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6
퓨쳐나이트 6화
그렇게 오랜 고뇌의 시간 끝에 강찬이 내린 최종 결론은 생존을 위해 이 미개한 이들에게 최대한 빌붙어 이곳에서 20년을 버티는 것이었다.
‘그래, 일단은 이곳에 머물며 이 별의 생명체를 조사하다가 눈치껏 불시착한 전함으로 가서 본성과 연락을 시도해 봐야겠어.’
그가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와중에 그의 뱃속에서 갑자기 천둥과도 같은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꾸르르르륵!
강찬의 등이 새우처럼 구부려졌다.
“헛! 배, 배가…… 배가 왜 이러지?”
꼬르르르르륵!
지금껏 잔뜩 긴장하고 있었기에 잘 몰랐지만, 그가 1년 동안 먹은 거라고는 누워서 받아먹은 미음뿐이었다.
게다가 대량의 응가를 방출한 직후에 힘도 무지막지하게 써댔으니 허기가 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우주에서 살아온 그에게 배고픔이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알약 한 알이면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허기가 지지 않았기에 때문이다.
그가 먹어 오던 알약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 영양소와 칼로리가 정확한 양으로 3중 막 속에 고도로 농축되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끼니때가 되면 차례로 위액에 의해 녹아 가며 그 안의 내용물이 수분과 접촉해 크게 부풀어 올라서 허기를 없애 주고 영양소를 공급해 줬다.
광활한 우주를 누비는 협소한 우주선에서 장시간 음식물을 보존하고, 그것을 조리하여 먹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에 만들어진 알약이었고, 그 알약은 현재 우주에 사는 모든 인류에게 당연한 식생활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는 이렇게나 허기를 느낀 것이 언제인지 도무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매번 아침마다 습관처럼 한 알씩 먹어 온 바로 그 알약 덕분에 말이다.
그에게 배고픔이란 참기 어려운 고통과도 같았다.
“배가 이렇게 아프다니, 공복이라는 게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인가?”
꼬르르르르르륵!
“허엇!”
또다시 찢어질 듯 아픈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는 서둘러 자신 앞에 놓인 과일을 집어 들었다.
본능에 따라 뱃속에 뭔가를 집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과일을 집어 들기는 했지만, 결코 먹고 싶다는 충동이 들지 않았다.
그는 시력이 매우 좋았다.
과거 지구의 기준으로 보면 5.0 이상은 될 것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과일은 보면 볼수록 매우 징그럽고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과일과 달리 표면에 미세한 털들이 보슬보슬하게 나 있었던 것이다.
강찬은 표면에 미세한 털이 슝슝슝 나 있는 복숭아를 들고서 한참을 고민해야만 했다.
‘이걸 어떻게 먹지…….’
복숭아를 든 그의 손이 미미하게 떨려 왔다.
그가 복숭아에 입을 댔다 말았다 하기를 몇 번.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나는 그런 그의 행동에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다 큰 어른이 복숭아 하나 먹는 데 쩔쩔매는 모습이라니, 참으로 귀엽기까지 했다.
제이나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도 모르고 고심하던 그가 이내 털이 많은 복숭아는 포기했는지 복숭아를 천천히 내려놓고선 다른 만만한 먹잇감을 찾아 과일 바구니를 뒤적였다.
하지만 바구니 안에는 그보다 만만해 보이는 과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나같이 모두가 털이 있거나 아니면 표면이 딱딱했고, 미끌미끌했으며, 무수한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기도 했다.
“크윽! 징그러워!”
엘프인 제이나가 보기에 이런 그의 행동은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이겠지만, 우주에서 태어나서 평생 식물이라곤 접해 보지 못한 그에게 있어 이런 정체 모를 유기물 덩어리들은 어떻게 보면 혐오의 극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책상 위에 너저분하게 굴러다니는 과일 중 하나를 떨리는 손으로 선택했다.
그것은 바로 가장작고 만만한 산딸기였다.
징그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작고 만만했기에 집어 든 것이다.
‘선택의 여지란 없다. 살아남으려면 먹어야 한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산딸기 하나를 입속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씹었다.
그러자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던 산딸기가 어금니를 통해 분쇄되면서 산딸기 특유의 달콤새콤한 맛과 향이 그의 입속 가득히 퍼졌다.
‘헛!’
그는 충격에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런 세상에…….”
갑자기 귓가에서 노래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미각 통해 뇌로 전달된 산딸기의 새콤달콤한 맛과 향은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짜릿할 정도였다.
강찬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맛있다!”
갑자기 그가 버럭 고함을 치자 제이나가 깜짝 놀라 움찔했지만 역시나 그는 제이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그의 모든 오감은 이 놀라운 맛의 유기 물질에 쏠려 있었다.
그것은 인공적으로 합성한 그런 밋밋한 맛이 아니었다.
자연에서 자라난 신선한 산딸기의 맛은 20년을 살아온 그가 처음으로 느껴 보는 충격적인 맛이었다.
그 후 그는 손에 닿는 과일들을 무조건 입속으로 때려 박았다.
그리고 한 열흘 굶은 상거지처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으득! 냠냠냠, 쩝쩝, 와삭! 와사삭! 쩝쩝쩝…….
그런 그의 모습에 어린 엘프는 혀를 내 둘렀다.
‘뭐지, 이 인간은? 먹지도 못하고 쩔쩔맬 때는 언제고 이제는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 대다니, 도통 인간들이란 이해할 수가 없어.’
제이나는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과일을 먹어 대는 그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강찬은 제이나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평생 못 먹었던 과일을 지금 다 먹겠다는 기세로 미친 듯이 과일을 먹어 댔다.
그렇게 한가득했던 과일 바구니는 순식간에 동났고, 제이나는 그를 위해 밤새도록 땀을 흘리며 열심히 과일 바구니를 날라야만 했다.
* * *
엘프 마을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 위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회의장에 엘프들과 동맹 관계인 드워프들이 모여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자신은 외계에서 왔다고 합니다. 제가 봐도 그의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현 대륙의 인간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그의 생소한 황색 피부도 그렇고 칠흑 같은 머리와 눈동자 등 생김새만 봐도 그는 이곳 대륙 인간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갑자기 장내를 가득 채우고 있던 엘프들과 드워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오! 그렇다면 그는 외계인이란 말인가?”
“불길해…… 외계인이 우리 숲에 들어오다니.”
마치 고목과 같이 말라 버린 숲의 현인들이 불길함에 수군거렸다.
“모두 조용히 해 주세요.”
아르테온이 질책하자 소란스럽던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다시 드워프의 로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로드시여, 직접 그가 타고 온, 추락한 방주를 살펴보셨으니 묻겠습니다. 그곳에서 뭔가 느껴지는 것이 없으셨나요?”
아르테온의 말에 드워프의 로드라는 자의 얼굴에는 침울함이 깃들여졌다.
“그것참, 할 말이 없더군. 금속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최고라고 자부했는데…… 우린 그 방주에 쓰인 금속이 무엇인지, 어떻게 접합시켰는지조차도 모르겠소. 다만 한 가지 알아낸 것은 그 거체의 외부를 이루는 금속이 현재 우리가 보유한 그 어떤 금속보다도 단단하고 질기며 열에 강하다는 것뿐이라네.”
또 한 번 장내가 매우 웅성거렸다.
분명히 드워프들이 보유한 여러 가지 금속들이라면 최강의 강도를 자랑하는 드래곤의 본이나 최강의 금속이라는 오리하루콘도 포함일 것인데 그보다도 강도가 높다니, 회의장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다시 아르테온이 입을 열었다.
“현재 그 방주를 타고 온 인간은 지금 무척 쇠약해진 상태입니다. 무리도 아니지요. 1년이나 혼수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일단 몸조리를 하며 지내도록 지시해 둔 상태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를 관찰하고 경계하며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회의장 안의 모두에게 박수를 받으며 그녀가 자리에 앉자 다음 차례인 활이라 불리는 레이시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장내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들이 회의장에 모인 진짜 이유는 바로 그녀에게 보고를 들으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회의의 본 안건인 녹색 엘프들에 관한 건입니다. 제가 엘프 레인저들과 함께 한 달 동안 그들에 동태를 확인하여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 봤습니다.”
녹색 엘프 이야기가 나오자 회의장은 쥐 죽은 듯 침묵했다.
그런 침묵 속에 엘프들의 로드인 아르테온과 드워프의 로드인 가펠드 폰 크랙시온의 미간이 미미하게 떨려 오고 있었다.
“부디 인간들이 그들을 상대로 선전해 줘야 할 텐데요.”
말하는 아르테온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흐음, 그러길 빌어야지.”
신의 해머라 칭송받는 드워프들의 로드 가펠드 폰 크랙시온의 표정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 * *
이튿날 눈부신 아침 햇살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강찬의 눈가를 비추자 얼굴을 찡그리며 잠에서 깬 강찬이 서서히 일어나 자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은 온통 과일 껍질과 씨뿐이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과일을 나르다 지쳐 잠든 엘프 소녀가 침대 한편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냠냠냠…… 아으, 으음.”
자신을 위해 밤새 무거운 과일을 나르다 지쳐 잠든 제이나를 보니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는 결코 미안하다 생각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식물인간 상태나 다름없던 상태였다고는 하나, 그런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겨 준 그 소녀를 그는 결코 용서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강찬은 제이나가 깨지 않게 조심히 침대에서 몸을 뺀 후 우선 천천히 집 구조를 살펴보았다.
눈뜨고 난 이후 계속 긴박한 상황의 연속이어서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리 한결 여유로워진 상태이니 슬슬 주변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이제부터는 오래도록 이곳에서 지내야 했기에 이 세계에 대해서 하나하나 자세히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것이지?’
집은 마치 나무가 스스로 자라나 집이 된 듯 인위적인 손길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잤던 침대부터 과일을 먹던 식탁, 서랍장까지도 모두 나무가 그대로 자라난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신기한 집 구조를 다 둘러보고 문밖으로 나선 강찬은 더욱더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
처음 보는, 시릴 듯한 푸른 하늘 아래 따사로운 햇살이 녹아든 에메랄드빛에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따라 춤추고 있었다.
진한 숲의 향기가 그의 숨결을 따라 폐부 깊숙이로 퍼지자 그 상쾌함에 온몸이 전율하는 듯했다.
“이, 이것이 사진으로만 봐 왔던 인류의 고향인 지구의 풍경이란 말인가?”
직접 눈으로 본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사진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는 말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여태껏 피도 눈물도 없이 살아온 자신이었는데, 이 눈물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그는 자신의 눈물 한 방울을 손가락에 찍어 눈물이 마를 때까지 한참을 내려다봤다.
온종일 열심히 입을 쫑알거리는 제이나를 보며 강찬은 짜증이 밀려왔다.
마법이 풀린 강찬이 뻔히 못 알아듣는 걸 알면서도 소녀는 입을 다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지금껏 그의 삶에서 언어의 장벽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이식되어 있는 바이오 컴퓨터에는 방대한 양의 다양한 언어들이 저장되어 있어 별다른 수고 없이도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에게 바이오 컴퓨터조차 모르는 언어를 구사하는 엘프들과의 생활은 미치도록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항상 아르테온을 찾아가 스피크 마법을 걸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서둘러 이들의 언어를 익혀야겠다고 말이다.
게다가 들은 바로는 이곳 대륙에 사는 모든 종족은 방언만 조금씩 다를 뿐, 거의 같은 공용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곳의 언어만 익히도 다른 종족과 일상적인 대화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터.
‘그거 하난 좋군. 지구에는 너무 많은 언어가 있는 데 반해서 말이야.’
생존과 임무를 위해서라도 그는 더욱 서둘러 이 별의 언어를 익혀야만 했다.
“일단 이 별에서 살려면 서둘러 이들의 언어부터 배워야겠어. 컴퓨터, 지금부터 이들과의 모든 대화 내용을 저장해.”
-네, 알겠습니다.
“기필코 한 달 안에 마스터해 주겠다.”
그날로부터 강찬의 눈물겨운 언어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느 나라 언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단어이다.
강찬은 눈에 보이는 사물마다 애, 어른 가리지 않고 붙잡아서는 손가락으로 일일이 사물을 가리키며 필사적으로 그들의 단어를 모았다.
그렇게 얻어진 단어들은 바이오 컴퓨터에 의해 저장되어 조합되고, 정리되었으며 바이오 컴퓨터는 그들의 언어의 특성과 문법 형태의 파악을 도와줬다.
그렇게 강찬은 각고의 노력 끝에 불과 한 달 만에 어색하긴 했지만 그들과의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엘프가 그의 암기력과 이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게 다 머릿속에 있는 바이오칩 덕분이란 걸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에게 암기란 그저 한번 듣거나 보기만 하면 영영 잊어버릴 걱정이 없었으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