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70
퓨쳐나이트 70화
“음, 미안하다.”
“그르르, 괜찮다.”
강찬과 로키 사이에 잠깐의 고요함이 흘렀다.
자신 때문에 파괴된 텃밭을 배상해 주고 싶은 마음에 강찬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네 밭을 이렇게 만들어 미안하다. 이걸로 배상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강찬이 크랙시온에게 노잣돈으로 받은 골드를 내밀자 로키가 거대한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
“크륵, 그것이 뭔지는 나도 안다. 하지만 이곳에선 필요 없다.”
숲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오우거에게 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가?”
강찬은 오우거에게 조금이라도 보상을 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이 오우거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수중에 골드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안 받겠다 하니, 이제 오우거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서둘러 이곳을 떠나 주는 것밖에 없었다.
“강찬 님, 그냥 가던 길 가죠…….”
아무리 말하는 오우거라지만 엘프인 엘리카가 본능적으로 오우거를 두려워하는 눈치였기에, 결국 강찬은 가던 길을 마저 가기로 했다.
“그럼 우리는 가던 길을 가겠다.”
“야! 그냥 간다고? 잠깐만 있다가 가면 안 돼?”
“크르르…….”
로키에게 관심을 보이던 지크욘이 놀라 강찬을 쳐다보았다.
로키 역시 떠나겠다는 인간의 말에 순간 붙잡고 싶어 망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말 상대를 만났는데, 떠나겠다고 하니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좀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그들이었지만 서로 오해도 풀었고, 정중한 사과도 받았으니 로키는 눈앞의 이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크륵, 그래, 조금 있음 저녁이다. 밥이라도 먹고 가라.”
강찬은 로키가 건넨 뜻밖의 제안에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는 너를 죽이려 했는데,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쿠우, 오해 때문이었으니,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로키의 말에 강찬은 그가 이 적막한 숲속에서 홀로 지내며 많이 외로웠다는 것을 느꼈다.
“다들 어때?”
강찬이 일행의 의사를 물어보았다.
“전 강찬 님만 좋다면 상관없어요.”
“난 찬성!”
엘리카는 강찬의 의사에 전적으로 동의했고, 지크욘은 신이 난 표정으로 대찬성했다.
세기에 대발견을 눈앞에 두고 그냥 돌아서기가 못내 아쉬웠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 그럼 신세 좀 지도록 하지.”
“크륵, 그럼 내 오두막으로 가자.”
오우거인 로키의 표정은 인간과 사뭇 다르긴 했지만, 들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로키가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손님이기 때문이다.
“커엉! 커엉! 커엉!”
목줄에 묶인 거대한 불곰 테디가 낯선 강찬 일행을 향해 사납게 울부짖자 로키가 테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캬륵! 조용해, 테디!”
3미터에 육박하는 사나운 불곰을 본 엘리카가 약간 겁을 먹은 듯. 강찬의 팔에 매달렸다.
숲속의 먹이 사슬 최상위에 군림하는 맹수 중의 맹수인 불곰을 강아지 다루듯 하다니.
지크욘은 역시 오우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오우거가 기르는 애완동물답게 품종부터 남다르군.”
강찬 일행은 로키가 기르는 불곰을 보고도 놀랐지만, 로키가 사는 오두막을 보고도 크게 놀랐다.
“세상에, 이렇게 거대한 오두막이 있다니…….”
마치 거인의 나라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드는 게, 흡사 성처럼 거대한 오두막이었다.
“크르륵, 귀한 손님들이 왔으니 오늘도 잡아야겠지?”
로키가 축사로 향하자 이제는 19마리가 되어 버린 멧돼지들이 또다시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었다.
입이 늘었으니 한 마리로는 어림도 없을 터. 로키는 2마리의 멧돼지를 잡아 주방으로 향했다.
“크륵, 잠시만 기다려라.”
기다리란 말과 함께 로키가 멧돼지를 잡은 양손에 힘을 주자 섬뜩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멧돼지의 목이 부러져 나갔다.
“나도 돕지.”
멧돼지를 해체해 본 경험이 여러 번 있는 강찬이 두 팔을 걷고 나서자 로키가 아주 반가워했다.
“크르, 고맙다.”
그렇게 저녁이 다 될 무렵, 로키의 오두막에서 신나는 멧돼지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
간만에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운 강찬 일행은 그날 저녁 잠자리까지 로키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신세만 지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크륵, 신경 쓰지 마라.”
로키는 따뜻한 벽난로 옆에 강찬 일행의 잠자리를 마련해 줬다.
벽난로는 참으로 따뜻했다.
그렇게 지크욘과 엘리카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때 강찬이 로키를 불렀다.
“자냐?”
“크르르, 안 잔다.”
“오늘 낮에는 정말 미안했다.”
“크릅, 아니다. 나야말로 오랜만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어 기쁘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둘 다 어두운 톤의 목소리라 대화 분위기는 다소 어색했지만, 그래도 서로 약간의 호감을 느끼는지 얘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네 검술은 돌아가신 아버지께 배운 거라 했지?”
“크르르, 그렇다.”
강찬은 낮에 로키가 보여 줬던 검술을 상기했다.
“너희 아버지는 분명 대단한 검객이셨겠군.”
“크르륵, 물론이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인간 중에는 적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로키가 끝을 흐리자 누워 있던 강찬이 로키를 바라봤다. 거대한 침대에 누워 있던 로키도 고개를 돌려 강찬을 바라봤다.
“아버지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건 왜지?”
“크르르…… 오늘 너와 겨뤄 본 결과, 네가 아버지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로키의 말에 강찬은 쑥스러운 듯 너털웃음을 지었고, 그런 그에게 로키는 정말로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크르륵, 대체 어떤 방법으로 수련했기에 그렇게 강한 것이지?”
“그건…….”
로키의 질문에 강찬은 잠시 고민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강찬은 자신이 외계에서 왔다는 사실을 빼고, 엘프의 숲에서 대륙 5대 무신 중 한 명인 엘라디온을 만나 그분을 마스터로 모시게 된 일, 그리고 그 후 걸어온 자신의 과거를 얘기해 줬다.
말 많고 탈 많았던 그 길을 말이다.
그러자 로키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크륵? 엘프족을 대표하는 대륙 5대 무신이 네 마스터였단 말인가? 아버지도 인간 종족을 대표하던 대륙 5대 무신이었다고 들었다.”
“네 아버지가 인간 종족을 대표하는 5대 무신 중 하나였다고?”
“크륵, 그렇다.”
“아버지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
“크르륵, 칼리츠 가르만…….”
물론 강찬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애초에 이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만약 엘라디온이나 자이젠이 들었다면 정말로 깜짝 놀란 만한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야말로 인간을 대표하는 절대자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너를 보니 그분이 얼마나 강하셨을지 짐작이 가는군.”
“크르륵, 휴우…….”
아버지의 얘기가 나오자 로키가 그리움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은가?”
“크르르…… 그렇다.”
강찬은 로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자신 역시 죽은 제이나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떠나간 이를 그리워한다는 건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이지…….”
“크륵? 너도 소중한 사람을 잃었나?”
“그래…… 나 역시 그렇다.”
“슬프겠군.”
강찬은 왠지 로키와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꼈다.
“너는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있을 건가?”
“크르륵…….”
로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곳에서 홀로 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피 끓는 젊은 오우거로, 드넓은 세상에 나가 친구들을 사귀고 아버지처럼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떨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로키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사람이 아닌 오우거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로키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인간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가 본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외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로키의 등장에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사방에서 활과 창이 로키에게 날아들었다.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 그들과 만나면 마음에 상처만 될 거란 그 말이…….
로키는 좌절하며 다시 산으로 도망쳤고, 그 후로 두 번 다시 마을로 내려갈 엄두를 내질 못했다.
그 당시를 다시 떠올리는 로키의 얼굴은 깊은 고뇌와 슬픔으로 잠겼고, 그 모습을 바라본 강찬이 다시 물었다.
“세상에 나가고 싶지 않나?”
“크르르…….”
로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와 함께 가자.”
“크륵!?”
생각지도 못한 강찬의 권유에 로키가 깜짝 놀라 당황하자 강찬이 다시 한번 권유했다.
“나는 네가 맘에 든다. 함께 가자.”
“크르르…… 하지만 나는 인간이 아니다. 오우거다…….”
강찬은 자신이 로키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거대한 로키의 모습에 깜짝 놀랐던 그때를 말이다.
소드 마스터인 자신조차 놀라게 만든 거대한 덩치와 외모다. 일반인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강찬은 로키 같은 엄청난 힘을 지닌 오우거가 인간의 편에 서서 큰 전과를 올린다면 인간 세상 속에서도 분명 설 자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대륙은 사악한 무리에 의해 큰 전쟁을 겪고 있는 난세다. 나는 이것이 너에게 있어 기회라고 생각한다.”
“크륵, 기회?”
“그래, 네가 그들의 영웅이 될 기회.”
“크륵, 영웅?”
“네가 인간의 편에 서서 사악한 녹색 엘프와 싸운다면, 인간들은 분명 널 영웅이라고 생각할 거다.”
“크르르…… 내가 영웅이?”
영웅이란 말에 로키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영웅이 되는 것은 로키가 어려서부터 항상 꿈꿔 오던 것이었다.
오우거인 자신이 꿈에서나 그리던 영웅이 될 수 있다니…….
로키는 당장에라도 강찬을 따라 세상에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로키는 선뜻 같이 가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산에서 내려가 인간들과 마주치기 두려웠던 것이다.
“크륵, 하지만…… 내가 산에서 내려가면 날 보는 인간들은 분명히 두려워할 것이다. 그리고 날 공격할 것이다.”
“…….”
강찬은 로키의 걱정 어린 말에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그로서도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때, 자는 줄만 알았던 지크욘이 나섰다.
“내가 도와주지.”
“어? 지크욘, 안 잤어?”
지크욘이 강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옆에서 그렇게 시끄럽게 떠드는데 어떻게 잠을 자냐! 앙?”
“미, 미안.”
지크욘이 로키를 바라보며 재차 말했다.
“내가 도와주마.”
“크륵, 날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지?”
로키의 눈빛은 불신에 차 있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기대하는 듯 지크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널 사람으로 만들어 주마.”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지크욘의 말에 로키가 깜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크르륵! 나, 날 사람으로?”
“그래, 사람으로.”
“크륵! 그게 가능한가?”
“에이션트 드래곤인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지.”
지크욘이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자 허공에 작은 공간의 문이 생겼다.
지크욘은 그곳에서 거무칙칙한 가죽을 꺼내 띠의 형상으로 가공시켰다.
그러고는 표면에 기이학적인 문양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강찬과 로키는 그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지켜봤다.
잠시 후, 작업을 끝낸 지크욘이 외쳤다.
“됐다.”
지크욘의 앞에는 벨트가 두둥실 떠 있었다.
“웬 벨트?”
강찬의 물음에 지크욘은 말없이 로키에게 벨트를 날려 보냈다.
“손가락에 껴 봐.”
“크륵? 이걸 손가락에?”
갑자기 이상한 벨트를 손가락에 껴 보라는 지크욘의 말에, 로키는 공중에 떠 있는 벨트를 향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크륵, 넣었다.”
“그럼 이젠 그 벨트에 마나를 불어넣어 봐라.”
“크르르?”
잠깐 망설인 로키가 천천히 정신을 집중해 자신의 마나를 손가락의 벨트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벨트에 새겨진 기이학적인 문양들이 순서대로 천천히 밝게 빛나기 시작하고, 이내 로키의 몸도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크르륵! 이, 이건 무슨?”
깜짝 놀란 로키가 마나 주입을 멈추려고 하자 지크욘이 낮은 어조로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