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112
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13화
“이, 이게 가능한 스케줄인가요?”
‘아아.’
진호는 옅게 웃었다.
“열 시 이후 밖을 돌아다니기 힘든 뉴욕인데, 이 정도면 여유롭죠. 최소 여섯 시간은 잘 수 있잖아요.”
10명의 남녀 모델들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다.
하나라도 더 많이 얻기 위해선 잠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이건 기본이다.
계획표를 모두 짠 진호는 기지개를 펴며 창가로 다가갔다.
머물고 있는 아파트먼트와 똑같이 생긴 건물들이 뷰의 전부였다.
언제 와도 답답하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흠.”
그나마 다행이라면 근처에 센트럴 파크가 있다는 거다.
그런데도 월세가 천 달러밖에 안 되는 게 신기하다.
‘뉴욕에서 얻을 수 있는 스킬은 두 개.’
뉴욕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직업 두 가지다.
‘하나는 주식, 하나는 뮤지컬.’
주식은 비교적 얻기가 쉬운 대신 많지만 지금 자신의 입장에선 그리 크지 않는 돈을 잃어야 하고, 뮤지컬은 얻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대신 1차 해금 조건만 해제하면 금방 얻는다.
[스킬 : 연신연왕]이 있기 때문에 뮤지컬 관련 스킬은 큰 메리트는 없지만, 앞으로의 배우 인생과 가수 인생에 도움이 될 요소가 꽤 있다.주식 관련 스킬도 관심이 많은 경영이나 기획 분야에 굉장한 도움을 준다.
‘뭘 얻을까.’
진호는 계속 생각에 잠겨 갔고, 카메라맨은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우수에 젖은 눈빛을 짓는 그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려 갔다.
“……진호 씨는 정말 잘생겼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아, 맞아. 그러면 형님이제 담당 VJ세요? 앞으로 못해도 두 달은 같이 있어야 하는데, 말 편히 하세요.”
“그, 그래도 될까?”
“그럼요.”
“고마워. 그리고 응, 맞아. 내가 진호를 전담하게 될 거야.”
“아…….”
진호는 그를 안쓰럽다는 듯 보았다.
“……왜 그렇게 보는지 물어봐도 될까?”
“저 웬만하면 아침 여섯 시 전에 일어나 운동하는데…….”
일단 러닝만 가볍게 10킬로미터 정도 띈다.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하루가 찌뿌둥하다.
근육보다 지방이 더 많아 보이는 VJ가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VJ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그, 그래도 시차 적응을 해야 하니까 내일은 늦게 일어날 거지?”
“……이참에 담배를 끊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 파이팅.”
진호는 이제 낯빛이 검게 죽어가는 기를 외면하며 책상에 앉았다. 생활 계획표는 잤지만,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일단은 식단이었다.
* * *
“히엑! 흐엑!”
새벽녘의 센트럴 파크에 숨넘어가는 소리가 울린다.
카메라를 든 VJ다.
반면 땀을 살짝 흘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숨결조차 흐트러지지 않는 진호는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부지런한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여유롭게 뛸 뿐이다.
호기심과 진호의 외모에 놀란 사람들이 옆으로 달라붙기도 했다.
“영화배우인가 봐요?”
“한국에서요. 북쪽이 아니라 남쪽.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한국! 나 알아요! 더 원!”
진호는 깜짝 놀랐다. 입도 근질거렸다.
“와우! 그래요? 사진 찍을까요?”
“그래요. 내 페이탈 북에 올려도 되죠?”
“그럼요!”
그렇게 사진을 찍은 둘은 깔끔하게 헤어졌고, 이럴 때마다 쉬는 것 같지도 않게 쉰 VJ는 더 죽어 갔다.
결국 진호는 그를 벤치에 앉혀 둘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리기 시작한 진호는 활기찬 아침의 센트럴 파크를 보며 생각을 정할 수 있었다.
“후우우.”
‘그래, 뮤지컬 관련 스킬을 얻자.’
경영도 좋지만, 아직은 배우와 가수에 더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다. 러닝을 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 연예인, 혹은 한국계 연예인을 알고 있다 보니 욕심이 들기도 했고, 스케줄도 그쪽에 맞춰져 있다. 새벽의 차고 맑은 공기가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기를 찾아 숙소로 복귀했다.
씻고 나온 그는 여자 방부터 문을 두드렸다.
남자와 비교했을 때 여자가 더 준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안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니 인기척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계를 확인한 진호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8시 30분.
도착한 다음 날은 시차 때문에 힘들 걸 알고 있지만, 이건 아니었다. 9시부터 스케줄 시작인데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긴장을 놓은 것으로밖에 생각이 안 들었다.
새벽 4시 넘어서 잤다고 해도 일어나야 했다.
남자 방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식들이.”
숨을 길게 내쉰 진호는 남녀 방 사이의 복도에서서 팔짱을 끼었다. 그러자 진호의 몸에서 서늘한 기운이 흘렀고, VJ는 식은 땀을 흘렸다.
그렇게 1시간 반쯤 흘렀을 때, 남자 방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다급해지는 소음이 흘러나왔다.
5분 후, 여자 방에서도 같은 소음이 났다.
쿠당탕 우당탕.
시차 때문에 늦게 깨 황급히 나왔다가 진호를 발견하곤 안절부절 못하던 제작진이 그 소리를 들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30분이 더 흘렀을 때쯤, 남자 방의 문이 슬그머니 열리며 남자 모델 한 명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가 진호와 눈이 마주쳤다.
“허어억!”
진호는 서늘히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와.”
“예!”
남자 5명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미 사태를 파악한 남자들은 복도에 나란히 서 고개를 숙였다. 진호는 그들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그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20분이 더 흐르고 나서야 여자 방의 문이 열리며 고개가 내밀어 졌고,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진호는 줄줄이 선 10명을 보며 피식 웃었다.
지각한 와중에 잔뜩 꾸미고 나왔다.
참 재밌는 놈들이었다.
“일어나서 물을 한 컵 이상 마신 사람?”
“…….”
“대답해야지?”
“어, 없습니다!”
“마시지 않았습니다!”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 당장 들어가서 물부터 마시고 와. 급하게 마신다고 체 하지 말고. 오 분 준다.”
모델들은 다급히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갔고, 1분도 되지 않아 숨을 헐떡이며 나왔다. 방문을 잠그게 한 진호는 시계를 봤다.
“현재 시각 열한 시. 지금부터 스케줄을 시작할 거고, 너무 늦어서 식사할 시간은 없다. 불만 있는 사람 있어?”
있을 리가 없다. 있어서도 안 되었다.
“없으면 가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모델들은 어두운 낯빛으로 진호의 뒤를 따랐다.
* * *
짝. 짝. 짝. 짝.
“원, 투, 쓰리, 포. 뭐 하는 거야! 박자에 맞춰서 걸으란 말이야!”
하이패션 모델은 워킹에서 시작 해 워킹으로 끝난다. 워킹이 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세계가 하이패션 모델이다.
신체, 포즈는 그 이후의 문제다.
‘역시 박자가 미세하게 틀려.’
JH 소속 모델들의 워킹과 론 잭슨의 박수 소리가 어긋나 있다. 일반인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지만, 진호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론 잭슨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춤을 출 거면 제대로 춰! 내 세 살짜리 딸도 너희보다 잘 추겠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등을 일 인치 더 집어넣어!”
‘……에휴.’
JH의 모델들 모두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넋을 놓고 있다.
벌써 50분째 워킹만 하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다.
이 클래스 룸에 있는 모델 지망생들도 혼이 빠지기 일보직전인데 이런 혹독함을 겪어 보지 못한 JH 모델들이라면 당장 쓰러져도 이상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본은 갖췄다는 다미앙의 말에 잔뜩 기대하고 있던 진호로서는 다시 한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짜악!
“이십 분간 휴식!”
철푸덕 주저앉는 사람들은 JH 모델들뿐이었다. 모델 지망생들은 무릎과 골반 등을 꾹꾹 누를 뿐 결코 앉지 않았다.
진호는 JH 모델들에게 다가갔다.
“힘들어?”
“아, 아닙니다!”
“그럼 일어서서 자세 바로잡아.”
남녀 모델들은 힘들게 일어섰다. 진호는 눈빛을 서늘하게 굳혔다.
“정말 하이패션 모델을 꿈꾼다면 쉬어도 자세는 무너트리지 마. 긴장도 놓지 마. 알았어?”
“예!”
대답은 우렁차서 좋았다.
“지금 계속 지적받는 이유를 모르겠지?”
“……예.”
“너희들 지금 다 박자가 어긋나 있어. 다미앙 씨가 손바닥 터져라 가르친 박자를 지금 다 까먹었다고. 겨우 이틀 만에.”
모델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정신 안 차리지? 이대로 한국에 돌아갈까? 여태까지처럼 평범한 모델로 살다가 이십 대중반에 은퇴할래? 그럴래? 그러려고 경쟁을 했어?”
진호는 일부러 강하게 말했다.
이들 전부 런웨이에 설 수 있다면 조금은 유하게 대해도 괜찮지만, 당장 다음 주가 되면 이 중 두 명은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 예능적인 요소가 바로 이거다. 서바이벌.
심사위원은 론 잭슨과 여러분야의 트레이너들이다.
“아, 아닙니다!”
진호는 경각심이 든 그들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채찍으로 때렸으니 이제 당근을 줄 차례였다.
“정신 놓지 말고 제대로 배워. 그러면 서울패션위크 정도는 씹어 먹을 테니까. 내가 왜 서울패션위크에 서지 않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봐.”
모델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이건 편집해 주세요. 저도 이미지를 좀.”
“그럼요. 당연하죠.”
방송국의 제작진이라면 모르겠지만, JH 소속이다.
편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잘하고, 네 시에 보자.”
“예!”
론 잭슨에게 인사를 하고 클래스 룸을 나온 진호는 마켓으로가 신선한 야채와 과일 등 그들에게 먹일 식재료들을 골랐다.
“와, 과자 양 봐. 미쳤다, 진짜.”
한국에서 파는 것보다 싸면서도 양을 비교하면 거의 3배 차이다.
“너, 너무 많이 사시는 거 아니에요?”
진호는 정색했다.
“사람이 먹는 거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하지만, 들어 보면…….”
제작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모델 일이란 게 한 달에 적으면 한 번, 그것도 적으면 몇십 달러 받는다고 한다. 여기에 월세가 너무 비싸서 가장 싼 햄버거를 사다가 3일을 나눠 먹는다고 한다.
이런 그의 말에 진호는 속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걔들 사정이고.’
불규칙한 생활 습관을 가지면 먹는 족족 살로 가는 건 당연하다.
“괜찮아요. 이걸 다 소화할 수 있을 만큼 굴리면 돼요.”
‘적당량을 매일 같은 시간에 먹으면 안 찌지.’
진호는 씩 웃었고, 기는 식겁했다.
‘주, 죽이려고요?’
그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혼이 나간 표정으로 나와 버스에 오른 모델들은 진호가 내미는 야채 과일 주스에 깜짝 놀랐다.
“배고프지? 한 잔씩 마셔.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씹어 먹어.”
진호의 따뜻한 음성이 울린 순간 모델들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굶은 채로 4시간의 수업을 듣는데 곁에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모델 지망생들이 있다. 여기에 론 잭슨의 질타마저 이어지니 기절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그들에게 안 그래도 무서웠던 진호의 호의는 뜻밖의 선물이자 기대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 했다.
“가, 감사합니다!”
“자, 잘 마실게요.”
“너무 맛있다고 막 사랑하진 말고.”
풋 웃은 모델들은 떨리는 입술을 컵 주둥이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진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