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76
퓨쳐나이트 76화
23. 무서운 신병들
녹색 엘프들을 토벌하기 위해 동부 왕국에서 출발한 30만의 대군은 저녁때가 되자 야영 준비를 서둘렀다.
어마어마한 인원의 연합군인 만큼 그들이 머무는 드넓은 평야에는 다양한 군복의 병사들로 가득했고, 멀리서 바라보면 그 모습은 흡사 개미 떼와도 같이 바글바글한 모습이었다.
저녁을 만드는 거대한 솥단지들이 사방에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은 30만 대군이 먹을 밥을 짓는 모닥불의 연기로 가득했다.
온종일 강행군에 진이 빠진 병사들은 두꺼운 갑옷을 벗고 풀숲에 누워 더위를 식혔다.
그리고 저녁을 배식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섰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전쟁을 하러 가는 병사의 모습답지 않게 어딘가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들이 때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우우!
뿌우우우우우우!
“이게 무슨 소리지?”
“우리 왕국 나팔 소리는 아니니깐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밥이나 먹자고.”
전쟁터에 도착하려면 아직 보름 정도는 더 가야만 했기에 병사들은 긴장감이 조금 부족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대지가 들썩이기 시작하자 병사들이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지?”
밥을 먹던 병사들이 서둘러 벗어 둔 갑옷과 병기를 챙겼다. 하지만 이미 대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괴수는 그들에게 도망칠 시간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쿠워어어어어!”
땅속에 매복하고 있던 블랙 샌티패드들이 연이어 땅 위로 솟구쳐 올랐고, 사방에서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살려 줘!”
“아아악!”
평화롭던 연합군의 진영이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연합군의 사령관을 맡은 역전의 노장 다이스트가 식사 도중 사령부 막사에서 뛰쳐나왔다.
“대체 무슨 일인가? 헉! 저, 저것은?”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거대한 지네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수는 거의 어림잡아 보아도 거의 50마리에 육박했다.
거대한 지네가 밀집되어 있는 보병들 위를 덮칠 때마다 수십에서 수백에 달하는 보병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나갔다.
“다들 침착해라! 즉각 기간테스들을 긴급 출동시켜라!”
“연합군 기간테스, 긴급 출동!”
다이스트가 기간테스 긴급 출동 명령을 내리자 대기 중이던 50대 가량에 이르는 테르비아의 최신형 기간테스 오베론이 제일 먼저 공간을 가르고 뛰쳐나와 괴수를 향해 돌격했다.
뒤이어 각 연합국이 보유한 기간테스들이 속속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리스의 플루토와 바론시아의 글라코우, 실버라인 공화국의 마르코니도 오베론과 합류해 괴수를 향해 돌격했다.
그러나 100대에 달하는 거대한 기간테스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후였다.
괴수들은 기간테스와 결전을 벌이지 않고, 땅속으로 빠르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아니! 저, 저런!”
괴수들의 전술적인 움직임에 다이스트는 눈을 부릅떴다.
저것들은 분명 누군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괴수들이었다.
“저런 무시무시한 괴물을 마음대로 부리다니…….”
녹색 엘프들과 다크 엘프들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통신을 통해 전해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부터 시작될 밤의 악몽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전처럼 편안했던 밤의 휴식은 그날 이후로 물 건너가 버렸다.
숙영 중인 연합군들은 조금만 땅속이 들썩여도 자다 말고 전군이 긴급 전투태세에 들어가야 했다.
간밤에 대소변을 보러 간 동료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버렸고, 병사들은 동료들 앞에서 대소변을 봐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만 했다.
잠을 자다 다크 엘프 암살자의 손에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식수를 배급받은 병사 수백 명이 독극물에 중독되어 떼죽음을 당하는 등 다크 엘프들의 테러는 끊임없이 벌어졌다.
낮이라고 해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행군하던 병사들이 무수히 깔린 독침을 밟고 게거품을 물며 죽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숲속에 숨어 있던 녹색 엘프들이 독화살을 퍼붓고 줄행랑을 치기 일쑤였다.
동부 왕국에서 출발한 30만 대군은 녹색 엘프와 다크 엘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펼치는 게릴라전에 점점 피가 말라 가기 시작했다.
* * *
칼리나 상단에 합류한 지 보름 만에 헬리온 왕국에 도착한 강찬은 처참한 전쟁의 참상을 말 이 바라보았다.
지천으로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전장에 돌아왔군…….”
끔찍한 전쟁의 참상은 그에게는 외려 친숙한 광경일 뿐이었다.
싸웠던 장소나 배경은 달라도 전장의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삶과 죽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전장이다.
전쟁터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강찬에게 다가간 뮤 칼리나가 말을 걸었다.
“강찬 님, 여기부터 헬리온 왕국입니다.”
“그런 것 같군요.”
“이젠 어디로 가실 건가요?”
“말씀드린 대로 전쟁터로 갈 겁니다.”
“제가 이 사령부의 높은 분들과 안면이 있는데, 그분들과 연결해 드릴까요?”
군에 무기를 납품하는 그녀에게 그 정도의 일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그가 사령부에 소속된다면 초특급 대우를 받으며 엄청난 권력자로 성장할 것이라 생각했다.
전 대륙을 포함해 10명이 채 안 되는 소드 마스터인 그에게 그 정도 대우는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찬은 그녀의 호의를 딱 잘라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예?”
“저는 그런 좋은 자리를 바라고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하, 하지만 당신의 실력은…….”
뮤 칼리나가 설득하려고 하자 강찬이 가차없이 말을 잘랐다.
“전 명예나 권력을 원해서 이곳으로 온 게 아닙니다.”
“그, 그렇다면?”
“제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마차 안에 갑자기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강찬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지크욘과 엘리카는 강찬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애써 딴청을 피우며 모른 척했다.
“복수입니다.”
“…….”
너무나도 살기 어린 강찬의 말에 뮤 칼리나는 온몸에 닭살이 돋아남을 느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건 허울 좋은 지휘자의 자리가 아니라는 걸.
그가 원하는 것이 검으로 전해지는 그들의 살결과 목을 적셔 줄 그들의 피라는 것을 말이다.
무엇이 그를 피에 굶주린 이리로 만들었는지 궁금했지만 그녀는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마차는 조용히 목적지에 도착했고, 이별의 시간 역시 어김없이 찾아왔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뮤 칼리나의 간절한 물음에도 강찬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뒤돌아섰다.
“아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이만.”
차갑게 돌아서 버리는 그의 모습에 뮤 칼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자신은 그저 잠시 스친 인연일 뿐이기에 원망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훗날 그와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야! 이제 어떡할 거야?”
“자원해야지.”
“자원?”
군 사령부로 직통으로 뚫린 편한 길을 마다하고, 보병으로 자원입대하겠다는 강찬의 말에 지크욘이 학을 뗐다.
“보병으로 자원하겠다고?”
“그래.”
“야, 왜 편한 길 놔두고 보병이 되겠다는 거야? 너 정도 실력이면 사령관은 힘들어도 기사단 하나 정도는 맡을 수 있잖아?”
“그런 자리에 오르면 내가 원하는 만큼 놈들을 죽일 수 없어.”
군의 특성상 높을 자리에 오를수록 전술적인 작전에만 투입되거나, 뒤에서 보병 간의 전투를 방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강찬이 선택한 것은 최전선에서 적과 뒤엉켜 싸워야 하는 보병이었다.
그래야만 자신의 손으로 하나라도 더 많은 녹색 엘프들을 벨 수 있으니 말이다.
“넌 왜 그렇게 미련하냐? 잔챙이들만 상대하려고? 강한 기사단에 들어가야 더 강한 적과 싸울 수 있다는 거 몰라?”
물론 그것을 모르는 강찬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당장 자신의 목을 적셔 줄 녹색 엘프의 피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도 조금은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나에게도 생각이 있어.”
“싫어, 난 반대야!”
지크욘이 딱 잘라서 반대했다.
에이션트 드래곤인 자신이 인간의 보병에 편입되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 정도라면 적어도 왕과 동등한 입장이거나 하다못해 기사단 정도는 이끌어야 체면이 섰기 때문이다.
“야, 꼬맹이들! 너희들도 뭐라고 좀 해 봐! 너희들도 땅개가 되고 싶어?”
“전 강찬 님만 좋다면 어디든 좋아요.”
“나도 물론이다.”
“이익! 이런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지크욘이 무시무시한 살기로 엘리카와 로키를 위협하자 강찬이 지크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강요는 안 해, 지크욘. 싫으면 돌아가도 돼. 친구인 너에게 부담을 주긴 싫으니까.”
친구란 말에 이상하게 힘을 주는 강찬을 보며 지크욘이 인상을 구겼다.
결국 강찬의 완강한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직감한 지크욘이 어쩔 수 없이 항복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하면 되잖아 하면!”
드래곤 최초의 보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고맙다, 넌 역시 내 진정한 친구다.”
강찬이 은근슬쩍 지크욘의 어깨에 손을 두르자 지크욘이 강찬을 밀쳤다.
“꺼져! 내 몸에 손대지 마!”
“좋으면서 왜 그래?”
“웃기는 소리 말고, 전쟁터에서 뒤통수 간수 잘해라.”
지크욘이 사악하게 미소 지으며 강찬의 뒤통수를 툭툭 건들자 강찬은 오랜만에 밝게 웃으며 지크욘에게 헤드 락을 걸었다.
“뭐라고? 어디 한번 해보시지!”
강찬과 지크욘이 장난치는 모습에 엘리카와 로키가 배를 잡고 웃었고, 그런 그들은 그 기분으로 보병을 모집하는 막사로 향했다.
즐겁게 지원한 건 좋았는데 강찬과 일행들의 눈빛은 곧 싸늘하게 식을 수밖에 없었다.
면접관의 태도 때문이었다.
“3명은 출신 불명, 한 명은 엘프, 거기다 다 함께 한 부대에 있고 싶다고?”
“그렇다.”
“미안하지만 국가나 신분이 확실한 귀족이나 평민이 아니라면 정규 보병으로 입대는 불가능하다네. 다만.”
“다만?”
“징집병으로는 입대가 가능하네만…….”
“징집병?”
징집병은 농노들을 강제로 규합해 창설한 최하위 보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뭐라고? 징집병?”
지크욘의 비명 소리가 막사 안에 울려 퍼졌다.
드래곤 체면에 일반 보병이 되는 것도 열 받아 죽겠는데, 이번엔 징집병이라니.
지크욘은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징집병은 군에서 더는 내려갈 데가 없는 최하층 계급이었기 때문이다.
노예나 다름없는 징집병이 되라는 면접관의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지크욘이 강찬에게 급히 따지려 들었지만, 그녀보다 면접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또한 너희 모두가 같은 부대로 배속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뭐?”
함께할 수 없다는 말에 지크욘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왜지?”
“여자는 보병 전투 편제에서 제외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남자만이 전투병으로 지원할 수 있다. 여자들은 의무관 쪽이나 취사병, 군수품 관리 쪽으로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