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78
퓨쳐나이트 78화
시체들을 바라보는 징집병들의 눈에선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머릿속엔 자신도 곧 저렇게 될 거라는 절망적인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제아무리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죽어서 저런 모습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것이었다.
어느덧 언덕 위로 얼키설키 만든 방책과 누더기 같은 수많은 천막이 보였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군인들이 지내는 곳이라 생각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난민촌을 방불케 하는 광경.
“이, 이게 부대란 말인가?”
누더기 같은 무기와 갑옷을 내밀 때부터 조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녹색 엘프들과 코 닿을 거리에 주둔하고 있는 이 부대는 이름조차 없는 버려진 부대였다.
적들의 칼과 활 앞에 버려진 자들 말이다.
그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제일 먼저 투입되어 난전을 유도하는 용도였다.
그렇게 그들이 목숨을 걸고 적의 진형을 흐트러뜨리면 강력한 병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정규병과 기사단이 투입되어 적들을 일거에 소탕했다.
이 방식은 지극히 비인간적인 전술이었지만 매우 효과적이었다.
전투가 없을 때 그들의 용도는 인간 바리케이드였다.
적진과 본진 사이에 주둔하면서 적의 본진 난입을 지연시키는 인간 바리케이드 말이다.
징집병을 인솔한 병사는 그곳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그들을 인도했다.
강찬은 오늘부터 이곳 소속이었고, 복수는 이미 시작되었다.
‘내가 드디어 이곳에 왔구나. 제이나, 보고 있니?’
하늘을 올려다본 강찬은 그곳에 그리운 제이나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그놈들이 모두 죽기 전까지 난 절대로 멈추지 않을 거야. 절대로…….’
숨 막힐 듯 무거운 전장의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신 강찬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강찬이 각오를 다지는 동안.
신병을 인계받은 선임병들은 거친 목소리로 새로 맞이한 신병들을 지정된 막사로 밀어 넣었다.
“빨리빨리 막사로 들어가! 빨리빨리 안 움직여? 이 굼벵이 새끼들아!”
강찬은 그들에게 떠밀려 로키와 함께 막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비쩍 마른 징집병들이 새로 들어온 신병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앙상한 몰골.
한눈에 봐도 제대로 된 식사조차 못하는 듯했다.
‘이들이 바로 강제로 징집된 농노들인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과 눈이 마주친 강찬.
강찬의 눈에 그들은 병사라기보단 그냥 전쟁 난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야, 이게 얼마 만에 신병이야?”
“오우, 둘 다 졸라 예쁜데?”
휘이이익! 회이이이익!
사방에서 휘파람 소리와 환호성이 퍼졌다.
여자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 여자만큼 예쁘고 탱탱한 신참이 둘이나 들어왔으니, 그들이 들뜨는 건 당연했다.
하여간 남자란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그 생각을 한다고 했던가?
아무튼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그들은 음흉한 눈빛으로 건들거리며 강찬과 로키에게 다가왔다.
강찬은 그런 그들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싫어도 하극상을 벌여야 될 상황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휴우…… 군대란 곳은 어딜 가나 이런 놈들이 있기 마련이군.’
강찬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우두머리인 듯한 사내가 로키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진짜 남자 맞냐?”
“난 남자다.”
“그래? 난 못 믿겠는 걸?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음흉하게 미소 짓는 사내의 손이 로키의 은밀한 곳으로 향하자 강찬이 그 사내의 팔목을 잡았다.
그러자 사내가 자신의 팔을 잡은 강찬을 노려보며 인상을 있는 대로 구겼다.
“어쭈? 뭐야? 이 손 안 놔?”
강찬은 말없이 그를 노려봤다.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누군데?”
“이 막사의 최고 선임인 피브로 님이시다.”
“그래서?”
“헐, 이거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릴 놈일세?”
피브로가 강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비쩍 마른 몸에도 불구하고 믿기지 않을 만큼 위력적인 주먹이었다.
그러나 강찬은 그의 주먹을 간단히 잡아 버렸고, 양손 모두를 붙들린 피브로는 필살의 박치기를 시도했다.
“이야야얍!”
그러나 건방진 신참을 실신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의 박치기는 어느새 자신의 명치를 가격한 신참의 무릎에 의해 저지당해 버리고 말았다.
“크으으읍!”
강찬은 고통스러워하는 피브로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낮은 어조로 말했다.
“자꾸 귀찮게 굴 거면 이대로 똥 나올 때까지 배때기를 두들겨 주지.”
“헉!”
피브로는 강찬의 말에 공포를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죽음과 가장 가까이 지내 온 내가 살기만으로 공포를 느끼다니…….’
그는 당황했다.
‘뭐, 뭐지, 이 녀석? 왜 내 다리가 떨리는 거지?’
가뜩이나 얇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까지 하니 더욱 불쌍해 보였다.
강찬이 귀찮다는 듯이 피브로를 거칠게 밀어 버리자 앙상한 피브로는 5미터를 날아가 동료들 사이에 내리꽂혔다.
퍼어어어어억!
“케엑!”
수십 명의 병사가 턱이 빠질 듯 강찬을 바라봤다.
피브로를 가볍게 날려 버린 강찬은 옆에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우리 자리는 어디냐?”
“아, 예? 아, 예! 이쪽입니다!”
농노의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을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 온 그는 본능적으로 강자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이 가장 명당입니다요.”
강찬이 보기엔 어디든 다 똑같아 보였지만 굳이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고맙다.”
강찬은 그가 안내해 준 자리에 아무렇게나 짐을 던져 놓고 그대로 침상에 드러누웠다.
그러자 강찬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한 로키도 자신의 짐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는 강찬처럼 침상에 드러누웠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고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강찬과 로키는 그렇게 한가롭게 낮잠을 즐겼다.
다른 막사로 간 신참들이 선임병들에게 온갖 모진 수모를 당하는 동안 말이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
하루 온종일 쫄쫄 굶은 로키가 밥이라는 말에 들떴다.
하지만 저녁으로 나온 건 돌처럼 딱딱한 호밀빵 한 덩이와 멀건 양배추 수프뿐이었다.
빵은 차마 빵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딱딱했다.
배식판에 올라갈 때 난 소리가 꼭 돌 부딪히는 소리처럼 들렸다.
거기다 함께 나온 양배추 수프는 그냥 양배추 삶은 소금물이었다.
그것은 단지 염분을 보충하고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 호밀빵을 녹여 먹는 용도였다.
로키가 호밀빵을 들고 배식을 하는 병사에게 물었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빵이지.”
“빵? 이건 그냥 돌인데?”
“그냥 주는 대로 처먹어라!”
“뭐라고?”
“너, 보아하니 신병 같은데? 신병 주제에 어디서 눈을 부라려?”
로키가 화를 내려고 하자 아까 자리를 안내해 주던 자가 로키를 억지로 고개 숙이게 하며 대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신참이라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우씨! 너희 막사, 며칠 굶고 싶어? 애들 교육 똑바로 안 해? 내가 저딴 핏덩이랑 말 섞을 짬밥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철저히 교육시키겠습니다!”
“너희들, 내가 지켜볼 거야. 다음!”
로키가 분에 차 씩씩거리다 좀 멀어지자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으……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게…….”
“쉿! 조용! 여기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이 바로 저 배식 담당이야. 앞으로 군소리하지 말고 주는 대로 먹어.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으면. 그리고 호밀빵은 양배추 수프로 잘 녹여 먹어라. 이빨 나가니깐.”
“고기는 없어?”
“고기? 그런 게 있으면 이런 걸 먹겠냐? 여기에 고기는 저기 쌓여 있는 녹색 엘프들 시체뿐인데, 누가 저런 걸 먹겠어? 뭐, 간혹 먹는 미친놈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야.”
“흠,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한데…….”
지금은 작은 인간이지만 본디 오우거인 로키에게 이 정도 음식은 턱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걸 알 리가 없는 선임 병사가 말했다.
“주는 것도 감지덕지해야 해. 이런 쓰레기 같은 음식이라도 겨우 하루 두 번밖에 안 주니깐 말이야.”
“진짜? 겨우 두 번?”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 게 상책이야. 괜히 움직여 봐야 배만 꺼지니깐.”
“…….”
로키가 심각하게 녹색 엘프의 고기를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강찬이 자기 몫에 빵을 로키에게 넘겼다.
툭!
“뭐야?”
“너 먹어라.”
“너는?”
“난 그냥 알약으로 때웠어.”
“아, 알약?”
“왜 너도 줄까?”
“음…….”
한번 겪어 본 뒤로 지크욘과 마찬가지로 알약을 싫어하게 된 로키.
그런 로키가 알약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이, 피브로! 자네 막사에 여자같이 예쁜 애들이 두 명이나 왔다며?”
“흡!”
신병 얘기에 피브로가 흠칫하자 말을 건 병사 브루넨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나?”
“아, 아니, 뭐…….”
“그 예쁜이들은 어떻게 됐나? 벌써 해치웠나?”
“그, 그게 말이지…….”
피브로가 새로 전입해 온 신병의 얘기를 브루넨에게 털어놓자 브루넨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랐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니깐.”
“그래서, 지금 그놈들은 뭐 하고 있나?”
피브로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막사를 가리키자 그곳에는 강찬과 로키가 침상 위에서 아주 편하게 퍼져 있었다.
“저, 저런 썩을 놈들이!”
선임들도 앉아서 쉬고 있는데 신병이란 것들이 침상에 퍼져 있다니, 브루넨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내 저것들을 당장!”
화가 난 브루넨이 당장 요절을 낼 기세로 달려가려 하자 피브로가 그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왠지 그가 벌통을 건드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보게, 잠깐만! 잠깐만! 일단 참게나!”
“뭘 참으란 건가? 아무리 싸움 좀 한다고 해도 저것들을 저대로 둘 건가?”
“…….”
피브로는 아무 말도 못했다.
“다른 막사들을 보게! 어디 저런 놈들이 있는가?”
다른 막사에서는 신병 굴리기가 한참이었다.
“당장 애들을 모아서 저 버릇없는 햇병아리들한테 따끔한 맛을 보여 주자고.”
“알겠네.”
브루넨의 응원에 다시 용기를 찾은 피브로가 브루넨과 함께 주변 막사를 돌며 부하들을 긁어모았다.
“……?”
말년 병장처럼 침상 위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던 강찬은 갑자기 많은 사람이 다가옴을 느끼고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앞에는 거의 30명에 육박하는 병사들이 강찬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강찬은 누운 채로 물었다.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강찬의 건방진 태도에 모여 있던 병사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저 새끼, 말하는 싸가지 보소.”
“고참이 왔는데 누워 있어?”
“오메, 설마 설마 해서 와 봤는데 진짜네.”
“완전 겁을 상실했군.”
“너는 오늘 뒈질 줄 알아라! 퉤!”
험상궂은 표정의 병사들이 린치를 가하기 위해 강찬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찬은 태연하게 몸을 일으키며 누군가를 지목했다.
“거기, 너!”
“히익!”
강찬이 지목에 남들 뒤에 몰래 숨어 있던 피브로가 움찔했다.
“네가 애들 모아 왔냐?”
강찬의 애들이란 말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애, 애들!”
“저런 쳐 죽일 새끼!”
“조져 버려!”
30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강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종소리가 그들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