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62
퓨쳐나이트 62화
“그러니까 어르신이 말하는 찌르기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말입니다. 남자란 말입니다, 자고로 힘 아닙니까? 적의 방어조차 한 방에 날려 버릴 힘을 담은 강력한 베기! 그런 베기야말로 진정한 남자의 로망이지요.”
“아니, 자네, 대륙 5대 검호인 나를 가르치려 드는 건가? 베기 같은 큰 동작보다 최소한의 움직임과 힘으로 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전광석화 같은 찌르기야말로 가장 매섭고 효율적인 공격이라는 것을 왜 모르나? 쯧쯔즈…….”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말입니다.”
자이젠은 오랜만에 마음껏 마신 건지 진득이 취해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엘라디온도 앞에 앉은 풋내기 검사와의 논검을 벌이는 것이 꽤나 즐거워 보였다.
“잠시 나갈까?”
“…….”
강찬이 에델린에게 잠시 나가자고 말하자 에델린의 얼굴이 순간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취기 탓에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어 별로 티가 나지 않았다.
“아, 알았다.”
둘이 자리에서 일어나 술집 밖으로 나가고, 엘라디온과 토론을 나누던 자이젠은 슬쩍 밖으로 나가는 둘을 바라봤지만, 이내 모른척하고 계속해서 엘라디온과 대화를 나눴다.
그런 자이젠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술집 밖으로 나온 에델린은 지하 공동의 시원한 공기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에델린은 자신을 밖으로 데리고 나온 강찬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시선을 받은 강찬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 날 찾아온 용건이 뭐지?”
“그, 그건.”
에델린은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에델린에게서 시선을 돌린 강찬이 천장 위의 종유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갑자기 돌아간다니 좀 섭섭한걸?”
“그래…… 본녀도 조금 섭섭하구나.”
“그래서 일부러 날 찾아온 건가?”
강찬의 말에 에델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갈 사람은 가야지, 나도 조만간 이곳을 떠날 거다.”
“어디로 말이냐?”
어딘가로 떠난다는 강찬의 말을 들은 에델린이 그를 바라봤다.
“전장으로…….”
“전장?”
“제이나의 복수를 위해서, 그 마녀를 찾아 전장으로 떠날 거다.”
“제이나라면, 혹시 그때?”
에델린은 제이나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강찬이 피닉스를 강제 송환시킨 그날 밤.
그가 지키지 못했다고 말한 여인이었다.
“그래, 내가 사랑했던 여인이지.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영원히 사랑할 거고…….”
그가 그동안 많이 슬퍼했던 이유가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 있던 에델린이었다.
하지만 다른 여인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에델린은 자신도 모르게 그 여인에게 깊은 질투심을 느꼈다.
물론.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인이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에델린은 강찬에게는 미안하게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그런 그의 사랑을 자신이 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자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그녀의 복수를 위해 전장으로 가겠단 말이냐?”
그녀의 말에 강찬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리석은 짓이다. 네가 위험하게 되는 것을 그녀는 절대로 원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내가 죽은 연인의 복수를 하겠다고 죽음을 무릅쓰고 전장으로 나가려 하니, 에델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간절함도 강찬의 굳은 결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차피 난 그녀 없이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그녀는 내 삶의 전부니까.”
“그, 그건…….”
그의 말에 에델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확고한 결심에 자신이 파고들 여지는 조금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여태껏 살면서 남자 때문에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던 그녀로서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왜 우는 거지?”
“우, 우는 것이 아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갔을 뿐이다.”
대제국의 공주인 자신의 우는 모습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강찬에게 말했다.
“본녀는 내일 점심에 출발할 것이다. 그럼…….”
그 말만을 남기고 돌아가려던 그녀를 강찬이 붙잡았다.
그런 그의 거친 손길에 에델린은 가슴은 또다시 터질 듯이 두근거렸지만, 강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가 기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자이젠과 함께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모,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돌아갔다고 전해다오.”
등을 돌린 채로 대답한 에델린이 강찬의 손을 뿌리치고는 숙소로 돌아가 버리자,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강찬이 다시 술집 안으로 들어오자 엘라디온과 자이젠은 계속해서 뜨거운 논검을 펼치고 있었다.
“어르신이 보시기에 제가 아직 많이 어려 보이시겠지만, 저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몸입니다.”
“얼씨구?”
“와하하하하하!”
“산전수전이래! 낄낄낄!”
800년을 넘게 살아온 엘라디온 앞에서 이제 갓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자이젠이 산전수전이란 단어를 꺼내니, 그들의 얘기를 귀담아듣던 드워프들이 나뒹굴며 박장대소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자이젠은 귀까지 빨개지며 성을 냈다.
“아니, 왜 다들 저를 비웃으십니까? 저는 말입니다. 이래 보여도 대비스만 제국의 최연소 근위대원이란 말입니다!”
비스만 제국이라면 인간들이 세운 나라 중 제일가는 강대국이란 사실을 드워프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근위대라면 그 나라 안에서도 가장 뛰어난 검사들만이 뽑히는 명예로운 자리일 텐데,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풋내기 소년이 자신이 근위대원이라고 하자 드워프들은 또다시 박장대소했다.
“와하하하하! 최연소 근위대원이래!”
“예끼! 요놈아! 그런 농담은 엄마한테나 가서 하려무나!”
“그렇다면 네가 바로 그 헬라이너 기사단의 기사라도 된단 말이냐?”
“네! 맞습니다. 제가 바로 그 헬라이너 기사단의 기사입니다.”
갑옷을 입고 왔다면 자랑스러운 헬라이너 기사단의 상징을 보여 줬겠지만, 아쉽게도 자이젠이 입고 있는 것은 평범한 튜닉이었다.
“네가 헬라이너 기사단의 기사라면 나는 대륙 5대 검호다!”
자신이 5대 검호란 말을 외치며, 테이블 위로 올라간 드워프가 포크를 휘두르며, 우스꽝스럽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연기하자 주변의 드워프들이 배를 부여잡고 자지러졌다.
“와하하하하하하!”
“아니! 이 드워프들, 진짜 사람 말 더럽게 못 믿네? 그럼 똑똑히 보여 드리죠!”
술에 취한 자이젠이 드워프들의 조롱에 화가 났는지 검을 뽑아 오러 소드를 뿜어냈다.
그러자 자이젠의 롱소드에서 푸르스름한 오러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오더니 점차 압축되어 더욱 짙고 얇게 검에 서렸다.
그 섬뜩한 모습에 드워프들은 마시던 맥주를 내뿜었다.
조롱하며 비웃던 드워프는 의자째 뒤로 넘어갔다.
“헉! 오러 소드!”
“지, 진짜다! 진짜 소드 익스퍼트다!”
자이젠이 무시무시한 오러 소드를 뿜어내자 순식간에 술집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백지장처럼 변해 버린 드워프들에게 자이젠이 오러 소드를 들이밀며 말했다.
“이래도 제가 헬라이너 기사단의 자격이 없습니까?”
자신 앞에 서슬 퍼런 오러 소드가 겨눠지자 드워프는 잔뜩 움츠러든 채 침을 삼키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우, 우리가 언제 자격이 없다고 그랬나? 다 웃자고 한 농담이지, 농담! 안 그런가?”
“마, 맞네! 노, 농담일세! 농담! 에헴!”
“아까 우리가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좁디좁은 미스릴 광산 안에서 조르단이 지독한 방귀를 뀌었다며?”
“아! 그렇지! 그래서 그때 내가 말이야…….”
주변에 드워프들이 하나둘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자 자이젠이 오러 소드에서 마나를 회수하고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화가 나서 그만…….”
“아닐세, 그보다 자네가 보통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었구먼. 대단해, 정말 대단해. 스무 살에 그 정도의 경지라니.”
“과찬이십니다.”
생각지도 못한 엘라디온의 칭찬에 자이젠은 쑥스러운지 얼굴이 붉어졌다.
‘아, 이런 인재가 우리 엘프족에 있었다면…….’
강찬만 해도 놀랄 놀 자였는데, 눈앞에 보이는 인간 또한 강찬 못지않은 엄청난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엘라디온이 안타까운 눈으로 자이젠을 바라볼 때, 옆에 있던 강찬이 자이젠에게 말했다.
“공주는 지금 숙소로 돌아갔는데, 안 가 봐도 괜찮겠나?”
“네에? 언제 가셨죠?”
“방금 밖에서 헤어졌는데,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돌아가겠다군.”
에델린이 몸이 아프다는 말에 자이젠의 얼굴이 급변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러게나.”
자이젠이 혼비백산해서 뛰쳐나가자 술자리는 다시금 조용해졌고, 강찬과 엘라디온은 조용히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천천히 맥주를 음미하는 엘라디온에게 강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스터, 네미츠란 자는 어떤 엘프였습니까?”
강찬의 질문을 들으며, 잔에 담긴 황금빛 맥주를 바라보는 엘라디온의 표정은 그리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대해서 꼭 알고 싶으냐?”
강찬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자신의 복수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적이었기에, 그의 대해서 하나라도 더 많은 정보를 알아야만 했다.
‘그래, 마냥 덮어 둔다고 될 일은 아니지.’
강찬은 이미 네미츠와 얽혀 버렸으니, 그 또한 네미츠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제자에게 네미츠에 대한 과거를 이야기해 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강찬이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그녀의 과거의 대해서도 말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엘라디온은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홀로 맥주를 들이켰다.
“그 녀석은 어려서부터 검밖에 모르던 녀석이었단다. 다크 엘프가 되기 전에는 그 누구보다도 엘프다운 엘프였지.”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이죠?”
“우리 엘프라는 종족은 다른 종족과는 달리 육체의 성장보다 정신의 성장을 먼저 거치게 된단다. 그런 정신적 성장에 걸맞게, 육체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게 되지.”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 지금 그의 모습입니까?”
“그래, 지금 그의 모습이 바로 그런 예지.”
“그럼 다크 엘프라는 종족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해도 어차피 다 한 핏줄인 거지. 우리가 그들을 변절자 혹은 타락한 엘프라 낮춰 부른다 해도 한 뿌리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란다.”
“어떻게 같은 종족이 그토록 극과 극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 거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강찬의 말에 엘라디온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건 별로 어려운 과정이 아니란다. 단순히 아름답고 밝은 생각으로 성장한 엘프는 더욱 희고 눈부신 미모의 엘프가 되는 것이고, 분노와 광기, 음란함에 물들어 타락한 엘프는 그 어두운 감정에 걸맞게 검은 피부를 가진 음습한 다크 엘프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지.”
마스터의 말에 강찬은 제이나가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답고 성숙하게 변했던 그날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토록 촉망받던 그가 다크 엘프로 변해 버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기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단다.”
한 가지도 아니고 두 가지라는 엘라디온의 말에 강찬은 눈을 부릅떴다.
“두 가지나 말입니까?”
“둘 다 여인과 관련된 일이었지.”
“…….”
맥주로 목을 축인 엘라디온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하나는 그의 하나뿐인 여동생과 관련된 사건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에 관한 사건이었지, 전에 네가 아르테온 님에게 천둥번개 이도류를 익혔다고 말하려 할 때 네 입을 막은 이유가 뭔 줄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네미츠의 모친이 바로 아르테온 님이기 때문이다.”
“네에!?”
술집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른 강찬의 목소리에 얼큰하게 취해 있던 드워프들의 시선이 쏠렸다.
“아, 죄송합니다.”
강찬이 주춤거리며 모두에게 사과하자 드워프들은 강찬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흥청거리며, 술을 마셔 댔다.
“많이 놀랐느냐?”
“설마 그가 아르테온 님의 자식일 거라고는 전혀.”
“그래, 무리도 아니지, 그가 다크 엘프가 되어 마을을 떠나간 날, 아르테온 님은 슬픔에 잠겨 한 달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셨단다. 사랑했던 두 자식이 그렇게 다들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버렸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여동생이란 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네미츠의 동생 말이냐?”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