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58
퓨쳐나이트 58화
“자매, 이분은?”
“인사드리세요. 이번 기간테스 회수 작업을 도와주신 G.지크욘 님이세요.”
“지, 지크욘 님? 지크욘 님이라고? 서, 설마, 엘프 숲의 지배자!”
“네, 녹색 엘프의 기습으로부터 저희들의 목숨도 지켜 주셨어요. 정말 좋은 분이세요.”
좋은 분이라고 말하는 글로리아의 억양이 조금은 떨렸지만, 그녀가 자신들을 구해 준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다소 괴팍하긴 했지만 말이다.
“미, 미천한 엘프가 위대하신 분을 뵙습니다!”
아도라라는 엘프 마법사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냉큼 엎드려 절하자 옆에 있던 다른 엘프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넙죽 엎드려 절하기 시작했다.
지크욘은 그녀들의 인사를 대충 받아넘기고는 서둘러 강찬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드워프 일꾼들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니, 쟤들 갑자기 왜 저래?”
“내가 어떻게 알아.”
“어! 저기 저 엘프, 선발대로 갔던 그 엘프 마법사 아니야?”
“맞네! 가서 우리 동료들은 어떻게 됐나 물어보자.”
작은 키이 털북숭이 드워프들이 아직도 엎드려 있는 엘프들에게로 우르르 몰려갔다.
“어이, 이보시오, 왜들 그러고 있는 거요?”
“드, 드, 드.”
“뭐라고 하는 거요? 거 말 좀 똑바로 해 보시오.”
잔뜩 겁에 질린 엘프가 말을 더듬자 답답하다는 듯이 드워프가 다그쳤고 그러자 천천히 고개를 치켜든 엘프는 마치 귀신을 보고 놀란 눈으로 말했다.
“드, 드래곤이었어요. 기간테스를 날라 준 게…….”
“에엑! 드, 드래곤?”
드래곤이란 말에 드워프들의 얼굴이 소태 씹은 듯 일그러졌다.
“그, 그럼 설마 아까 그 인간 여인이 드, 드, 드래곤?”
“네, 그 여인이 바로 엘프의 숲의 주인인 G.지크욘 님입니다.”
“G.지크욘!”
지크욘이란 말에 모여 있던 드워프들은 더욱 경악했다.
그가 누군가? 수천 년 동안 자신들을 가축 부리듯 수탈했던 사악한 드래곤 아닌가?
농담 삼아 드래곤이라면 장을 지지겠다던 드워프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동료를 바라봤다.
“진짜로 드래곤이었어. 어, 어떻게…….”
“뭘 어쩌긴 어쩌나, 지져야지?”
“뭐, 뭘 말인가?”
“자네, 아까 장을 지지겠다 하지 않았나?”
“이 사람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러나?”
“아니! 아까 분명히 장을 지진다고 하지 않았나? 옆에 푸취킨, 자네도 함께 말이야.”
“난 또 왜 끌어들이나!”
“자네들, 사내 맞나? 어찌 드워프 사나이가 한 입으로 두말한단 말인가? 이거, 자네들에게 매우 실망이네.”
동료들 모두가 실망의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자 드워프 둘의 안색이 차츰차츰 굳어 갔다.
이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은 신용을 잃고 앞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거짓말쟁이로 통하게 될 것이었다.
드워프들은 약속을 생명과도 같이 지켰기 때문이다.
“미, 미안하네. 그냥 장난으로 해 본 말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나, 다니카! 드워프 사나이로서 약속을 지키겠네!”
“나 푸치킨도 드워프 사나이로서 약속을 지키겠네!”
그냥 봐줘도 될 일이지만, 그들은 기어코 친구의 손을 불로 지졌다.
드워프들에게 약속은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마인킹덤 안에서 구슬픈 두 드워프들의 비명 소리가 낮게 울려 퍼질 무렵, 지크욘은 강찬이 머물고 있는 왕성의 귀빈 접대용 방 앞에 도착했다.
“이 방이 강찬 님이 머물고 계신 방입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 많았다. 여기 수고비다. 가면서 먹어라.”
지크욘은 또다시 사과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사과를 받아든 글로리아의 표정은 많이 당황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최대한 허리 숙여 성의 있게 인사한 뒤. 지크욘의 앞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원, 저리도 사과가 좋을까?”
흐뭇하게 웃음 짓는 지크욘은 강찬이 머물고 있다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그러나 아무리 방문을 두드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지크욘이 또다시 방문을 두들겨 보았지만 여전히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안에 없나? 뷰 마나 포스.”
지크욘이 마나 탐지 마법으로 방 안을 살펴보자 방 안에는 누군가 있음이 감지되었다.
“뭐지? 누군가 있잖아? 일단 들어가 볼까?”
지크욘은 일단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지크욘의 몸이 점차 투명해지더니 문을 뚫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매우 어두웠고, 누군가가 침대에 조용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누구시죠?”
모기처럼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지크욘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강찬이라는 사실을 대번에 알아챘다.
“야, 너! 어떻게 친구한테 그딴 편지 하나 달랑 남겨 놓고 떠날 수가 있냐?”
“지, 지크욘?”
“그래, 나다! 지크욘! 방구석이 이게 뭐냐? 라이트!”
지크욘이 라이트 마법으로 방안을 대낮처럼 훤히 비추자 강찬이 눈부심에 얼굴을 구겼다.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침대 위에서 비비적거리고 있냐? 밥은 먹었어?”
지크욘이 강찬의 침대 위에 걸터앉아 강찬을 살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네가 그렇게 떠나면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냐?”
“미안하다.”
“밥은 먹었어?”
“아니…….”
“일단 밥이나 먹자. 나도 너 찾느라고 오늘 밥 한 끼도 못 먹었다.”
“미안한데 내가 지금 입맛이 없어서, 같이 가 줄게. 넌 밥 먹어라.”
강찬은 요즘 제이나의 대한 그리움에 거의 식사를 못하고 있었다.
“으이구, 지랄을 합니다, 지랄을…… 복수하겠다면서 편지 한 장 달랑 적어 놓고 친구도 버린 놈이 이게 뭐 하는 꼴이냐? 그래서 어디 힘이나 쓰겠어? 옜다, 하나 남은 거 아껴 둔 건데, 이거나 먹어라.”
지크욘이 강찬에게 사과를 내밀었다.
강찬이 물끄러미 사과를 바라보자, 지크욘이 손에 냉기를 분출해 살짝 얼려 강찬의 손에 쥐어 줬다.
“너 찾아오는 길에 만난 녹색 엘프들의 피로 만든 사과다. 거름이 좋아서 그런지 아주 맛있어. 먹어 봐.”
녹색 엘프들의 피로 만든 사과라는 소리에 강찬은 정신이 번뜩 났다.
그러고는 천천히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정말로 달콤하고, 청량한 사과의 맛이 강찬의 입안에 가득 퍼졌다.
그런 강찬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과의 맛 때문에 예전 제이나가 자신에게 던졌던 과일 바구니가 생각난 것이다.
동시에 처음 과일을 먹었을 때 느꼈던 그 전율이 다시금 그의 몸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야, 먹으면서 왜 우냐? 그렇게 맛있냐?”
“이게…… 그들의 피로 만든 사과라고?”
“어, 한 200명 정도였나? 비틀어 짜서 죽였는데, 말라비틀어진 놈들이라서 그런지 피도 얼마 안 나오더라고 그런 놈들의 피를 비료로 뿌려서 키운 사과야. 어때, 맛있지?”
다른 누군가 들었다면 헛구역질이 나올 소리였겠지만, 강찬이 듣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강찬은 매우 기뻤다.
지크욘이 그들을 그렇게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였다는 사실이 말이다.
강찬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별로 크지 않은 사과여서 강찬이 크게 세 입 베어 먹자 순식간에 꽁지만 남아 버렸다.
“다들 사과를 무지 요란하게 먹는데?”
“고맙다, 지크욘. 네 덕에 정신을 차렸어.”
“으응? 내가 뭘 했다고?”
지크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그들을 잡아 죽였을 뿐인데, 강찬은 지크욘이 자신과 제이나의 복수를 위해 그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죽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가 건넨 그들의 피로 만든 사과는 그에게 피의 복수를 일깨워 주려는 의도로 받아들인 것이다.
강찬은 진심으로 지크욘에게 감사해했다.
서둘러 눈물을 훔친 강찬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네가 준 사과 때문에 갑자기 입맛이 돌기 시작했어.”
“그래, 여기 내가 잘 아는 식당이 있어. 거기 드워프제 맥주가 일품이었는데. 내가 한 300년 전쯤에 가 봤으니, 아직도 있으려나 모르겠다.”
의기소침해 있던 강찬은 지크욘의 생각지도 못한 방문으로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사랑하는 제이나를 위해 오늘만은 미치도록 술을 마시고 싶어졌다.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떠냐? 오늘 코가 한번 삐뚤어지게 마셔 보자고!”
“오호라~ 오늘 뭔가 필이 오는데? 이번에는 네가 쏴라.”
“알았어, 내가 낼게. 가자.”
그렇게 강찬과 지크욘이 드워프의 저잣거리로 맥주를 마시러 나간 후, 한발 늦게 보고를 받은 드워프의 왕 크랙시온과 아르테온이 만사를 제쳐 놓고 급히 강찬의 방을 찾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강찬 님은 요 며칠 동안 거동이 없으셨는데, 같이 어디로 가신 걸까요?”
아르테온의 질문에 크랙시온이 대답했다.
“오랜만에 만나 둘이 어디서 회포라도 풀겠지…….”
떨떠름한 말투로 대답하는 크랙시온의 안색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방해하면 안 되겠죠?”
“그러다가 인사 안 했다고 꼬투리라도 잡히면?”
크랙시온의 얼굴은 초긴장 상태였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대가 마인킹덤을 찾아온 것이다.
한때 지크욘은 마인킹덤의 아름다고 웅장한 지하 공동에 반해 크랙시온을 찾아와 마인킹덤을 자신의 레어로 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수천 년 동안 그 어떤 침략자에게도 내준 적이 없던 이 마인킹덤을 말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요구였지만, 크랙시온은 드래곤과 정면으로 붙을 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그때 크랙시온은 지크욘을 찾아가 그와 거래를 했다.
기존에 지크욘이 살던 레어를 마인킹덤과 똑같은 구조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이다.
지크욘은 크랙시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드워프들은 그렇게 해서 겨우 마인킹덤을 드래곤의 검은 마수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다.
물론. 그때 강제로 떠안게 된 그 엄청난 공사비용 때문에 지금도 그들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말이다.
이 사실은 드워프들에겐 치욕이나 다름없었기에 세상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다.
* * *
지크욘은 자신의 방문으로 마인킹덤이 발칵 뒤집혔다는 사실엔 전혀 관심 없었다.
그의 관심은 막 따라 낸 이 생맥주뿐이었다.
거기에 훈제 오리 구이와 뽀드득거리는 훈제 소시지를 먹으며, 또다시 마시기를 반복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맥주를 마셔 본 강찬이었지만, 그는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들이붓고 있었다.
그러기를 벌써 3시간.
둘이 마신 맥주가 슬슬 30,000cc를 넘어가고 있었다.
맥주를 마치 물을 마시듯 계속 마셔 댄 것이다.
드워프제 맥주는 인간의 맥주보다 독한 편이다. 게다가 강찬은 요 며칠간 변변하게 먹은 것도 없어 완전히 빈속에 가까웠기에, 그만큼 술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아줌마! 여기…… 맥주 하나 더요.”
“아주 죽으려고 먹는구먼. 이보게, 젊은이들. 술은 그렇게 마시는 게 아니야. 음미하면서 마셔야지.”
술집 주인으로 보이는 드워프 여인이 둘에게 호통을 치자 옆에서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던 드워프가 그녀에게 말했다.
“거 보아하니 둘 다 인간인 것 같은데, 맥주 한번 화통하게 마시는구먼. 아주 맘에 들어! 첼시, 이번 3,000cc는 내 앞으로 달아 놓게나.”
“아니, 브루노 씨, 이 둘이 마신 게 벌써 30,000cc가 넘어가는데, 또 먹이자고요?”
“남자는 말이야 뭔가 잊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저렇게 술을 마시지. 그때는 술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붙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그래서, 그 잘난 브루노 씨께선 한번이라도 이겨 봤어요?”
“허, 어디 이기고 싶어 이긴다면, 그 어찌 술이란 말인가? 하하하!”
“으이구, 거 잘난 개똥철학 나오셨네, 그려!”
“아줌마…… 여기이 수울 어제 주실 거예요?”
“내가 못 살아. 잠시만 기다려라.”
강찬과 지크욘은 각자 취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늘은 정말로 취하고 싶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야! 지크욘!”
“왜에?”
“나안 말이야, 떠날 거야…….”
“어디르을?”
“보옥수를 위해 떠날 거다, 이 말이야!”
“그르니까, 어디르을?”
“어디긴 어디야, 그년이 있는 곳이지.”
“호온자서?”
“그으래! 가서! 그냥 콱!”
쿵!
갑자기 강찬이 뒤로 고꾸라지자 지크욘이 풀린 눈으로 그런 강찬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