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57
퓨쳐나이트 57화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아! 죄송합니다! 네, 그도 함께 갔습니다.”
“그래? 그럼 당장 그곳으로 가자. 앞장서라.”
“저, 저기, 하오나…… 저희들은 여기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지크욘은 혼자서도 드워프들의 왕국인 마인킹덤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또 강찬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게 귀찮아 눈앞의 엘프를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엘프에게는 중대한 사명이 있었다.
종족 재기의 밑거름이 될 기간테스의 회수 작업 말이다.
지크욘도 엘프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억지로 그녀를 끌고 가기보단 그들의 일을 도와주는 게 훨씬 남 보기도 좋고, 자신의 체면을 살리는 일이라 판단했다.
“해야 하는 일이란 게 여기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기간테스라 불리는 쓰레기들을 옮기는 것이지?”
“네, 맞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내가 도와주겠다. 그러니 이것들을 옮겨야 할 곳의 좌표를 불러라.”
도와주겠다는 지크욘의 말에 엘프는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와주신다고요?”
“그래, 시간이 없으니 어서 좌표를 불러라.”
“자, 잠시만요.”
엘프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드래곤이 목숨을 구해 준 것도 모자라 엘프들을 돕겠다고 나섰으니 말이다.
만약 지크온이 자신들을 도와준다면, 그들은 더욱 빨리 재기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각각 60톤이나 나가는 이 거대한 기간테스들을 49기나 이동 마법진으로 옮겨 드워프의 마을로 공간 이동시키는 일은 며칠이 걸릴 지 모를 고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기간테스를 공간 이동시킬 때 드는 마나의 양 또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기 위해 모여 있을 엘프들은 이 작업을 위해 앞으로 몇 주 동안은 계속 탈진 상태로 지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여기 있습니다. 이게 좌표입니다.”
엘프의 품에서 나온 양피지에 좌표를 확인한 지크욘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녀의 발아래로 갑자기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법진이 알아서 빠르게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엘프들이 힘을 합쳐 혼신의 힘으로 만든 마법진은 그 거대한 마법진에 덮여 검게 타올랐다.
분명 반대편의 마법진도 똑같이 불타올랐을 것이다.
이윽고 마법진이 완성되자 지크욘은 서서히 날아올라 여기저기 널브러진 기간테스 잔해들을 차례대로 마법진을 향해 옮기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간테스들이 서서히 날아오르기 시작하더니, 차례대로 마법진을 통해 공간의 반대편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지켜보는 엘프 마법사들이 거의 기절할 정도로 말이다.
그들의 계획은 기간테스의 팔다리를 분해하고 경량화 마법을 건 뒤에 드워프들이 가져온 중장비로 하나씩 실어서 옮기는 것이었다.
물론, 경량화 마법이 없다면 고작 100명의 인원으로 파괴된 기간테스를 옮기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크욘은 그런 과정 따위는 과감히 생략하고, 순수한 마법의 힘만으로 수십 대의 기간테스를 동시에 옮기고 있었다.
길게 줄을 늘어선 기간테스들이 차례대로 마법진을 통해 어디론가 이동되고 있었다. 엘프 마법사들은 그 모습만 봐도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지크욘이 지금 엄청 고차원적인 마법 세 가지를 동시에 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력 반전 마법과 장거리 워프 마법을 말이다.
엘프들은 한 가지만 하려 해도 마법진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한 고위급 마법들이었다.
그런데 지크욘은 공중 부양 마법까지 더해 세 가지 마법을 여유롭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모든 기간테스들이 마법진을 통해 마인킹덤으로 이동됐다.
그들이 예상했던 기간은 일주일이었는데. 지크욘은 혼자서 단 두 시간 만에 끝내 버린 것이다.
정말 놀라지 않고는 못 배길 광경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천하의 에이션트급 드래곤이라고 해도 중량 60톤의 거대한 기간테스 49대를 장거리 워프로 옮기니 진이 다 빠져 버렸다.
“헉, 헉, 헉, 이제 다 옮겼지? 그치? 헉, 헉.”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지크욘의 모습은 아주 낯설었지만, 그래도 땀에 흠뻑 젖어 거친 숨을 내쉬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는 더욱 섹시해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 앞에 서 있는 엘프는 여자였으니, 그런 그녀의 섹시한 모습에 별다른 반응을 보일 리 만무했다.
“자, 그럼 모두 끝났다. 이제 마인킹덤으로 가자꾸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저희가 드래곤께 입은 이 은혜는 영원토록 저희 엘프들에게 영광이 될 것입니다.”
입바른 소리만 하는 엘프의 말이 싫지 않은 지크욘이었다.
게다가 바람이 불어 이마와 가슴 계곡 사이로 흐르는 땀방울이 오늘따라 매우 시원하게 느껴지니, 뭔가 뿌듯한 감정마저 드는 것이었다.
‘일하고 흘리는 땀방울이 이렇게 시원한 것인가?’
살아오면서 이토록 육체노동을 해 본 기억이 없으니, 지크욘은 왠지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그녀는 약간의 갈증을 느끼며, 아까 챙겨 둔 사과를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그녀의 손에서 냉기가 풀풀 날리는 것을 보니, 차갑게 식힌 사과임이 분명했다.
얼음처럼 차갑게 식은 사과는 정말로 꿀맛 같았다. 특히 고된 중노동을 한 후라 그런지 더욱 맛이 좋았다.
“와, 이거! 진짜 맛있네?”
지크욘과 같은 드래곤들이 평소에 드래곤이 아닌 종족의 모습으로 지내는 것은 바로 이런 맛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본체로 지내서는 결코 이런 맛을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콩알만 한 사과 하나 입에 던져 넣어 봐야 무슨 맛이 있겠는가?
지크욘이 사과를 먹으며, 깊은 감탄사를 내지르자 지켜보는 엘프도 군침을 삼켰다.
과일이 주식인 엘프에게 드래곤조차 감탄사를 터트리게 하는 사과가 너무도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전쟁이 난 직후부터 변변치 않은 채소류로만 배를 채웠기에, 달콤한 향의 사과는 너무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런 그녀의 눈빛을 읽은 지크욘이 품에서 사과를 꺼내 엘프에게 내밀었다.
“너도 하나 먹어 볼 테냐?”
지크욘이 사과를 꺼내 똑같은 방법으로 냉각시켜 엘프마법사에게 권해 줬다.
금은보석이었다면 절대로 넘겨주지 않았겠지만, 드래곤은 음식에 있어선 그다지 욕심이 없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절 주시는 겁니까?”
“그래, 받아라.”
“감사합니다.”
엘프는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차가운 사과를 받아들고는 그대로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작고 앵두 같은 입이 어쩜 저리도 크게 벌어지는지 의문이었지만, 대번에 사과의 반 가까이를 베어 문 엘프는 얼음처럼 차갑고 달콤한 사과의 시원한 청량함을 만끽했다.
우적우적
“맛있느냐?”
입에 한가득 사과를 물고 있는 엘프가 대답 대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자 지크욘도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자신이 만든 사과를 저리도 맛있게 먹어 주니 말이다.
지금 지크욘이 느끼는 뿌듯함은 농부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역시 비료를 잘 써야 해.”
“푸읍!”
비료 얘기를 들은 엘프 마법사가 먹던 사과를 뿜어냈다.
“괜찮으냐?”
“켁! 켁! 네, 네 괜찮습니다.”
“너무 맛있다고 급히 먹다 체했구나.”
“마, 맞습니다, 지크욘 님.”
사과 맛에 정신이 팔려 이 사과가 어디서 자라난 것인지 잠시 잊고 있었는데, 지크욘의 말 한마디에 그 생지옥이 생각나 버렸다.
수백 명을 걸레처럼 쥐어짜서 나온 피를 먹고 자란 유기농 사과…… 엘프 마법사는 갑자기 식욕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천천히 먹어라. 나도 천천히 먹을 테니.”
“네에? 예에…….”
지크욘이 웃으면서 그녀 앞에서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그녀에게도 한입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녀 또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금 사과를 한입 베어 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과의 맛은 아까와는 달리 전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거기다 왠지 모르게 비릿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날 엘프는 생각에 따라 맛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면서 사과를 먹었다.
지크욘 덕분에 말이다.
억지로 사과를 뱃속에 쑤셔 넣은 엘프 마법사는 서둘러 지크욘을 이동 마법진으로 안내했다.
혹시나 지크욘이 사과를 하나 더 권할까 싶어서였다.
“저희가 저쪽에 마법진을 준비해 놨습니다. 지크욘 님은 이제 오르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래? 앞장서라.”
“예.”
* * *
지크욘이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마인킹덤으로 향할 무렵, 마인킹덤은 난리가 났다.
그들이 만들어 둔 공간 이동 마법진이 갑자기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반대편에서 누군가 공간 이동 마법진을 파괴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말인즉슨 파괴된 기간테스를 회수하고자 떠났던 이들이 적들에 습격을 받고 전멸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떠나간 동료의 죽음 앞에 모두가 눈물을 흘릴 때.
갑자기 불타 사라진 마법진 위로 이전보다 훨씬 더 거대한 마법진이 새로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놀랍도록 고차원적인 마법진이었다.
“헉! 서, 설마?”
그 거대한 마법진을 바라보는 엘프 마법사들은 덜컥 겁이 났다.
저것은 분명 적들이 수송 경로를 역추적해 이곳으로 공간 이동을 시도하려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공간 이동에 필요한 마력을 불어넣기 위해 모여 있던 30명의 엘프 마법사들이 온 힘을 다해 마법진을 왜곡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눈앞에 마법진은 감히 상상도 할 수도 없을 수준의 마법사가 만든 고차원적인 공간 이동 마법진인 것이다.
결국 그들은 마법진에 손도 댈 수 없었다.
이젠 그저 막연히 공간을 넘어오는 적들에게 공격 주문을 날려 초전 박살을 낼 수밖에 없었다.
“공간 이동 왜곡은 포기한다! 다들 공격 주문을 영창 해라!”
“네!”
서둘러 공격 주문을 영창하는 엘프 마법사들.
허나 그들은 또다시 절망에 빠져 버렸다.
마력을 잔뜩 끌어올린 채 긴장하고 있는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대한 실루엣은 누가 봐도 기간테스였기 때문이다.
기간테스라면 기본적으로 웬만한 마법 정도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두꺼운 강철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거기다 등급에 따라 마법 보호막이 설치되어 있어서 고위급 마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상대가 그들 앞에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니, 마법사들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러나 점점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기간테스는 정상이 아니었다.
온몸의 관절이 파괴되어 있었고 견갑부 안의 조종석도 모두 파괴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고철이라는 소리였다.
그들은 서로 의아한 마음에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자신들이 만든 엘븐 나이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지?”
이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기간테스 회수 작전은 성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 그들은 다른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밀려드는 기간테스 때문에 말이다.
2분마다 1대 꼴로 마법진 위에 고철이 된 기간테스가 쌓여 갔다.
기간테스가 이토록 빠르게 이송되어 오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었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썅! 이쪽 사정은 생각지도 않나 보군…….”
“이런 시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누가 대체 이따위로 무식하게 기간테스를 공간 이동시키고 있는 거야?”
“난들 알겠어? 어디 드래곤이라도 도와주고 있나 보지.”
“어이구, 정말 그 말이 사실이면 내가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장을 지져!”
“하하하! 나도!”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 중인 드워프들이 희희낙락 농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
드넓은 공터 한구석에 마련된 공간 이동 마법진에서 밝은 빛이 뿜어지며더니, 그 위로 두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다 왔습니다, 지크욘 님.”
“그래, 오랜만이구나. 예전에는 자주 왔었는데.”
빈손으로 왔다 양손 가득 돌아갔던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며, 지크욘은 잠시 감회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그의 감회를 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글로리아 자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엘프 마법사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선 막 작업을 끝마친 엘프 마법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 아도라 님!”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어떻게 저 많은 기간테스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아도라라 불린 엘프 마법사는 글로리아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다가 이내 그녀 옆에 서 있는 왠지 토라진 듯한 표정의 아름다운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