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100
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1화
1. 만약 너라면
카피 콘서트는 엄청난 열풍을 몰고 왔다.
명절날 오후 예능의 시청률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것이다. 노트북을 TV와 연결시키는 법을 배운 팬들의 도움이 컸다.
분명 설날 모창 대회는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 예능이다.
하지만, 노래에 몰입할까 싶으면 MC들이 떠들고, 화면이 자주 바뀌어서 좋은 평가는 듣지 못한다. 그래도 어른들은 좋아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하지만 진호의 콘서트는 달랐다. 방송국에서는 내보낼 수 없는 부적절한 단어들이 들어가지만, 사람들이 진짜 좋아하는 팝송도 서슴 없이 했고, 을드 팝송부터 컨츄리 송, 대증가요, 트로트, 브릿팝 등 무려 3시간 동안 오디오가 비는 시간이 없었다.
그 시절 그들이 정말 좋아했던 노래들로만 채워졌다.
모든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와 연예 뉴스가 카피 콘서트로 도배되었고, 대한민국에 있는 수많은 기획사들은 뒤집어졌다.
“……우린 저런 기획 못 해요?”
레오가 빔 프로젝터로 재생되는 카피 콘서트 다시보기 영상을 보며 말했다.
“말하지 마. 속 쓰리니까.”
양진혁은 자신의 회사에서 나간 직원이 저기획에 한 발 담갔다고 생각하니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진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순간 팀 이진호의 모든 직원들이 날개를 편 것이다. 이 바닥에서 구르고 구른 그 베테랑 직원들이 말이다.
“그래도 우린 다른 기획사들보다 백배 천배 낫죠.”
“……그렇지.”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게 거의 신의 한 수가 됐다.
지금 당장은 모델 파트와 곡 공급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회사의 모든 노하우를 교류하는 날이 올 것이다.
아니, 어떻게든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했다.
“따라 할 거예요?”
“이류 소리 들으라고?”
양진혁은 코웃음을 쳤다.
앞으로 라이브 엡에서 콘서트를 하려는 인간들은 다 이류 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기획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우리 애들도 저렇게 콘서트로 얼굴을 알리면…….’
양진혁은 턱을 쓰다듬었다.
“저걸로 얼마나 벌었을까?”
“얼마 못 벌었다고 하던데요?”
“왜?”
“후원을 안 받겠다 공지를 한 것도 있지만, 후원한 사람들 모두에게 굿즈 세트를 보냈대요. 진호 굿즈 알죠? 디올, 지방시, 태그호이어.”
……오싹!
“바, 받은 애들 반응은?”
“뭘 물어봐요. 당연히 미쳐 버렸죠. 지금 팬클럽 회원 수가 삼십만을 돌파했대요.”
마른침을 삼킨 양진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엄청난 숫자의 코어 팬이 형성되었다. 아이돌에겐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지지층인 코어 팬이 말이다.
거기다 30만 명이면 웬만한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회원 숫자다.
“만약 진호가 경기장 빌려서 저 카피 콘서트를 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냐?”
레오는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듯 쳐다봤다.
하지만 양진혁은 심각했다.
‘작은 걸 버려서 큰 걸 얻었어.’
현재 유료 다시보기 횟수만 2백 만을 넘겼다.
후원을 못해 안타까워한 진호의 팬들이 마치 다른 아이돌 팬들처럼 음원 사이트에서 스트리밍하듯 다시보기를 결제하는 거다.
설 당일부터 대체 공휴일인 지금 까지 2백만. 일본과 중국, 프랑스에 있는 진호의 팬들도 접속해 다운로드했다.
“가사 다 썼어?”
“네. 다 썼습니다. 가이드도 끝냈어요.”
“그럼 뭐 해? 진호 부르지 않고. 이 기세를 이어 가야지!”
“미팅 갔어요.”
“응?”
“영화 미팅이요.”
“뭐? 진호 영화 찍어?”
“거의 해외 올 로케라던대요?”
양진혁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 * *
모든 배우들이 모이는 미팅 장소인 중식당에 온 진호는 바짝 얼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배우들의 향연이다.
자신이 왜 여기에 끼어 있는지 의문일 정도였다.
“안녕하십니까, 이진호입니다!”
“오! 그래. 무휼 잘 봤어. 연기 잘하던데?”
“캬, 노래가 아주! 덕분에 설날에 재밌었어.”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진호입니다!”
“어머머! 이게 누구야. 퀸 아니니? 어찜 그렇게 노래를 잘 불러? 이 이모가 반했잖니, 얘.”
“감사합니다! 早上好(안녕하십니까).”
이번 영화에는 중국의 유명 배우 까지 함께한다.
정확히는 배우들이다.
중국 배우 런다렌은 진호의 유창한 발음에 깜짝 놀랐다.
“젊은 분이 광둥어가 매끄럽군요. 런다렌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유인,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오! 하하하!”
미팅 장소에 모여 있던 배우들은 깜짝 놀랐다.
최동진 감독도 깜짝 놀랐다.
“쟤 중국어 잘한다.”
“한국대 경영학과 출신이에요. 수능은 만점.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아마 중국어, 영어 말고도 다섯 개는 될걸요?”
“정말?”
결혼하고 미혼인 딸을 가지고 있는 배우들이 눈을 빛냈다.
“제가 팬클럽 회원이잖아요. 애가 저렇게 잘생겼는데 어찌나 착하고 성실한지, 어휴. 별명이 천사잖아요, 천사. 자기 줄 돈 있으면, 책 한 권 더 사고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하는 애예요.”
“에이. 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
“이 텀블러 보이시죠?”
“어머, 예쁘다. 지니어스? 이런 브랜드도 있어?”
“재 굿즈예요. 들고 다녀도 쪽팔리지 않아야 한다고 제품 디자이너 섭외해서 검수한 거잖아요. 진호 굿즈는 다 이런 식이에요.”
“……착한 건 모르겠는데, 생각은 박혔네.”
배우들은 대본 리딩도 아닌 미팅 부터 진호에 대해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훈훈해지자 최동진 감독이 옆의 장영진을 툭툭 쳤다.
“연기력은 봐야겠지만, 형이 왜 추천했는지 알겠어. 애가 좋네.”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가 될 소질이 있었다.
“좋기만 해? 연기력 보면 아주 뒤집어질 거다. 크리미널 크라임 찍을 때, 쟤가 작정하고 연기하면 나도 분간을 못했어.”
“그 정도야?”
“천 년의 노래 봤지? 그게 현재 진행형이야.”
“잠깐. 쟤 몇 년 차였지?”
“배우로는 이제 이 년 차지. 작품은 드라마 두 개뿐.”
“……괴물이야?”
“내 말이.”
두 감독 가까이 있던 배우들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진호를 봤다.
‘응?’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린 진호가 본 건 감독들과 대화를 나누는 대배우들의 모습뿐이었다.
‘……착각인가?’
“자! 모두 앉아주세요!”
찍찍짝-.
진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공교롭게도 두 여배우의 사이였다.
그녀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아우라가 몸을 절로 움츠리게 했다. 스태프들이 그들의 앞에 촬영 스케줄이 적힌 종이 뭉치를 놓았다. 최동진 감독이 입을 열었다.
“일단 읽어 보시기 전에 재정 씨, 진호 씨.”
“예!”
“예, 편히 말씀하십시오.”
“그건 차차 그럴게요. 두 분 다 두 달 안에 몸을 만들어 주셔야 하는데. 최소한 식스팩은 나와 줘야 해요. 가능하겠어요? 특히 진호 씨는 몸 쓰는 역할이라서 많이 선명해야 해요.”
식스팩이 아니라 에잇팩이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말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
“아, 감독님. 진호는 걱정 안 해도 될걸요? 잠시만요.”
80년대에 태어난 남자에겐 국민 첫사랑이나 다름없던 김주아가 동영상이 재생되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최동진과 장영진, 동영상을 본 모든 사람들이 감탄했다.
마치 조각을 해 놓은 것 같은 몸이 그곳에 있었다.
“그게 이번 달에 찍힌 영상이에요. 그치?”
“하하. 예.”
그 김주아가 자신을 모니터링했다. 엄청난 감격이었다.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드려야겠다.’
“오, 그럼 진호 씨는 이 몸만 유지하면 되겠네. 재정 씨?”
“……입금도 됐는데 빡세게 해야죠, 뭐. 아, 혼자 운동하겠네.”
“재정아, 저렇게 예쁜 애한테 꼰대 짓 하면 아주 혼날 거야.”
“아, 선생님. 옛날엔 저를 예뻐해주셔 놓고!”
“그때 그 잘생기고 귀여운 아이는 이제 아저씨가 됐지요.”
“에이.”
미팅 분위기가 무척이나 좋았다.
진호는 촬영 스케줄 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는 엄청 여유롭구나.’
하루 촬영하면 하루 쉬는 정도다. 쪽 대본이 남발되어 언제나 스탠바이 해야 하는 드라마와 비교하면 천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윽고 음식이 나왔다.
중식인데도 굉장히 담백한 맛이었다.
앞 접시 위로 생선 살이 얹어졌다.
옆에 앉은 김주아가 준 것이다. 그녀의 눈은 애정이 가득했다.
“우리 진호, 많이 먹어!”
“가, 감사합니다.”
“그래. 젊은 사람이 많이 먹어야지.”
대배우들도 마치 자식을 식사하는 걸 바라보는 듯 기꺼운 표정을 짓고 있다.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연기 실수라도 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모른 척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식사가 마무리되고 자리를 옮겨 술을 한 잔 마시며 파이팅을 한 사람들은 2달 후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모두 해산했다.
런다렌도 바로 홍콩으로 돌아갔다.
김주아는 팬이라며 같이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아 갔다.
“후아! 죽는 줄 알았네.”
밥과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시간이었다. 진호 자신을 제외하면 가장 어린 김주아만 해도 18살 연상이다.
“큭큭. 그랬어?”
“아, 먼저 들어가시라니까요.”
저녁 9시다.
“들어가 봐야 할 일도 없다.”
“에휴, 그러게 연애 좀 하시라니까.”
“네가 할 말이냐?”
진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크크큭!”
“정말 그러시면 저 확 연애 해 버립니다.”
“어이구, 그러세요?”
진호는 입술을 이죽거렸다.
“그런데 정말 사귄 적 없어?”
“왜요? 홍보 실장님이 물어보래요?”
“아, 아니?”
“사귄 적은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고백 한 번 못해 보고 짝사랑으로 끝난 적은 많아도.’
입맛이 썼다.
“아니 너 이설아랑 잘되는 거 아니었어?”
“연락 안돼요.”
정확히는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그런데 연락이 안 왔다.
“바쁜가 봐요.”
“……한 잔 더 할래?”
“……그럴까요?”
진호는 방금 나온 술집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1월의 마지막 날은 유난히 추웠다.
* * *
다음 날, 약간은 부스스한 얼굴로 JH를 찾은 진호는 완성된 가사를 넘겨받고는 혀를 내둘렀다.
“요새 시집 읽어요?”
가사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그러나 가슴에 툭툭 박혔다.
“오버하지 마.”
“으흐흐.”
“가이드 들어 볼래?”
“네.”
진호는 레오가 주는 헤드셋을 썼다.
곧 레오의 목소리가 울렸다.
‘……미친 것 맞네.’
3분여의 시간이 흐르자 진호는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어떻게 차인 거예요?”
“무슨 소리야? 차도 내가 찼어.”
“아닌데?”
가사는 솔직하지 못했던 사랑의 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끄러워. 더 들어 볼래?”
“아뇨. 바로 녹음 들어가죠.”
“벌써?”
“가이드가 너무 좋아서.”
머릿속에서 수많은 이별들이 스쳐 지나고 있다.
지독히도 아픈 기억이었던 첫 짝 사랑 보라부터 2번째 짝사랑 상대였던 김이나 같은 실제 경험과 누군가 다시 오길 기다렸던 춘자 할머니들이나 엄마를 떠나보내며 울던 하양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속 이별까지.
많은 게 머릿속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번엔 나 따라 하면 안 된다. 진짜 안봐 줄 거야.”
“그건 좀 무섭네요.”
다른 가수의 호흡이나 발성을 따라 하는 건 카피 콘서트를 하면서 다 털어 냈다.
이젠 진호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간 진호는 헤드셋을 썼고, 곧 음악이 흘러나왔다.
시작이 가까워지자 레오가 손가락을 접으며 타이밍을 세 줬다.
‘춘자 할머니가 떠나는 우리들을 보며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절로 몰입이 되었다.
레오의 주먹이 쥐어졌고, 진호는 입을 열었다.
“그대가 떠나가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 * *
“하하. 역시 세계적인 캐스팅 디렉터는 다르시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담담히 대답하는 다미앙을 보며 양진혁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다미앙은 소속 모델들을 보자마자 문제점을 바로 지적했다.
서 있는 자세부터 시작해 어긋난 근골격, 포즈를 취할 때 0.5센티미터 손끝을 더 올리라는 것까지.
그 지적에 의해 변해 버린 사진의 퀄리티를 보니 확실히 세계의 레벨은 다르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흠. 지금쯤 녹음을 하고 있겠군요.”
“아, 식사 전에 들렀다 갈까요?”
양진혁의 말에 다미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제1녹음실로 온 둘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굳어 버렸다.
si tu
si tu-
아직 너무 늦지 않았다면,
우리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진호가.”
잠시 말을 멈춘 양진혁은 의아한 눈으로 다미앙을 봤다.
“진호가 연애를 했던가요?”
“그런 사실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확실합니까?”
“…….”
다미앙은 단언하지 못했다.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 스캔들 터지면 덮기 힘듭니다.”
다미앙은 흔들리는 눈으로 녹음 부스 속 진호를 보았다.
‘대체 언제 연애를 한 겁니까. 그것도 이토록 아픈 연애를 말입니다, 진호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