 방긋 웃어 주는 아르테온을 보며, 강찬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동안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한다고 말해 온 엘라디온이 이렇게 직접 공개적인 자리에서 충격 선언을 해 버렸으니 말이다.
“그동안 속여서 죄송합니다.”
“저도 그동안 강찬 님에게서 마나가 느껴지기에 혹시 지크욘 님이 마나를 불어넣어 주셨나 했는데, 그게 저희 엘프의 검을 익히고 쌓으신 마나라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제가 배운 검술은 엘프의 검이 아니라 천! 으읍!”
어차피 마스터가 둘만의 비밀을 모두 밝혀 버렸으니, 강찬은 이제 더 이상 숨길 게 없다고 판단하고 자신이 배운 검술의 이름까지 서슴없이 밝히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입을 엘라디온이 급히 틀어막았다.
‘그, 그것만은 안 된다!’
엘라디온의 이상한 행동에 아르테온의 아미가 꿈틀거렸다.
“천? 배우신 게 엘프의 검이 아니라니요?”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요즘 제가 새로운 검술을 만들고 있는데, 그것을 이놈에게 익히게 했습니다. 이름은 아직 비밀이라서요, 아하하하하!”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혹시 강찬 님이 익혔다는 게 천둥번개 이도류일까 걱정했는데 말이죠.”
“서, 설마! 엘프의 검인 제가 자기 제자에게 남이 만든 검술을 가르치겠습니까? 아하하하하!”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엘라디온을 노려보던 아르테온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 싶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제자에게 남의 검술을 가르칠 마스터는 없었기 때문이다.
“알았으니까요, 제발 그 호들갑 좀 그만 떨고 자리에 앉으세요.”
“아! 아, 네!”
아르테온의 말에 얼굴을 붉힌 엘라디온이 자리에 앉으면서 강찬을 향해 입 모양으로 ‘넌 죽었어.’라고 말했고, 그를 본 강찬의 표정이 대번에 새파래졌다.
그 이후,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와중에 크랙시온이 진중하게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저기, 듣자하니, 지크욘 님이 마나를 불어넣어 줬다고 했는데, ……설마, 그 지크욘이 내가 알고 있는 그 ‘G.지크욘’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불안함이 깃든 그의 질문에 강찬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제 친구입니다.”
“헉!”
“히이이이익!”
“끼에엑!”
“히에에에에엑!!?”
“뜨아아아악!”
“캬아아아악! ?!”
갑자기 크랙시온을 필두로 다섯 명의 장로가 일제히 경기를 일으켰다.
심지어 바닥에 가래침을 뱉는 드워프도 있었다.
경기하던 장로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을 치며 물었다.
“치, 친구라면, 서, 서, 설마! 다, 당신도 드, 드, 드, 드래곤?”
너무나 격한 반응을 보이는 드워프들을 바라보며, 강찬이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고, 아르테온이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부랴부랴 발 벗고 나섰다.
“아닙니다. 강찬 님은 드래곤이 아니에요. 이분은 분명히 인간입니다. 단지 지크욘 님과 마음이 맞아 진실한 친구가 된 것뿐입니다.”
“마, 마음이 맞아?”
“진실한 친구?”
“그게 가능한 건가?”
“…….”
아르테온의 말은 그들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불난 집에 기름이라도 부은 것처럼 그들의 반응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그 악마와 뜻이 맞아 친구가 된 것이라면, 그대 또한 악마란 말인가?”
너무나도 두려운 나머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크랙시온.
보다 못한 강찬이 화를 냈다.
“악마라니요?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사과하세요. 그놈이 비록 밥만 축내는 밥벌레지만 제 친구입니다.”
“사, 사과라고? 그 악마가 우리한테 한 짓! 으읍!”
크랙시온이 지크욘의 대한 과거를 낱낱이 말하려고 하자 순식간에 그의 옆에 나타난 아르테온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 으읍?!”
“아 아하하하…… 크랙시온 님? 자, 잠시만요.”
강찬과 엘라디온의 눈앞에 아까 자신들이 벌인 상황과 매우 비슷한 광경이 벌어졌고, 아르테온은 크랙시온과 다섯 명의 장로를 데리고 급히 회의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갑자기 왜 저러시는지?”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아르테온 님이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근래에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궁금해하는 강찬과 엘라디온을 뒤로하고, 아르테온이 크랙시온과 다섯 명의 장로를 끌고 나가 정신 교육에 들어갔다.
* * *
그 무렵, 지루한 동족 회합을 서둘러 끝내 버린 지크욘은 강찬을 만나기 위해 그가 있을 레드 마스호로 순간 이동해 돌아왔다.
하지만 그토록 보고 싶은 친구 강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그의 방에는 달랑 편지 두 장만이 남아 있었다.
하나는 사랑하는 제이나에게 보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지크욘에게 보내는 것이었었다.
그 편지를 발견한 지크욘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 설마 떠난 것인가?”
제이나에게도 편지를 쓴 걸 보면 둘이 사랑의 도피를 한 것도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그는 원래 살던 이계로 돌아갔을 수도 있었다.
다급해진 지크욘이 자신에게 쓴 편지를 거칠게 펼쳤다.
그리고 서둘러 글을 읽어 내려가던 지크욘은 의외의 내용에 눈을 부릅떴다.
편지에는 녹색 엘프들이 다크 엘프들과 손을 잡고, 새벽을 틈타 기습을 감행했다는 이야기, 엘프의 마을이 파괴되었고, 그들의 손에 자신이 사랑하는 제이나가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이어, 그녀의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나니 말없이 떠나는 자신을 부디 용서해 달라고 적혀 있었다.
편지를 다 읽은 지크욘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걱정과 달리 강찬이 이계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의 유희가 끝났다고 단정 짓기에는 일렀다.
그녀에게는 이 세상 끝까지라도 강찬을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일단 강찬의 뒤를 쫓기 위해 그의 행방을 찾아 엘프들의 마을로 공간 이동했다.
순식간에 엘프들의 마을로 이동한 그녀는 또다시 놀라움에 눈을 부릅떴다.
“헉! 어, 어떻게 이런!”
그녀의 앞에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평선이 보일 만큼 끝도 없이 파괴된 숲의 정경이 그녀의 시야를 가득 메웠고, 자신의 발아래 있어야 할 엘프들의 마을도 숲과 함께 재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크욘은 순간 넋을 잃고 그 삭막한 풍경을 바라봤다.
“어, 어떻게 감히…… 나의 영토에 이런 짓을!”
지크욘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드래곤이 보기에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지크욘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끌어 올랐다.
“네놈들의 능력이 얼마나 되기에…… 감히 나, G.지크욘의 영토에 이런 짓을!”
살기를 피우며 천천히 공중을 배회하던 그녀는 또다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엄청난 고열에 흙과 바위가 녹아서 유리처럼 변해 버린, 넓이가 족히 수백 미터에 이르는 드넓은 파괴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그녀가 알기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레드 일족이나 불의 정령왕 피닉스뿐이었다.
하지만 레드 일족이 이런 짓을 할 리는 없었다.
감히 로드인 자신의 영역에 허락도 없이 브래스를 뿜는 미친 짓을 말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오로지 피닉스뿐이었다.
“녹색 엘프의 수장이라는 계집이 4대 정령왕과 계약했다더니. 그래, 피닉스라면 내 숲을 이렇게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지.”
지크욘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당장에라도 녹색 엘프들을 찾아가 본때를 보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번 드래곤의 회합에서 드래곤들은 그들의 행위를 묵인할 것으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이유가 바로 그것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회합에 참석한 드래곤들은 너무 비대해져 가는 인간과 오크들의 수를 줄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것은 비단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드래곤들과 긴밀한 사이를 지켜 오던 정령왕들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다.
인간들의 무분별한 마나 남용으로 자연계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드래곤들은 정령왕의 요청에 자신들의 의견을 더해 중립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런 마당에 로드인 자신이 결정을 번복하고, 그들에게 공격을 가할 수는 없었다.
“끄응, 빌어먹을…….”
지크욘은 분노로 머리가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드래곤의 로드로서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영토에 저지른 짓과 말년에 얻은 소중한 친구를 빼앗아 가려 한 행위는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
“빠드드득! 두고 보자…….”
지크욘은 분노를 억지로 삼키며,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은 강찬의 행방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었다.
지크욘은 일단 마나를 가진 생명체를 찾아 엘프의 숲 전역을 뷰 마나 포스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강찬과 엘프들은 마나를 가지고 있으니, 그쪽으로만 찾으면 더욱 빠르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족히 수백 킬로미터나 되는 엘프의 숲에 뷰 마나 포스를 사용하는 것은 그가 에이션트 드래곤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광범위한 뷰 마나 포스에 마나를 가진 여러 명이 포착되었다.
지크욘은 주저 없이 그쪽으로 텔레포트를 감행했다.
그러자 날아간 지크욘의 눈앞에 여러 명의 엘프들이 보였다.
보아하니 그들은 마법사들 같았다.
또한 그들 말고도 마나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드워프들도 수백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중장비를 이용해 거대한 기간테스의 잔해를 운반하는 중이었다.
지크욘은 사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 주변 일대에는 기간테스의 잔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아마도 이들은 부서진 기간테스의 잔해를 수거하고 있는 듯했다.
기간테스의 잔해라면 지크욘도 탐이 날 만큼 값비싼 재료들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지크욘은 기간테스 수거에 한창인 그들에게 다가가 강찬의 행방을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때 지크욘의 이목에 또 다른 수백 명의 생명체들이 잡혔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만 있었다.
아마도 기간테스의 잔해를 수거하기 위해 찾아올 엘프들을 기다리는 암살자들 같았다.
그들은 인비지빌리티 마법진 위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은신해 있었다.
거기다 마법사들을 속이기 위해 하이드 마나 포스를 걸어 둔 마법진까지 따로 만들어 두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드래곤인 지크욘의 이목을 속일 수 없었다.
지크욘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그래…… 니들 자. 아. 알 걸렸다.”
기척을 숨기고 있던 녹색 엘프의 병사들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더는 보충되는 인원 없습니다. 현재까지 마법사는 총10명, 드워프 전사 총 135명입니다.”
“궁수들과 마법사들은 엘프 마법사들을 기습하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 드워프들을 친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천천히 하이드 마나 포스 마법진에서 벗어나 극도로 조심스럽게 엘프들과 드워프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충분한 공격 거리가 되자 궁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