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Knight RAW novel - Chapter 94
퓨쳐나이트 94화
『그렇다. 과거 전장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지.』
“강한가?”
『그거야 탑승자 나름이겠지만, 기본적인 성능은 나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래? 오랜만의 호적수를 만났군. 기대되는 걸?”
네미츠와 마찬가지로 작센 공작도 호승심으로 불타올랐다.
간만에 상대다운 상대를 만났으니, 그들의 몸에 흐르는 무인의 피가 들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반대로 강찬의 피는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놈…….”
네미츠의 헬레닉을 보는 순간, 그가 예전 엘라디온을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몰고 갔던 게 떠올랐다.
강찬에게 있어 가족과도 같은 소중한 엘라디온을 말이다.
‘네놈이 누구의 자식이건 상관없다. 넌 내 소중한 사람을 죽이려 했다.’
강찬이 짖은 살기를 내뿜으며, 겁도 없이 31기의 검은 기간테스들을 향해 다가서려 하자 같은 엘븐 나이트에 탄 엘라디온이 어깨를 잡았다.
『찬아! 그만 둬라. 무모한 짓이다.』
엘라디온이 곁에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적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강찬은 그제야 엘라디온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마, 마스터?』
얼떨결에 강찬의 입에서 튀어나온 마스터란 말에 엘라디온의 옆을 지키고 있던 작센 공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스터? 아니! 엘프의 검 엘라디온이 강찬의 마스터란 말인가? 어떻게 인간인 그가 엘프의 제자가 된 거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자세히 보니 강찬이 비밀이라 감추던 기간테스가 엘라디온의 기간테스와 같은 기종이었다.
‘저 기간테스가 엘프와 드워프가 합작해서 만들었다던 엘븐 나이트인가? 그렇다면 그는 엘프들에게 기간테스까지 얻었단 말인가?’
한두 푼도 아니고, 성 한 채 가격과 맞먹는 물건을 받았다니, 그것은 보통 신뢰만으로는 어려운 것이었다.
뭐, 엄밀히 따지면 잠깐 빌려 준 것이었지만, 그래도 강찬이 엘라디온의 제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는데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다른 종족과의 교류를…… 특히 우리 인간과의 교류를 극히 꺼리는 엘프들이 뭐가 아쉽다고 인간인 그에게 검술을 가르쳐 준 것이지? 그것도 무려 소드 마스터가 될 때까지…….’
소드 마스터란 존재는 제아무리 억만금을 들인다고 해도 인위적으로 키워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같은 종족도 아닌 다른 종족의 사내를 소드 마스터로 키워 내다니, 정말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들에게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의문의 소드 마스터 강찬.
그런 그의 출신이 드디어 밝혀지는 순간이었지만 드러난 진실은 더욱 큰 의문을 남길 뿐이었다.
『한 달 만이구나? 잘 지냈느냐?』
『예, 마스터.』
『너와 나누고 싶은 얘기가 산더미 같지만 일단 눈앞의 불부터 꺼야 할 것 같구나.』
『저도 동감입니다, 마스터.』
그들은 잠시 만남의 기쁨을 뒤로하고 눈앞의 적들에게 집중했다.
그때 작센 공작이 선두에 나서서 말했다.
『다이스트 경이 말한 대로라면 적의 소드 마스터는 2명, 그에 근접하는 소드 익스퍼트가 무려 30명입니다. 그러나 지금 아군의 다른 기간테스들은 10만에 이르는 트롤 엘프들에게서 아군 병사를 보호해야 하고 있어, 저들은 저희만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그러니 각자 역할을 정합시다. 저 고대의 거인은 제가 맡겠습니다. 다른 소드 마스터를 상대해 주실 분이 계십니까?』
아그니를 지닌 작센 공작이 고대의 거인을 지닌 적 소드 마스터를 상대한다고 하자 다들 당연하다는 듯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엘라디온만은 그럴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그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엘라디온 님, 저자는 고대의 거인을 지닌 자입니다. 그냥 일반 기간테스로 상대하기엔 벅차실 겁니다.』
고대의 거인과 일반 기간테스의 차이는 공장 규격의 일반 승용차와 서킷을 달리는 경주용 차와 같았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저자와는 끝을 맺어야 할 악연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도저히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엘라디온의 말에 작센은 걱정되긴 했지만, 자청해서 나선 만큼 그의 실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다른 소드 마스터를 맡죠. 다른 분들은 남은 29기의 기간테스를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조금 적습니까?』
장난 섞인 작센 공작의 말에 강찬을 비롯해 테르비아의 다이스트와 헬리온 왕국의 베이론, 그리고 마테리아의 이클립스가 여유 있게 웃었다.
그것은 강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미소였다.
아무리 저들이 소드 마스터에 준하는 실력을 지닌 자들이라고 해도 소드 마스터와 소드 익스퍼트급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정작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장 눈앞의 적보다 정령왕과 거대한 지네였다.
둘 다 전투가 벌어진 지 한참이 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두 기간테스 집단 간의 간격은 지척에 다다랐고, 적 무리의 선두에 선 네미츠가 엘라디온을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군, 엘라디온. 나의 오랜 친구여, 그간 잘 지냈나? 』
『덕분에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지…….』
『그런가? 그것참 다행이로군. 그나저나 오늘도 자네가 날 상대할 건가?』
엘라디온은 대답 대신 거대한 샤벨을 가슴에 붙이고는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냈다.
『저번에 붙어 봐서 알겠지만, 자네는 내 상대가 아니란 걸 자네가 더 잘 알 텐데?』
노골적으로 자신을 깔보는 그의 말에 엘라디온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저번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걸세…….』
『기대해 보지.』
네미츠가 말과 함께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아 들고 오러 블레이드를 내뿜자 뒤에 기립하고 있던 30명의 아크섀도들도 일제히 단검을 꺼내 들며 오러 소드를 내뿜었다.
그러나 그중 1기는 다른 아크섀도들과는 달리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냈다.
바로 그가 다크 엘프의 숨겨진 또 다른 소드 마스터였다.
그의 이름은 에듀라.
그는 다크 엘프족의 가장 큰 세 암살 가문 중 다크블레이드 가문의 주인이었고, 네미츠의 제자로서 처음으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였다.
적들이 전투태세에 들어감과 동시에 우르칸타를 제외한 6명의 소드 마스터의 검에서도 엄청난 기세의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천둥이 치는 듯한 격렬한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양쪽 기간테스들이 서로 치고받기 시작한 것이다.
아르칸도르 대륙 역사상 이렇게 많은 소드 마스터들과 기간테스가 한데 모여서 전쟁을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병사들은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이 역사적인 대결을 두 눈에 담기 위해 숨을 죽였다.
연합군 소드 마스터와 다크 엘프 간의 난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 그린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내 차례인가?”
그녀는 네미츠를 돕지 않고, 대지를 가득 메운 적 보병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네미츠가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길 ‘저희들만으로 적 소드 마스터를 해치울 수는 없겠지만, 한동안 발목을 잡아 둘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 그동안 그린 님은 적의 보병에게 피해를 주세요. 되도록 많이요.’
네미츠가 그린에게 그런 부탁을 한 이유는 그녀의 정령왕이 대인 공격에도 강했지만, 범위 공격의 특화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태풍이나 홍수, 지진, 화산 폭발 같은 자연의 대재앙들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네미츠의 부탁대로 적 보병을 최대한 학살하기 위해 바람의 정령왕 에리얼을 선택했다.
“나오라! 바람의 정령왕 에리얼!”
차원의 일그러짐과 동시에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존재가 현세에 강림했다.
두 개의 아름다운 뿔을 지닌 은빛 페가수스. 그의 이름은 에리얼, 바람의 주인이었다.
“오랜만이군, 그린. 그래, 날 부른 이유는?”
“보시는 봐와 같이…….”
그린이 대지를 가득 메운 적들을 가리키자 에리얼은 더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기성을 내지르며, 그들에게 가공할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합군 병사들의 머리 위로 칼날 같은 폭풍이 불어닥쳤다.
전장은 곧 아비규환이 되어 버렸다.
그린의 등장에 강찬은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그녀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그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길이 없어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다행히도 그녀는 저토록 당당히 살아 있었다.
뻔뻔한 낯짝으로 말이다.
당장에라도 한걸음에 달려가서 그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강찬이었지만, 당장 그의 앞을 7대나 되는 적 기간테스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노려본 강찬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앞의 적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초조해할 필요는 없었다.
소원대로 그녀는 살아 있었고, 어차피 자신에 손에 죽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연합군 소드 마스터들과 아크섀도들 간의 대결은 극도로 치열했다.
그들이 싸우는 곳이라면 반경 50미터 안으로는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검에서 뿜어진 극강한 기운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소드 마스터들에게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검은 기간테스의 실력이 상상했던 것보다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개개인의 실력도 뛰어났지만 수적인 우위를 잘 활용해, 3기씩 조를 갖춰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며 공격을 감행했기에 더욱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이렇게 평수를 유지하는 것도 그들이 전부 소드 마스터여서 그렇지, 같은 수준의 기사였다면 골백번도 더 죽었을 것이다.
쿵! 쿵! 치이이잉!
『대체 이런 놈들이 왜 여태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거야!』
다이스트가 울분에 한마디 내뱉자 옆에서도 힘겹게 6기의 적 기간테스를 상대 중이던 이클립스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크윽! 이런 놈들을 지금까지 비밀리에 키워 오다니, 전신에 소름이 돋는군…….』
네미츠를 상대하는 엘라디온은 눈앞이 더욱 캄캄했다.
타고 있는 기간테스조차 고대의 거인에게 상대가 안 되는데 실력까지 네미츠에게 밀리는 형편이니 말이다.
그의 엘븐 나이트는 전투를 벌인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전신의 장갑이 걸레처럼 너덜거렸다. 만일 기간테스에 타지 않고 벌인 대결이었다면 그는 지금 피투성이의 몰골이 되어 있을 터였다.
반면 에듀라를 상대하는 작센 공작은 엘라디온과 달리 즐거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엘라디온과는 반대로 실력도 자신이 앞섰고, 고대의 거인도 자신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대방도 엄연히 소드 마스터였기에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고, 반응도 괜찮았기에 작센 공작은 더욱 즐거웠다.
그렇게 엘라디온이 네미츠를 상대로 힘겨운 일전을 벌이고 있을 때, 제자인 강찬 또한 여유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무려 7기나 되는 적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강찬은 오러 블레이드를 앞세워 그럭저럭 평수를 이루고 있었지만, 오우거 로키는 많이 힘겨워 보였다.
로키는 3기의 기간테스를 상대하면서 온몸을 피로 칠갑을 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크르륵! 헉! 헉! 헉!”
그런 로키를 보며 강찬이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