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81
퓨쳐나이트 81화
“저는 녹색 엘프들에게 받을 빚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이곳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빚이라는 게 뭡니까?”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말씀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싸늘하게 굳는 강찬의 표정을 본 란체스터는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란체스터는 반드시 강찬의 호감을 얻어야만 했다.
“그럼, 그 빚이란 것을 받을 수 있게 저희가 도와 드려도 될까요?”
“고마운 말씀이시지만, 그 빚은 저 혼자 받아 내야 할 짐입니다.”
강찬은 남이 해 주는 복수 따윈 원하지 않았다.
그는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직접 녹색 엘프를 베어야 했다.
그것이 일부러 무리하면서까지 이곳에 온 이유였다.
“정 그러시다면…….”
“전 이만 동료들에게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강찬과 로키가 란체스터를 지나쳐 징집병들에게 돌아가자 또다시 거센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환호성은 이곳에 남아 준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징집병 무리로 되돌아가는 강찬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란체스터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전군 회군해라!”
란체스터도 병력을 돌려 자신들의 진영으로 회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강찬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절대로 포기한 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반드시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반드시…….’
그는 그렇게 다짐하고는 말 머리를 돌렸다.
* * *
어두운 밀실 안. 그린과 네미츠가 양쪽 참모들과 함께 본격적인 합동 작전을 위해 긴밀한 회의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전령을 통해 전달받은 양피지를 확인한 그린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양손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내뿜는 자라니, 설마?”
살아서 생환한 녹색 엘프가 알려 온 새로이 나타난 적 소드 마스터의 생김새에 그린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드디어…… 그자가 나타났군요.”
매우 걱정 어린 그린의 말에 네미츠가 물었다.
“그자를 아십니까?”
“잘 알다마다요. 절 이렇게 만든 자니까요…….”
그린이 자신의 허리에 난 희미한 상처 자국을 내려다보자 네미츠도 그녀의 상처 자국을 바라봤다.
“그 상처는 피닉스를 강제 송환시켰다는 그 정체불명의 고대의 거인한테서 입은 상처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번에 등장한 소드 마스터가 그 고대의 거인의 주인이란 말입니까?”
“분명합니다.”
네미츠는 당시 적 고대의 거인과 싸웠던 그때를 떠올렸다.
엄청난 위력으로 자신이 가장 아끼던 제자 두 명을 순식간에 해치운 그 고대의 거인의 모습을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그 고대의 거인은 분명 오러 블레이드를 다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고대의 거인은 오러 블레이드를 다루지 못했습니다.”
네미츠의 말에 그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그자의 진짜 무서운 모습을 보지 못했군요.”
“어떤 모습 말입니까?”
강찬이 최종 안전 모드를 해제했던 그날 밤을 떠올리자 잊고 있던 두려움이 밀려왔다.
자신으로선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던 그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날 밤, 그는 분명히…….”
대륙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그녀가 두려움에 떨며 말을 잊지 못하자 네미츠까지도 절로 긴장이 되었다.
‘그날 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강인한 여인이 저토록 떤단 말인가?’
“그는 분명히…… 오러 파이어를 썼어요.”
“오, 오러 파이어?”
네미츠가 너무 놀라 되묻자 그린은 확실하게 다시 한번 말했다.
“네, 그건 분명히 오러 파이어였어요.”
하지만 네미츠는 그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린 님, 농담은 그만하시죠?”
“제 말이 농담으로 들리시나요?”
그녀가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네미츠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오러 파이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알고 그런 말씀을 하는 겁니까?”
“그가 소드 엠페러라는 것이겠죠?”
오러 블레이드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오러 파이어.
그것은 무소불위의 존재인 소드 엠페러만의 권능으로, 대륙 역사상 아무도 오른 이가 없는 뜬구름 같은 경지였다.
“말도 안 됩니다.”
“왜 말이 안 된다는 거죠?”
“그가 진짜로 소드 엠페러였다면 그날 우리는 살아서 생환할 수 없었을 겁니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먼저 말문을 연 건 그린이었다.
“그렇다면 그날 제가 본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죠?”
“도대체 어떤 모습을 보셨기에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저한테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죠…….”
마음을 가다듬은 그린이 그날 자신이 봤던 강찬의 모습을 네미츠에게 생생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트롤보다 빠른 재생력, 인간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 양손에서 폭발하듯 타오르던 3미터에 이르던 거대한 오러의 불꽃. 그리고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지 못할 거대한 파괴의 흔적을 말이다.
이야기를 듣는 네미츠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20만에 육박하던 녹색 엘프들을 단 한번에 전멸시켰다는 그 알 수 없는 거대한 불화살 이야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건 분명 진실이었다.
20만에 달하던 그녀의 아이들이 엘프의 숲에서 전멸했다는 것을 네미츠도 잘 알고 있었다.
네미츠는 순간 넋이 나가 버렸다.
그녀가 말하는 건 소드 엠페러 정도가 아니라 무슨 마계의 마왕 정도는 됨직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드 엠페러가 지고무상한 존재라 해도 20만에 달하는 병력을 단 한번에 전멸시킨다는 것은 드래곤이라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제아무리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인 드래곤이라도 20만에 달하는 병력을 전멸시키기 위해선 수차례 브레스를 뿜고 9써클 마법을 난사해야만 했다.
그런데 단 한번에 20만에 달하는 병력을 간단히 정리해 버린 존재라니…….
네미츠는 이해할 수 없는 괴리감을 느끼면서 진지하게 그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사람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누굴까?
네미츠는 곰곰이 생각했고, 잠시 후 그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였다.
“혹시 그자는 마왕이 아닐까요?”
“마, 마왕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자는 소드 엠페러는 아닌 듯합니다. 소드 마스터라 해도 하루아침에 불쑥 튀어나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소드 엠페러 같은 존재가 갑자기 등장하다니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 그는…….”
네미츠가 잠시 뜸을 들였다.
“마왕이나 마왕에게 혼을 판 데스나이트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전 그에게서 마왕의 존재감은 느끼지 못했는데요?”
“조용히 이 세상을 잠식해 가기 위해 자기 어둠의 마나를 철저히 감춘 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피닉스도 그를 보고 아무런 말이 없던데…….”
정령왕과 마왕은 둘 다 다른 차원계를 지배하는 존재들로, 서로 앙숙 지간이었다.
그러니 피닉스가 마왕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더욱더 무섭군요. 정령왕의 이목조차 감출 수 있는 마왕이라니…….”
네미츠는 그가 마왕이라고 완전히 단정 지은 듯했다.
“뭐, 그가 마왕이든 드래곤이든 상관없습니다. 지금 중요한 사실은 당장 그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는 겁니다.”
“일단 동부 왕국의 급한 불은 꺼졌으니……”
급한 불이 꺼졌다는 말에 그린과 네미츠가 마주보며 잔인하게 웃었다.
“이제부턴 저희도 본격적으로 공격에 가담할 테니, 동부 왕국의 연합군을 괴멸시킬 때처럼 전면전을 피하고 게릴라전으로 나가도록 하죠.”
“예, 저도 찬성이에요.”
“그가 마왕이 됐건 인간이 됐건 기대되는 전투가 될 듯하군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작전 회의를 시작해 볼까요?”
지도를 펼쳐 놓고 열심히 작전을 수립 중인 그린을 바라보며 네미츠가 몰래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에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이제 너밖엔 없구나, 라카샤.’
그린은 네미츠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도 모르고 한참 작전 회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24. 그린의 탄생 (1)
엘프의 마을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위치한 페어리의 숲.
건강한 숲의 상징인 페어리들이 노니는 그곳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했다.
그런 꽃들이 만발한 숲속을 질주하는 엘프가 있었으니…….
그 엘프는 머리에 꽃을 달고 있었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는 멀리서 보아도 굉장한 미인이었다.
그런 그녀의 이마 위로 살짝 흘러나온 땀방울은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부드럽고 긴 생머리는 바람에 휘날리며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름다운 엘프 여인의 행동은 다른 엘프들과는 달랐다.
“아하하하! 안녕, 꽃들아! 안녕, 다람쥐야! 만나서 반가워! 난 마타나라고 해!”
그렇다. 그녀는 엘프들 사이에선 아주 보기 드문 광년 끼가 있는 엘프였다.
그녀는 오늘처럼 날씨가 맑은 날엔 항상 머리에 꽃을 달고 숲속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랄랄라라라~ 랄랄라라라~ 귀여운 마타나는 꽃들과 함께~”
그러나 그녀는 너무 들뜬 나머지 마을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이 페어리의 숲까지 오게 되었다.
겁도 없이 혼자서 말이다.
그런 그녀를 조심히 쫓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오크들이였다.
천부적인 사냥꾼인 오크들은 음흉한 눈짓을 하면서 그녀의 뒤를 조심스럽게 밟았지만 그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크르륵! 허억! 허억! 저 미친년, 존나 빠르네. 허억! 허억!”
매일같이 숲속을 달리는 그녀의 체력을 따라잡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오크들은 그녀가 잠시 앉아서 꽃을 따는 틈을 타 주위를 잽싸게 포위했다.
“어머나?”
마타나는 갑자기 주위를 포위하는 추악한 오크들을 보고선 의아해하면서도 아주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너희들은 누구니? 꼭 돼지처럼 생겼네. 이히히, 너희들도 나랑 같이 놀래?”
“크르륵…… 소문대로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군. 잡아라!”
대장으로 보이는 오크가 손짓을 하자 옆에 있던 오크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왜, 왜들 그래? 나 무섭단 말이야……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응?”
겁에 질린 마타나가 뒷걸음질 치자 그녀가 안고 있던 꽃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고, 오크들은 그 꽃을 사정없이 짓밟으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잡아라! 크르르!”
“꺄악! 매, 매직 미…… 뭐, 뭐였더라?”
제아무리 정상이 아닌 그녀라 해도 기본적인 공격 마법 몇 가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전 속도가 지극히 느리고 급할 때는 주문을 까먹기 일쑤였다.
그런 그녀를 뒤에 있던 오크가 잽싸게 안아 버리자 앞에 있던 오크가 그녀의 복부를 주먹으로 있는 힘껏 올려쳤다.
퍼억!
“으윽!”
엘프가 짧은 비명과 함께 먹은 것을 게워 내며 축 늘어져 버리자 오크들은 너무나도 손쉬운 대박 사냥에 흥겨워했다.
엘프는 노예 시장에 엄청난 가격으로 팔려 나간다.
이렇게 사지가 멀쩡한 엘프를 인간에게 넘긴다면 정신 상태가 정상은 아닐지라도 엄청난 액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