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79
퓨쳐나이트 79화
땡! 땡! 땡! 땡!
“녹색 엘프가 나타났다! 녹색 엘프가 나타났다! 전원전투 준비!”
요즘 뜸했던 녹색 엘프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자 고참들의 얼굴에 공포와 두려움이 드리워졌다.
“크윽! 운 좋은 줄 알아라!”
누가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찬을 공격하려던 30명의 고참들은 서둘러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모두 전투 준비! 서둘러라!”
진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설픈 무기와 갑옷을 두른 그들이 분주히 전투태세를 갖추는 동안 강찬은 그저 조용히 침공해 오는 녹색 엘프들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전신에선 숨 막히는 살기가 들끓고 있었다.
로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것들이 네가 말하던 녹색 엘프들인가?”
강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애써 이곳으로 온 보람이 있군. 이렇게 바로 눈앞에 나타나 주다니…….”
강찬은 이곳을 선택한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저것들이.”
다들 전투 준비로 소란스러운 와중에 강찬과 로키가 가만히 녹색 엘프들을 지켜보고 있자 피브로가 강찬과 로키를 불렀다.
“어이! 너희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서둘러 전투 준비를 하라고! 가만히 앉아서 죽고 싶어?”
진짜 적이 출현했기에, 그는 좀 전의 안 좋은 감정을 접어 두고 선임병답게 강찬과 로키를 다그쳤다.
“모두 일렬횡대로 방어진을 구축해라!”
징집병을 통솔하는 정규군 장교가 징집병들을 지휘하자 징집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조잡한 나무 방패를 앞세우고 방어진을 구축했다.
강찬과 로키 또한 그들과 함께 방어진을 구축하며 다가오는 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피브로가 강찬을 불렀다.
“어이, 신병!”
“……?”
강찬은 말없이 피브로를 바라봤다.
“네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처음 온 신병은 대개 한 달도 못 버티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지…….”
“그래서, 내가 죽기를 바라나?”
강찬의 말에 피브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만일 살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강찬은 자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자가 자기한테 뭘 시킬지 매우 궁금해졌다.
“뭘 하면 되지?”
“죽은 척해.”
“…….”
“여기선 영웅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오로지 자신이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라. 내가 여기서 1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전투에 임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1년이나 버텼다는 그의 말에 강찬도 조금은 놀랐다.
‘이런 곳에서 1년 동안이나 생존했다니, 저자에겐 분명 남다른 뭔가가 있다는 뜻이겠군.’
내심 놀란 강찬에게 그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선임병으로서 내가 할 도리는 다했다. 이젠 죽어도 날 원망하지 마라.”
그의 마지막 말에서 강찬은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예전 레드 마스에 있을 당시, 동료들이 시체가 되어 떠나갈 때마다 점점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두려워졌던 기억이 떠올렸다.
‘그가 여기서 1년이나 생존하면서 얼마나 많은 후임과 동료를 잃었을까?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나와 다르지 않았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강찬은 그가 처음 봤던 모습보단 좀 더 괜찮은 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화살이 날아온다! 방패를 들어라!”
“방패를 들어라!”
슈슉! 슈슈슉! 슈슈슈슉! 슈슈슈슈슉!
화살들이 비 오듯 날아들기 시작했고,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내 눈!”
엘프만큼이나 강력한 녹색 엘프의 화살을 조잡한 나무방패에 의지해 막아 내기란 쉽지 않았다.
“기사단이 오고 있다! 다들 조금만 버텨라!”
징집병과는 다르게 튼튼한 카이트 실드로 몸을 가린 정규병들은 사상자가 전혀 없었다.
“저런 시팔 것들! 지들만 좋은 방패 쓰고 우린 이딴 나무 방패나 주고! 쳐 죽일 개새끼들! 아악!”
피브로가 불만을 토해 내는 와중에도 나무 방패 안으로 수많은 화살촉이 한 뼘씩이나 박혀 들어왔고, 화살촉에 스친 그의 팔에선 피가 흘렀다.
강찬과 로키도 나무 방패로 몸을 숨기고 뛰쳐나갈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러나 강찬과 로키의 나무 방패에는 화살이 박히기는커녕 불꽃이 튀며 튕겨져 나갔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 피브로는 마치 헛것을 본 양 눈을 비볐다.
“이들 앞에서 내가 본모습으로 돌아가도 정말 괜찮을까?”
“날 믿어라.”
“알았다.”
로키는 불안한지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소나기처럼 내리던 화살비가 멈추고, 녹색 엘프들이 대지를 울리며 돌격하기 시작했다.
강찬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자 징집병들의 방패는 하나같이 고슴도치가 되어 있었고 무수한 병사가 시체가 되어 있었다.
“침착해라! 전군 대열을 갖춰라!”
앞에서 엄청난 수의 오크형 녹색 엘프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도끼와 철퇴를 앞세운 채 달려들고 있었다.
“갈까?”
로키가 초조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큰소리로 외쳤다.
“좋아!”
갑자기 강찬과 로키가 방패를 버리고 방어진을 이탈해 앞으로 나가자 피브로가 황급히 두 사람을 불렀다.
“야, 인마!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어서 돌아와!”
강찬은 앞으로 나서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피브로에게 말했다.
“살아서 다시 보자고, 선임병.”
“야! 헛소리 말고 얼른 돌아와! 돌아오라고!”
자살이나 다름없는 신참들의 행동에 피브로는 더욱 큰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하지만 강찬과 로키는 들은 체도 안 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과 녹색 엘프와의 거리는 이제 겨우 지척에 불과했다.
피브로는 이제 그들이 녹색 엘프들의 도끼와 메이스에 곤죽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피브로를 포함한 징집병들은 놀라운 모습을 목도했다.
신참의 몸을 검은 갑옷이 뒤덮기 시작하더니, 그의 양손에서 무시무시한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모든 병사가 경악했다.
“헉! 저, 저건!”
그들은 전쟁 중에 오러 소드를 사용하는 기사들의 싸움을 자주 봤기에 저 눈부신 빛의 검이 오러 소드가 아니란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분명 오러 블레이드였다.
“서, 설마 소, 소, 소드 마스터?”
“소드 마스터다!”
징집병들은 왜 이런 곳에서 소드 마스터가 나타났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단 하나, 깊은 안도감이었다.
‘우린 살았다!’
그들은 살아서 내일을 맞이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대로 녹색 엘프들은 강찬을 보며 절망했다.
인간 같지 않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오는 소드 마스터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소드 마스터다!”
“적 중에 소드 마스터가 있다!”
그들이 비명을 지르든 말든 강찬은 이미 복수심에 이성을 잃었다.
“크아아악!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
강찬의 오러 블레이드가 적진을 가르자 달려들던 녹색 엘프 수십 명이 한순간에 둘로 양분되었다.
마치 세상이 둘로 쪼개지듯 말이다.
촤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악!”
“히이이이익!”
그렇게 강찬이 시간을 벌고 있는 사이 로키가 망설임 없이 벨트를 풀었다.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순 없다!’
눈부신 빛에 휩싸인 로키가 점점 거대해지더니 신장이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오우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허억! 저, 저, 저건!”
인간과 녹색 엘프, 양 진영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드 마스터가 튀어나온 것만 해도 놀라 자빠질 상황인데, 이번에는 난데없이 거대한 오우거라니…….
엄청난 짐승의 포효가 전장을 뒤덮었다.
“쿠워어어어어어어어!”
쌍방 간 1만 명에 이르는 병사들이 전투를 잠시 멈출 만큼 엄청난 괴성이었다.
지상 최강의 몬스터인 오우거의 피어였다.
물론 드래곤 피어에 비할 수 없겠지만, 마나까지 실린 로키의 피어는 전장의 병사들을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오우거의 등장에 인간 진형은 순식간에 절망에 빠졌다.
그들은 저 거대한 푸른 오우거가 당연히 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일 저 오우거가 당장에라도 진형으로 뛰어 들어와 난동을 부리면 소드 익스퍼트급 기사나 기간테스가 없는 그들로선 전혀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야 말았다.
오우거가 소드 마스터를 도와 녹색 엘프를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크와아아아악!”
거대한 오우거의 발차기 한 번에 수십 명의 녹색 엘프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올랐다.
또한 개미 때려 잡듯 내려친 손바닥에 녹색 엘프들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곤죽이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녹색 엘프를 맨손으로 때려잡던 로키가 강찬을 향해 투정 부리듯 말했다.
“크르륵! 무기가 없다니! 젠장!”
그래도 명색이 검사인데, 이토록 무식한 방법으로 적과 싸워야 하는 게 큰 불만인 듯했다.
그런 로키의 말에 녹색 엘프를 무아지경으로 베어 넘기던 강찬이 말했다.
“오우거 킥이나 오우거 스매시의 위력도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하다.”
“크륵! 이상한 이름 갖다 붙이지 마!”
쿠웅!
“꾸에에에엑!”
강찬의 농담에 화가 난 로키의 분노는 고스란히 녹색 엘프들에게 돌아갔고, 오우거의 거대한 힘 앞에 곤죽이 된 녹색 엘프들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녔다.
슈가가가각!
“으아아아아악!”
강찬이 베어 넘긴 녹색 엘프의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무기와 방패째로 토막 치면서 엄청난 스피드로 적진을 종횡무진하는 강찬의 모습은 마치 피의 굶주린 악귀를 보는 듯했다.
녹색 엘프들 중엔 그 둘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었고, 둘은 종행무진으로 활약하며 녹색 엘프의 진영을 휩쓸고 다녔다.
바로 그때 시종일관 방어로만 일관하던 징집병들이 앞으로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우리도 밀어붙이자!”
“소드 마스터를 돕자!”
“덤벼라! 이 망할 새끼들아!”
아무리 강찬과 로키가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긴 했지만, 둘만으로 5천에 달하는 적들을 한꺼번에 제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숫자에서 밀리지 않는 징집병들이 앞으로 치고 나오기 시작하면서 전세가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에서 녹색 엘프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하자 녹색 엘프 지휘관이 급히 후퇴 명령을 내렸다.
“크윽! 후, 후퇴하라, 후퇴하라!”
“어딜!”
적 진영에서 퇴각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들을 곱게 보내 줄 리 만무한 강찬이 더욱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그들을 학살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우리가 속은 건가?”
녹색 엘프 공격대를 이끌고 온 지휘관인 필라이는 눈앞의 광경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징집병은 손쉬운 먹잇감이라 생각해 기습을 가한 것인데, 난데없이 그곳에서 소드 마스터와 길들여진 오우거가 튀어나오다니…….
그녀는 눈앞의 광경이 마치 꿈만 같았다.
그것도 단순한 꿈이 아닌 끔찍한 악몽이었다.
그녀가 병사들을 이끌고 이곳을 친 이유는 단지 적의 시선 끌기 위함이었다.
동부에서 이곳으로 이동 중인 적 30만 대군을 상대로 치밀한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는 현 상황에 이쪽에서 지원군을 보내지 못하도록 시간을 벌기 위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