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87
퓨쳐나이트 87화
다음 날, 술이 깬 강찬은 ‘자신이 왜 여기 있지?’라는 표정으로 주변을 봤다.
“여긴 뭐야?”
생전 처음 보는 호화찬란한 방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밖으로 나와 보니 거대한 거실 소파에 지크욘이 앉아 있었다.
“일어났어?”
지크욘의 양옆으로는 네 명의 하녀들이 안마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니 저런 대우를 받는 것에 매우 익숙해 보였다.
아니, 마치 자신의 집인 양 매우 편안해 보였다.
“여기가 어디지?”
“에델린의 별궁.”
“별궁?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여기 살아 봤으니깐 알지.”
“엥? 여기서 살아 봤다고?”
“말하자면 길어.”
“그래…….”
에델린은 기분이 좋았다.
드래곤과 소속 없는 소드 마스터를 자신의 별궁에 모셨다는 말에 모처럼 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공적을 치하한 것이다.
황제는 서둘러 고위 대신들을 보내 그 정체불명의 소드 마스터를 구워삶으려 했다.
하지만 에델린이 극구 반대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이 그에게 불쾌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곁에 있는 드래곤이 그 유명한 약탈자 G.지크욘이라고 하니, 제아무리 비스만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간섭받지 않고, 편하게 쉬는 것이라는 에델린의 말에 황제는 그 의견을 적극 존중했다.
“그럼 이번 일은 너에게 맡기마. 꼭 소드 마스터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알겠느냐?”
“예,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다들 오랜만에 평화로웠다.
엘리카도 오랜만에 산림욕을 하며 쉬었고, 로키도 경비견들과 거대한 정원에서 뛰어놀았다.
지크욘은 하녀들에게 이런저런 관리를 받으며 고상한 기분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강찬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평화로움이 제이나를 생각나게 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프고 공허해진다.
강찬은 이런 생각을 떨쳐 내기 위해선 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휴가를 나왔지만 아직도 전쟁터 한복판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돌아가야 해…….’
강찬은 그렇게 휴가 날짜를 다 채우지 못하고 3일 만에 주둔지로 돌아왔다.
엘리카도 딱히 불만 없었다.
그녀도 강찬과 비슷한 느낌이 받았던 것이다.
그녀 또한 강찬과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엘프이니 말이다.
거기다 에델린이 자꾸 강찬에게 찝쩍거리는 것도 싫었다.
로키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냥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고 모험이었다.
가장 불만에 찬 건 지크욘이었다.
간만에 자신의 품격에 맞는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서둘러 떠나자는 강찬이 야속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크욘도 크게 반대하진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휴가를 온 것도 강찬 딴에 동료를 배려한다고 한 것임을 잘았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복수에 그 누구도 끌어들이지 않았다.
모두 자발적으로 강찬을 따라온 것일 뿐.
오히려 자신들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꼴이었다.
그렇게 첫 휴가는 끝이 났다.
* * *
드디어 동부 왕국에서 보낸 병력이 도착하는 날.
병력을 이끌고 마중 나온 류미엘 폰 작센 공작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헉! 어떻게 저런 일이?”
30만 대군과 150기에 이르는 최신형 기간테스를 보내겠다는 동부 왕국의 약속과 달리, 도착한 병력은 얼핏 보아도 15만이 채 안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병사들은 사기가 바닥난 패잔병 같은 게, 다들 하나같이 눈 밑이 시체처럼 퀭해 있었다.
‘다크 엘프의 공격을 받았다는 전문을 받긴 했는데, 설마 이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줄이야…… 다크 엘프들의 능력이 이 정도란 말인가?’
작센 공작은 그들이 이곳으로 오는 도중 지속적으로 적의 습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설마 30만에 달하는 대군이 이 지경이 되서 도착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테르비아의 역전의 노장 다이스트가 자신들을 마중 나온 작센 공작을 영접했다.
그러나 동부 최고의 소드 마스터라는 그의 안색은 병사들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초췌해져 있었다.
“다이스트 경,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령관. 면목 없소이다…….”
“도대체 오시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작센 공작의 물음에 악몽 같은 날들을 떠올린 다이스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서둘러야 하오…….”
“그게 무슨?”
“최대한 서둘러야 한단 말이오.”
“무엇을 말입니까?”
“시간을 끌면 승산이 없소. 반드시 단번에 몰아쳐야 하외다.”
“시간을 끌면 승산이 없다니요?”
침중한 투로 다이스트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곳으로 오면서 단 한 달 만에 다크 엘프들에게 15만의 병력과 80대의 기간테스를 잃었소이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30만 대군이라면 결코 만만한 숫자가 아니었다.
같은 숫자의 병력끼리 붙어도 몇 달 혹은 몇 년을 싸워야 할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거기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150기의 최신형 기간테스는 대륙 최강의 기간테스 보유국인 비스만 제국의 기간테스 보유량과 맞먹었다.
그런 어마어마한 전력을 불과 한 달 만에 절반 이상을 잃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크 엘프가 그토록 강하다는 겁니까?”
다크 엘프란 소리에 다이스트가 치를 떨며 말했다.
“그 빌어먹을 놈들 때문에 우리 병사들은 한 달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소.”
작센 공작은 한 달 동안이나 잠을 못 잤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사람은 하루 이틀만 잠을 자지 못해도 무기력감을 느끼고 기억력과 상황 판단력이 감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군 중인 동부 왕국의 병사들은 멍하니 좀비 같은 상태였다. 졸다가 자빠지거나 걸으면서 자고 있는 병사까지 있었다.
‘도대체 한 달간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자세한 얘기는 안전한 곳으로 가서 듣도록 하지요.”
“그럽시다.”
“이동한다!”
“전군 이동 준비!”
뿌우우우우우~
작센 공작이 손을 들어 이동을 명하자 그의 보좌관이 병사에게 이동을 지시했다.
“전군 이동 준비!”
신호수들이 이동을 의미하는 거대한 녹색 깃발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선두에 선 기간테스 오너가 외쳤다.
『전군 이동한다! 산개 대형으로 이동 준비!』
『산개 대형! 이동준비!』
도열해 있던 기간테스들이 다시금 기동하기 시작하자 대지가 지진이라도 난 듯 뜰썩였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만일을 대비해 대기 중이던 연합군 측 기간테스들도 동부 왕국에서 온 지원군을 호위하면서 연합군 주둔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류미엘 폰 작센 공작과 우르칸타가 회의장 안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쿨…… 쿨…….”
다이스트는 마지막 남은 기력을 쥐어짜 그동안 그들이 당해 온 모진 고초를 전하고 기절하듯 잠들어 있었다.
남겨진 둘은 앞으로 어떻게 작전을 펼쳐야 할지 골머리를 싸맸다.
“어찌 이런 일이…….”
“크르륵…….”
다이스트를 통해 상세한 내용을 알게 된 작센 공작은 녹색 엘프들이 이제부터 숫자를 앞세운 대규모 전면전보다는 다크 엘프들을 통한 야간 게릴라전을 펼칠 것이라 예상했다.
다이스트에게 전해 들은 다크 엘프들의 야간 게릴라전은 그만큼 위력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어둠의 종족인 다크 엘프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에겐 어둠이 내려 준 권능인 블라인드 하이드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이 가해 올 테러는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방어가 되는 부분이 없었다.
땅속을 이동하는 거대한 지네를 이용한 기습적 공격을 예측하여 막아 내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다크 엘프 암살자들이 블라인드 하이드를 이용해 진영에 침투하는 것 역시도 탐지 마법을 통해 전부 막아 내기가 불가능했다.
그들이 만일 진영으로 잠입한다면 병사들을 암살하고, 식수와 식량을 오염시키고, 수많은 함정을 설치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대혼란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듯했다.
“역시 그의 말대로 한번에 몰아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네만, 어떻게 생각하나, 우르칸타여…….”
“크르륵!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우리 오크들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다. 크르르르.”
“드워프 쪽에도 연락을 해 뒀네. 이미 멸망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엘프족이 전쟁에 나설지는 미지수지만, 아마도 드워프 쪽에선 무조건 병력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야.”
“캬륵! 그 겁쟁이 녀석들 따윈 없어도 상관없다.”
“그렇기야 하지만, 지금은 한 손이라도 아쉬울 때지.”
“크르륵…….”
“이젠 대륙의 운명을 건 마지막 전쟁을 치러야 할 때가 왔네, 우르칸타여.”
“크륵, 기대되는군. 큭큭큭.”
다음 날로 전군의 총력전이 확정되었다.
인간군과 오크군의 모든 병력들이 최전선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 * *
“인간들과 오크들이 총력전을 펼칠 모양입니다.”
네미츠가 실시간으로 전달된 첩보문을 들여다보며 그린에게 말했다.
“옮은 선택이군요. 원하던 바입니다.”
그린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럼 저희도 이제부터 총공세로 나가겠습니다.”
“네, 드디어 저희 두 종족의 미래를 결정지을 진정한 대륙 정벌이 시작되는군요.”
“두 종족의 장밋빛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네미츠가 술잔을 내밀자 그린도 잔을 내밀어 살짝 부딪쳤다.
와인을 한번에 마신 네미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제자들을 불렀다.
“메르클스! 케레미온!”
“예, 마스터.”
“지금 당장 모든 아크섀도들을 불러 모아라!”
“예, 마스터!”
“야라!”
“네, 네미츠 님.”
“당장 가문의 주인들을 불러들여라 총공세다!”
“그 말씀만 기다렸습니다.”
“프로메!”
“예, 네미츠 님.”
“사육 중인 블랙 샌티패드 중 출동 가능한 숫자가 얼마나 되나?”
“지금 현재 성체로 변태 중인 것까지 합치면 도합 80마리입니다.”
“모두 출동 준비를 시켜라.”
“예, 네미츠 님.”
네미츠의 명을 받든 이들이 서둘러 회의장을 빠져나가자 그는 나직이 뇌까렸다.
“이미 돌이킬 순 없다. 화살은 시위를 떠났으니.”
네미츠의 명을 받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케레미온. 그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야라를 구출해 함께 다크 엘프의 세계로 발을 들인 그는 야라의 추천으로 네미츠의 제자가 되었고, 지금은 그의 제자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으로 네미츠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 그의 실력은 놀랍게도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이르렀다.
1년 전에 소드 익스퍼트 중급 시험을 통과한 그가 벌써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다크 엘프로 변할 정도로 격한 분노가 지금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었다.
올해로 성년을 맞이한 케레미온은 과거 네미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소원은 강찬을 죽이는 것, 그리고 나아가 모든 인간을 죽이는 것뿐이었다.
‘나에게서 빛을 빼앗은 널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기다려라…….’
분노로 물드는 케레미온의 손을 누군가 붙잡았다.
블랙리온의 가주 야라였다.
“야라.”
“케레미온…….”
그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복도에서 깊은 키스를 나눴다.
“꼭 무사해야 해!”
“너도.”
“사랑해, 케레미온.”
들고양이 같은 야라가 케레미온의 품에 안겼다.
둘은 엘프의 숲에서 만난 이후로 깊은 연인 관계가 되어 있었다.
비록 둘에 나이 차이는 400살이나 났지만, 엘프나 다크 엘프들에게 나이 차이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그들에겐 800년이라는 젊음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