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Abandoned Reset Life RAW novel - Chapter 17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8권 1화
1. 횡단
덜컹덜컹 빠르게 달리는 기차 안, 차창 밖에서 새하얀 태양이 떠오르며 사람들의 잠을 깨웠다.
어젯밤 작은 전등에 의지해 밤새도록 책을 읽은 여성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고, 첫 횡단 여행에 가슴이 두근거려 잠이 들지 못한 여행객은 광활하게 펼쳐진 눈 밭에 경탄을 하였다.
“끄으으! 우와!”
기지개를 펴며 일어난 김대원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재빨리 나이열을 깨웠다.
“형, 형, 일어나 봐!”
“아, 뭔데…….”
게슴츠레 눈을 뜨던 나이열은 차 창 밖, 온통하얀 눈의 세상을 보곤 잠시 넋을 놓고 말았다.
“……좋다.”
“응…… 아차.”
김대원은 얼른 자신들이 누운 3 층 침대의 꼭대기를 보았다.
“어? 없네? 화장실 갔나?”
“일어나셨네요?”
“어딜 다녀…… 그건 뭐야?”
진호가 든 투명 봉투 안에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런 베이컨 샐러드가 담겨 있었다. 그 외에도 진호의 손에는 검정색 봉투 몇 개가 들려 있었는데, 고소한 빵 냄새가 났다.
“아침밥이요. 간단하게 만들어 봤어요.”
“……우리가 빵을 샀던가?”
기차에 오르기 전, 마트에서 장을 봤는데 모든 것이 신기해서 처음 보는 것은 보이는 족족 카트에 담았다.
그래서 뭘 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싱긋 웃은 진호는 침대와 침대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아침 밥상을 차렸다.
김대원과 나이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푸짐하고 다양한 상 차림도 상 차림이지만, 있어선 안 될 게 있었다.
“기성품 빵이 아닌데? 술 빵 아냐, 이거?”
“아니, 이건 대체…….”
정말 갓 구운 듯한 따끈따끈하고 먹음직스럽게 노란 술 빵이었다.
“고구마 빵이에요. 전자레인지로 구워 봤어요.”
“빵을? 전자레인지로? 그것도 이렇게 많이?”
빵만 세 판이다. 아침밥 먹다가 배 터질 수도 있었다.
“네, 쉬워요. 드세…… 응?”
시선이 느껴진 진호는 맞은편 침대로 고개를 돌렸다.
2층에서 한 소녀가 멍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진호의 입가에 아빠 미소가 번졌다.
“안녕, 티타니아?”
“……지노!”
어젯밤 인사를 나눈 9살 소녀 티타니아가 이쪽을 향해 양팔을 뻗자 냉큼 다가간 진호가 그녀를 내려 주었다.
“잘 잤어? 안녕히 주무셨어요, 까챠 씨?”
가장 아래 침대에 있던 백발의 할머니가 어느새 일어나 푸근히 웃고 있었다. 까챠와 티타니아는 조모와 손녀지간이었다.
“일어났으면 내려와요, 드미트리. 같이 먹어요.”
“……큼.”
마른 몸매를 지닌 약간 날카로운 인상의 30대 사내가 내려왔다.
원래 진호 자신과 일행들이 잔 3 층 침대 중 2층은 드미트리의 자리였는데, 사정을 듣고는 바꿔주었다.
그렇게 마주 보며 1층 침대에 앉은 여섯 명이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까챠는 사양을 했지만, 진호가 계속 권유했다.
티타니아를 무릎에 앉힌 진호는 그녀에게 고구마 빵을 쥐어 주었다.
“……와!”
자연스레 따뜻한 음식인 고구마 빵을 찾았던 다른 사람들도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많이 먹어.”
“응!”
티타니아의 머리를 쓰다듬던 진호는 이쪽을 향해 모이는 시선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드미트리가 입을 열었다.
“지노, 요리사였어?”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무슨. 이 정도는 아무나 다 해.”
“……이걸?”
고개를 끄덕이던 진호는 등 뒤로 지나가던 승무원을 불렀다.
“체카 씨, 아침 드셨어요? 안 드셨으면 이것 좀 드세요.”
“호호.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지노.”
김대원과 나이열은 러시아인들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진호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역시 사람은 잘 생기고 봐야 하나?”
“카메라 감독님, 진호 원래 저래요?”
“……이건 시작이죠, 뭐.”
영국에선 그 마을 사람 전체와 친분을 나눈 진호다.
이 정도는 몸 풀기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늦어도 이틀 안에 앞 뒤 기차 칸에서 진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는데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아, 이거 맛있네.’
달달한 고구마 맛이 딱 취향이었다.
‘걔네들은 진호 음식 못 먹어서 어째?’
카메라 감독은 예산과 편의상 먼저 모스크바로 향한 스태프들을, 좌절하며 떠난 동료들을 떠올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지노, 노래. 어제처럼 노래 불러 줘.”
“그럴까?”
진호가 입을 열었다.
러시아 민요가 그들이 있는 기차 칸을 울리며, 승객들의 잠을 깨웠다.
* * *
웅성웅성.
붉은색의 곱슬머리를 지닌 통통한 사내가 아침을 알리는 작은 소란과 향긋한 홍차 냄새에 몸을 일으켰다.
“마셔, 네드.”
“아, 고마워요.”
적당히 식은 홍차를 한 모금 마신 그는 약간은 뻐근한 어깨를 주물렀다.
“역시 좋은 침대는 아니네요. 1등석이라고 기대했는데.”
그의 맞은편에 앉은 40대의 백인 남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말했잖아. 기차 여행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경험은 다양하게 해 봐야죠.”
“내가 왜 널 따라온 건지.”
“매니저니까?”
“하아.”
매니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산꼭대기 산장에서 십 일 동안 갇혀 있던 것과 비교하면 이정도는 애교에 불과했다.
싱긋 웃은 사내, 네드는 샌드위치를 씹으며 차창 밖을 보았다. 그러고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단어들을 핸드폰에 적었다.
“역시 핸드폰은 한국이네요.”
“시끄러워. 다 먹었으면 씻고 와.”
“귀찮은데.”
“넌 못생겼으니까 더 잘 씻어야 해.”
“……매니저 갈아 치울까?”
“그럼 나야 좋지. 너의 이 기행들에 어울리지 않아도 되니까.”
역시나 바늘조차 박히지 않았다.
혀를 찬 네드는 몸을 일으켰다.
매니저가 깜짝 놀랐다.
“정말 씻게?”
“아뇨, 사람들 구경하게요. 그것도 다 경험이니까.”
네드는 구석에 세워 둔 기타와 모자를 들고 일어섰다.
“3시쯤 1시간 정도 정차할 거야.”
고개를 끄덕인 그는 바깥과 분리된 1등석 룸의 문을 열고 나갔다. 사람들이 내는 기분 좋은 소음이 머릿속에서 몇 개의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아침이 되었지만 아기를 끌어안은 채 계속 자는 여인,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남성,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오는 중년의 남성 등 걸어가며 보는 모든 풍광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툭 어깨를 치듯 스쳐 지나가는 여성마저도 말이다.
“음, 기차에서 만난 남녀 간의 이야기를 뼈대로 세울까?”
고개를 끄덕인 그는 모자를 눌러 썼다.
“음? 이 칸은 뭔가 다르네?”
일단 시끄러웠다.
그냥 시끄러운 게 아니라 노래와 웃음이 가득한 소란이었다.
“이 노래는…….”
눈을 빛낸 네드는 얼른 문을 열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가 뒤섞인 커다란 노래가 그의 귀를 강타했다.
“Girl you know I want your love!”
캔 맥주를 든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를 부르고,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사람들이 모르는 이와 음식을 교환하고 있었다.
“와.”
그 모습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놀라운 점은 눈살 찌푸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이어폰을 낀 채 각자의 침대에 누운 몇 명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지만, 정말 짜증난 얼굴은 아닌 것 같았다. 뭔가에 집중하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입가에 빵이나 과자를 물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네드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 채 다른 이유를 찾았다.
‘아마도 이 목소리의 주인 때문이 아닐까?’
수많은 노랫소리를 안정적으로 리드하는 목소리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네드는 곧 그 주인들을 찾을 수 있었다.
“……와우.”
사람이 이렇게 잘생겨도 되나 싶었다.
거기다 얼굴처럼 잘생긴 목소리와 기타 연주가 심장을 달콤하게 녹여 버리니 질투조차 나지 않았다.
‘진호 리.’
네드는 진호를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 미튜브에 등장한 기타리스트 겸 세계 최고의 남성 모델. 그 외에도 그를 대변하는 수식어는 많았다.
음악과 파티 말고는 관심이 없는 그도 알 만큼 진호는 유명한 셀럽이었다.
‘동양 쪽 방송인가?’
“오, 즐기러 온 건가? 그럼 마시라고, 젊은 친구.”
네드는 러시아어를 몰랐지만, 내밀어지는 맥주 캔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눈치는 있었다.
“하핫, Спасибо(고맙습니다).”
벽에 기댄 네드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I’m in love with your body L ast night you were in my room.”
‘반칙이네.’
참으로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을 움직여. 따라 부르게 만들어.’
자신의 곡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진호의 목소리엔 강제적으로 귀를 붙잡아 따라 부르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었다. 가수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그런 초능력 같은 재능이었다.
“꼭 이렇게 모든 걸 가져야 하나?”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 했다.
‘이걸 고작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냉큼 날아와 타 버린 횡단 열차 안에서 세계에서 유명한 셀럽 중 한 명을 만나게 되었다.
“운명이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벼락이 치며 하나의 스토리가 떠올랐다. 다음 앨범에 넣고 싶을 만큼 재밌는 스토리였다.
‘헤어졌던 연인이 긴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난다. 기차 한 칸을 중간에 둔 채. 마치 둘의 어색한 거리처럼.’
서로 있는지도 몰랐던 진호와 네드 자신처럼 말이다.
쌉쌀한 맥주 한 모금을 마신 네드는 은은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특유의 목소리가 세 가수의 목소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기타 연주가 약간의 변화를 일으켰다.
* * *
나이열과 김대원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건 나연석과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네드 시런이다.
빌보드의 신화이자, 최근 영국에서 가장 핫한 뮤지션.
그런 그가 진호와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같이 놀았던 기차 안 사람들도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비록 그 자신들이 러시아인이라고는 해도 세계적 가수인 네드 시런을 모를 리 없었다.
“적당히 해요, 리. 당신이 노래마저 잘 부르면 난 어떤 직업으로 돈을 벌어야 하나요?”
“내가 작사 작곡까지 잘하는 걸 알게 되면 은퇴할 수밖에 없겠네요. 방금 편곡해 연주한 거 들었죠?”
“오, 정말요? 들려 줄 수 있어요?”
진호는 핸드폰에 저장된 녹음 파일들 중 하나를 들려주었다. 놀랐던 네드는 곧 감탄했다.
“멋진 브릿팝이네요. 중독성이 강해요.”
“언젠가 영국에 가려고요.”
“최대한 늦게 와요. 아, 나 방금 전 우리의 만남으로 가사 하나 썼거든요? 들어 봐요.”
네드는 스토리를 압축시킨 가사를 들려주었다.
“……양성애자였어요?”
“이성애자입니다.”
“쿡, 농담이에요. 좋은데요?”
“그렇죠?”
빈말이 아니라, 정말 좋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하나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잠깐 만요. 나 떠오른 게 있어요. 들어 봐요.”
핸드폰 녹음 모드를 켠 진호는 허밍을 했고, 네드의 눈은 다시 감탄했다.
눈을 감은 그는 발바닥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리듬을 탔다.
1분 후 허밍이 끝났다.
“……와우, 나 줘요.”
“그럴게요. 전화번호 좀 줘 봐요.”
네드와 전화번호를 교환한 진호는 방금 전 녹음한 허밍 파일을 그에게 발송했다.
“자, 잠깐!”
“네?”
“진호야, 뭐하니?”
“너 설마 지금 네드 시런과 작업 하고 있는 거야?”
나이열과 김대원의 외침에 나연석도 잔뜩 흥분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렇겠죠?”
“여기서? 이 답답한 열차 안에서?”
“어디든 어때요. 악상이 떠오르면 그곳이 작업실이지. 그죠?”
진호는 방금 나눈 대화를 영어로 번역해 네드에게 들려주었고, 네드가 선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모든 곳이 내 작업 공간이죠.”
사람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네드는 어깨에 멘 기타를 꺼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놀아 봐요. 맥주와 기타가 있으면 놀아야죠.”
“푸핫! 우리 서로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네요.”
진호도 끈으로 둘러 멘 기타를 고쳐 잡았다.
“그럼 못생긴 사람이 먼저 할게요. 그래야 여기 수많은 관객들에게 나도 있다는 걸 알릴 테니까.”
“하하핫!”
마주 웃어 준 네드는 기타 현을 빠르고 경쾌하게 훑었고, 그 노래의 제목을 알아차린 진호도 빠르게 화음을 넣었다.
그렇게 작은 콘서트가 시작되었다.