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7
퓨쳐나이트 7화
3. 추락한 레드 마스호
그가 눈을 뜬지 석 달이 지난 후.
어느 정도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익힌 강찬이 아르테온을 찾아갔다.
그런 갑작스러운 강찬의 방문에 그녀는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어서 오세요, 강찬 님. 무슨 일로 절 찾아오셨나요? 지내시면서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긴히 부탁할 게 있어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아르테온 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유창한 에르칸도르 공용어를 들은 아르테온은 깜짝 놀랐다.
‘그가 요즘 요 몇 달간 우리말을 익히려고 불철주야로 노력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불과 석 달 만에 저리도 완벽한 발음으로 에르칸도르 공용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다니 대단해.’
그녀는 정말 그의 뛰어난 학습력에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지만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부탁할지 대충 짐작이 갔기에 애써 모른 척하며 되물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새침했다.
“어떤 부탁인가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와드릴게요. 말씀해 보세요.”
잠시 뜸을 들인 강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추락한 우주선에 가 보고 싶습니다.”
그의 말이 자신이 생각한 대답과 일치하자 아르테온은 천천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 그녀는 흔쾌히 허락했다.
“알겠어요. 그럼 내일 아침 일찍 함께 둘러보기로 하죠.”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럼 내일 뵙죠.”
강찬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아르테온의 방을 나서서 집으로 향했다.
‘드디어 전함이 추락한 이유를 알게 되겠군.’
내일이면 3개월 동안 그를 괴롭힌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마음은 너무도 복잡했다.
* * *
이튿날 아침 일찍 강찬은 아르테온이 데리고 온 열 명의 엘프족 전사와 함께 추락한 전함을 향해 출발했다.
제이나가 함께 따라가고 싶은 눈치였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기에 입도 뻥끗 못한 채 혼자서 끙끙거리기만 했다.
컴퓨터가 가르쳐 준 거리는 15.513킬로에 불과한, 가까운 거리였지만 울창한 산림 지대를 가로지르다 보니 그들이 괴물체에 도착한 건 점심때가 한참 지난 후였다.
“자,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당신이 타고 온 괴물체가 추락한 곳입니다.”
‘괴물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전함에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끝이 보이지 않는 파괴의 흔적만이 이곳에 무엇인가가 불시착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줄 뿐이었다.
“잠시만요.”
아르테온이 가슴속 주머니에서 작은 수정을 꺼내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주변에 땅 위로 수많은 광망과 함께 마법진들이 발동했고, 그들 앞으로 2미터 남짓에 마법진으로 이뤄진 문이 나타났다.
아르테온이 태연히 마법 문으로 들어서자 뒤따르던 엘프족 전사가 어리벙벙하게 서 있는 강찬을 마법진 안으로 안내해 주며 살며시 귀띔해 줬다.
“이곳은 나인 써클 유저이신 아르테온 님이 직접 만드신 마법 결계로 감춰져 있습니다. 자,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
자신의 전함에 마음대로 결계를 쳤다는 말에 강찬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엘프족 전사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강찬의 눈앞에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금속 구조물이 들어왔다.
그 거대한 금속 구조물 상부에 붉은 핏빛에 문구가 선명했다.
「RED MARS」
‘드디어…… 다시 전함으로 돌아왔군.’
추락한 레드 마스호는 여기저기가 심하게 부서져 있었고, 동체는 대기권을 통과할 때 받은 고열에 인해 녹았었는지 우글우글해진,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전함은 절벽 속에 반쯤 파묻혀 고이 잠들어 있었는데, 그런 전함을 바라보는 강찬은 마음이 다급해졌는지 전함을 향해 다급히 다가서려 했다.
그러자 엘프 전사가 그를 막아섰다.
“안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왜 그러십니까?”
호위 엘프는 주머니 속에서 팔찌를 꺼내어 강찬의 팔목에 채워 줬다.
“이제부터 저 안은 이 팔찌가 없는 자는 들어갈 수 없는 또 다른 고위급 마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팔찌를 차고 있어야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마법 팔찌를 채워 주는 엘프족 전사를 보며 그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남의 우주선에 이것저것 많이도 설치하셨군.’
“그럼 이제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아니요. 아직 안됩니다.”
엘프족 전사가 또다시 그를 막았다.
마음은 이미 전함 안에 있는데 자꾸만 자신을 잡아채는 엘프족 전사가 그렇게 미울 수 없는 강찬이었다.
“아직 뭐가 더 남았습니까?”
“점심시간입니다.”
“…….”
그의 말에 강찬은 허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아르테온과 함께 온 10명의 엘프족 전사들은 이미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괴물체 안은 식사 후에 들어갈 것입니다.”
다시금 단호하게 말한 엘프 전사는 서둘러 다른 엘프들의 식사 준비를 도왔다.
그들은 그늘진 곳에다 돗자리를 깔고는 둘러앉아 서로 가져온 음식들을 꺼내 놓았다.
뭘 그리 바리바리 싸 들고 가나 했더니 그건 모두 도시락이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보였다.
강찬이 보기에 엘프들은 지나치게 느긋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엘프들 특유의 여유로움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강찬만이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도 슬슬 허기지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점심을 마친 이들이 레드 마스호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 앞에 비상등이 켜진, 긴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비상 동력 체제군. 주동력은 꺼진 건가?”
강찬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주동력이 꺼졌다면 그건 자력으로는 회생 불가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 전투함에 탑재된 플루톤 엔진은 재가동 시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다른 전함의 정상 가동 중인 플루톤 엔진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이것이 고성능 플루톤 엔진의 최대 단점이지만, 그로써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에너지와 안정성은 과거 우주 항해에서 사용되던 헬륨3을 이용한 핵융합로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하고 뛰어났기에 몇몇 구형 우주선을 빼고는 모두 상용 플루톤 엔진을 탑재하고 있었다.
최신형 전투함에는 그보다 더 진보된 최신형 엔진인 반물질 제네레이터를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반물질이라는 소재 자체가 워낙 귀하고 다루기 어려운 까닭에 실용화가 이루어진 것은 우주 연합 방위군에 모함인 테메레르 같은 초거대 우주 전함 정도뿐이었다.
“주동력이 꺼졌다면 메인 컴퓨터도 살릴 방도가 없군.”
메인 컴퓨터는 초시공 우주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특수 고안된 슈퍼컴퓨터로써 그 엄청난 처리 용량만큼이나 천문학적인 에너지를 소모했기에 주 엔진의 동력 없이는 가동할 엄두조차 못 냈다.
고로 그 말은 곧 이제 그는 자력으로는 절대로 고향인 태양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강찬은 절망적인 생각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침울한 표정으로 힘겹게 복도를 걸어 나갔다.
그런 그를 아르테온은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그래도 그를 예의주시하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다.
거의 평생을 살아온 이 차갑고 딱딱한 복도에 왔으니 고향에라도 돌아온 기분이어야 했겠지만, 그는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공기 정화 필터가 작동하지 않아 탁해진 실내 공기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예전에 살인 기계였던 시절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그 기억들이 말이다.
그는 숨이 막힐 듯 자신을 죄어 오는 안 좋은 감정들을 애써 떨쳐 버리고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전투의 흔적들을 살피며 전함이 왜 불시착하게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유추해 나가기 시작했다.
‘벽면에 난사되어 있는 탄흔은 아군의 5.56mm가 아닌 제국군의 7.62mm 플라즈마 건의 것이구나. 그리고 탄흔을 가로지르는 고주파 블레이드로 인해 생긴 상흔의 위력과 파괴의 범위로 볼 때 이건 결코 인간이 아닌 전투용 드로이드의 것이다. 블레이드의 상흔 간격이 컴퓨터에 저장된 아군의 모든 드로이드가 쓰는 것과 불일치. 보관 중인 적 제국의 드로이드 정보와도 불일치한 걸 보니 아마도 이건 분명 제국군의 신형 드로이드다.’
적의 흉수가 점점 눈앞에 보이는 듯하자 강찬은 이를 악물었다.
자세한 것은 자료실의 항해 일지를 기록하는 컴퓨터를 조사하면 나오겠지만, 이미 제국의 드로이드가 범인인 것이 분명했기에 강찬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는 강찬의 뒤에서 아르테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단단한 쇠로 된 벽에 작은 구멍들이 줄지어 생길 수 있죠? 이것도 과학으로 만든 무기에 의한 건가요?”
걱정 어린 아르테온의 물음에 그는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마지막 기억 장소인 수면 캡슐실로 향했다.
자신이 어떻게 혼자서 살아남았는지 그는 궁금했기 때문이다.
수면실로 가는 도중 드문드문 처절한 교전의 흔적들이 보였지만 시체들은 엘프들이 모두 치웠는지 깨끗하기만 했다.
그리고 파괴된 녹색 문을 지나 수면 캡슐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강찬은 침음성을 내질렀다.
“흐음…….”
예상했던 대로 적국의 신형 드로이드가 전신이 파괴당한 채로 기능이 정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이 범인이었군.”
과연 처음 보는 형식의 드로이드였다.
거미같이 생긴 형상이었고, 무장으로 봤을 때 앞발은 고주파 블레이드, 두 번째 발은 7.62mm 플라즈마 건으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대인 살상용 드로이드였다.
이 눈앞에 망할 드로이드는 10명의 레드 마스 대원 중 9명을 죽이고 10번째 캡슐에 있던 자신을 끝내 죽이지 못한 채 기능이 정지한 듯했다.
만일 자신이 10번째 캡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자신 역시 예전에 저 살인 기계 손에 죽었을 것이다.
강찬의 표정이 순간 찬 서리가 내린 듯 싸늘해졌다.
그렇게 드로이드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된 수면 캡슐을 한 번씩 훑어보며 걸어가던 강찬이 그중 한 수면 캡슐 앞에서 멈춰 섰다.
“딕…….”
그는 동료애란 눈곱만큼도 없는, 살인 병기들로만 이루어진 특수 부대 레드 마스 속에서도 단 한 명, 동료애를 느끼게 해 줬던 전우였다.
그는 목표 지점을 향해 강습정을 타고 대기권으로 투하되는 긴장감 속에서도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그를 웃기려고 노력했던 흑인 친구였는데, 그때 단 한 번도 웃어 주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그를 위해 울어 주고 싶었지만 그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딕, 미안하다.”
강찬은 그에게 애도의 기도를 하고는 다시 뒤돌아 자료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 비치된 블랙박스에는 레드 마스호가 어떻게 추락하게 되었는지 모든 게 저장되어 있을 것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강찬의 뒤를 엘프들이 말없이 조용히 뒤따랐다.
자료실은 수면실 바로 위층에 있었고, 자료실에 도착한 강찬이 상황실에 비치된 컴퓨터를 재가동시켰다.
메인 컴퓨터처럼 우주 항해를 위해 천문학적인 연산을 수행할 필요가 없는 상황실에 비치된 컴퓨터는 비상 동력만으로도 충분했다.
컴컴했던 상황실 안에 수많은 모니터가 차례로 켜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어지럽게 작동하기 시작하자 강찬 뒤에 서 있던 엘프들이 그 신비로운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이 모든 게 일절 마법이 아닌 과학의 산물이라니, 아르테온은 눈앞의 모든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부팅이 끝나자 강찬은 자신의 팔을 걷고는 컴퓨터의 USB 케이블을 자신의 팔에 꽂았다.
그리고 전함의 블랙박스를 자신의 바이오 컴퓨터에 연결한 강찬은 찬찬히 블랙박스 안의 항해 일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의 입에서 분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