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8
퓨쳐나이트 8화
“이런 빌어먹을!”
그가 갑자기 눈을 감은 채로 갑자기 고함을 내지르자 호기심에 주변을 만지작거리던 엘프들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강찬은 그런 그들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계속 눈을 감은 채로 항해 일지 열람에 집중했다.
그가 고함을 내지른 이유는 전투용 드로이드가 어떻게 레드 마스호로 유입되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 작전을 위해 대기 중이던 레드 마스호는 상부로부터 비밀 지령을 통보받고 작전 지역인 OGLE-2006-BLG-109L계로 출항했다.
그리고 전투 물자를 보충하기 위해 목성의 위성인 타이탄의 푸로니카 플랜트에 잠시 정박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받은 보급품 속에서 항해 도중 난데없이 그 정체불명의 드로이드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분명히 뇌물을 먹고 제국의 꼬임에 넘어간 고위 간부의 짓이었을 터였다.
빌어먹게도 말이다.
특수 제작된 적국의 신형 드로이드는 대기 상태일 때는 가로세로 1.5미터 정도의 상자 속에도 들어갈 수 있게 특수 고안된 드로이드였고, 그렇게 작은 상자째로 레드 마스호로 유입된 드로이드는 목표 지점 도착 한 달 전, 전투 병력인 레드 마스 팀을 수면에서 깨우기 직전에 지칠 대로 지쳐 버린 선원들을 상대로 이를 드러냈다.
그때부터 드로이드와 10명의 선원 간에 피 튀기는 혈전이 시작되었고, 드로이드는 사전에 주입받은 지령대로 먼저 통신 시설을 파괴해 정보망을 마비시켰으며, 자신에게 가장 위협적인 전투력을 지닌 레드 마스 대원들을 죽이려고 선원들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 후에는 그도 잘 알고 있듯 유일한 생존자인 자신을 제외한 레드 마스호의 탑승자 전원이 드로이드와 함께 양패구상해 버렸다.
그 후 모든 선원이 피살되어 버린 레드 마스호는 메인 컴퓨터에 입력된 좌표대로만 움직여 이렇게 이 별에 도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원들과 드로이드 간의 치열한 총격전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버린 여러 가지 장비들의 오작동 때문에 행성의 궤도를 따라 자전해야 할 전함은 대기권을 통과해 이곳 엘프의 숲에 불시착해 버린 것이었다.
그것이 인류 과학의 정점이자 초시공을 넘나드는 최신예 우주 전함의 덧없는 최후였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강찬은 기분이 매우 더러워졌다.
‘빌어먹을 제국 놈들……. 딕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남겠다.’
강찬의 눈에는 복수로 가득 찬 분노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그의 깊은 분노를 읽은 아르테온과 10여 명의 엘프는 뭐라 묻지도 못하고, 조용히 강찬의 등 뒤에 서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료실을 나선 강찬은 더러워진 기분을 뒤로하고 자신이 머물던 레드 마스 팀의 숙소로 향했다.
어쨌거나 앞으로 이곳에서 생활하기로 했으니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 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신에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있었기에 그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자신의 군번이 적혀 있는 작은 문을 열자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우주 생활에 맞게 제작된 원통형의 침대와 작은 책상, 그리고 전자 자물쇠가 달린 사물함과 의자뿐인, 지극히 단조로운 그의 방은 숨이 막힐 정도로 좁았다.
하지만 그는 그 좁디좁은 방에 들어서자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는 먼지가 수북이 내려앉은 책상을 어루만졌다.
“드디어 내 방으로 돌아왔군.”
천천히 사물함으로 다가간 강찬이 전자 자물쇠에 손을 대자 잠겼던 사물함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리자 그 안에는 그의 요구에 맞게 특수 제작된 강화 슈트가 걸려 있었다.
얇은 조끼형 슈트였지만 인간이 전투용 로봇과 대등한 전투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일급 군사기밀에 속하는 전투 슈트였다.
이 얇은 조끼는 중력 제어 기술을 도입해 광선류 병기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으며, 아라미드 나노성 복합제 섬유로 만들어져 레일 건 이하 소총탄에 대한 물리 방호력도 지녔다.
내부에는 의료 마이크로 머신을 탑재하여 사용자 응급 처치 기능이 있으며, 인간의 반사 신경과 근력을 최고 10배까지 끌어올려 주는 무시무시한 성능까지 지녔다.
그 외에도 스텔스 기능이라든지 고주파 블레이드 등 셀 수 없는 기능이 이 얇은 슈트 안에 내장되어 있었다.
그 엄청난 성능만큼이나 가격도 상상을 초월했기에 레드 마스 구성원 중에서도 핵심 병기인 자이드의 파일럿에게만 주어졌고, 나머지 인원은 사피언스라는 기갑형 중갑주만을 입었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격납고에 있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애마인 레드 레빗의 상태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줄줄이 딸린 꼬리들 때문에 아쉽지만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슈트를 착용한 강찬은 슈트 옆에 놓인 자신의 레일 건을 바라봤다.
그가 어려서부터 한시도 손에서 때 본 적이 없는 그의 애병 ‘RGM16A3’. 강찬은 수천 명의 피를 머금은 이 살인 병기를 그냥 바라보기만 하고 사물함을 닫았다.
지금 이런 무시무시한 병기를 들고 다니는 행동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현재 적들이 알고 있는 자신의 신분이 우주 탐험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전투 슈트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더플백에 이것저것 몇 개 되지도 않는 물건을 챙긴 그가 가방을 짊어진 채 문을 나서자 문 앞에는 아르테온과 10명의 엘프족 전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필요한 짐은 다 챙겼습니다. 이제 돌아가지요.”
“좀 더 돌아보셔도 돼요, 강찬 님.”
그녀의 배려에 강찬은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우주선이 추락한 이유도 알았고 필요한 것도 다 챙겼습니다.”
“네, 그럼 이제 돌아가도록 해요.”
애써 웃음 짓는 강찬을 보며 아르테온은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지금 그에게 묻고 싶은 게 잔뜩 있었지만 기분이 별로인 듯한 그에게 궁금증을 물어보기란 참 어려웠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강찬이 마을로 걸어가며 그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추락한 이유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힘없는 그의 말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4. 안식의 땅
강찬이 엘프들의 언어와 생활을 배우며 엘프들과 함께 지낸 지도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길다고 하면 길 수도,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1년이었지만 그 1년 동안 그의 삶은 많이 부분이 바뀌어 있었다.
걷지도 못하던 유아 시절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군 특수 시설로 팔려 간 뒤로부터 지금까지 명령이라면 어린아이조차 서슴없이 죽여야만 하는 살인 기계의 인생을 살아온 그였다.
강제적인 육체 개조와 살인 병기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처참한 유년 시절을 보내온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그의 메말라 버린 인성을 풍요로운 숲의 기운과 제이나의 밝은 미소가 녹여 준 것이었다.
“아저씨, 뭐 하는 거야! 빨리빨리!”
“아저씨라고 하지 마, 할망구.”
“애늙은이 주제 뭐라는 거야? 뭐해, 도망치잖아!”
“쉿! 조용히.”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서서히 할 시위가 당겨지자 그의 눈에는 십자망선으로부터 목표물까지 정확한 포물선이 그려졌다.
-거리: 39.8m
-풍속: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0.8m/s
-습도: 79%
-온도: 29.3도
컴퓨터로부터 전해진 정보대로 완급 조절을 한 후, 호흡을 가다듬은 강찬이 온 정신을 목표물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손을 떠난 화살촉은 그의 눈에 그려진 포물선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가 목표물에 적확히 명중했다.
“와! 잡았다! 역시 아저씨야! 어쩜 엘프보다 활을 잘 쏴?”
제이나가 강찬의 목에 매달려 펄쩍펄쩍 뛰었다.
그의 화살에 명중된 건 티메라 불리는 작은 산토끼였다.
엘프는 육식을 안 한다고 알려졌지만 주식이 아닐 뿐.
수렵을 통해 가끔은 그들도 육류를 섭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둘에게는 아예 주식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반년 동안을 줄곧 과일만 먹으며 지낸 강찬은 슬슬 과일이 지겨워질 때쯤 마을 잔치 날 처음으로 육류의 맛을 접해 보고 또 한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헐! 존나 맛있음!’
그때부터 그는 몰래 마을을 빠져나와 이렇게 수렵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부추긴 것은 다름 아닌 그를 보살피던 엘프 소녀 제이나였다.
* * *
“저기 또 연기가 치솟는 걸 보니 둘이 또 한 건 한 것 같구먼.”
“쯧쯧쯔, 이러다 마을 주변 동물들 씨가 마르겠소.”
“어쩌다 우리 마을 최고 문제아랑 인간이랑 저리도 잘 어울리는지.”
“제이나는 엘프답지 않게 성격이 급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지요. 어찌 보면 그런 점에선 엘프보단 인간을 많이 닮은 아이입니다.”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나이 든 엘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아르테온 님은 우리의 신성한 숲에 인간이 들이셨는지……. 장차 화근이 될 만한 것은 미리 방지하는 게 좋을 터인데 말이야.”
“그건 때가 되면 알게 되겠죠.”
하늘을 바라보는 나이 든 엘프 장로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 * *
티메로 배를 채운 제이나와 강찬이 마을로 돌아와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 한 여인이 제이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의 이름은 제레니스였고, 아르테온을 모시는 마법사였다.
그렇게 다가오는 제레니스의 표정은 북풍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런 그녀와 눈이 마주친 제이나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어, 엄마.”
“제이나, 너 또 마법 수련 빼먹고 놀다 온 거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제 강찬 님은 네가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겠니? 마을의 훌륭한 일원이 되려면 어른들이 하는 말씀을 절대로 어겨선 안 되는 거란다.”
그다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 억양 없는 말투였지만 엘프로서 이 정도 말투라면 굉장히 화가 난 것이란 걸 강찬은 잘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이나에게 같이 사냥 가자고 부탁했습니다.”
사실은 제이나가 강찬을 찾아와 같이 사냥 가자고 졸랐던 일이었지만, 부모한테 혼날 제이나를 걱정한 강찬은 모두가 자신의 탓이라며 제이나 어머님께 용서를 빌었다.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죄송합니다.”
제이나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무 말 없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마법 수련장으로 끌려갔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강찬.
강찬은 마을 주위를 서성이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자 이내 지루함이 밀려왔다.
그만큼 제이나가 떠나 버린 빈자리가 너무도 컸던 것이었다.
엘프 중 자신과 진심으로 어울려 주는 엘프는 제이나 밖에 없었다.
다른 엘프들은 상냥하고 친절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겉모습만일 뿐.
속으로는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와중에 제이나만이 유일하게 그에게 진심으로 대해 주었고, 엘프 마을에서 마음이 통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비록 겉모습은 어린아이의 모습이었지만 실제 그녀의 나이는 올해 96살이었다.
인간으로 치면 예전에 관속에 들어갔어야 할 나이다.
그런 그녀와 친구로 지낸 지도 벌써 1년이나 흘렀고, 그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둘은 우주와 종족을 뛰어넘는 깊은 우정을 쌓아 왔다.
‘휴, 정말 무료하군.’
제이나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마법 수련장으로 끌려간 후, 홀로 남아 정처 없이 마을을 떠돌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강찬의 귓가에 우연히 젊은 엘프들이 내지르는 힘찬 함성이 들려왔다.
“타앗! 하이얏!”
“……?”
호기심이 동한 강찬은 함성에 이끌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청년 엘프들이 검술을 연마하는 공터에 당도하였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엘프가 샤벨이나 레이피어를 들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열심히 검술을 연마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강찬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그도 한때 사람을 죽이는 모든 방법을 훈련받은 살인 병기로서 그들의 병기술에 매우 흥미가 동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그 자신도 가장 자신 있는 특기가 접근전인 단격술이었기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과거 총검술에서 유래한 단격술은 강철도 쉽게 자르는 초진동 블레이드를 이용한 근접전용 격투법이었다.
장거리 공격 무기들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미래의 전장에서도 총알에는 항상 한계가 있는 법이었고, 참호나 엄폐물 안의 적을 공격할 때는 제아무리 우주를 넘나드는 미래라 할지라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개싸움은 필수였다.
그런 접근전에서 가장 큰 활약을 했던 것이 바로 강찬이었다.
그는 사격보다는 접근전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자이드끼리의 장거리 공격은 어차피 컴퓨터가 알아서 조준해 주기 때문에 어린애라도 할 수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접근전이었다.
그런 접근전에서 강찬은 연합군에서 뿐만 아니라 제국군 안에서도 톱클래스에 랭크되어 있는 파일럿이었다.
기존에 자이드 파일럿은 전투 조작을 수동 조작에 의지했기에 자신의 전투 감각을 백 프로 운용할 수 없었지만 강찬은 인류 최초의 바이오칩 이식자였고, 그 덕분에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전투적 감각을 바이오칩을 통해 마치 자신의 신체를 다루듯 자이드를 조종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천부적인 접근전 격투 센스와 바이오칩 덕분에 대기갑병기인 자이드의 파일럿에 뽑혀 현재 대위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계급에 소유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