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162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7권 13화
다미앙과 직원들은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적극 찬성했다.
그렇게 프로젝트 L, 아니 프로젝트 J의 시동이 걸렸다.
“……여기서 골라야 한다고요?”
아침 일찍 JH 엔터테인먼트의 사옥을 찾은 진호는 대표이사실에 앉은 양진혁이 보여 주는 노트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노트북 안에는 MP3파일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총 137곡.
레오를 비롯해 JH 소속 작곡가들이 만든 곡들 중 주인을 찾지 못한 곡의 숫자였다.
이 마저도 아이돌 힙합이나 아이돌 음악, 갱스터 랩, 헤비메탈 등 진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곡들은 제외하고 남은 것이었다.
“아니, 뭐가 이렇게 많아요? 고르는 것도 일이겠네요.”
“전속 작곡가만 10명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 소속 아티스트 중 작곡하나 못하는 애들도 드물고.”
우리가 이 정도라는 듯 턱을 치켜드는 양진혁의 모습은 꽤 귀여웠다.
“무릇 가수라면 자기 곡은 자기가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양진혁의 철학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소속 가수의 2집 앨범부터 앨범에 꼭 스스로 작곡 한 노래를 포함시키도록 했다. 그것도 엄준한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이미션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예 앨범을 제작하지 않는다고 한다.
JH 소속의 아티스트가 1집 앨범은 잘 나와도 2집 앨범부터 함흥차사인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이 곡들을 지금 쉬고 있는 가수들에게 주시지…….”
“남이 준 노래만 불러 봤자 뻐꾸기밖에 더 돼? 창작의 고통을 모르면서 어떻게 스스로를 아티스트 라고 말할 수 있겠어?”
진지한 양진혁의 모습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마인드가 있기 때문에 스타트가 가장 늦었는데도 3대 기획사 중 하나로 꼽히는 거겠지.’
JH 엔터테인먼트는 다른 두 기획사보다 언제나 한발 늦었다.
팬덤이라는 문화가 생성된 흔히 1세대 아이돌이라 부르는 아이돌 중 JH 소속 아이돌은 없다. 2세대 아이돌도 JH가 가장 늦었다. 그러나 힙합이라는 당시 한국인에게는 친숙하지 않았던 장르를 들고 나오면서 단숨에 JH라는 기획사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역시 양 사장님, 내가 이래서 사장님을 좋아하잖아요.”
“시끄러워, 인마.”
‘아, 좋아하신다.’
양진혁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크흠, 아무튼 그 중에서 최소 10곡은 뽑아야 해. 테마도 정해야 하고. 앨범을 낼 때쯤이면 봄일 테니까…….”
“풋풋한 사랑 이야기나 일상 이야기?”
“그런 식의 소소하지만 따뜻한 이야기가 좋지. 아니면 그 계절만 저격한 노래도 좋아. 머라이어 캐니의 캐롤 송 알지?”
“알죠. 크리스마스 연금이라고 불리잖아요.”
머라이어 캐니는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캐롤 송 한곡으로 몇백 억을 벌어들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노래를 두고 크리스마스 연금이라 불렀다.
“그렇지. 아니면 버스커의 여수의 밤바다 같은 지명 저격 노래도 좋고. 버스커가 그 노래로 여수 홍보 대사 됐잖아.”
“여수에서 행사하면 행사비가 더블이었다고.”
지금은 해체한 밴드 버스커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수혜자 중 하나였다.
“더블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더 받기는 했지. 그 노래가 발표된 이후 여수를 찾는 관광객 숫자가 증가한 건 사실이니까.”
“흠.”
진호는 MP3 파일 제목들을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수많은 생각들이 진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궁금하지 않나 봐?”
“……아, 제작비요?”
양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팀 이진호와 JH는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거기다 이 앨범 제작도 JH에서 먼저 제안을 했다.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다 부담해도 상관없는데요?”
“……못해도 4억인데?”
보통 앨범을 제작하고 유통을 하는데 드는 비용이 최소 4억 정도다.
“저에겐 패션 위크 한 번 다녀오면 버는 돈이죠.”
“……이래서 잘난 놈들은.”
“으흐흐.”
웃던 진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뭘 원하시는데요.”
이번 앨범 제작은 JH에서 먼저 제안했다.
어떤 속셈이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양진혁은 깔끔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거.”
“음?”
진호는 크게 놀랐다.
“이렇게 많은 곡과 프로듀서, 앨범 커버 등 앨범 제작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시는데, 물론 무료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이렇게 폭 넓은 선택지를 주시는데 제작비까지 분담한다고요? 아무리 저희가 전략적 제휴 관계라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만큼 네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해 준 게 많아서 그래. 주주들이나 이사들만 아니었으면 사비로 라도 전액 다 부담했을 거야.”
그만큼 매출이 급상승했다.
앨범정돈 10집까지 만들어 줘도 될 만큼 말이다.
이런 진심이 가득한 그의 눈에 진호는 입을 다물었다.
“이거 감동해야 되는 부분 맞죠?”
“그래주면 고맙고. 으흐흐.”
진호는 머리를 긁었다.
너무도 뜻밖인 선물이었다.
“음, 제가 중국에서 계약을 맺은 현지 프로모션 업체 전화번호를 알려 드릴까요?”
“오! 그래주면 고맙지. 안 그래도 몇 달 후면 현지 전속 프로모션 업체와 계약을 갱신해야 하거든. 1퍼센트였다고 했지?”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10퍼센트였다.
현지 프로모션 업체 대부분이 프로모션 비용으로 10퍼센트 이상을 불러서 고민 중이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계약이 바뀌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지만, 그들은 결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현장관계자도 그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의 결정이라고 했지?’
“우리랑 계약을 맺은 곳은 일 년 총 매출의 5퍼센트거든.”
“……그건 좀 심하네요.”
말이 5퍼센트지 JH엔터테인먼트가 중국에서 한 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생각하면 십억 대의 돈이 프로모션 비용으로 빠진다는 소리다.
“내 말이. 그렇다고 우리가 독단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할 수 없고. 중국 현지에 법인을 세우거나 한중 합작 자회사를 만든다고 해도…… 쩝.”
진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모션을 진행할 만큼 큰 현지 법인이나 자회사를 세우면, 그 유지비가 전문 프로모션 업체에 프로모션 비용을 지불하는 것과 그리 차이가 없을 것이다.
거기다 자회사나 현지 법인 모두 현지의 자본이 밀고 들어오면 그 자본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비단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똑같았다. 이걸 막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권력자와 손을 잡아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늑대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나는 상황이 벌어 질 수 있다.
“알았어요. 연락처 알려 드릴게요.”
“오! 땡큐. 그러면 앨범 제작비는 다미앙씨와 상의할게. 아마 반절씩 부담하게 될 거야.”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진호를 보며 흐뭇하게 웃던 양진혁은 순간 아차 했다.
까먹고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
“아, 될 수 있으면 이번 앨범에 자작곡을 넣을 수 있도록 해 봐. 번외 트랙이라도 좋으니까.”
진호는 뜨악했다.
“자작곡이요?”
“뭘 그렇게 놀라? 너 기타와 피아노 잘 치잖아. 애드리브도 상관 없어. 팬들을 위해 준비했다는 그 타이틀이 중요할 뿐이지. 너도 어차피 팬들을 위해 너만의 선물을 준비할 거잖아.”
“그건 또 어떻게 아셨대요?”
“내가 널 모르냐.”
진호는 피식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팬들을 위해 제대로 된 화보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작곡이라…….’
그뿐만 아니다. [스킬 : 옥탑방 스타], [스킬 : 마음을 울리는 노래], [스킬 : 유리가면]이 [스킬 : 오만한 천재]와 시너지 효과를 낼 테니, 듣기 거슬리지 않는 수준이라면 대증가요도 지금 바로 작곡할 수 있다.
시험해 봐서 안다.
그러나 소위 명곡이라 말하는 곡들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정 힘들면 프로듀싱에 참가해도 돼. 너도 알다시피 뭘 얼마나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포장하느냐가 중요한 거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 이번 앨범 제작은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드러난 네 끼를 보여 주는데 의의를 두는 거잖아.”
“……네. 알았어요. 그럼 전 일어나 볼게요.”
“그래. 수고해.”
몸을 일으킨 진호는 대표 이사실을 빠져나오며 생각에 잠겼다.
‘그냥 스킬을 얻어 봐?’
작곡이나 프로듀싱 관련 스킬이 있다.
이 중 작곡 관련 스킬의 해금 조건은 한 가지 물품만 얻으면 [스킬 : 페로페로몬]이나 [스킬 : 오만한 천재]의 해금 조건보다 쉬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1시간도 안 되어 얻을 수 있다.
한 가지 물품도 지금 당장 레오나 양진혁을 조르면 얻을 수 있을 만큼 평범한 것이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진호는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뭐, 그래도 돈은 굳었네.”
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돈은 아낄 수 있을 때 아껴야 했다.
* * *
“추리긴 추렸는데…….”
무선 이어폰을 귀에서 뽑은 진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스타일에 맞지 않는 곡을 추렸는데도 아직 80여 곡이나 남아 있다.
“어후, 많아도 문제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통 하나의 앨범에 수록되는 트랙은 15곡 안쪽이다.
레전드 가수의 리메이크 앨범이 아닌 이상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아도 15곡을 넘지 않았다.
한숨을 내쉰 진호는 기획실로 향했다.
“곡은 좀 추리셨어요?”
움찔!
장경아 실장을 포함한 기획실 직원 5명의 몸이 굳었다.
“으흠, 역시 진호 씨는 치트키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못 추리셨다는 말이네요.”
장경아 실장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그녀도 할 말이 많았다.
“그 모든 장르를 소화하는 진호 씨가 문제입니다.”
기획실 직원들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브릿팝이나 힙합처럼 부르기 힘든 장르를 소화하지 못하면 차라리 편하겠는데, 문제는 진호가 소화하지 못하는 장르가 없다는 점이다.
“하아, 너무 잘나도 문제인 건 가.”
진호는 이마를 잡으며 탄식했고, 직원들은 그런 진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맞는 말이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우우웅!
“……끄응.”
한숨을 내쉰 진호는 전화를 받았다.
“네, 이진호입니다.”
-진호야!
“네, 나 피디님.”
나연석이다.
-에이, 우리 사이에 피디가 웬 말이야. 정 없어 보이잖아. 편하게 삼촌이라고 불러.
“네. 아직은 예능 찍을 생각 없습니다, 피디님.”
-……왜! 많이 쉬었잖아! 이번에 아이디어 죽인다니까?
역시 그 목적인 듯싶었다.
“바빠지고 있어요.”
-그래. 내가 우리 진호 바쁜 거 모를까. 일단 한번 들어만 봐.
“걸 그룹이나 여배우들과 여행을 갈 거라고요?”
-……오, 우리 진호는 그런 거 바라는 거야? 그래, 가자. 진호가 가자는데 가야지!
나연석이 태연한 목소리로 약을 뿌리고 있다.
“그런 식으로 꼬드겨서 대선배님들, 아니 선생님들 수발 들게 만들려는 거잖아요. 제가 피디님 몰라요?”
-에이, 이번엔 진짜 아니야. 걸 그룹 누구랑 갈까? 신인 애들이랑? 아니면 진호랑 동갑인 애들? 걸 그룹의 힐링 여행. 진호 넌 가이드. 크으! 좋다, 좋아!
움찔!
아닌 걸 알지만, 그래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유혹이었다.
‘역시 약을 치는 솜씨는 국내 제일이네.’
“그럼 요리 만드는 거겠죠. 국경을 넘은 포차? 아침점심저녁? 이식당?”
나연석이 관여하고 있는 힐링 요리 프로그램 다음 시즌은 내년에 찍는다고 했다.
“뭔데요? 아니, 뭐든 안 할 겁니다.”
-……아씨, 내가 이 수법을 너무 남발했나? 가자, 진호야. 응? 잘해 줄게.
“저 앨범 만드느라 바빠요.”
-오, 드디어 앨범 제작하는 거야? 그럼 우리 음악 여행 갈까?
‘아오!’
그래도 참 고마웠다.
국내 최고 PD 중 한 명인 나연석이 이렇게 계속 같이 하자고 러브콜을 보내는 게 말이다.
-젊은 뮤지션들과 힐링 여행. 이야, 이것도 좋다. 해외 싫어? 그럼 국내 돌자. 어때?
“에휴, 알았어요. 저 앨범 내고 나서 생각해 볼게요.”
-좋아! 약속한 거다! 이거 다 녹음되는 거야!
“네. 출연할게요.”
-으하핫! 오케이! 수고! 앨범 나오면 무조건 사서 들을게! 파이팅!
혹여 마음이 바뀔까 바로 전화를 끊어 버리는 나연석의 행동에 피식 웃은 진호는 핸드폰을 수습하려다가 멈칫했다.
‘젊은 뮤지션들과의 음악 여행?’
“음악 예능이라…….”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실 생각이라면 그만두시라 말하고 싶습니다.”
움찔.
“왜죠?”
“양민학……. 크흠, 메리트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호는 이해했다.
한국에서 방영된, 혹은 방영될 오디션 프로그램은 모두 각 기획사나 대기업에 소속되어 일정 기간 동안 스케줄을 진행해야 한다.
도중에 그만두는 것도 있지만, 그래서는 시간 낭비다.
이슈를 만들려고 나왔다는 볼멘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모든 요소를 따져 봐도 디메리트 뿐이다.
그래도 재밌어 보였기에 출연해 볼까 싶었던 진호는 단호한 기획실 직원들의 표정에 입술을 삐죽 내밀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