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82
퓨쳐나이트 82화
“클클클…… 다들 수고했다. 이년 덕에 올겨울 우리 부락은 걱정 없이 배불리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서 부락으로 옮겨라. 크르르.”
추운 겨울을 배불리 보낼 수 있을 거란 말에 모든 오크들이 괴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러다 한 오크가 음흉한 눈으로 대장에게 간청했다.
“크르륵, 대장, 그전에…….”
“크륵, 뭐냐?”
“캬륵…… 엘프와 한번 해 봐도 될까?”
“크르르륵! 나도!”
“나도 하고 싶다. 캬륵!”
이상했다. 지금은 오크의 번식기도 아닌데 다들 발정이 난 듯 매우 흥분하고 있었다.
물론 대장인 오크 역시도 말이다.
“큭크크! 알았다.”
대장 오크의 허락이 떨어지자 같이 있던 오크들의 눈빛이 모두 음흉하게 변했다.
그들의 미적 기준은 결코 인간이나 엘프와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대륙에서 제일 추하다고 천대받는 그들이었기에, 다른 모든 종족에게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엘프를 안아 보고 싶은 호기심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수 없었다.
바로 엘프를 안아 볼 기회를 말이다.
기절한 마타나를 부락으로 옮긴 오크들은 그들의 냄새 나는 천막 속으로 마타나를 던져 넣고선 서열 순으로 그녀의 육체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처녀였던 마타나는 그런 거친 오크들의 행위에 고통에 찬 몸부림을 쳤지만, 오크들은 그런 그녀의 고통마저 즐기는 듯 잔인하게 웃을 뿐이었다.
오크들은 절대로 사정을 봐주는 종족이 아니었다.
그렇게 마타나의 고통의 시간은 무려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차례를 기다리는 오크들의 줄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크들이 마타나를 정신없이 강간하고 있을 때.
천막 위로 투명한 물로 된 인간이 그녀의 고통 어린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흥분제를 너무 과하게 썼나? 뭐, 내 알 바 아니지.」
그러던 그가 손을 뻗어 주문을 영창했다.
「생명이여, 자리 잡을 지어다. 라이프워터.」
물의 형상을 한 자의 손에서 마타나의 이마 위로 투명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정확히 그녀의 이마를 적신 물방울은 미약한 빛과 함께 마타나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뒤로 물의 형상을 한 자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그가 존재했던 허공으로 마타나의 신음 소리만이 가득했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늦은 시간까지 마타나가 귀가하지 않자 걱정이 된 아르테온과 네미츠는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마타나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흐릿한 대지의 기억을 읽어 가며 추적을 벌인 끝에, 아르테온은 마타나가 오크들에게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사랑스러운 딸이 오크들에게 납치되었다니.
아르테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미츠, 시간이 없다! 오크들이 마타나를 잡아먹지 않은 걸 보면 죽이지 않고 비싼 값에 인간들에게 넘길 심산인 것 같구나. 서둘러야 구해야 한다.”
“네, 어머니!”
다급해진 아르테온은 아들 네미츠와 다른 엘프들을 이끌고 서둘러 오크들이 살고 있는 부락까지 추적해 갔다.
보통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부족 단위로 생활하는 오크들이었기에 겨우 5명뿐인 그들만으로 마타나를 구하려는 모습은 매우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엘프 최고의 마법사와 전사들이었으니, 그들의 눈에 두려움 따윈 전혀 없었다.
경계를 서던 오크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한 뒤, 부락 안으로 잠입한 그들은 경악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어둠 속에서 불타오르는 장작불 옆으로 수십 마리에 오크들이 고통에 울부짖는 마타나를 둘러싸고 끔찍한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악! 이 개자식들! 다 죽여 버리겠어!”
이성을 잃고 폭주한 네미츠가 오러 블레이드들 뿜어내며 번개처럼 달려들어 마타나를 범하고 있던 오크의 목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그리고 미처 달아나지 못한 주변 오크들까지 폭풍처럼 양단해 버렸다.
“퀘에엑! 에, 엘프다! 소드 마스터다!”
네미츠의 등장에 주변에 있던 오크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미츠는 그들의 도주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한 놈도 살려 두지 않겠다!”
악귀로 변한 네미츠가 미친 듯이 오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아르테온이 서둘러 마타나의 상태를 살폈다.
마타나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었고, 벌거벗은 몸에는 뿌옇고 끈적끈적한 것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아르테온은 더욱 오열했다.
“으흐흐흑 이 짐승 같은 놈들이…… 내 딸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온몸에 피멍이 든 마타나를 안아 든 아르테온이 오열하는 모습에 엘라디온의 눈에서도 불똥이 튀었다.
친동생처럼 아끼던 마타나의 처참한 모습에 그도 이성을 잃은 것이다.
“이 망할 쓰레기 같은 놈들!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않겠다!”
아직 소드 마스터에 오르지 못한 엘라디온의 검에선 오러 소드가 뿜어져 나왔고, 엘라디온은 그대로 무수한 오크들을 썩은 짚단처럼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그날 그렇게 이성을 잃은 그들의 손에 오크 부락에 있던 수백에 달하던 오크가 떼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마타나는 다시금 동족에 품에 안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늦어도 너무 늦은 후였다.
2개월 뒤, 마타나가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아르테온이 진찰해 본 결과 임신이었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아르테온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실성한 엘프처럼 중얼거렸다.
“아닐 거야…… 오크의 아이가 아닐 거야…….”
엘프가 오크의 아이를 낳은 경우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기에, 아르테온은 그 아이가 오크의 아이가 아닐 것이라 믿었다.
만일 그 아이가 오크의 아이라 해도 애를 지울 수는 없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엘프들은 절대로 낙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르테온은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 후로 9개월이 지난 뒤.
마타나의 배는 만삭이 되었고, 기다리던 진통이 시작되었다.
진통이 시작된 것은 이른 초저녁이었고, 아르테온과 네미츠는 손을 잡고 초조한 마음으로 마타나의 출산을 지켜봤다.
그렇게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과 함께 마타나가 아이를 낳기 시작한 지 4시간 뒤.
혼신에 찬 마타나의 신음 소리와 함께 방 안에서 아이의 힘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디어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의 모습은 마을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아이는 뾰족한 귀를 가진 전형적인 엘프의 아이였으나 피부가 오크와 같은 녹색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날이 최초의 녹색 엘프인 그린이 태어난 날이다.
그린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동족들에게 버림받았다.
원로원에서 마타나와 갓 태어난 그린을 마을 밖으로 추방했기 때문이다.
마타나는 그렇게 출산 후 몸조차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갓 태어난 어린 그린을 안고 마을 밖으로 쫓겨났다.
엘프들에게는 예부터 내려오는 불문율이 있다.
그 불문율에 따르면 다른 종족과 사랑을 나눠 다른 종족의 아이를 낳은 여인은 사형으로 다스려야 했다.
그것이 자의가 됐든 타의가 됐든 말이다.
그 말은 곧 다른 종족에게 순결을 잃을 바엔 차라리 자결하라는 뜻이었다.
그런 불문율에도 불구하고 마타나가 추방으로 끝나게 된 것은 대장로 신분인 아르테온의 간청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간청이 딸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하지만 엘프를 숲 밖으로 추방한다는 건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타나의 이마에는 추방자의 낙인이 찍혔다.
고대 엘프의 주술로 새겨진 이 낙인은 그 어떤 마법으로도 지울 수 없는 낙인이었고, 낙인이 찍힌 순간부터 마타나는 동족에게서 버려지게 되었다.
이제 마타나는 다시 숲으로 되돌아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었고, 밖에서 만난 그 어떤 엘프도 그녀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거나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추방당한 엘프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자신의 고귀함이 더럽혀지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추방당한 엘프가 설 곳은 엘프의 숲 어디에도 없었다.
추방당했음에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들은 귀를 자르고 인간들 틈에 섞여 살아가거나 붙잡혀 노예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제 모녀를 기다리는 것은 숲속의 흉포한 몬스터들과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세상뿐이었다.
엘프의 숲 외곽으로 압송된 마타나는 그린과 함께 숲 밖에 버려졌다.
“추방자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숲으로 들어오면 너와 아기는 죽는다. 두 번 다시 우리가 경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항상 친절했던 자신의 동족이 싸늘하게 돌아서자 어린 그린을 안아 든 마타나는 제자리에 앉아 한없이 울었다.
“어어엉! 버리자 마! 날 버리지 마! 어엉엉!”
아무리 울어 본들 그 누구도 자신을 달래 주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혼자가 된 것을 절실하게 느꼈고, 울음을 멈추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모성애로 정신을 차린 그녀에게는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하혈로 인해 빈혈이 찾아온 마타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무에 몸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입술 역시 새파랬다.
“흑! 흑! 흐으으으, 아가야…….”
눈앞이 막막해진 마타나는 그린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엄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갓 태어난 그린은 조용히 눈을 감고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엄마가 너, 꼭 지켜 줄 거다…….”
마타나는 나무에 기댄 채 어머니가 챙겨 준 음식을 먹으며 체력을 비축했다.
이대로 아이와 함께 죽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마타나는 처음으로 숲이 두렵게 느껴졌다. 이곳은 엘프의 숲과는 달랐다.
숲속에서는 뭔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듯했고, 마타나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엄마…… 오빠…….’
마타나는 속으로 그리운 가족들을 불러 보았다.
그러나 언제나 항상 옆에 있어 주었던 그들은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그녀는 왠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그때 지독한 노린내가 풍겨 왔다.
본능적으로 뭔가가 자신과 아이를 노리고 있다고 느낀 마타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캬르르르륵!”
섬뜩한 울음소리에 마타나는 더욱 바들바들 떨었다.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포식자는 다름 아닌 트롤이었다.
피 냄새를 맡고 온 트롤은 꽤나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마타나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아챘다.
그러자 트롤은 한껏 여유 있게 마타나를 향해 다가왔다.
“캬르르르…….”
어둠 속에서 노란 눈을 번뜩이며 다가오는 트롤.
벌써부터 입맛이 도는지 군침을 질질 흘렸다.
그런 트롤을 바라보는 마타나의 눈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그렇게 죽음의 시간이 한 발 두 발 모녀에게 향하던 찰나.
숲속에서 번개처럼 튀어나온 뭔가가 눈앞의 트롤을 순식간에 6등분으로 나눠 버렸다.
“키애애애액!”
트롤은 목이 잘렸음에도 그 질긴 생명력만큼이나 오랫동안 허망하다는 듯 기성을 질러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