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63
퓨쳐나이트 63화
“동생의 이름은 마타나였단다. 그녀는 아르테온 님을 닳아 우리 엘프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엘프였지. 그러나 그런 마타나에게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다른 엘프들에 비해 선천적으로 지능이 매우 낮았단다. 성인이 된 마타나의 지능이 고작 다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와 같았으니 말이다.”
강찬은 엘라디온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대륙 최고의 마법사인 아르테온의 자식이 지적 장애였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엘라디온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강찬을 뒤로하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마타나는 온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정말 아름답게 자라났단다. 당시 마타나를 본 인간들은 그녀를 엘프의 여신으로 추앙할 정도였으니까…… 아마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성장시켰던 것이겠지.”
당시 아름다웠던 마타나를 회상하며, 엘라디온은 맥주를 거칠게 들이켰다.
그러다 별안간 쓴웃음을 짓더니, 다시 차가워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 순박하고 아름다운 마타나에게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비극이 닥치고야 말았단다.”
“그게 대체 어떤 비극입니까?”
“홀로 마을 밖으로 놀러 나간 마타나가 오크들에게 납치되어 여자로서 씻을 수 없는 봉변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단다.”
“네? 보, 봉변 말입니까? 게다가 오크라고 하신다면, 전의 그 우르칸타?”
“그래, 우르칸타. 그가 그 씹다만 벌레 같은 놈이 오크족의 로드지…….”
마타가가 납치됐던 그날, 자신이 봤던 생생한 광경을 떠올린 엘라디온의 손이 나직이 떨려왔다.
“우리가 뒤늦게 마타나를 찾아냈을 땐, 마타나는 이미 오크들에게 처참할 정도로 더럽혀지고 난 후였지…… 나와 네미츠는 분노로 이성을 잃었고, 그곳에 있는 오크들을 단 한 마리도 살려 두지 않았단다. 단 한 마리도…….”
“믿을 수가 없는 일이군요.”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오크의 로드 우르칸타 같은 오크가 엘프 여인을 덮쳤다고 생각하니, 강찬은 생각만으로도 마신 술이 역류할 것만 같은 역겨움을 느꼈다.
“어떻게 다른 종족도 아니고 오크가…….”
“아마도 모든 종족에게 추악하다고 손가락질받던 그들이 자신들과 달리 모든 종족에게 아름답다 추앙받는 우리 엘프에게 억하심정이 생겨 그랬던 거겠지.”
“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행히 그녀는 오크들로부터 무사히 구출돼 가족들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지만, 불행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단다.”
“……?”
“그녀는 홑몸이 아니었다.”
“홑몸이 아니라니? 설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역사상 인간과 혼혈인 하프 엘프는 많았지만, 오크와 섞인 하프 엘프는 아마도 그때가 엘프 역사상 처음이었을 게다. 우리는 모두 그런 비극이 생기지 않길 바랐지. 하지만 태어난 아이는 애석하게도 엘프의 외모에 오크의 피부를 가진 녹색 엘프였단다.”
“녹색 엘프! 서, 설마?”
철천지원수인 녹색 엘프가 마스터의 입을 통해 거론되자 강찬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그래, 바로 그날이 네 원수인 그린이 태어난 날이다.”
강찬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쳤다.
“그렇다면 제, 제이나를 죽인 게 아르테온 님의 손녀란 말인가요?”
또다시 술집이 떠나가라 외쳐 대는 강찬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강찬은 그런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흥분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라.”
“…….”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분노를 힘겹게 가라앉힌 강찬이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 해도 그녀가 제 원수임에는 변함없습니다.”
강찬의 눈에는 차가운 살기가 가득했다.
“결코 말릴 생각은 없다. 그녀는 너뿐만 아니라 우리 엘프족 모두의 원수니까. 아니, 전 대륙 모든 종족의 원수라고 부르는 게 맞겠군. 아무튼 그날, 그 저주받은 녹색 마녀가 태어났고, 마타나는 아이와 함께 마을에서 추방당했단다. 네미츠가 조금씩 이상해진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지.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동생을 사지로 떠나보내는 게 오빠로서 오죽 가슴이 아팠을까? 그래도 그 사건이 추방으로 끝난 것도 아르테온 님이 당시 대장로의 신분이셨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원래 율법대로라면 둘 다 살아서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었을 것이야.”
씁쓸하게 말하는 엘라디온을 향해 강찬이 살벌한 눈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그때 그 갓난아기였던 녹색 마녀가 지금 와서 복수를 한 것이란 말입니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엘라디온이 더욱더 침중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뿐만이 아니란다. 그 아이가 밖에서 어떻게 자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우리 엘프뿐만 아니라 대륙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간과 오크, 그리고 드워프에게도 복수하려고 한단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기에 그런…….”
자신도 그다지 좋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자신만큼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그녀에게 강찬은 일말의 동정심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자신에게 변함없는 원수일 뿐이었고 원수에게 동정심은 지나친 사치일 뿐이었다.
강찬은 더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지 두 번째 여인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렇다면 그가 사랑했다던 여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사랑했던 여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은 죽었단다.”
“죽다니요? 누가 그런 짓을?”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죽인 건 바로 나다.”
엘라디온이 네미츠가 사랑했던 여인을 자기 손으로 죽였다고 말하자 강찬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사랑해서는 안 될 여인을 사랑했지. 바로 다크 엘프 여인을 말이야.”
“…….”
“여동생을 그렇게 떠나보낸 네미츠는 그 후로 한시도 마을 안에 있으려 하지 않았단다. 미웠던 거겠지…… 사랑하는 동생을 사지로 내몬 동족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인 아르테온 님이. 그는 마을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혼자 수백 년을 살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그녀가 찾아 왔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그 다크 엘프 여인이……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여인을…….”
술에 취한 엘라디온의 목소리가 급격히 떨리기 시작했고 강찬은 그런 마스터의 손을 잡았다.
“됐습니다, 마스터. 그 정도면 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 것 같습니다.”
항상 당당했던 마스터가 흔들리는 모습을 처음 본 강찬은 그런 마스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분명. 마스터는 그날의 일을 크게 후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마스터,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그래, 시간이 많이 늦었구나…….”
이른 새벽, 엘라디온을 숙소로 바래다준 강찬이 자신의 숙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드워프 왕궁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테라스에서 아르테온이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아련한 과거를 떠올리며, 손에 들린 술잔을 바라봤다.
“마타나…… 네미츠…….”
아무리 이름을 불러 본들 사랑스럽던 딸 마타나와 자랑스럽던 아들 네미츠는 더 이상 그녀의 곁에 없다.
그래도 그녀는 그들의 이름을 가슴 깊이 불러 보았다.
“…….”
홀로 빈 잔에 술을 채우는 그녀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20. 전장으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쇳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수증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사방에서 울리는 요란한 망치 소리가 드넓은 공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후끈 달아오른 이 거대한 공방은 드워프들의 자랑인 워 팩토리였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무기와 방어구는 대륙 최고의 품질로 어딜 가든 최고로 치는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이것입니까?”
“그렇다네, 어디 한번 탑승해 보겠나?”
강찬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지의 세계의 전투 머신에 탑승하게 된 강찬의 표정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높이가 8미터나 되는 거대한 기간테스에 탑승한 강찬은 드워프들의 도움을 받아 의자에 자신을 고정시키는 법을 배웠다.
조종석 주위를 둘러보는 강찬은 이 기간테스란 전투 머신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기간테스의 내부는 클래식한 멋이 한껏 깃든 게, 대단히 심플한 내부를 지닌 자이드와는 전혀 달랐다.
자이드에 비하면 내부는 약간 난잡하고 투박하기는 했지만 작은 부품 하나까지도 장인의 기품이 느껴졌다.
“어떤가? 자네 세계의 것과는 많이 다르지?”
“예, 그렇지만 이쪽이 더 정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강찬의 말에 드워프 장로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그럼 얼른 기간테스와 골램의 언약을 맺도록 하게.”
“예.”
전에 엘라디온에게 설명을 한번 들었기에 강찬은 무리 없이 기간테스와 골램의 언약을 수행했다.
그것은 자신의 손바닥을 그어 피를 낸 뒤에 기간테스의 수정구에 대고 마나를 불어넣어서 골램과 언약을 맺는 것이었다.
자신의 피와 마나를 걸고서 말이다.
강찬이 엘라디온에게 받은 단검을 꺼내 들고 자기 손바닥을 그었다.
그 후 상처 입은 손을 수정구에 댄 채 그대로 마광로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마광로가 밝은 빛을 한번 뿜어내더니, 사람의 심장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엔진에 시동을 거는 듯한 느낌이었다.
“됐네! 이제 이 기간테스는 자네 걸세. 이젠 이놈을 다루는 법을 설명해 주지.”
드워프 장로는 강찬의 몸을 기간테스의 좌석에 좀 더 바짝 고정시킨 뒤 조작법을 설명했다.
“긴장하지 말고 잘 듣게! 언약을 맺었다고는 하나 당장 자네가 이것을 움직이는 것을 무리라네! 마광로의 마나를 이용해 자신의 의지대로 이 기간테스를 움직이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그러니깐 지금은 너무 서두르지 말고, 그냥 어떻게 타는 건지 요령만 알고 있게!”
시끄러운 공방의 망치 소리에 드워프 장로는 고래고래 큰 소리로 설명했고, 강찬은 상기된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조종하는 원리는 자네 몸속의 마나를 양쪽 좌석에 설치된 수정구로 주입해서 기간테스의 심장인 마광로와 접촉해야만 한다네! 그래야지만 그곳에 저장된 마나를 이용해 기간테스를 움직일 수 있지! 하지만 말이야,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대륙에서 날고 긴다는 소드 익스퍼트들도 기간테스의 오너가 되기 위해서는 몇 년에 걸쳐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데? 그러니 앞으로 자네도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어이? 이봐? 자네, 내 말 듣고 있는 건가?”
조용히 눈을 감고 수정구에 마나를 집중하고 있는 강찬의 모습에 드워프 장로가 혀를 찾다.
“어허! 섣불리 움직이려 했다간 큰일 날 수가 있어!”
공방 안이 넓기는 넓었지만 무려 8미터나 되는 거대한 쇳덩어리인 기간테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대형 참사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마나를 마광로에 연결해 본 강찬은 그 느낌이 결코 낯설지 않아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애마인 레드 레빗과 원리만 조금 다를 뿐 조정법이 비슷했던 것이었다.
다른 건 신호를 전달하는 수단이 각각 전기 신호와 마나라는 것뿐이었다.
조종 계통에 차츰차츰 익숙해진 강찬이 눈을 떴다.
그러자 기간테스의 투구 안에 두 개의 녹색 불이 번뜩였고, 그 순간 강찬은 8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거인이 되어 있었다.
강찬이 까마득히 높아진 시점으로 공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자 기간테스 역시 강찬의 의지에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뒤이어 손을 들어 앞으로 뻗자 기간테스의 손 역시 앞으로 쭉 뻗어졌다.
그 모습에 드워프 장로가 자지러질 듯 놀랐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드워프 장로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보통 소드 익스퍼트에 오른 기사들이 기간테스와 교감하려면 적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은 걸리는 게 보통인데, 저 인간은 타자마자 바로 기간테스와 교감한 것이다.
『잠시 걸어 보겠습니다.』
“자, 잠깐만, 자네!”
만류하는 장로의 목소리에도 강찬은 전혀 개의치 않고, 엘븐 나이트를 움직였다.
그러자 서서히 구속기를 벗어난 기간테스가 지축을 울리며, 워 팩토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그렇게 떠나가는 기간테스의 모습에 열심히 담금질을 하고 있던 드워프들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쯧쯔즈…… 도끼 하나가 아쉬운 이 상황에 인간에게 저런 걸 주다니, 크랙시온 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