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9
퓨쳐나이트 9화
먼발치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강찬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검술을 참관하려 하자 그의 접근을 느낀 젊은 수련생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순간적으로 모두의 시선을 받게 된 강찬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수십 명의 엘프가 결코 좋지 않은 분위기를 강찬에게 표출했기 때문이다.
“인간이여, 여긴 무슨 일로 오셨는가?”
모여 있는 청년들을 인솔하고 있는 듯한 엘프가 강찬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는 이 마을을 최고의 검술을 지닌 자이며 다섯 명의 대장로 중 하나인, 엘프의 검이라 불리는 엘라디온이었고, 1년 전 강찬을 불시착한 전함에서 구출해 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지나가던 차에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에 이끌려 왔습니다.”
“오호라? 자네도 무술을 익혔는가?”
“네, 조금은.”
그의 말에 모여 있던 엘프 청년들의 눈빛에 호승심이 타올랐다.
원래는 엘프들은 여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종족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메마른, 목석같은 자들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다들 다른 종족의 검술을 견식하고 싶어서 눈이 번들번들했다.
“우리 엘프들의 검술은 인간의 검술과는 달리 현란한 변화와 함께 쾌를 중요시한다네. 음, 자네 혹시 우리 아이들과 검을 한번 나눠 보겠는가?”
“대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어디 해 볼 마음이 있는가?”
대련이라는 말에 그동안 느껴 온 무료함이 녹는 듯 사라짐을 느꼈다.
그동안 어린 제이나와 어울리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지만 어린애랑만 논다는 게 약간은 무료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근 몇 년 동안 몸을 놀려서 좀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가 평생을 몸에 익힌 살인 기술은 잊고 싶다고 해서 잊을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강찬은 선뜻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보자…… 여기 이 인간과 겨뤄 보고 싶은 엘프가 있다면 앞으로 나서거라.”
엘라디온의 말에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그러자 누군가 어두운 나무 그늘에서 서서히 걸어 나왔다.
“엘라디온 님, 제가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천천히 걸어 나온 청년은 건장한 체격에 눈에는 정광이 번뜩였고, 강찬을 향해 엘프답지 않은 강한 적대심을 뿜어내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강한 상대임을 직감한 강찬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강찬의 걱정은 승부와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죽이자고 한다면 못 죽일 것도 없지만 대련은 대련일 뿐이니. 나에게는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게 더 힘든데.’
그가 여태껏 배워 온 전투 기술 중 상대를 적당히 제압하는 기술은 단 한 개도 없었다. 그에게는 오로지 일격 필살뿐이었다.
“그래, 케레미온. 네가 한번 해 보아라.”
케레미온을 바라보는 엘라디온의 표정에 근심이 서려 있었다.
케레미온의 실력은 엘라디온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라디온은 실피르를 이용해 케레미온에게 귓속말을 날렸다.
-넌 우리 마을에서 성년식을 치르지 않은 엘프 중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엘프이니 부디 적당히 힘 조절을 해 가며 상대하도록 해라.
마치 바람이 불듯 실피르를 통해 전해지는 엘라디온의 당부에 케레미온은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엘프들은 대대로 얇은 샤벨을 주로 사용한다네. 자네는 어떠한 무기를 사용하는가?”
“전 주로 단검을 사용합니다.”
그의 말에 모여 있던 엘프들이 실소를 터트렸다.
그들이 아는 단검은 주로 사냥감의 가죽을 벗긴다든지 채소를 다듬는 생활의 도구이거나 아니면 어쌔신 같은 비열한 암살자들이나 도둑들이 위협용으로 주로 사용하는, 아주 수준 낮은 무기에 불과했다.
그것은 비단 엘프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인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인간 중에 기사라고 불리는 자들은 사슬 갑옷 위에 두터운 중갑주를 한 번 더 걸치기 때문에 단검 따위는 애초에 암습이라면 모를까, 정면 대결에선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그저 보조용 병기였고, 전쟁에선 더욱 쓸모없는 무기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 눈앞에 있는 인간이 그런 단검을 주 무기로 쓴다고 하니 그들은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명백히 강찬을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엘라디온만은 달랐다.
엘라디온은 다른 엘프와는 대조적인 눈빛으로 강찬을 바라봤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대한 향수였다.
‘단검이라, 예전 그 친구를 생각나게 하는군.’
잠시 그리움에 찬 눈빛으로 먼 산을 바라보던 엘라디온이 이내 강찬에게로 시선을 돌려 재차 진지하게 물었다.
“자네, 진심인가? 진짜로 단검이 주 무기인가?”
엘라디온이 재차 묻자 엘프들의 비웃음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강찬이 퉁명스런 말투로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전 단검밖에 쓸 줄 모릅니다.”
“흐음, 좋네. 어디 붙어 보면 알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할 걸세. 케레미온의 샤벨은 생각보다 길 것이니 말일세.”
무기의 리치를 감안하라는 엘라디온의 조언이었지만 엘프들의 비웃음에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강찬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가 배운 검술은 오로지 단격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휴대가 불편한 장검보단 휴대가 간편한 단검이 전 우주 보병의 표준 장비였고, 고주파 블레이드를 장착한 단검은 그만큼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대련에서 사용할 단검은 고주파 블레이드가 아닌 그저 나무로 만든 목검이라는 게 문제였다.
“목검의 길이는 얼마면 되겠나?”
“이 정도면 될듯합니다. 그리고 두 자루여야 합니다.”
“두 자루라고? 알았네. 잠시만 기다리게.”
‘단검을 두 자루 사용하는 것까지 똑같군.’
강찬이 두 자루의 단검을 요구하자 엘라디온은 또다시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나무로 다가가 양손을 나무에 대고 고대 엘프의 언어로 나무에 속삭이자 나무에서 그의 양손으로 단검 모양의 가지가 자라 나왔다.
숲 일부로써 살아가는 엘프들에게만 허락된 권능이었다.
그렇게 나무에서 자라난 단검 두 자루를 받아 든 엘라디온이 나무 단검 두 자루를 강찬에게로 건네줬다.
“이 정도면 되겠나?”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는 듯 단검을 만드는 광경을 지켜본 강찬이 엘라디온이 건네준 단검을 다잡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길이가 좀 길긴 했지만 별 무리 없을 정도였다.
“예, 만족스럽습니다.”
“그럼 연무장 중심으로 나오게. 어디 한번 모두에게 자네 실력을 보여 주게나.”
“미흡하겠지만 한번 해 보겠습니다.”
나무로 된 샤벨을 든 케레미온이라는 청년이 먼저 연무장 중심에 서서 강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은 울창한 숲속에서도 유일하게 나무가 하나도 자라지 않은 넓은 잔디밭이었기에 그늘 아래 있었던 강찬이 연무장으로 나서자 밝은 햇살의 눈부심 때문에 미간이 지그시 찡그려졌다.
“먼저 들어오시지요.”
우아한 엘프 특유의 예법으로 자신을 도발하는 케레미온에게 강찬은 알았다는 듯 고개만 까딱이고는 곧장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정말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가 배운 것이라곤 오로지 일격 필살뿐이었다.
때문에 우아한 케레미온의 도발조차 그에게는 허점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상대의 실력을 알아볼 겸 일단 가볍게 2단계로 가 볼까?’
-전투 모드 2단계 적용.
육체 개조를 통한 그의 운동 신경은 범인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었기에 그의 머릿속 바이오칩이 그의 신경계에 전투 신호를 날리자 그의 몸은 평소보다 몇 배나 강하고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
거의 순식간에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인간을 향해 눈을 부릅뜬 케레미온은 아직 인간을 도발하기 위해 올린 예법 자세를 채 추스르기도 전에 급히 검을 들어 올려야만 했다.
그 정도로 강찬의 돌격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니! 마나를 운용하지 않고도 저 정도의 가속도를 낼 수 있다니!”
엘라디온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단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로다. 타고난 무골이야!’
그가 봤을 때 강찬은 보통 인간보다 두 배 이상은 빨랐다.
그런 그의 재능을 알아본 엘라디온은 마른침을 삼켰다.
“비열한 인간 놈! 정정당당한 대련인데도 기습을 가하려 하다니, 역시 네놈들 인간들은 뼛속까지 더러운 종족들이야!”
케레미온은 그의 공격에 대비해 급히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이미 인간은 그의 바로 지척까지 달려와 자신에게 날카로운 일검을 날리고 있었다.
“크윽!”
단검이니만큼 짧지만 그 속도는 순간일 정도로 빨랐다.
그런 단검이 꼬리의 꼬리를 물며 연속적으로 날아들자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에 바쁜 케레미온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인간이 자신에게 휘두르는 단검에는 손속에 정이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모두가 치명적인 급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집요할 정도로 말이다.
‘뭐지, 이 녀석은? 저 전투에 익숙한 몸놀림뿐만 아니라 상대의 치명적인 급소를 공격하는데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니, 예사로운 놈이 아니다!’
강찬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케레미온은 분노를 뒤로하고 상대의 움직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신 앞에 선 인간의 실력이 생각 이상으로 놀라웠기 때문이다.
‘나를 당황하게 하다니, 네놈 실력은 인정하마. 하지만! 이제부턴 네 녀석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케레미온의 거센 반격이 시작되었다.
거리에 안배를 두면서 인간이 파고들 여지를 남기지 않는 날카로운 찌르기를 연속적으로 퍼부었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그 날카로운 찌르기를 두 개의 단검을 교묘히도 교차시키면서 어렵지 않게 막아 내었기에 공세를 몰아가는 케레미온은 점점 초조해졌다.
‘어떻게 이렇게 간단히 나의 찌르기를!’
점차 뒤로 밀리는 강찬 또한 속으로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대단한걸? 빈틈을 읽을 수가 없어. 이거, 전혀 파고들 수가 없잖아. 하지만 뭐, 파고들지 못한다면 부숴 버리면 되지!’
-전투 모드 3단계 적용.
순간적으로 또다시 배가된 힘과 민첩성으로 케레미온의 찌르기 속도를 따라잡자 주위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강찬의 움직임이 소드 익스퍼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빨랐기 때문이다.
강찬이 찌르기가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단검을 내지른 후, 샤벨에 바짝 붙인 상태로 단검을 꺾어 케레미온의 샤벨을 뒤로 젖혀 버리고는 앞으로 몸을 날려 완전 비어 버린 그의 가슴팍을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헉! 말도 안 돼!”
“단검을 저런 식으로 활용하다니!”
그의 인간 같지 않은 민첩함에 관전하던 엘프들은 경악성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내질러진 케레미온의 샤벨을 단검으로 젖혀서 허점을 만들어 내다니, 보통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반사 신경이었다.
그것도 대륙에서 제일 민첩하단 소리를 듣는 엘프에게서 말이다.
“크압!”
자신의 가슴팍으로 쇄도하는 강찬의 단검을 막아 내기 위해 무리하게 마나를 끓어 올린 케레미온이 자신의 젖혀진 샤벨을 끌어당겨 강찬의 단검을 쳐 버리고는 그 반동을 이용하여 팔꿈치로 강찬의 면상을 가격했다.
퍼억!
“푸읍!”
볼썽사납게 뒹굴어진 강찬을 뒤로한 케레미온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헉! 헉! 헉!”
무리하게 마나를 끓어 올려 내상을 입은 듯했다.
“저기 마스터, 이 정도 했으면 인제 그만 대련을 말리시는 게…….”
점점 살기등등해지는 대련을 바라보는 엘프 수련생들은 걱정 어린 말투로 대련을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스승에게 건의했지만, 그런 제자들의 말을 뒤로한 채 엘라디온은 굉장히 갈등하고 있었다.
“마스터?”
“…….”
자고로 검사란 생사가 오가는 대결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 법.
이윽고 엘라디온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애제자인 케레미온이 이 대결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해 줄 거라 믿어 보기로 했다.
“아니, 좀 더 지켜보도록 하겠다.”
“예? 아, 알겠습니다.”
걱정 어린 엘프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땅에 엎어져 있던 강찬이 서서히 몸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퉤!”
입안에 고인 핏덩이를 뱉고는 다시금 단검을 다잡았다.
그 모습에 입가에 선혈이 흐르는 케레미온도 소매로 흐른 피를 훔치고는 다시금 서서히 샤벨을 치켜세웠다.
그렇게 공격 자세를 취한 둘은 한참을 말없이 노려보며 대치했다.
연무장에 길고 긴 정적이 흘렀으며 그들을 바라보는 엘프들의 손에선 땀이 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