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64
퓨쳐나이트 64화
“저거 만드느라 젖 빠지게 망치질한 내 청춘을 생각하면 열불이 난다! 열불이 나!”
공방 안의 드워프들이 어떤 심정인 줄도 모르고, 강찬은 한 발 한 발 열심히 걷고 있었다.
그러나 조종석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드워프 장로는 연신 크게 휘청거렸다.
“어이쿠! 조심하게!”
기간테스도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들어진 거대한 워 팩토리의 입구를 벗어난 강찬은 기간테스 기동 테스트장인 드넓은 공터로 향했다.
“자네, 어떻게 이렇게 능숙하게 기간테스를 다루는가? 전에 타 본 적 있는가?”
『기간테스는 타 본 적 없습니다. 단지, 자이드와 운용법이 약간 비슷한 듯합니다.』
“그런가? 자네 세상의 기간테스도 정신 교감을 통해 운용하는가?”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단지 마나와 전기 신호의 차이일 뿐.
자신의 싱크로를 자이드의 컴퓨터와 연결하는 것이니, 교감이라 해도 무방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음, 일단 공터 주위를 천천히 달려 보게나.”
드워프 장로의 말에 따라 강찬은 드넓은 공터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강찬이 조금씩 속도를 올리자 공터 주변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들썩이기 시작했고, 안에 함께 탄 드워프 장로의 몸도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으앗! 잠깐만! 천천히 달리게!”
『…….』
아직 마음껏 달려보지 못한 강찬이 아쉬운 마음에 천천히 속도를 줄이자 겨우 숨을 돌린 드워프 장로가 치를 떨며 말했다.
“그, 그만! 됐네! 이 정도면 합격일세!”
『합격입니까?』
“휴우, 그래, 합격일세. 그러니 이제 나 좀 내 려주겠나?”
강찬이 견갑부로 손을 뻗어 드워프 장로를 받아 땅 위로 내려놨다.
드워프 장로는 치를 떨었다.
“내가 또 남이 타고 있는 기간테스에 탑승하면 드워프가 아닐세…….”
달리는 기간테스는 조종석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요동쳤다.
“자! 그럼 이제 그 기간테스는 자네 것일세! 앞으로 잘 쓰고 반납하길 바라네.”
『감사합니다.』
“이젠 내리게나.”
기간테스에서 내린 강찬은 기간테스를 공간의 저편으로 이동시켰다.
기간테스를 아공간에 넣고 뺄 수 있는 건, 오로지 골렘의 언약을 맺은 언약자뿐이었다.
“명심하게. 기간테스를 아공간에서 소환할 수 있는 건 하루에 딱 한 번뿐일세.”
“명심하겠습니다.”
크랙시온과의 약속대로 기간테스를 양도받은 강찬은 숙소로 돌아와 때늦은 점심을 먹고, 침대에 잠시 누워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복수를 위해선 갈 길이 멀었기 때문이다.
“휴우…….”
강찬은 복잡해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마나 연공을 하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들겼다.
똑! 똑! 똑!
“누구시죠?”
“자이젠입니다.”
오늘 벨라렌으로 떠나기로 한 자이젠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강찬이 문을 열자 먼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한 자이젠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떠나기 전에 공주님을 대신해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이걸……”
자이젠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강찬에게 내밀었다.
“이건?”
“공주님께서 강찬 님께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이젠이 내민 것은 빗이었다.
굉장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빗이었다.
“왜 이걸 나에게?”
“감사의 뜻이라고만 전하라 하셨습니다.”
“뜻은 고맙지만, 난 빗이 필요하지 않다.”
강찬의 머리는 빗을 필요가 없을 만큼 짧았다.
전형적인 군인의 머리였던 것이다.
“이 빗은 그런 의미로 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이 빗은 황실의 물건으로 왕가의 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희 벨라렌으로 오셨을 때, 황궁으로 찾아와 이 빗을 보여 주시면 공주님을 만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즉. 벨라렌에 오게 되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의미였다.
“나를 황실로 초대하는 초대장이란 건가?”
“그렇습니다.”
갈 수 있을지 약속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찬은 그 콧대 높은 공주가 선물한 성의를 봐서라도 벨라렌에 가게 되면 꼭 한번 들르겠다고 약속했다.
“알겠다, 벨라렌에 들르면 꼭 한번 찾아가지.”
“공주님께는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
자이젠이 할 말이 남았는지 강찬을 노려봤다.
처음 엘프의 숲에서 만났던 때처럼 적개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공주님이 성격이 좀 더럽고 철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 어떤 여자보다 순진하고 마음이 여리시답니다.”
“그 말을 왜 내게 하는 거지?”
“공주님과 잘해 볼 생각이 없으시면, 앞으로 공주님에게 다가오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가슴에 오른손을 붙이고 살짝 고개를 숙여 작별 인사를 한 자이젠이 서둘러 공주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
강찬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냅다 사라져 버린 애송이 기사의 말을 곱씹어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거참…… 미안하게 됐군.”
자신에게는 오로지 제이나뿐인데, 그런 자신을 에델린이 좋아하게 됐다니…… 그로서는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에게는 누군가가 들어올 만한 마음의 공간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강찬은 에델린의 빗을 바라보며, 제이나를 떠올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빗을 제이나에게 선물했다면 제이나가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지만 생각한 것만으로도 깊은 슬픔이 밀려왔고, 강찬은 그 슬픔에 다시금 무너질 것만 같았다.
‘안 돼! 약해지지 말자…… 복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어.’
억지로 마음을 다잡은 강찬은 다시 침대 위에 앉아 마나 연공을 시작했다.
기분이 이처럼 우울하고 꿀꿀할 때는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는 마나 연공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강찬이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려 마나 라인을 통해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의 마나들이 그 흐름에 이끌려 소용돌이치면서 강찬의 마나 홀 속으로 끌려 들어왔다.
그러한 마나들은 다시 강찬의 마나 라인을 타고 머리 위로 솟구쳤다.
그러기를 여러 번, 점점 더 가속되어 가는 마나들이 최고조에 이르자 강찬의 머리 위로 오색 빛깔의 꽃봉오리가 만발하며 신비로운 모습을 자아냈다.
그때 마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지크욘이 강찬의 모습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음? 저게 뭐지?”
수천 년을 살아온 지크욘도 소드 마스터에 오른 자가 마나 연공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드넓은 대륙에서 전 종족을 통틀어도 소드 마스터에 오른 무인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적었다.
거기다 마나 연공에 몰입할 땐 굉장히 취약해지기에 아무 데서나 마나 연공을 하지도 없었다.
그것이 드래곤의 앞에서라면 두말할 나위조차 없었다.
아무리 간이 큰 자라도 말이다…….
‘요즘 저놈의 마나가 이상하리만치 늘어나서 혹시나 했는데, 저게 바로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의 모습인가?’
강찬이 마나 연공을 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지크욘의 얼굴에 황홀함 가득 찼다.
그 어떤 종족보다 마나에 민감한 종족인 드래곤이 보기에 기사가 마나를 다루는 모습은 굉장히 색다르고, 아름다워 보였다.
전신으로 힘차게 뻗어 나가는 오색 빛깔 마나의 모습은 역동 그 자체였고, 휘몰아쳐 꽃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모습은 가히 예술 그 자체였다.
마법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것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기사들의 마나를 다루는 법과 마법사들이 마나를 다루는 것은 근본적으로 달라도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마법은 몸 외부로 마나를 이동시켜 고유의 성질을 토대로 조합하거나 극대화시켜 발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들은 마나를 몸 안으로 받아들여, 세포 하나하나가 마나에 반응할 때 생기는 힘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지크욘은 조용히 의자에 기댄 채 강찬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마나를 사용하는 방법에 굉장한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법의 극에 오른 자로서 짧은 시간이나마 강찬의 마나 연공을 지켜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휴우…….”
깊은숨을 내뱉으며 눈을 뜬 강찬의 눈에는 정광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 빛이 서서히 자취를 감출 때쯤, 강찬은 앞에 앉은 지크욘을 발견했다.
“언제 왔어?”
“조금 전에.”
“미안, 마나 연공을 하느라 오는 줄도 몰랐군.”
“괜찮아, 덕분에 좋은 구경했는걸. 그건 그렇고, 언제 소드 마스터가 된 거야?”
“그건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그날 밤 이후로 이렇게 되어 있더군.”
지크욘은 대륙에서 열 명도 채 안 되는 초인의 길에 들어선 것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강찬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그녀는 인간 세계를 수없이 경험했기에 소드 마스터들이 누리는 엄청난 권력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인간은 권력이나 부에 대한 일절의 욕심도 없었다.
그 점이 마음에 드는 지크욘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축하해. 이제 어디 가서 밥 굶지는 않겠네?”
지크욘의 농담 섞인 말에 강찬이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왜 벌써 짐을 챙겨?”
“내일 떠나려고.”
“내일? 왜, 좀 더 있지 않고.”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
“그래도…….”
지크욘은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곳에서 좀 더 강찬과 술도 마시고 쇼핑도 하며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드워프들이 만든 진귀한 세공품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인간 세상에서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귀하디귀한 장신구들이 말이다.
물론. 지크욘이 그것들을 받으면서 드워프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 덕분에 가뜩이나 아름다운 외모에 현란한 장신구들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는 지크욘은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런 지크욘의 모습을 바라보는 강찬의 눈빛은 매우 슬퍼 보였다.
“굳이 무리해서 날 따라올 필요는 없어.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일이니까.”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는 강찬의 말에 지크욘이 발끈했다.
“무리는 무슨, 친구를 위해서 당연히 가는 거지! 좋았어! 내일 당장 출발하자고!”
지크욘도 서둘러 자신의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마인킹덤에서 지내며 긁어모은 수많은 패물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을 정신없이 쓸어 담는 지크욘의 모습은 영락없는 강도의 모습이었다.
이틀 동안 저 정도의 패물을 긁어모으다니…… 역시 지크욘은 어쩔 수 없이 제 버릇 개 못 주는 드래곤이었다.
그런 그녀의 활기찬 모습을 바라보며 강찬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지크욘이 옆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오히려 자신일지도 몰랐다.
제이나가 죽고 없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강찬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대는 마스터인 엘라디온과 지크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고맙다, 친구야.”
“새삼스러운 녀석! 고맙긴 뭐가 고맙냐? 친구 사이에.”
지크욘이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강찬의 머리를 까치발로 서서 헤드 락을 걸었다.
그러자 강찬의 얼굴이 지크욘의 풍만한 가슴에 닿았고, 강찬은 새빨개진 얼굴로 그녀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야아아, 놔! 이거 안 놔?”
“어딜!”
지크욘의 완력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기에 강찬도 쉽사리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못 빠져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강찬은 본의 아니게 무리해서 지크욘의 헤드 락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남자란 어쩔 수 없이 그런 존재인 것이다…….
다음 날. 강찬은 아침 일찍 해가 뜨자마자 아르테온과 엘라디온, 그리고 크랙시온의 환송을 받으며, 전장으로 향했다.
“잘 다녀오너라.”
“다녀오겠습니다, 마스터.”
엘라디온이 강찬의 어깨를 꽉 쥐면서 말했다.
“죽지 마라. 부디…….”
“예, 마스터.”
강찬과 엘라디온이 뜨겁게 이별의 포옹을 나눴다.
“아르테온 님, 그동안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찬 님, 저희 엘프들도 드워프들과 함께 곧 뒤따라 갈 거예요. 너무 그렇게 못 볼 사이처럼 말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전장에서 보세나, 인간 친구.”
크랙시온이 거칠고도 단단한 손을 내밀자 강찬은 그런 그의 손을 맞잡고 서로 어깨를 두들겼다.
그렇게 크랙시온은 강찬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서 강찬 뒤에 서 있는 지크욘에게도 예의상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또 들러주십시오, 위대한 분이시여.”
크랙시온이 생각에도 없는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이자 지크욘이 비릿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알았다. 꼬옥! 다시 들리도록 하겠다.”
지크욘이 꼭 이란 단어에 엄청난 무게를 싣자 크랙시온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아, 알겠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지금 그는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기며, 이번에 지크욘이 강탈해 간 패물들을 계산하고 있었다.
절로 피눈물이 날 만큼 엄청난 액수였다.
그런데도 꼭 다시 오겠다니……. 드래곤의 지칠 줄 모르는 욕심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크랙시온이었다.
모두와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가진 강찬은 환송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지크욘과 함께 복수의 여정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