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80
퓨쳐나이트 80화
원래 계획대로라면 적당히 공격하는 척을 하다 적 본진이 도착하기 전에 빠졌어야 정상인데, 이대로는 후퇴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아 보였다.
지옥의 악귀처럼 물고 늘어지는 적 소드 마스터와 오우거 때문에 말이다.
녹색 엘프가 후퇴하고, 습격을 막아 낸 징집병들은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 천지가 녹색 엘프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이,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징집병 하나가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혼자 중얼거렸다.
단지 소모품으로만 여겨지던 자신들이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제껏 자신들만으로 이렇게 대승을 거둔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들이 목숨 걸고 적들을 지연시키거나 난전으로 이끌고 가면 항상 뒤늦게 나타난 정규군들이 마지막을 장식하고 승리의 기쁨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스스로 적을 물리친 승리의 기쁨은 정말로 남달랐다.
비록 정체불명의 소드 마스터와 오우거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징집병 모두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워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승리의 함성이 온 전장에 메아리 쳤고, 모두가 승리의 기쁨에 취해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해냈다! 우리가 해냈다고!”
부상당한 징집병들조차 고통을 잊고 함성을 내질렀다.
그때 뒤늦게 나타난 정규군들은 이 알 수 없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적이 출현했다는 보고에 부랴부랴 출동했는데, 도착해 보니 이미 적들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략 봐도 그 수가 5천, 약 10개 대대는 될 법한 상당한 규모의 적들이 말이다.
아리송해하는 정규군 지휘관에게 징집병들을 통솔하던 병사가 부랴부랴 달려와 상황을 보고했다.
“보고 드립니다. 기습을 가해 온 10개 대대 규모의 적 모두를 추적, 섬멸하였습니다.”
“뭐라고? 징집병들만 가지고 그 많은 녹색 엘프들을 추적까지 해서 섬멸했다고?”
“그, 그렇습니다.”
“나보고 그 소리를 믿으라는 것이냐?”
농노나 다름없는 징집병들이 정규군에게도 안 밀리는 녹색 엘프군을 섬멸했다는 보고에 정규군 지휘관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병사는 자신조차 믿지 못할 사실을 지휘관에게 고했다.
“저, 저기, 그게, 그러니깐 그게…….”
“휴우, 조금 지치는군.”
강찬은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그의 주변에는 셀 수 없을 녹색 엘프들의 시체가 사방으로 쓰러져 있었다.
“괜찮아?”
“좀 따갑군.”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한 로키의 팔과 다리에는 거칠게 저항하던 녹색 엘프들의 도끼와 메이스에 긁힌 듯한 상처들이 나 있었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그들의 공격은 로키의 질긴 가죽을 뚫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잔뜩 생긴 로키의 모습은 좀 안쓰러워 보였다.
“지크욘이 오면 말끔히 치료해 줄 거다. 조금만 참아라.”
“응 그래…….”
본진을 향해 돌아가는 로키의 발걸음이 약간 무거워 보이자 강찬이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면 충격이 될 수도 있지. 그건 너 혼자 극복해야 하는 거다.’
자신도 과거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의 그 정신적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기에, 강찬은 말없이 그런 로키가 빨리 마음을 다잡길 기원했다.
그러나 로키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단순히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오우거로 돌아가 맨손으로 적들을 때려잡을 때, 터져 나가는 녹색 엘프들의 짙은 피 냄새에 알 수 없는 희열과 흥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완전히 극복한 줄만 알았던 오우거의 본능이 아직도 그의 가슴 속에 내제되어 있었고, 좀 전의 살육 속에서 조금씩 깨어나려 한 것이다.
“…….”
로키가 그렇게 시무룩해져 있을 때, 갑자기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아! 소드 마스터 만세!”
“오우거 만세!”
자신들을 승리로 이끌어 준 소드 마스터와 오우거에게 징집병들이 엄청난 함성으로 보답한 것이다.
내심 노심초사하던 로키는 그런 그들의 함성에 깜짝 놀랐다.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두들 병장기를 높이 들고 소드 마스터와 오우거의 이름을 외치는 모습에 로키는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강찬은 그런 그들에게 어색하게 손을 들어 줬다.
그러자 수천 명의 함성이 하늘을 찌를 것처럼 울려 퍼졌다.
함성 속에 강찬은 손을 든 채로 로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봐, 내 말이 맞지?”
강찬의 말대로 저들은 오우거인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뭐 해, 영웅님? 손이라도 흔들어 주라고.”
강찬은 의기소침했던 로키에게 일부러 그가 동경하는 영웅이라는 호칭을 붙여 줬고, 로키는 수줍은 미소 지으며 손을 들어 징집병들의 환호에 답했다.
그러자 징집병들은 더욱 열렬하게 환호했다.
그런 로키의 수줍은 미소는 정말로 여자가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고, 어느 뱃심 두둑한 징집병이 그런 로키에게 장난스럽게 외쳤다.
“오우거 누나! 너무 예뻐요! 뽀뽀해 주세요!”
순간 그의 외침에 징집병들은 환호하다 말고 자지러졌고, 로키는 얼굴을 붉히며 불같이 화냈다.
“난 남자라고!”
“이크!”
“아하하하하!”
“키키키키킥!”
로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죄가 있다면 그것은 지크욘의 변태적인 취향이 죄였다.
그렇게 강찬과 로키가 징집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을 때, 정규군 기사단 장교들이 징집병들을 밀치며 강찬과 로키를 향해 달려왔다.
“당신이 바로 이 승리의 주역인 소드 마스터이십니까?”
“주역은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주역이지만, 제가 소드 마스터인 것은 맞습니다.”
모두가 주역이란 말에 징집병들이 다시 한번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아아아아와! 소드 마스터 만세!”
“만세! 만세!”
갑자기 징집병들이 내지른 함성에 장교들이 당황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소르펜 국가 연합 헤르메스 기사단의 단장인 라온 란체스터라고 합니다. 당신은 어느 국가 소속이십니까?”
그도 한 기사단의 단장으로서 전 대륙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소드 마스터들의 인적 사항이라면 눈감고도 달달 외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소드 마스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정체를 들어 보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는 과연 이 젊은 소드 마스터를 키워 낸 국가가 어디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강찬의 대답은 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전 소속된 국가가 없습니다.”
“헉! 소속된 국가가 없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어, 어떻게 이, 이런 일이!”
소속이 없다는 말에 란체스터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가 정말 소속이 없는 소드 마스터라면 정말로 봉 잡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집적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기에 그가 소드 마스터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농노나 다름없는 징집병만을 데리고 5천에 달하는 녹색 엘프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 실력이라면 소드 익스퍼트라 보기에도 다소 무리가 있었다.
란체스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그를 소르펜 국가 연합으로 끌어들여야만 했다.
“혹시 저희 소르펜 국가 연합으로 전향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만일 당신이 소르펜 국가 연합의 시민이 되어 저희 헤르메스 기사단으로 와 주신다면 제자리를 당신께 기꺼이 내어 드리겠습니다.”
“헉! 다, 단장님!”
“단장님!”
란체스터의 말에 그의 부하들과 병사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런 부하들을 뒤로한 란체스터의 눈빛에는 굳은 신념이 가득했다.
소르펜 국가 연합은 지리적으로 거대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던 작은 왕국들이 모인 연합체였다.
그들은 강대국들의 완충 지대로서 작용하며 교역을 중심으로 상권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으나, 좁은 영토와 주변국의 견제로 인해 군사력은 언제나 주변 국가들에 비해 열세였다.
그런 그들이 살길은 강력한 기사단을 보유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 또한 좀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적은 인구수로 인해 소드 익스퍼트에 오를 만한 자질을 타고난 아이도 적을뿐더러 어렵게 소드 익스퍼트에 오른다 할지라도 조국을 버리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주변 국가로 국적을 옮겨 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소드 익스퍼트 중급도 안 되는 실력인 그가 단장직을 맡고 있을 정도로 헤르메스 기사단의 질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오랜 숙원은 바로 소드 마스터의 보유였다.
‘우리 조국에도 소드 마스터가 있다면…….’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강대국들만이 보유하고 있는 소드 마스터를 보유할 수만 있다면, 헤르메스 기사단은 더 이상 약소국의 허접한 기사단이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젊은 기사들이 자국에 회의감을 느껴 다른 나라로 떠나가는 일도 없을 것이고, 소드 마스터를 보유한 자신의 국가는 당당히 강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만큼 소드 마스터란 존재는 전술적으로나 전략적으로 국가 전력의 핵심이었다.
란체스터의 말을 들은 그의 부하들과 징집병들은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한 국가의 기사단장이라면 그 국가의 핵심 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자리를 내밀며 포섭하려고 들다니…….
과연 이 세계에서 소드 마스터란 존재가 얼마나 지고무상한 존재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강찬과 란체스터의 대화를 엿듣는 징집병들의 표정은 아쉬움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강찬이 란체스터의 제의에 넘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노예나 다름없는 그들에게 있어 란체스터가 던진 제안은 듣기만 해도 흥분되어 오줌을 지릴 정도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떠나고 나면 징집병들은 오늘 같은 승리의 기쁨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이기에, 그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강찬의 입에서 나온 건 의외에 대답이었다.
“거절합니다.”
란체스터는 그런 강찬의 대답에 가슴이 덜컹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달리 생각해 두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그럼 혹시? 저희 소르펜 국가 연합이 맘에 안 드셔서 그런 것입니까?”
하긴, 자신이 생각해도 소드 마스터쯤 되는 기사가 소르펜 국가 연합 같은 작은 약소국에 몸담을 리 없었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어떤 나라에 가더라도 공작의 작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문에 소드 마스터의 대답은 애매한 것이었다.
“그런 것도 아닙니다.”
“네에? 그렇다면 저희가 약소국이라 그런 것이 아니란 겁니까?”
“그렇습니다.”
란체스터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자신의 국가가 약소국이기 때문에 싫은 것도 아니고, 다른 곳으로 갈 마음도 없다는 그의 말 때문이다.
“그럼 왜 당신 같은 분이 이런 곳에 계시는지, 제가 감히 알아도 되겠습니까?”
비록 안 된다 하더라도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어떻게든 알아내야 하는 란체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