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74
퓨쳐나이트 74화
“저기, 그럼 지크욘 님은 대체 몇 분이랑 관계를 맺어 보셨나요?”
아무래도 엘리카는 지크욘의 폭넓은 성관계 지식에 대단히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 음…… 대충 즐긴 것까지 치면 한 3천 명?”
“푸웃!”
말없이 술을 홀짝이던 강찬은 지크욘의 말에 깜짝 놀라 마시던 술을 도로 내뱉었다.
지크욘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야, 더럽게.”
웬만해선 당황하지 않는 강찬이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뭐, 뭐? 3천 명?”
“그래, 뭐 잘못됐어?”
“…….”
8천 년을 넘게 살아온 지크욘이다. 그런 그에게 3천 명이라고 하면 그리 많다고 느껴질 만한 숫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배신감이 드는 강찬이었다.
그것이 친구로서 느끼는 배신감인지, 아니면 이성으로서 느끼는 배신감인지는 오직 강찬만이 알겠지만 말이다.
“됐다, 말을 말자…….”
“싱거운 자식.”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지크욘 님.”
아첨인지 진심 어린 감탄인지 모르겠지만, 엘리카의 감탄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지크욘이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내가 본격적으로 자극적인 얘기 좀 해 줄까?”
그동안의 음담패설은 시작에 불과했다니, 강찬은 더욱 할 말을 잃었다.
“뭔데요?”
지크욘이 다시 자신의 경험담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엘리카는 더는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지크욘의 음담패설을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찬은 학을 떼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타락한 드래곤이 오늘 애들 여럿 버리는구나…….’
순진한 엘리카와 로키를 타락으로 물들여 가는 지크욘을 보며 강찬이 한숨을 내쉴 때, 멀리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딸랑! 딸랑!
슈크림이 자신을 부르는 종소리였다.
불쾌함에 얼굴을 굳힌 강찬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녀올게.”
강찬은 지크욘의 음담패설을 듣는 것보다 슈크림의 방으로 향하는 것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곧 방문 앞에 도착한 강찬이 슈크림의 방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슈크림이 방문을 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강찬에게 말했다.
“헉! 헉! 남은 인간 년도 데려와라.”
“네.”
강찬이 뒤돌아서서 마차를 향해 가려 하자 슈크림이 다시 강찬을 불렀다.
“잠깐!”
“네, 단주님.”
“그 어린 사내 아이도 같이 데려와.”
“…….”
어린 사내 아이라면 분명 로키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짐승 같은 새끼가…….’
강찬은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단주님.”
단주란 놈은 예쁘면 남녀를 가리지 않는 진정한 호색한이었다.
강찬은 당장이라도 놈의 목을 꺾고 혀를 뽑아 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슈크림의 방으로 두 자루의 보자기를 날라다 줬다.
물론. 그 안에는 지크욘과 로키로 변신시킨 그의 부하들이 담겨 있었다.
“수고했다. 가 봐.”
“네, 단주님…….”
똥 씹은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오는 강찬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저 새끼, 그냥 지금 죽여 버리면 안 될까?”
“왜 그러는데?”
“…….”
“말해 봐, 무슨 일인데?”
“너뿐만 아니라 로키로 변한 놈도 데려갔어.”
“풋! 와하하하하하!”
갑자기 지크욘이 박장대소하자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거한의 모습으로 변한 지크욘에게 집중되었다.
“진짜로?”
“그래.”
“거참 대단한 호색한인데?”
“야! 더는 못 참겠다. 어서 마법 풀어.”
“잠깐만, 지금 풀면 재미없잖아 10분만 더 참아 봐.”
“크윽! 정확히 10분이다…… 더는 못 참아!”
“그래, 그 후엔 지지든 볶든 네 맘대로 해.”
이제 슈크림 상단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그들은 결코 길지 않은 그 시간 동안 흥청망청 술을 마시며 떠들 뿐이었다.
그런 그들을 눈여겨보던 강찬은 어둠이 내린 창밖으로 검은 암행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자신이 끌려간 마차를 향해 다가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어둠을 이용해 은밀히 다가간다 해도 소드 마스터인 강찬의 이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수상한 무리를 더욱 주시해서 살피던 강찬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 중 낯익은 여인을 발견했다.
‘음? 저 여자는?’
대낮에 자신에게 경고해 주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그녀의 의도가 궁금해진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잠깐만.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시간 얼마 안 남았다. 빨리 와라.”
“알았다.”
강찬은 여관 밖으로 나가 조심히 그녀의 뒤를 밟았다.
만약 그녀의 목표가 슈크림 상단과 같다면 그녀의 상단 또한 강찬의 타오르는 분노를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칼리나 상단의 외동딸로 태어난 뮤 칼리나.
원래 그녀는 꿈은 기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시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우수한 성적으로 다니던 소드 아카데미를 중퇴하고 여인의 몸으로 상단을 이끌게 되었다.
물론. 그녀도 많이 슬펐지만, 이내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기사도를 따르던 그녀가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정의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를 더욱 괴롭게 만들 뿐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온 대륙이 뒤숭숭한 이때.
대륙 곳곳을 누벼야 하는 그녀로선 수많은 불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모른 척 돌아서며 자괴감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충직한 가신인 갈레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독단적으로 부하를 데리고 그들을 구하고자 나섰다.
‘제가 구해 드릴게요.’
그녀는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를 구출하려다 발각되기라도 하면 두 상단 사이에 전면전으로 번질 우려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냥 못 본 척 지나친다면 또다시 깊은 자괴감에 빠져 평생을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조금도 굽히고 싶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마차 앞에는 다행히 1명의 보초밖에 없었다.
손짓으로 부하들과 의사소통을 나눈 그녀는 조용히 다가가 보초를 제압한 뒤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는 10명 정도의 어린 소년, 소녀들이 밧줄에 묶여 있었다.
‘이런 짐승 같은 새끼들…….’
뮤 칼리나는 단검을 뽑아 아이들의 밧줄을 잘랐다.
“얘들아, 어서 도망치거라.”
“가,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모두들 이쪽으로 와라.”
그녀의 부하들이 쩔뚝거리며 일어선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끌며 마차를 벗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남자.
그는 분명 낮에 자신이 경고했던 그 자신감 넘치던 사내였다.
함께 있던 일행들이 안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들은 여관방 안에서 누군가의 노리개가 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넘치던 자신감은 어디로 갔나요?”
“읍! 으읍! 읍!”
“알았어요, 잠시만요.”
뮤 칼리나가 사내를 묶은 밧줄을 단검으로 끊었다.
그러자 풀려난 사내가 뮤 칼리나에게 달려들었다.
“꺄악! 이게 무슨 짓이에요?”
불시의 기습을 당한 뮤 칼리나는 사내에게 제압당했고, 남자는 단검을 그녀의 목덜미로 가져갔다.
“왜! 왜 이러세요?”
“후욱! 후욱!”
뮤 칼리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저항했다. 하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단검에 그녀의 목에서 피가 흘렀다.
“아윽! 제, 제발, 정신 차려요.”
구해 주러 온 자신을 도리어 죽이려 들다니.
뮤 칼리나는 사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상황이 절망적으로 치닫고 있을 때, 마차의 문 앞에 의외의 사내가 등장했다.
그러나 그녀는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 앞에 서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슈크림의 오른팔인 페드로였던 것이다.
그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빛이 번쩍이더니 뮤 칼리나의 뒤를 제압하고 있던 사내의 목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퓨욱!
머리를 잃은 몸통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츄확!
“까아아악!”
등 뒤에서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던 사내가 시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자 그의 피를 잔뜩 뒤집어쓴 뮤 칼리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들고 있던 단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단검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
“다, 다가오지 마!”
“진정하시죠.”
“네놈이 여태껏 그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니…….”
방금 그녀의 눈앞으로 날아든 일격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일격이었다.
자기 뒤에 있던 사내는 분명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를 것이었다.
페드로라는 자가 이토록 가공할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뮤 칼리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곧 그녀는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아, 아니!”
앞에 있던 페드로의 몸이 밝은 빛으로 물들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다, 다, 당신은!?”
너무 놀라 뒷걸음질을 친 그녀는 자기 손에 걸린 목이 잘린 사내의 머리를 바라보고 또 한번 놀랐다.
“꺅!”
목이 잘린 사내는 자신 앞의 사내가 아니라 슈크림 상단에서 일하는 용병의 얼굴이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말하자면 깁니다.”
그 순간, 여관에서 누군가가 세상 떠나가라 내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그것은 절규에 가까웠다.
“끄아아아아악! 이, 이게 뭐야! 으아아아아악!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강찬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했다.
누가 내지른 비명인지는 안 봐도 뻔하기 때문이었다.
한참 녹색 머리의 풍만한 여인에게 열심히 허리를 놀리던 슈크림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별안간 눈부신 빛이 번쩍하더니 녹색 머리의 여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웬 험상궂게 생긴 근육질의 사내가 자기 아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헉! 씨발! 네, 네가 여기 왜 있어!?”
“그, 그게…… 그러니까…… 흑흑! 내 똥꼬…….”
같은 남자에게 빼앗겨선 안 될 소중한 처음을 빼앗긴 거한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부짖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침대 위에 세 명의 발가벗은 사내들이 엉덩이에 피를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며, 슈크림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이, 이게 뭐야! 으아아아아악!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식당까지 슈크림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지자 지크욘과 엘리카, 그리고 로키가 그 자리에서 자지러졌다.
“푸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아아아하하!”
“큭큭큭!”
주변에 있던 슈크림 상단의 사람들은 갑자기 들려오는 슈크림의 처절한 비명에 한번 놀라고, 잡혀 갔던 노예들이 버젓이 식당에 앉아 웃고 있는 모습에 두 번 놀랐다.
“헉! 저것들이 어떻게 여길?”
“우하하하하하!”
“아, 지크욘 님, 너무 웃겨서 배가 아파요.”
“어때? 재밌지?”
“네, 지크욘 님.”
“거봐, 내가 재미있을 거라고 했잖아.”
“이것들이, 어떻게 탈출한 것이냐!”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지크욘과 엘리카의 모습에 슈크림 상단의 용병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뭔가 다가설 수 없는 위압감을 느낀 그는 목소리만 높일 뿐, 그녀들에게 선뜻 다가가지도 못했다.
단지 그는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제자리에서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지크욘은 그런 그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잘 가.”
지크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식당 안으로 피를 동반한 거친 폭풍이 들이닥쳤다.
잠시 슈크림의 비명 소리에 실소하던 강찬의 표정이 다시 살벌하게 바뀌었다.
기다리던 시간이 온 것이다.
그는 양손으로 미스릴 단검을 뽑아 들었다.
강찬의 미스릴 단검을 본 뮤 칼리나는 상인답게 그 단검의 진가를 한눈에 알아봤다.
“헉! 엘프족의 미스릴로 만든 검신에 최상급 세공이 들어간 드워프제 손잡이?”
미스릴 중에 저토록 시릴 듯 하얗게 빛을 내는 것은 오직 엘프족이 제련한 미스릴뿐이었다.
그것은 대륙에서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엄청난 희소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일반 미스릴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강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보통 미스릴만 해도 일반 강철보다 10배나 단단한데 말이다.
그런 강찬의 미스릴 단검을 놀라 바라보던 뮤 칼리나는 더욱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강찬의 단검에서 갑자기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헉!”
모든 기사들의 꿈인 소드 마스터만의 권능이라 불리는 바로 그것!
그녀가 그토록 갈망하고 원했던 바로 그것이 지금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