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65
퓨쳐나이트 65화
* * *
마인킹덤을 벗어난 두 사람.
그런 그들 앞에 펼쳐진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몬타나 산맥을 바라보던 강찬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휴, 서둘러야겠군.”
소드 마스터에 오른 강찬은 보통 사람으로선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깎아지른 경사면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법으로 그를 따라잡은 지크욘이 강찬을 급히 불렀다.
“야! 좀 천천히 가면 안 될까?”
“갈 길이 멀다.”
복수에 쫓기는 강찬의 모습에 지크욘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휴우…… 그래서, 계획은 가지고 출발하는 거야?”
“계획?”
“그래, 어디로 어떻게 갈지 말이야.”
“일단은 전투가 가장 치열하다는 헬리온 왕국 전선으로 갈 거다.”
“어떻게 갈 건데?”
“걸어서.”
“거기까지 걸어서? 너, 헬리온 왕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 확인도 안 해 봤어?”
물론 안 해 본 강찬이 아니었다.
“해 봤어.”
“근대 거길 걸어가자고?”
강찬이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너의 그 마법이란 걸로 한번에 갈 수는 없을까?”
“안 돼, 거긴 너무 멀어. 마법으로도 그 정도 거리는 불가능해.”
물론 거짓말이었다.
지크욘은 대륙 어디라도 공간 이동 마법을 통해 간단히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강찬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녀가 판단하기에 지금 강찬에게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만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또한 강찬과 단둘이 오붓하게 여행하고 싶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강찬도 그녀의 마법을 이용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할 수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한번은 아니더라도 여러 번으로 나누어 공간 이동을 할 수도 있었고, 날아서 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강찬은 지크욘에게 그런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녀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럼 일단 한동안 걷다가 마을에 도착하면 이동 수단을 구해 보자.”
“그러지.”
둘은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산을 타고 내려왔다.
그렇게 몇 번의 식사와 휴식을 했을까?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져 왔다.
그러나 이토록 내려왔건만 산맥의 끝은 보이지도 않았다.
얼마 전에 엘프들과 함께 마인킹덤에 도착했을 때는 포탈이 산맥 중턱에 건설되어 있어서 그나마 하루 만에 마인킹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 앞에 펼쳐진 몬타나 산맥은 정말이지 욕이 절로 나올 만큼 드넓었다.
강찬이 드워프에게 얻은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들고 자북을 향해 지도정치를 한 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대충 가늠해 보았다.
거리를 확인한 강찬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런 속도라면 언제쯤 도착할지 모르겠군.”
마음이 다급해진 강찬이 초조함에 한숨을 내뱉자 지크욘이 입을 열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일단 산맥만 내려가면 말을 구해서 훨씬 빠르게 갈 수 있을 거야.”
“말?”
“말 몰라?”
생전 말이란 것을 접해 보지 못한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 적은 없지만, 그걸 이용하면 빠르게 갈 수 있는 건가?”
“그래, 이곳 인간들이 가장 널리 애용하는 이동 수단 중 하나지.”
“그럼 우선 첫 번째 목표는 이 산맥을 벗어나 이동 수단인 말을 구하는 것이 되겠군. 일단 지도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을은 이곳이니 최단 거리로 이동을…….”
“푸흣!”
강찬이 주변에 떨어진 나무 막대기를 집어 들고 예전 군인일 때처럼 무릎 앉아 자세로 작전 브리핑하듯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자 그런 그의 경직된 모습에 지크욘이 실소를 터트렸다.
“왜 웃지?”
“너, 어디서 그런 거 배웠어? 좀 깨는데?”
“뭘 깬다는 거지?”
“아! 아무튼, 지루한 작전 설명은 이제 됐고요, 대장님. 우리, 식사나 하죠?”
귀찮다는 듯 손사래 치는 지크욘을 향해 강찬이 불시에 헤드 락을 걸었다.
“케엑!”
“식사는 작전 브리핑이 끝나고 먹는다, 병사!”
“너, 너무하십니다, 대장님!”
“푸흣! 아하하하!”
간만에 웃음 짓는 강찬을 바라보며 지크욘도 활짝 웃었다.
“자, 첫 날 밤인데 우리 뭐 먹을까?”
문득 강찬은 음식다운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낮에는 빠르게 이동하느라 대충 육포 따위로 배를 채웠기 때문이다.
“대장님이 정하시죠?”
“자꾸 날 대장이라고 부르면 오늘 저녁은 알약으로 때우는 수가 있다.”
알약이란 소리에 지크욘이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헉! 그걸 챙겨오다니, 무서운 놈.”
알약을 광적으로 싫어하는 지크욘이었다.
“급할 때는 그것만한 게 없어.”
“굶어 죽어도 그것만은 절대! 안 먹어!”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봐.”
강찬이 메뉴를 정하기 위해 크랙시온이 챙겨 준 묵직한 식량 가방을 열었다.
“일단 챙겨 온 식량 중에서 빨리 상하는 것부터 먹어 치우는 게 좋겠지?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보자. 치즈와 햄, 그리고 빵, 훈제 소시지, 밀가루, 육포, 소금…….”
강찬이 무거운 식량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을 때, 지크욘은 작은 공간의 틈으로 손을 넣어 와인 한 병과 잔을 꺼내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그런 지크욘을 바라보는 강찬의 표정이 육포만큼이나 건조하고 딱딱하게 굳었다.
“…….”
“왜? 너도 마실래?”
“뭐냐, 그건?”
“보면 몰라? 와인이잖아.”
“그게 아니고. 그 와인, 어디서 꺼냈어?”
“내 레어에서 공간 이동시킨 건데?”
“…….”
강찬은 말없이 자신의 거대한 배낭을 내려다봤다.
배낭은 여행에 필요한 온갖 용품들과 식량으로 가득 차 있어 일반인은 메는 것도 버거울 정도의 무게였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에 오른 강찬이기에 이 정도 무게는 무거운 정도는 아니었다.
이동할 때 거추장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심지어 강찬은 지크욘을 생각해 그녀의 짐까지 죄다 자신이 짊어지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런데 저런 획기적인 보관 방법을 가지고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니…….
강찬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런 보관 방법이 있었으면서 가만히 구경만 하다니, 널 죽여 버리겠어!”
강찬이 지크욘을 덮쳐 위에서 눌러 버렸다.
“꺄악! 네가 언제 나한테 그런 부탁한 적 있어? 생사람 잡지 마!”
“네게 그런 방법이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너, 일부러 모른 척했지?”
지크욘이 비웃음 섞인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남한테 의지하는 모습, 보기 안 좋아.”
“죽었다고 복창해라…….”
강찬은 지크욘이 간지럼에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정 봐 주지 않고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아하하! 하, 하지 마! 아하하! 알았어! 알았다고! 넣어 줄게, 넣어 주면 되잖아!”
“늦었어!”
“아하하! 살려 줘! 아하! 그만! 그만!”
적막한 숲속에 남녀가 한데 뒤엉켜 구르는 모습은 분명히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모습이겠지만, 그들은 종족을 초월한 친구 사이일 뿐이었다.
* * *
나무와 나무 사이에 로프를 연결하고 그 위로 모포를 걸친 뒤에 양쪽을 벌려 돌로 고정시키자 근사한 간이 천막이 완성되었다.
비록 볼품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새벽이슬 정도는 충분히 막아 줄 든든한 천막이었다.
천막이 완성되자 강찬은 모닥불을 피울 준비를 했고, 하는 일 없이 놀고만 있는 지크욘을 불렀다.
“야! 땔감 좀 모아 줘.”
“귀찮아.”
“놀지만 말고 너도 좀 도와라.”
“뭐 하러 땔감을 써? 캠프 파이어!”
지크욘이 손을 휘두르자 강찬이 모닥불을 피우고자 만든 원형 돌무더기 안에 작은 마법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여행용으로 지크욘이 만든 마법이었다.
“오! 제법 쓸 만한걸?”
마법으로 만든 모닥불을 신기한 듯, 바라본 강찬이 그 위로 야전 조리 기구를 만들어 설치했다.
그동안 엘프의 숲에서 제이나와 벌여 온 육식 생활로 다져진 놀라운 실력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식사 준비를 끝마친 강찬이 음식을 접시에 덜어 지크욘에게 나눠 줬다.
“맛있게 먹어라.”
“땡큐.”
강찬이 빵을 반으로 벌려 가운데에 훈제 소시지와 치즈를 끼워 넣고 크게 한입 베어 물려고 했다.
바로 그때 지크욘이 그의 식사를 제지했다.
“잠깐!”
“왜?”
“더럽게, 씻고 먹어야지.”
“여기에 씻을 곳이 어디 있다고 그래?”
“내가 씻겨 줄게.”
“뭐라고?”
“클린.”
황당한 표정을 짓는 강찬에게 지크욘이 클린 마법을 걸자 눈부신 마나들이 강찬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마법이 끝나자 강찬은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것처럼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온종일 걸어 온몸에 범벅이 된 땀과 먼지가 단번에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
강찬이 천천히 자신의 몸을 살피자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입은 의복도 삶아 빤 것처럼 말끔하게 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단한데? 어떻게 이렇게 깨끗해질 수가 있지?”
“이것이 다 위대하신 이 몸의 마법 덕분이지. 클린.”
지크욘이 자신에게도 클린 마법을 걸자 그녀도 막 샤워를 끝마친 것처럼 깔끔한 모습으로 변했다.
“자, 이제 밥 먹자.”
“그래, 맛있게 먹어라.”
“너도.”
야외에서 먹는 식사는 정말 꿀맛 같았다.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마친 둘은 와인까지 꺼내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천막 안에서 갑자기 지크욘이 강찬의 팔을 껴안자 강찬이 화들짝 놀랐다.
“야, 기대지 마!”
“춥단 말이야. 가만있어.”
“…….”
지크욘이 강찬의 팔에 매달려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새근새근 잠들자 강찬은 한숨을 내쉬며, 애써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오라는 잠은 오지도 않고 육체적 번뇌만이 끊임없이 떠오르며, 강찬을 괴롭힐 뿐이었다.
‘이놈은 남자다. 이놈은 인간이 아니다. 이놈은 남자…….’
아무리 자기 암시를 걸어 본들. 자신의 팔에 맞닿은 지크욘의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은 그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강찬은 조심히 지크욘에게서 팔을 빼고는 천막에서 나와 모닥불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제이나. 나 참 한심한 놈이지?’
강찬은 쓴웃음을 지으며, 잠을 포기하고 마나 연공이나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봄이라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했지만,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려 회전시키기 시작하자 훈훈한 열기가 온몸으로 퍼지며, 그의 몸에서 한기를 몰아내 주었다.
그렇게 조심히 마나를 회전시키던 그의 이목에 뭔가 작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
강찬은 급히 마나 연공을 중단했다.
‘누구지? 설마 다크 엘프?’
소드 마스터에 오른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이토록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종족은 그것들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강찬은 마스터에게 졸업의 증표로 받은 미스릴 단검을 소리없이 뽑아 들고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기다렸다.
컴컴한 숲속. 마법으로 타오르는 모닥불 아래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찬은 숲속의 한곳을 지긋이 바라보며, 살벌하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나오시지?”
“…….”
강찬이 자신이 몸을 숨기고 있는 곳을 정확히 바라보며 외치니, 침입자는 어쩔 수 없이 강찬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모습을 드러낸 침입자를 바라보는 강찬의 표정은 싸늘함에서 의문으로 바뀌었다.
“아니, 당신은?”
“…….”
침입자는 강찬도 잘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죄송해요, 강찬 님…… 이렇게 불쑥 나타나서.”
“당신이 여길 어떻게?”
침입자는 엘리카였다.
강찬은 그런 그녀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자신이 선물한 레일 건과 탄입대를 두르고, 작은 배낭에 망토까지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여행자의 모습이었다.
“그 차림새는 설마?”
엘리카가 갑자기 강찬 앞에 무릎을 꿇으며 간청했다.
“강찬 님, 부디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강찬은 무릎 꿇은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만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