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66
퓨쳐나이트 66화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돌아가 주세요.”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제발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그럴 수 없습니다.”
강찬은 자신의 안전조차 장담할 수 없는 험난한 여정에 그녀를 동반할 수 없었다.
“저도 복수하고 싶어요. 돌아가신 부모님과 동생의 복수를요……. 그러니 제발 절 돌려보내지 말아 주세요.”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러지 않으셔도 복수는 조만간 하시게 될 겁니다. 그러니 무리해서 절 따라올 필요는 없습니다.”
“무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은혜를 갚고 싶어요.”
“…….”
“절대 짐이 되진 않을게요, 강찬 님.”
엘리카가 강찬에게 다가와 손을 잡으려 하자 강찬은 그녀의 손길을 피해 뒤돌아서며 말했다.
“대가를 바라고 구해 드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은혜를 갚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
강찬이 완강하게 자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자 엘리카는 초강수를 두었다.
철컥!
너무도 익숙한 소리에 놀란 강찬이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레일 건을 장전하는 소리였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강찬이 돌아서서 보니 엘리카가 레일 건을 자신의 머리에 겨누고 있었다.
“어차피 전 강찬 님이 아니었다면 그때 죽었을 몸입니다. 그러니 전 꼭 강찬 님께 은혜를 갚아야만 합니다. 만약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면…….”
엘리카가 사격 모드를 안전 모드에서 단발 모드로 바꿨다.
“이 자리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의 품으로 가겠어요.”
강찬은 엘리카의 무모한 행동에 할 말을 잃었다.
“제가 가는 길은 살아 돌아오길 바라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죽으러 가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기를 쓰고 따라오려 하니, 강찬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막막해졌다.
“일단. 그 총부터 내려놓고 얘기하죠?”
“허락해 주실 때까지 절대로 내려놓지 않겠어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그녀의 고집에 강찬은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함께 가죠.”
“정말이죠? 약속하신 거죠?”
“단, 당신이 짐이 된다고 생각될 때에는 가차 없이 버리고 떠날 겁니다.”
“명심할게요.”
“그럼 이제 그 총 내려놓으시죠?”
“아, 네에.”
오기로 밀어붙였지만 속으론 많이 긴장했는지, 엘리카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조심스럽게 레일 건을 내려놓았다.
강찬은 모닥불 근처에 걸어 둔 주전자의 따뜻한 물을 컵에 따라 건넸다.
“드세요.”
“고마워요…….”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저 천막 안에서 주무세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겁니다.”
“저기, 그럼 강찬 님은 어디서 주무세요?”
“전 그냥 여기서 잘 겁니다.”
“네에? 이렇게 추운 데서요? 모포도 없으시잖아요.”
“괜찮습니다.”
“그럼 저도 여기에 있을게요.”
“아닙니다, 안에 자리 많습니다. 안에서 주무세요.”
“하지만…….”
“안에서 주무세요.”
강찬이 강한 어조로 말하자 엘리카는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네…….”
모닥불이 있다곤 하나 이런 추운 날 모포도 없이 밖에서 잔다는 강찬의 말에 걱정이 된 엘리카는 자신이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어서 강찬에게 건넸다.
“그럼 강찬 님, 이거라도 두르세요.”
“아, 감사합니다.”
엘리카가 건넨 망토를 두른 강찬은 생각보다 망토가 매우 따뜻하다는 것에 놀라며, 서둘러 엘리카를 잠자리에 들게 했다.
“서둘러 들어가세요. 추우실 텐데.”
“네.”
골아 떨어져 있는 지크욘 옆으로 엘리카를 눕힌 강찬이 모포를 덮어 주며 말했다.
“옆에 있는 짐짝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자신을 짐짝이라고 표현한 것을 지크욘이 들었다면 노발대발했겠지만, 그녀는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강찬이 엘리카를 천막 안에 눕히고, 모닥불로 돌아서려 하자 엘리카가 강찬의 손을 붙잡았다.
“저, 저기…….”
“예?”
엘리카가 얼굴에 홍조를 띠며 말했다.
“호, 혹시 밖이 너무 추우시면 안으로 들어오세요…….”
간의 천막 안은 생각보다 넓어서 세 명이서 누워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남자들끼리라면 말이다.
그런데 여인이 둘씩이나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오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괜찮습니다.”
“네…….”
강찬이 냉정하게 거절하자 엘리카는 조용히 잠을 청했고, 강찬은 또다시 마나 연공에 몰입했다.
다음 날, 지크욘은 잠결에 강찬의 팔뚝이 무척이나 얇아졌다는 사실에 놀라 눈을 떴다.
그녀의 눈앞에는 강찬이 아닌 웬 엘프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넌 뭐냐?”
“……네에?”
아직 잠에서 덜 깬 엘리카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뭔데 네가 여기서 자고 있는 것이냐?”
싸늘한 지크욘의 눈빛에 정신을 차린 엘리카가 벌떡 일어나서 대답했다.
“아, 어제 강찬 님이 여기서 자라고 하셔서요.”
“어제?”
분명 어제 자신이 잘 때까지만 해도 이런 굴러들어 온 돌멩이는 없었는데. 언제 이런 돌멩이가 굴러 와서 박힌 돌을 뺀 것인지 지크욘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야! 강찬!”
지크욘이 천막 밖으로 뛰쳐나와 강찬을 노려봤다.
“잘 잤어?”
아침 식사 준비에 한창인 강찬은 지크욘에게 대충 아침 인사를 건네고 요리에 몰두했다.
“쟤 뭐야?”
“동료.”
“동료? 누구 맘대로?”
지크욘은 강찬과의 오붓한 여행길에 불청객이 끼어드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고운 이마를 구기며, 강찬에게 따지고 들었다.
“내 맘대로지. 아침이나 먹자.”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꼬맹이 따위를 데려다가 어디다 쓰려고?”
자신을 꼬맹이라고 부르자 엘리카가 발끈했다.
“뭐, 뭐라고요? 꼬맹이요?”
엘리카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에 지크욘이 웃기지도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꼬맹이는 조용히 찌그러져 있지?”
“헉!”
지크욘이 감춰 두었던 드래곤의 존재감을 거리낌 없이 뿜어내자, 엘리카는 숨 막히는 에이션트 드래곤의 존재감 앞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고는 과거 제이나와 마찬가지로 실성한 사람처럼 주절거렸다.
“다, 당신은 드, 드, 드래곤?”
엘리카는 여태껏 눈앞의 여인이 악룡 지크욘과 이름만 같은 인간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드래곤이 설마 인간 따위와 붙어 다닐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눈앞의 지크욘은 바로 그 지크욘이 맞았다.
엘프 숲의 깡패 G. 지크욘 말이다.
“어버버, 어버버…….”
패닉에 빠진 엘리카가 잔뜩 겁에 질린 채로 오들오들 떨고 있자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강찬은 재료들을 썰다말고 조용히 지크욘을 말렸다.
“그만해.”
“하지만……,”
강찬은 지크욘에게 뭐라 항변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말을 잘랐다.
“내 결정이 맘에 안 들면 혼자 떠나겠어.”
“…….”
지크욘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갈무리하고 강찬 앞에 앉았다.
“어휴, 내 팔자야.”
전 대륙에 두려울 것 하나 없는 절대자 중의 절대자인 자신이 한낱 인간의 말에 굽혀야 한다는 사실에 못내 화가 나는지 지크욘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런 지크욘을 바라본 강찬은 썰어 둔 재료를 냄비에 넣으며, 다정한 어투로 지크욘을 다독였다.
“미안, 지크욘. 죽을 땐 함께 죽자고 말하진 않을게. 그러니 그전까진 내가 하자는 대로 해 줘.”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래?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둘 것 같아?”
지크욘이 손을 까딱이자 뒤에서 벌벌 떨고 있던 엘리카가 무형의 힘에 의해 붕 날아올라 지크욘의 옆자리에 떨어졌다.
안 그래도 사색이었던 엘리카는 졸지에 지크욘의 옆자리에 앉게 되어 버리자 조각상처럼 완전히 굳어 버리고야 말았다.
그런 엘리카와 어깨동무한 지크욘이 엘리카의 뾰족한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앞으로 잘해 보자고, 꼬맹아.”
다정한 말투였지만 엘리카에게는 세상 그 누구의 말보다 더 살벌하게 들렸다.
“네? 예에…….”
겨우 입을 열어 대답한 엘리카가 강찬을 향해 필사적으로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한 눈빛에도 강찬은 태연히 냄비의 음식을 저으며 말했다.
“엘리카, 지크욘은 그렇게 나쁜 녀석이 아닙니다.”
“…….”
강찬을 바라보는 엘리카의 눈동자는 마치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혹은 ‘내가 바보냐?’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 주방장! 오늘 아침은 뭐지?”
“오늘 아침 메뉴는 어제 먹다 남은 훈제 소시지와 육포를 넣어 끓인 고기 스튜다.”
“에엑? 그걸 어떻게 먹어? 나보고 어제 먹다 남은 음식을 먹으라고?”
“먹어도 안 죽는다.”
“야! 아직 출발한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빡빡하게 굴 것까진 없잖아?”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강찬이 그릇에 스튜를 덜어 지크욘에게 내밀었다.
“주는 대로 먹어라.”
“크윽, 천하의 지크욘 님께서 먹다 남은 음식을 재탕해서 먹을 수는…….”
“그럼 굶든지, 아님 알약으로 때우든지.”
“…….”
알약 얘기에 똥 씹은 표정이 된 지크욘이 스튜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킁! 킁!
“으음?”
의외로 스튜에서 그럴싸한 냄새가 나자 지크욘은 조심스럽게 스튜를 입에 가져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러나 입속에 들어간 재활용 스튜의 맛은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
“으음!”
지크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계속해서 스튜를 퍼먹었다.
‘뭐지, 이 맛은? 입에 착 달라붙는 게, 멈출 수가 없잖아!’
그동안 엘프의 숲에서 지내며 별다른 조미료 없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온 강찬에게 소금과 후추는 가히 최고의 조미료들이었다.
거기다 술집 주인 첼시가 따로 챙겨 준 비장의 조미료까지 조금 가미하니, 그 초라한 재활용 스튜에서 왕궁에서나 먹을 법한 스튜의 맛이 났던 것이다.
순식간에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지크욘이 강찬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더 줘!”
“먹을 만해?”
지크욘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이 지크욘의 그릇에 스튜를 덜어 주며 엘리카에게 물었다.
“엘리카 씨는 음식 따로 챙겨 왔습니까?”
“네, 여기 가방에 있어요.”
“그럼 일단 그걸로 식사하시고, 이따가 가방은 저한테 주세요. 제가 보관해 드리겠습니다.”
“아뇨, 제가 들고 갈게요. 짐도 많으신데.”
“마법으로 옮길 거니깐 사양하지 말고 주세요.”
“아! 네에.”
마법으로 옮긴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엘리카는 가방에서 브로콜리를 꺼내 조금씩 떼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먹는 양은 제이나에 비하면 조족지혈인지라, 그 모습이 걱정된 강찬이 스튜를 권했다.
“스튜 좀 드시겠습니까?”
강찬이 선뜻 고기가 들어간 스튜를 권하자 엘리카가 흠칫 놀라며 손사래 쳤다.
“아, 아뇨, 괜찮아요. 전 육류를 아예 안 먹거든요.”
“그렇군요.”
강찬은 속으로 제이나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한 일행은 다시 여정을 떠날 준비를 했다.
식사를 하고 나면 가장 귀찮은 설거지를 지크욘이 클린 마법으로 간단하게 해결해 주었기에 정리는 더욱 빨리 끝날 수 있었다.
게다가 모든 짐을 지크욘이 자신의 레어로 이동시켰기에 모두들 짐 하나 없는 홀가분한 몸으로 여정에 오를 수 있었다.
21. 새로운 동반자
몬타나 산맥에서도 가장 숲이 우거진 덴버 포레스트.
흉악한 몬스터와 맹수들이 우글거려 사람의 손길이 끊긴 이곳에 생각지도 못할 거대한 텃밭이 가꾸어져 있었다.
그 텃밭에는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거대한 호박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고, 그 옆에는 자그마한 오두막이 아니라…… 요새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거대한 오두막이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오두막 앞에는 오두막만큼이나 거대한 개집에 충성스러워 보이는 개가 아니라…… 매우 거대하고 사납게 생긴 불곰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크르륵! 쿠엉! 쿠엉!”
배가 고픈지 불곰이 오두막을 향해 사납게 짖기 시작하자 지축을 울리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높이가 6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문을 열리며, 불곰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5미터에 이르는 신장, 터질 듯한 근육, 보는 것만으로도 똥오줌을 지릴 만큼 사나운 인상.
불곰의 주인은 놀랍게도 오우거였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온 오우거의 피부색은 일반적인 오우거의 녹색 피부와는 다른 푸른색 피부였다.
“크르르르…….”
오우거의 등장에 거대하고 난폭해 보이던 불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불곰은 귀엽고 앙증맞은 강아지가 되어 자신의 주인에게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