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107
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8화
3.마카오에서(2)
해프닝은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다.
이해한 사람들은 아쉬워하면서도 돌아갔고, 스태프는 얼른 문을 잠그고, 문에다가 영업 안 한다고 적은 종이를 붙였다.
그제야 요리를 제대로 즐기게 된 사람들은 진호와 진호를 보조한 스태프들을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에 힘입어 오후 촬영까지 무사히 마쳤다.
모든 정리를 마친 제작진과 배우들은 첫 촬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걸 자축하기 위해 회식을 하였다.
장소는 이재정이 아는 맛집이었다.
맛집은 숙소인 호텔 근처에 있었는데, 만날 스테이크를 썰고 파스타를 먹을 법한 이재정이 아는 곳 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허름하고 작은 식당이었다.
스태프들까지 모두들어가니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꽉 차 버린 식당.
그런데 맛이 정말 대단했다.
‘최소 열 시간 이상은 끓인 육수다.’
재료 하나, 맛 하나에서 주인의 정성이 느껴졌다.
“연기. 영진이 형이 칭찬할 만하더라.”
맞은편에 앉은 김윤식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가, 감사합니다.”
진호는 장영진을 찾아 눈을 돌렸다.
“누구한테 따로 배웠어?”
주변에 앉은 배우들도 눈을 빛냈다. 시니컬한 듯하지만, 세상에 대한 경험이 크게 없는 어리고 둔한 성격의 장파오.
진호는 그들의 생각 이상으로 장파오를 표현해 냈다.
진호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오늘 촬영 분을 이틀에 나눠 찍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배우들이다.
“트레이너님께 열심히 배웠습니다. 영화, 드라마 보며 따라 하고.”
“그래?”
김윤식은 수더분한 웃음을 토해 냈다.
배우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아는 거다. 진호의 연기는 누군가 가르쳐 준 게 아니라 그냥 타고났다는 걸 말이다.
누군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세련된 모델이 몇 초 만에 시골 청년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거기다 타고난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쉬지 않고 노력해 온 게 보였다.
“아, 근데 진호 너 정말 잘 집어 내더라. 나 아까 소름 돋았잖아. 형님은 안 그랬어요?”
이재정의 너스레에 김윤식이 피식 웃었다.
“말해 뭐 해. 정말 못된 맘먹으면 이 아저씨가 이놈 한다.”
“……모레 드시고 싶은 요리 있으세요?”
내일은 휴식이다. 숙소가 호텔이라서 호텔 주방에 쳐들어가지 않는 이상 요리를 만들 수 없다.
“푸하하하하!”
“크크크크크.”
진호도 웃음을 터트렸다.
“자, 그럼, 专家(전문가)들끼리 한 잔씩 할까?”
김윤식이 맥주병을 들었다.
“큼.”
“크흠흠.”
홍콩 배우들이 고개를 돌렸다. 눈썹을 좁힌 김윤식이 진호를 보았다.
“내 발음 이상해?”
“솔직히요?”
“……솔직히.”
진호는 볼을 긁었다.
“억지로 사투리를 쓰려고 하는 서울 사람 같아요.”
김윤식의 낯빛이 어두워지자 진호는 빨리 입을 열었다.
“대신 북경어는 수준급이세요. 발음과 성조 둘 다 엄청 좋아요.”
‘가끔 튀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
다시 밝아졌던 김윤식은 미간을 좁혔다.
“흠. 그래서 아까 런다렌 씨가 발음을 달리한 건가? 그랬지?”
“네. 윤석 아저씨도 잘 받아 치셨죠.”
그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치 연기가 본능 레벨로 각인된 것 같은 느낌. 이래서 믿고 보는 김윤식이라는 말이 생긴 것 같았다.
“아차차.”
김윤식은 런다렌에게 감사를 표 했다.
진호가 설명해 주자 런다렌이 그 특유의 선한 미소를 지으며 김윤식의 술을 받았다.
분위기가 더 훈훈해졌다.
다시 자리에 앉은 김윤식이 진호를 보았다.
“그래서 그런데 진호야.”
“그럼요. 알려 드릴게요. 작품을 위해서잖아요.”
선뜻 대답할 줄 몰랐던 김윤식은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배우들도 옅게 웃었다.
‘얘가 정말 진국이네. 참 배울 점이 많아.’
“얘, 진호야.”
“네, 선생님.”
김애숙.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런다렌과 함께 가장 연장자며 수많은 작품을 찍은 대여배우다.
절로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Where did you learn to cook?(요리는 어디서 배운 거야?)”
그녀는 영어로 물었고, 한국 배우들은 아차 싶었다.
홍콩 배우들은 김애숙에게 호의 어린 눈빛을 지었다.
진호는 홍콩 배우들을 위한 그녀의 배려에 약간 반성하며 영어로 말했다.
배우들 중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없기에 안심하고 말했다.
“박 코흐트 교수님과 황재상 쉐프님께 열심히 배웠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이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했고, 만족시켰다.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치켜세우던 엄지.
‘달려라, 박과장’이나’천 년의 노래’를 찍을 때 촬영장에 가져다 놓았던 과자, 샌드위치를 만들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취감이 있었다.
‘이 맛에 요리하는 거지! 으흐흐.’
“그 두 쉐프가 자기들 주방에 데려가려고 아주 난리잖아요.”
“그랬어?”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얼굴이 발간 김주아의 영어에 사람들이 눈을 빛냈다.
“박 코흐트 쉐프라면 미술랭을 거절한 그 호주의?”
런다렌이 놀라 영어로 묻자 진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네. 제가 대학에 다닐 시절 우연치 않게 인연이 닿아 요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황재상 쉐프님은 한국에서 중화요리의 대가로 불리는데, 같이 방송 프로그램을 찍으며 배우게 됐습니다.”
“오. 진호 씨는 요리에서도 천재였군요. 물론 낮에 한 점 먹었을 때부터 깨달았지만 말입니다.”
그건 분명 어설픈 20대가 낼 수 없는 맛이었다. 200편이 넘는 영화를 찍으며, 수없이 해외를 다녀 본 그였기에 장담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이는 진심이었다. 미슐랭에게 스타를 받은 요리들과 비교하면 아직 한참 모자라다.
런다렌은 이런 진호의 겸손에 놀라면서도 흡족해했다.
‘한국 사람들은 역시 겸손해.’
재능이 이리도 많은데, 자만하지 않는다.
21살, 아니 22살의 청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속이 깊다. 개인적으로 알아 가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천천히.’
사람의 관계는 급해선 탈이 나는 법이다.
의뭉스럽게 웃은 런다렌은 진호에게 술을 건넸고, 그도 냉큼 받았다. 사람들은 그런 둘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봤다.
진호는 그 시선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너무 예뻐해 주시는데…..’
이럴수록 경각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자, 다들 잔들 채우시죠.”
이재정이 일어나 외치자 모든 사람들이 잔을 채웠다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더 씨프를!”
“위하여!”
“건배!”
“干杯(건배!).”
그렇게 본격적인 회식이 시작되었다.
* * *
회식은 새벽 3시가 되어 끝났다.
다음 날, 점심쯤 일어난 사람들은 관광이나 쇼핑 등 각자의 볼일을 위해 호텔을 떠났지만, 진호는 김윤식에게 사로잡혀 온종일 과외를 해야 했다.
하지만 마냥 가르치기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김윤식이 과외비라며 자신의 연기 노하우를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대배우의 연기 노하우.
당연히 진호는 더 열심히 가르쳤고, 김윤식도 그에 감화되어 더 많은 노하우를 토해 내야 했다. 그렇게 날이 저물고 다시 해가 떴다.
오늘 촬영장소는 마카오 어느 구 시가지의 낡은 맨션이었다.
정말 어떻게 이런 곳을 구했을지 의문일 만큼 낡고 허름한 맨션, 그리고 거리.
마치 옛 느와르 홍콩 영화에서나 볼 법한 배경이었다.
맨션의 좁은 옥상 겸 테라스에 올라온 진호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아래의 거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런 허름한 동네에도 사람들은 활기차게 살아가는구나.’
테라스에 앉아 부채질을 하는 헐 벗은 옷차림의 중년인.
건물이 만드는 그늘에서 마작을 하는 사람들.
짜릉짜릉 벨을 울리며 지나가는 옛 자전거와 혹시 아는 배우가 있을까 바리케이드 밖에 몰려 목을 주욱 빼는 구경꾼들.
‘여기는 털어 봤자 개털…….’
“쯧.”
이번에도 [스킬 : 괴도 루팡]이 눈에 보이는 모든 건물들의 침투로와 도주로를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입맛을 다신 진호는 맞은편 건물을 보았다.
‘역시 저기일까?’
오늘 모이는 도둑들 가운데엔 쁘락지, 아니 경찰이 숨어 있다.
그 경찰이 돌아가는 척하다가 돌아와 도둑들을 감시하기 위해 잠복하는 건물이 있다.
‘영상까지 생각하면 저기밖에 없지.’
[스킬 : 괴도 루팡]과 [스킬 : 셜록의 후예]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옥상의 난간이 높고, 펜스가 적어서 감시하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었다.“박 부장님이라면 저기를 택했겠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거리를 보려는 찰나에 옥상 안으로 배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호야, 네가 도둑이라면 이곳 어디에서 있겠어?”
이재정이 영어로 말했다.
홍콩 배우들을 본 진호도 영어로 말하며 ㄱ자 난간을 가리켰다.
“당연히 여기 바깥을 볼 수 있는 난간 쪽이죠. 감시하기도 편하고, 여차하면 뛰어내려야 하니까.”
“호오.”
“흠.”
배우들은 눈을 빛내며 사람 10명이 서면 꽉 찰 옥상을 훑어봤다.
“그럼 독고다이인 금고털이 카스는 여기 서야겠네.”
문과 멀리 떨어졌으면서도 바로 문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그 벽을 잡고 몸을 돌리면 사람 2명이 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태생이 얍삽한 예리콜은 여기 카스 옆 코너에 있을 테고.”
배우들이 각자 자기들이 맡은 배역에 몰입해 자리를 잡았다.
“그럼 진호 넌.”
“예리콜을 좋아하는 장파오면, 여차할 때 시간을 벌어야 하니까 입구 바로 옆이죠.”
진호는 입구 문에 등을 기댔다.
“아니, 다 그렇게 알아서 정해 버리면 감독인 나는 뭘 합니까?”
웃음이 터졌다. 최동진과 장영진도 웃었다.
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해 열심히 임하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둘은 이런 분위기를 만든 진호를 기껍다는 듯 보았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진호 씨. 이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박성태가 소품인 담배 케이스를 들고 왔다.
케이스를 여니 그 뚜껑에 초록색 칩이 여러 개 붙어 있었다.
“박 부장님도 아시다시피 너무 튀죠. 케이스를 떨어트리면 바로 보이는데.”
박성태가 장영진과 최동진을 보았다.
“거봐요. 일반 사람도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커흠.”
“어흠.”
홍콩 출신 여배우, 안젤리카가 다가와 영어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녀가 더 씨프에서 이 무리에 잠입한 경찰이다.
이번 신은 이렇게 모인 도둑들이 노리는 목표물을 위치를 알게 되면서도 안젤리카가 미스터 장의 라이터에도청 장치를 숨기는 장면이다. 이에 그녀의 진짜 정체가 관객들에게 드러나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주머니에 숨기는 거지만, 영상을 생각해야 하니까 여기 담배를 꽂는 부분에 붙여 놓고, 담배로 숨겨야겠죠. 아니면 담배 필터에 붙여 놓고 돌려 놓았다가 무는 척 떼어 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흠.”
“확실히…….”
“그러면 여기 문 옆에 각목 몇 개 세워 두는 건 어떨까?”
김윤식이 영어로 말하자 다른 배우들도 하나둘씩 의견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진호도 끼어들었다.
이 대화가 진행될수록 이 공간의 퀄리티가 미치도록 올라가기 시작 했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